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이승기 기자 = 2014 스페인 농구월드컵에서 세르비아가 조용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1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8강전에서 프랑스가 우승후보 스페인을 침몰시켰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이 경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에 앞서 열린 8강전 경기에서는 세르비아가 난적 브라질을 격침시키며 4강에 올랐다. 우리는 세르비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사신
세르비아는 '죽음의 조'라고 불리는 A조 소속으로, 대회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스페인, 프랑스, 브라질, 이란, 이집트와 한 조였기 때문. 조별리그에서도 약체 이란과 이집트에게만 승리를 거뒀을 뿐, 2승 3패로 간신히 16강 무대에 올라 우려를 샀다.
하지만 16강전부터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B조에서 5전 전승을 거두고 올라온 강적 그리스를 90-72로 묵사발냈다. 그리스의 최대 장점인 뛰어난 수비 조직력은 세르비아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세르비아는 활화산처럼 득점포를 내뿜으며 그리스의 수비벽을 무너뜨렸다.
8강전은 더 놀라웠다. 브라질은 NBA 선수들을 주축으로 탄탄한 전력을 구축, 이번 대회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제외한 모든 팀에게 승리를 거두며 4승 1패를 올렸고, 16강에서 남미 라이벌 아르헨티나를 맞아 85-65로 대파하며 8강에 안착했다.
브라질과 세르비아의 8강 맞대결은 브라질의 우위가 점쳐졌던 것이 사실이다.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인 세르비아에 비해 브라질의 경기력이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 게다가 조별리그에서도 81-73으로 브라질이 세르비아를 한 차례 꺾은 바 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세르비아의 승리. 그것도 84-56 완벽한 승리였다. 브라질은 경기초반부터 4쿼터 끝까지 가해진 세르비아의 파상공세를 버티지 못했다. 3쿼터에 세르비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이미 페이스를 잃었고, 이는 결정적 패인이 됐다. 세르비아는 3쿼터를 29-12로 압도하며 사실상 경기를 끝냈다.
카멜레온!
세르비아가 토너먼트 들어 갑자기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세르비아는 상대가 어떤 스타일이건 그들에게 맞춰 카운터를 날릴 수 있다. 속도를 앞세운 폭발적인 공격농구, 높이를 바탕으로 한 끈적한 수비농구 모두 가능하다. 어떤 팀과 만나도 맞불을 놓거나 혹은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카멜레온과도 같은 로스터를 갖췄다.
그리스는 평균 204cm의 장신군단이다. 다만 뛰어난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가 많지 않다. 거구들이 많아 스피드에서도 약점을 보인다. 세르비아는 이 점을 노리고 한 발씩 더 뛰는 농구를 구사했다. 주축 선수들의 은퇴로 해결사가 없던 그리스는 공격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며 쓰러졌다.
브라질은 어떨까. 평균 31세의 노장 팀이다. 국제대회 경험은 많지만 그만큼 체력적 불리함을 안고 있다. 세르비아의 젊은 선수들은 속도를 살렸다. 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몸을 부딪히며 브라질 선수들의 체력을 빼놓았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이 자랑하는 NBA 빅맨 트리오, 네네-안데르손 바레장-티아고 스플리터를 상대로는 육탄전을 방불케하는 물량공세를 퍼부어 인사이드를 지켜냈다. 세르비아 또한 뛰어난 높이를 자랑하는 빅맨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주역들
세르비아의 기본 공격 세팅은 간단하다. 주전 센터 미로슬라브 라둘리차(213cm)가 나왔을 때는 포스트업을, 백업 센터 네너드 크리스티치(213cm, 터키리그)가 코트 위에 나섰을 경우에는 픽-앤-팝을 노린다. 굉장히 간단해보이지만 대단히 위력적이다.
라둘리차는 힘이 굉장히 좋은 빅맨이다. 인사이드에서의 풋워크와 포스트업 능력도 좋다. 가드진과의 호흡이 뛰어나고 골밑 득점 역시 능숙하다. 상대 빅맨이 페인트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크리스티치는 지난 몇 년 간 세르비아를 이끌었던 빅맨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31세의 노장이 됐고, 젊은 선수들의 뒤를 받치고 있다. 녹슬지 않은 중장거리 슈팅 능력으로 상대 빅맨 수비진을 밖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에이스' 밀로스 테오도시치는 명불허전. 과연 유럽 최고 가드다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1, 2번을 오가는 듀얼가드 테오도시치는 상황에 따라 상대 수비벽을 박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상대가 지역방어로 응수하면 어김없이 3점포를 터뜨리며 수비벽을 허문다.
또, 과감한 돌파와 날카로운 패스 등으로 경기운영 전반에 관여한다. 빅맨들과의 픽-앤-롤, 픽-앤-팝은 이미 유럽에서 정평이 나있다. 이번 대회에서 평균 12.6점(팀 내 1위), 4.3어시스트(팀 내 1위), 야투 성공률 50.9%, 3점슛 2.4개(44.7%)를 기록 중이다.
보그단 보그다노비치는 이번 대회 최고의 슈터 중 한 명으로, 예의 빼어난 슛 감각을 과시하고 있다. 샷 클락 바이얼레이션에 쫓길 때나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보그다노비치가 어김없이 해결사로 나선다. 이는 세르비아의 막강한 화력이 경기 내내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큰 성장을 이뤄낸 네만야 비엘리차의 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9cm의 다재다능한 장신 스몰포워드 비엘리차는 상대에게는 매치업 나이트메어와 같은 존재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프랑스의 보리스 디아우를 생각하면 된다.
비엘리차는 3점슛, 패스 등 다양한 공격옵션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퍼리미터 지역까지 나와 상대 스윙맨을 수비할 수 있다. 또, 이번 대회 기간 동안 벌써 세 차례나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따냈을 정도로 보드 장악력마저 훌륭하다. 비엘리차가 만드는 작지만 큰 차이가 경기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돌풍은 어디까지?
세르비아의 FIBA 랭킹은 11위. 하지만 최근 국제대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번 월드컵 또한 2013 유로바스켓에서 막차를 타고 간신히 진출했다. 하지만 막상 본선에서는 뛰어난 경기력으로 농구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중이다.
세르비아의 이번 대회 최종 순위는 어떻게 될까. 4강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프랑스에게 패하고 3-4위전에서도 미끄러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르비아는 지금 완전히 감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