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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석연의 더 멘트] 박신자컵과 마지막 수능 원서

[루키=속초, 원석연 기자] 24일 속초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KB국민은행 박신자컵 서머리그 대학선발팀과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경기. 경기 시작 10분 전, 기자석 앞으로 낯선 라인업 카드가 전달됐다. 

정리된 양식이 아닌 수기로 작성된 라인업 카드. 카드에는 팀 이름을 시작으로 권은정 감독의 이름부터 마지막 번호 15번 김해지의 이름까지 모두 또박또박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확인 결과 주최측은 “라인업 카드는 양 팀 벤치에서 30분 전 본부석에 제출한다. 본부석은 이를 모아 찍어서 기자석에 전달한다. 대학선발팀은 대회 출전이 이번이 처음이라 미처 라인업카드 양식을 준비하지 못해 급하게 수기로 작성해 냈다”고 알렸다.

그야말로 ‘아마추어’ 팀다운 실수. 그러나 10분 뒤 시작된 그들의 경기는 전혀 아마추어 같지 않았다. 13번의 동점, 역전 횟수는 도합 18번. 대회 1일 차였던 이날 열린 4개 경기는 모두 5점 차 이내의 명승부가 펼쳐졌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바로 이 경기였다.

 

1쿼터 시작부터 4쿼터 종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팽팽한 시합이었다. 대학선발팀은 포워드 최윤선과 강유림이 공격을 이끌었고, 신한은행은 한엄지가 포스트에서 경기를 조율했다. 

치열한 승부는 버저비터와 함께 결정됐다. 

경기 막판, 승기를 잡고 있던 쪽은 대학선발팀이었다. 종료 25초 전 박경림이 상대 팀 파울로 얻어낸 자유투 2구를 성공하며 71-69로 리드를 잡았다. 이어진 신한은행의 공격, 에이스 한엄지가 골밑 돌파로 천금 같은 동점 득점을 올렸다. 경기 종료까지 5초가 남아 있고, 71-71로 팽팽한 상황. 대학선발 팀은 마지막 공격을 위해 빠르게 공을 몰아 하프라인을 넘었다. 

이때, 신한은행 이혜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을 가로챘다. 남은 시간은 3초, 이혜미는 4번의 드리블로 하프라인을 넘어 오른쪽 45도에 서서 재빨리 발을 맞춰 슛을 올렸다. 

삐-.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버저비터와 함께 이혜미의 슛이 림을 통과했다. 전광판의 점수는 71-74. 신한은행의 승리가, 그리고 대학선발팀의 패배가 결정되는 순간. 

 

“선수들의 눈에 간절함이 서려 있다. 어떻게든 프로에 가겠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정말 열심히 운동한 것이 티가 나더라. ‘대학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경기 보여줘서 고맙고, 앞으로 대학선발팀의 경기는 모두 지켜보겠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끝까지 관람한 전주원 우리은행 코치가 자리를 뜨며 말했다.

경기 막판, 조금만 더 집중력을 발휘해 승리했었다면 그들은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테다. 3점슛 9개 중 7개를 성공하며 26점을 올린 최윤선과 19점 12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한 강유림은 수훈 선수 인터뷰를 위해 기자회견실에 들어섰을 것이고, 권은정 감독은 소집된 지 하루밖에 안 된 대학선발팀을 승리로 이끈 승장으로 재조명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패배했고, 다시 무대 뒤편으로 물러났다. 대학 선수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한끗이 모자라 패장이 된 권은정 감독은 연신 ‘내 탓이오’다. 권 감독은 “71-69에서 신한은행이 공격할 때, 골이 들어가서 동점이 되면 작전 타임, 안 들어가면 그대로 플레이하려고 했다. 그런데 골이 들어갔고, 타임으로 끊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 미처 타임을 부르지 못했다. 오늘 패배는 내 탓이다”라며 아쉬운 모습.

‘내 탓이오’를 외친 것은 권 감독뿐만이 아니다. “내 실책 때문이야.”, “내가 경기 초반 골밑 슛을 놓쳐서 그래.” 선수단도 저마다 자신에게 책임을 씌운다.

 

이번 박신자컵에 참가한 대학선발팀은 각 지 대학 선수들이 모인 ‘연합군’이다.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열흘간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제35회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를 마치고 하루 휴식 후 바로 이곳 속초로 왔다. 여독은커녕 캐리어의 짐도 안 풀고 온 선수들이 대부분. 손발을 맞춰볼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 참여하며 갖는 마음가짐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하고, 간절하다.

수원대 최윤선은 “우리 팀 대부분이 4학년이다. 호흡을 맞출 시간도 없었고, 몸도 힘들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드래프트 전까지 대학 선수들에게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윤선의 말대로, 종별 선수권대회나 MBC배 전국대학농구 대회 등 대학 선수들을 위한 무대는 여럿 있긴 하지만, 이렇게 프로 팀 코치진이 한 자리에 모여 선수들을 직접 보는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고교 선수가 아닌 대학 선수, 특히 4학년 선수에게 이번 대회는 트라이아웃 시험장이자 더 이상 돌아볼 곳이 없는 수능 고사장과 다름없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꽤 많은 관심을 받지만, 대학에 가는 순간 선수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요. 좋지 않은 인식도 생기고요.” 광주대 강유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단국대 가드 한선영, 용인대 가드 박은서, 수원대 포워드 최윤선, 광주대 포워드 김보연, 광주대 포워드 강유림, 부산대 센터 이주영, 한림성심대 센터 용지수. 

이들은 다음 대회에서 다시 볼 수 없는 4학년 선수들이다. 지난 1월 열린 2018~2019 WKBL 신입선수 선발회 지원자 27명 중 프로에 선택받은 대학 선수는 단 두 명뿐. 경기 시작 전 본부석에 도착한 삐뚤빼뚤한 라인업카드는 어쩌면 떨리는 마음으로 제출한 수능 원서였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말미, 주장 강유림이 라인업카드를 앞에 두고 미소를 띠며 각오를 전했다.

“잡을 수도 있었던 경기를 놓쳐서 아쉽지만, 이번 대회는 이기는 것보다도 프로팀, 그리고 경기를 보는 팬들에게 ‘우리(대학 선수)도 이렇게 뛰고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몸도 힘들고, 다가오는 체전부터 드래프트까지 미래도 걱정투성이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남은 경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원석연 기자

원석연 기자  hiro3937@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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