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에세이 ‘단편’(斷片/短篇)
|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맏언니
| ‘전에 없던 캐릭터’ 청주 KB스타즈 염윤아

#8
하나은행과의 FA 1차 협상에서 고민하던 염윤아가 최종결렬을 선택했던 것도 앞서 언급한 가족들의 조언을 적극 참고해 내린 결정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가족들은 “잔류보다는 2차 협상에 나서보자”는 의견을 나타냈고, 염윤아는 “하나은행에 남을 거라면 1차에서 남고 싶다. 만약 2차에서 나를 원하는 팀이 없으면 하나은행으로 돌아가지 않고 은퇴할 거다. 그때는 가족들이 날 책임져라”는 으름장과 함께 FA시장에 나섰다.

이번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농구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나선 FA시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협상 시작 당일 오전에 KB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납회식에서 ‘염윤아를 꼭 잡아달라’는 말을 들었던 KB의 장원석 국장은 바로 염윤아에게 연락을 했고, 첫 만남에서 염윤아는 사실상 KB로의 이적을 결정했다.

“국장님이 자료까지 갖고 오셔서 구단의 역사부터 막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프로에 와서 10년 정도 있었지만 그런 설명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어요. FA가 되니까 이런 대접도 받는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첫날 얘기하고 KB 이적을 거의 결정했던 것 같아요. 다른 건 기억 안 나는 데 국장님이 마지막에 그러시더라고요. ‘염윤아 선수, 노란 색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그렇게 염윤아는 KB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양 무릎 수술을 하고 병원에 꼼짝없이 누워있다가 박지수의 WNBA 드래프트 선발 소식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안덕수 감독은 염윤아의 계약 확정 소식에 병상에서 벌떡 일어섰다고 한다.

#9
가드 포지션에 아쉬움이 있던 KB의 염윤아 선택은 높이의 압도적인 우위를 선점한 KB가 대권을 향해 가는 데 가장 강력한 신의 한수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2018-19시즌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KB를 제외한 5개 구단 감독들은 이구동성으로 KB를 우승후보 0순위로 꼽았다.

그러나 고민도 있었다. 낯설음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염윤아는 해외 전지훈련을 가도 공식 일정 외에는 호텔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인 관계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밖으로 도는 것 보다 안에 박혀있는 것을 좋아한다. 곧, 다른 팀 선수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많지 않았다. KB에서 알고 있던 선수는 김보미 한 명. 그런데 그 김보미는 염윤아의 보상선수로 팀을 떠났다.

훈련부족도 문제. 염윤아는 2018-19시즌을 앞두고 가장 긴 휴식을 취한 선수다.

하나은행이 2017-18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일찍 휴가를 맞이했고, FA 1차 협상이 결렬되며 팀 훈련에 합류하지 않았다. 새롭게 이적한 KB는 챔프전까지 치른 후, 우승팀인 우리은행보다도 더 긴 휴가를 선수들에게 부여했다.

이전 시즌을 가장 일찍 마치고, 새 시즌을 가장 늦게 시작했다. 여기에 대표팀에도 뽑히면서 몸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휴가가 길었잖아요. 혼자서 몸을 만들긴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죠. 그리고 대표팀까지 가면서 몸이 더 안 올라왔어요. 대표팀 훈련량이 정말 적었거든요. 그나마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좀 나은데, 벤치에 있는 선수들은 몸을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시즌을 앞두고 다시 팀에 합류했을 때는 걱정이 태산 같았죠.”

KB의 상황도 염윤아에게는 고민을 안겨줬다.

새롭게 옮긴 팀에 녹아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지만 KB는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서야 팀을 맞춰가고 있었다. 주장인 강아정이 양쪽 발목을 모두 수술해 비시즌 내내 재활에 매달렸고, WNBA 시즌과 대표팀까지 휴식 없이 1년을 소화한 박지수에게는 짧은 휴식이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KB는 개막 1달 전에 실시한 일본 전지훈련에도 박지수를 데려가지 않고 휴식을 줬다.

“일본 전지훈련 때 방에서 울었어요. 개막이 코앞인데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새롭게 맞추는 건 너무 많고, 안 감독님도 이환우 감독님과 스타일이 다르니까 거기 적응도 해야 하고, 많은 돈을 받고 이적한 만큼 부담도 있었는데 걱정이 너무 앞섰어요.”

