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전날까지 비가 왔던 아산에는 이날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30도가 훌쩍 넘는 태양열이 내리쬐는 광활한 트랙 위로 피어 오르는 것이 아지랑이인지 신기루인지 분간이 어렵다. 에라, 도저히 못 뛰겠다. 포기하고 뜀걸음을 멈춘 순간, 저 멀리 전주원 코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걸으면 선수들 한 바퀴 더 뛴다!” 사탄도 울고 갈 소리에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래, 이게 우리은행이구나! 이게 지옥이구나!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실제 상황

2008-2009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정확히 네 시즌. 춘천 우리은행 한새는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승수를 넘기지 못하고 꼴찌, 그야말로 압도적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이었다. 그러나 2012-2013시즌, 직전 시즌 7승 33패에 그쳤던 우리은행은 그보다 17승을 더한 24승(11패)을 기록하며 단 1년 만에 정규리그 꼴찌팀에서 1위팀이 되는 기적을 썼다. 

기적의 서막은 2012년 여름부터였다. 새로 부임한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는 부임 첫해 여름, 리그 출범 이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혹독한 체력훈련으로 개막 전부터 유명세를 떨쳤다. 지옥 훈련을 경험한 선수들은 “지나가는 개가 부럽다”고 하소연했으며, 시즌을 마치고 우승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름에 그렇게 훈련하고 우승 못하면 억울해서 우승했다”는 한 서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선수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우리은행표 지옥훈련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였다. 

가령 선수들이 거액의 FA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를 보며 ‘돈 많이 벌어 좋겠다’고 말하면 ‘우리은행 훈련 한번 다녀오고 그런 소리를 해라’라고 핀잔을 준다든가, 혹독한 취재 일정을 보고 편집장에게 ‘일정이 너무 빠듯합니다’라고 말하면 ‘우리은행 훈련을 한번 다녀와 봐야 정신을 차리지’라며 면박을 주는 용도로 쓰이곤 했다. 그런데 2019년 8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쌍용고가 명문인 이유

우리은행이 <현장학습>의 세 번째 팀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올시즌 현장학습의 목표는 각 구단의 비시즌 전지훈련을 취재하는 것이 목적인데, 8월에 국내 전지훈련을 떠나는 팀은 우리은행이 유일했기 때문. 

취재 일정을 잡기 위해 위성우 감독에게 전화를 거는데, 취재가 거부당하기를 바라며 통화대기음을 기다린 적은 또 처음이었다. 그러나 위 감독은 “드디어 기자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면서 “언제든 오라!”고 흔쾌히 답하며 기대를 저버렸다. 

그렇게 일정이 잡혔고, 훈련을 앞둔 어느 날 야구와 축구, 농구를 모두 다루는 한 종합지 선배로부터 “우리은행의 전지훈련은 우리나라 모든 프로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가장 강도가 높더라”라는 귀중한 조언을 받았다. 선수단 역시 값진 조언을 해줬다. 훈련을 열흘쯤 앞두고 경기도 하남에서 열린 3x3 대회에서 우리은행 선수단을 만나 조심스럽게 훈련 강도에 대해 묻자 선수들은 한숨과 미소를 교차하며 “와보면 알 것”이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아산에서 재회를 기약했다. 

그리고 열흘 뒤, 마침내 훈련 당일. 오전 훈련 시작 시간에 맞춰 우리은행의 전지훈련이 한창인 아산으로 향했다. 삼천포, 태백 등 새로운 전지훈련장으로 떠난 지난 훈련과 달리 우리은행은 홈 구장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이고,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위성우 감독이 웃으며 반겼다. 정규시즌에는 볼 수 없는 사람 좋은 미소. 악수를 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소식이 있단다.

“오늘 우리가 원 기자님 위해 제대로 훈련 계획을 짜놨는데 글쎄, 갑자기 쌍용고에서 내일 있었던 연습경기를 하루 당기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오늘은 오전 훈련만 하고 오후에는 연습경기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못 할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쩌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쌍용고 감독님. 아침부터 마주한 뜻밖의 행운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 훈련복으로 환복 후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체육관 2층 서킷 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서킷 트레이닝장에서 만난 전주원 코치가 오늘의 훈련 계획을 설명했다. 오전에 서킷 트레이닝 과 트랙 훈련, 점심, 연습경기, 마무리 운동. 간단한 일과다. 오후에는 연습경기가 있어 아쉽게도(?) 훈련을 할 수 없어 오전에만 열심히 버티면 되는 두괄식 구성의 훈련.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8시부터 시작된 그 오전 네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네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서킷 트레이닝

우리은행의 서킷 트레이닝은 간단했다. 데드리프트 - 스쿼트 - 숄더프레스 - 클린 - 밴드피치 - 암컬 - 클린앤저크 – 메디신볼 복근훈련 - 박스스텝 - 벤치 - 푸시업 - 파워맥스 - 허들스텝 – 레그프레스 총 14개 종목을  2바퀴 도는 것이 1세트. 

전 코치는 “원래 우리는 세트를 안 정하고 하는데, 연습경기 때문에 오늘은 2세트만 할 것이니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사실 오전 첫 훈련이 서킷 트레이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하나은행과 KB에서 한 차례씩 경험한 바 있기에 그 힘듦(?)의 강도를 얼추 알 수 있기 때문. 또한 이전 두 훈련 모두 달리기 훈련은 낙오됐지만, 서킷 트레이닝만큼은 이탈하지 않고 모두 소화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훈련 역시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훈련은 달랐다. 우선 가장 다른 점은 한 종목을 마치고 다음 종목으로 넘어갈 때의 휴식 시간이었다. 보통 30초 정도 휴식 시간을 줬던 지난 두 구단과 달리 우리은행은 뭐가 그리 바쁜지 10초가 지나면 곧바로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린다. 

또한 우리은행의 서킷 트레이닝장은 체육관 2층에 복도식의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모든 종목의 앞에는 거울이 있으며, 위 감독을 비롯해 전주원, 임영희 코치, 그리고 그들만큼 매서운 눈초리를 가진 함아름 트레이너가 거울을 통해 눈에 불을 켜고 선수단을 지켜본다. 자세가 조금이라도 풀어지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저 멀리서도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난 KB 태백 전지훈련 당시 아침에 장터국밥을 든든히 먹고 갔다가 훈련 중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아침에 속을 깨끗이 비우고 갔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훈련은 듣던 대로 상상을 초월했다. 물 마실 틈은커녕 다음 기구나 로프를 잡기도 전에 쉴 새 없이 울리는 휘슬에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속이 매스꺼워졌다. 특히 지난 태백에서도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던 허리에 줄을 묶고 달리는 ‘밴드피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구토를 유발했다. 그래도 KB는 두 세트를 모두 완주하고 화장실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1세트 만에 화장실로 달려가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박진호 기자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