[루키=원석연 기자] ①편에 이어...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동기부여

우여곡절 끝에 2세트가 모두 끝나고, 트레이너에게 "그래도 제가 다른 구단에서 서킷을 두 번이나 하고 왔는데, 자세는 좀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자세는 모르겠고, 요령을 하도 피워서 뒤에서 등짝을 때리고 싶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못 들은 척하고 선수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이어지는 트랙 훈련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 선수들과 함께 트랙 위에서 몸을 풀었다. 그런데 웬걸,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훈련이 진행된 이날, 아산에는 일찌감치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내리쬐는 햇볕과 트랙에서 올라오는 지열 그리고 그것보다 더 숨 막히는 고요한 분위기. 체감 온도는 거의 건식 사우나에 가깝다.

어느 정도 몸을 풀자 위성우 감독이 선수단을 불러 모았다. 날이 덥기도 하고, 오후에 경기도 있으니, 오늘은 별일 없으면 조금만 뛴단다. 10바퀴. 트랙이 한 바퀴에 400m니 10바퀴면 4km다. 또한 위 감독이 말한 ‘별일’이란, 바로 선수들의 낙오다. 한 명이라도 낙오하는 선수가 생기면 바퀴 수는 점점 늘어난다. 

위 감독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울려 퍼지는 휘슬 소리. 박혜진과 박다정이 선두에 섰고, 박지현을 비롯한 신입 선수들이 대체로 후위 그룹을 형성했다. 물론 나는 후위 그룹보다도 한참 뒤처진 압도적 꼴찌. 사실 시작부터 꼴찌로 뒤처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출발 전, 위 감독이 따로 불러 “오늘 날이 너무 덥다. 선수들은 단련이 되어 있어서 괜찮은데, 일반인은 이런 날 갑자기 뛰면 탈이 날 수도 있다”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뛰지 못할 것 같으면 지금 포기하라”고 말했기 때문. 그러나 나는 “오전만 하면 되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호기롭게 선수들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30도가 넘는 기온에 트랙을 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훈련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체력을 단련해 왔지만, 빵빵한 에어컨 아래 헬스장과 폭염주의보의 트랙은 차원이 달랐다. 두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호흡이 가빠져 코치진에 포기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전주원 코치는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르겠지만, 시작했으면 끝까지 뛰어야 한다”며 트랙 밖으로 이탈하려는 나를 도로 트랙 위로 돌려보냈다. 다섯 바퀴 정도 지났을까? 거친 호흡뿐만 아니라 슬슬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 이대로 뛰다가는 정말 위 감독의 말대로 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 만약 여기서 내가 정말 쓰러지기라도 하면 감독님도 곤란하실 거야. 우리은행을 위해 이쯤 하자.’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이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주원 코치의 목소리.

“원 기자! 한 바퀴 다 안 뛰면 애들 다시 뛰어! 빨리 뛰어! 걷지마!"

세 번의 <현장 학습> 중,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은 없었다. 절대로 안 떨어질 것 같았던 발이 나도 모르게 다시 뛰고 있었다. 도저히 못 뛸 것 같았는데, 몸 어디선가 자꾸 힘이 난다. 그렇게 전력질주로 트랙을 돌아 골인 지점을 통과해 바닥에 쓰러져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 바로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의 원동력이구나. 선수들에게도 이렇게 동기부여를 하면 도무지 질 수가 없겠구나.’ 전 코치가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주원의 농구교실

오후에는 예정대로 쌍용고와 연습경기가 열렸다. 이날 경기에 나서지 않는 선수들과 함께 코트 옆에서 경기장을 왕복하는 인터벌 러닝 훈련을 한 뒤, 나머지 시간에는 벤치에서 물을 나르며 막내 노릇을 충실히 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의 마무리 슈팅 훈련을 지켜보면서 퇴근을 준비하려던 그때, 전주원 코치가 갑자기 공을 건넸다.

“KB에서 농구 좀 배워 왔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은행에서도 좀 배워 가야죠.”

지난 KB편에서도 말했지만, 필자는 고등학교 때 본 레이업 수행평가 외에는 농구를 해본 경험이 없는 독특한 이력의 농구 기자다. 그러나 본지 편집장은 “<현장학습>을 통해 1년 안에 기자단 농구대회 MVP로 만들어보겠다”며 훈련 때마다 꼭 코치들에게 농구를 배우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KB 훈련에서는 이영현 코치에게 레이업과 자유투를 속성으로 배운 바 있다. 

전 코치에게 “KB에서 자유투와 레이업을 배웠으니, 코치님은 3점슛을 알려 달라”고 말했으나, 전 코치는 “기본기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레이업을 먼저 올려보라고 지시했다. 이영현 코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신 있게 레이업을 올려봤지만, 공은 한참을 빗나갔다. 태백에서 특훈 이후 한 달 동안 공을 놓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3점슛은커녕 레이업부터 하루종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전주원 코치가 혀를 차며 말했고, 그 말은 곧 현실이 됐다. 계속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세가 고쳐지지 않자, 전 코치는 결국 또 ‘우리은행식 동기부여’ 방법을 택했다. 

“알려준 자세로 레이업 3번 연속 성공하기 전까지 선수들 밥 먹으러 못 가요.”

이미 스트레칭을 마친 선수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또 다시 시작된 나 자신과의 싸움. 도저히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던 자세는 금세 바뀌었다. 1구, 2구, 3구까지 성공. 다행히도 선수들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레이업에 무사히 성공하면서 우리은행에서 훈련은 마무리됐다. 위성우 감독은 “연습경기가 갑자기 당겨지는 바람에 제대로 훈련을 못 해 너무 아쉽다. 다음 주에 장위동 체육관이라도 다시 오면 제대로 대접(?)하겠다”며 아쉬운 모습. 아닙니다. 감독님. 저는 정말 충분했습니다…

훈련 때문이라니까요

서울로 돌아오는 길, 편집장은 “대한민국 최고 코치인 전주원한테 배웠는데도 농구가 안 늘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며 면박을 줬다. 훈련하고 힘든 것도 서러운데, 기자가 기사를 못 써서도 아니고 레이업이 안 들어갔다고 혼나니 두 배로 서럽다. 

“훈련 때문에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체력훈련 안 하고 어디 스킬 트레이닝 센터에서 종일 농구만 하면 저도 금방 합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지?”

<현장 학습>은 다음 달에도 계속됩니다...

 

사진 = 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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