결국 시즌 초반 KB는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승수를 쌓아갔지만 경기력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초반에 어떻게 이겼는지도 모르겠어요. 손발이 안 맞고 뭔가 제대로 안 되는 데 계속 이기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그렇게 이겼던 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됐죠. 하나은행에 있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를 받았잖아요. 그게 마음의 위로는 되는데 프로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용이 좋지 않더라도 어쨌든 이겨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박지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즌 초반에 농구가 잘 안됐고, 특히 염윤아와의 호흡도 맞지 않아 동기인 이소정의 방을 찾아 한탄하기도 했다는 말을 했다. 염윤아는 이 기사를 캡처해 자신의 SNS에 올리고는 ‘그랬구나’라는 멘트를 남겨, 박지수를 당황하게 했다.

“아니... 뭐라고 한 게 아니라, ‘(박)지수도 그랬구나’라고 한 거에요. 나도 지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나는 남편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했는데, 지수는 (이)소정이한테 가서 그랬어. 저도 ‘팀을 옮길 때 아빠랑 남편이 센터랑 맞추는 게 쉽고 도움도 될 거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고 많이 툴툴 거렸죠. 우리 우승 못했으면, 우리 가족들 비상이었을 거예요. 저한테 평생 원망 들었을지도 몰라요. 하하.”

염윤아는 박지수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선수들이 시즌 초반에 자신에 대해 불만이 많았을 거라고 말한다.

거액의 FA로 영입한 선수가 자신이었고, 그로 인해 팀에서 궂은일을 담당하며 파이팅을 불어넣어주던 베테랑 김보미가 팀을 떠났다. 염윤아가 들어옴으로 인해 시너지 효과가 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지니 불안감도 커지고 불만도 높아졌을 거라는 것.

하지만 결국 KB는 2019년 들어 패배를 잊은 모습을 보이며 리그를 제패했고, 염윤아 역시 새로운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선수들끼리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초반에 안 좋았던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그래서 올스타전 지나면서 더 많이 맞아가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한테도 감사해요. 감독님이 생각하신 부분대로 우리가 잘 안될 때, 다른 방법이 어떻겠냐고 건의를 드리면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셨어요.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감독님이 저희를 많이 이해해줬고, 또 마침 그 시기에 상승세도 타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10
“완전 좋아했는데 남들은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막 엉엉 울었어야 하나? 아니, 그런데... 좋은데 왜 울어? 웃는 게 맞지!”

우승에 목말랐던 KB가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선수들은 한데 어우러져 환하게 웃었다. 리그를 대표하는 전통의 명문 중 하나였지만 유일하게 우승이 없었던 팀이 한을 푸는 순간, 많은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리라 예상도 했지만, 이들의 우승 파티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염윤아는 정규리그 우승 때는 챔프전에 남아있어서 별로 환호하지 않은 것이었고, 챔프전 우승 때는 충분히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시즌을 돌아봤을 때, 우승 순간보다도 우리은행에게 이겼던 상황들이 더 짜릿했다고 했다.

KB는 지난 시즌 초반 우리은행과의 맞대결을 2연패로 시작했다. 하지만 3라운드 맞대결부터 내리 5연승을 거뒀다. 우리은행 전 5연승은 KB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용도 놀라웠다. KB는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리그에서 가장 수비가 강한 팀으로 확실하게 이미지를 구축한 우리은행을 상대로 팽팽한 수비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주장 강아정이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에서도 이겼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가 퇴장 당하고 10점차 이상 뒤지던 경기도 마지막 7분에 뒤집어 역전승으로 마무리했다.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는 마지막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적어도 우리은행과의 맞대결만큼은 달랐다. 위성우 감독은 “우리랑 경기할 때의 KB는 다른 팀이랑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말했다.

“집중력이 달랐던 것 같아요. 확실히 우리도 느껴요. 우리은행이랑 경기할 때랑 다른 팀이랑 경기할 때 차이가 났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걸 똑같이 유지하도록 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은행은 꼭 이기고 싶었죠.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지난 6년 동안 항상 이기기만 한 팀이잖아요. 상대적으로 항상 져왔으니까 이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거죠.”

염윤아에게는 특히 2018년 12월 29일, 아산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4라운드 맞대결이 더 의미가 있었다. 주장 강아정이 결장한 경기에서 KB는 48-46으로 우리은행을 제압했다. 염윤아는 43-43이던 종료 23초전, 3점슛으로 리드를 다시 찾아왔다. 13초 뒤 우리은행의 박혜진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3점슛을 꽂아 넣으며 동점을 만들자, 염윤아는 팀의 마지막 공격에서 종료 4초를 남기고 베이스 라인을 돌파해 이 경기의 결승골을 성공했다.

최강 우리은행을 상대로 마지막 클러치타임에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박지수도, 카일라 쏜튼도 아닌 염윤아였다. 염윤아의 프로 생활 최초의 위닝샷이었다. “염윤아가 KB로 갈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했던 위성우 감독의 불안했던 예측이 8개월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내가 하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 3점슛은 너무 오픈이 되어 있어서 안 던질 수가 없었고, 마지막 돌파도 그쪽 아니면 갈 데가 없어서 가다가 그렇게 됐어요.”

염윤아는 2018-19시즌이 자신의 첫 챔프전이었다고 말한다. 팩트 체크를 해보자면 거짓이다. 염윤아는 우리은행에 있던 루키 시즌에 우승을 경험했고, 하나은행 시절인 2015-16시즌에도 챔프전 3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0분을 뛰었다.

“우리은행 시절은 정말 우승 기억도 안 나요. 물통 들고 왔다갔다 하다보니까 우승했더라고요. 선수가 아니라 매니저로 우승한 거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2016년에 뛴 챔프전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한 거 없이 그냥 가운데에 공만 넣어주다 끝났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나한테는 이번이 진짜 첫 번째 챔프전이었어요.”

FA 대박과 이적 첫 해는 염윤아에게 우승이라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안 보이나? 정말 좋았어요. 저는 우승하고 지금까지도 계속 좋아요. 휴가 때 시즌 경기를 다 돌려봤어요. ‘와... 나 저 때 정말 잘했네’라는 생각도 하면서요. 그 힘들었던 걸 다시 돌려서 볼만큼 그렇게 좋아요.”

그러나 새 시즌, 염윤아의 연봉은 삭감됐다. 지난 해 2억 5,500만원에 KB로 이적한 염윤아는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연봉이 1억 7,000만원으로 내려갔다. 무려 8,500만원 삭감. 하지만 그는 태연했다.

“에이. 저 FA 오버페이였잖아요! 우승 보너스랑 합치면 깎인 것도 아니에요. 연봉 협상때 혹시 저 기분 나쁠까봐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계약할 거라고, 기사 나가기 전에 미리 국장님이 말해주시고, 설명도 다 해주셔서 오히려 감사했어요.”

#11
2019년 3월 25일. KB가 창단 후 첫 통합 우승을 확정한 용인실내체육관에는 하나은행 선수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주장인 백지은을 비롯해 강이슬, 지금은 신한은행으로 이적한 김이슬, 하나은행에서 함께 하다가 신한은행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던 임현지 매니저 등, 염윤아가 하나은행 시절 함께했던 많은 이들이 용인을 찾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늘 KB가 우승을 확정할 것 같아, 염윤아를 축하해주러 왔다”고 했다. 

“나는 몰랐는데 그랬더라고요. 솔직히 그날 몇 명이나 왔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어쨌든 내가 인생을 잘 못 산건 아닌 거야! 그죠?”

염윤아가 기본적으로 살뜰하게 동료들을 챙기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스스로도 “나는 나 챙기기도 바쁜 사람”이란다. 하지만 염윤아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염윤아는 직설적이다. 시즌 중반, 경기를 이긴 후 박지수와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왔던 그는 박지수의 장점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박지수가 아직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볼 잡는 위치가 조금 더 안쪽이었어야 할 것 같고, 2대2도 조금 더 하고 싶은데, 아직 그런 게 잘 안 맞는다며 마음에 안 든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다. 

“경기가 잘 안 될 때 옆에서 많이들 위로해줬거든요. ‘잘 하고 있다’, ‘나아질 거다’, ‘조금만 힘내라’라고... 그런데 윤아 언니는 대 놓고 ‘너가 못해서 그래’라고 말해요. 그런데 신기하게 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게 기분 나쁘지가 않아요. 그래서 농구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직설적인 염윤아’는 “뒤에서 안 좋은 말 하는 게 성격에 안 맞는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앞에서 얘기하고, 그 자리를 떠나면 다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염윤아가 박지수와 원정 룸메이트가 되면서 둘 사이의 시너지 효과도 커졌다. 염윤아는 플레이가 잘 안 돼서 고민하고 있던 박지수에게 “그냥 니가 던지고, 안 들어가면 그걸 니가 다시 잡아서 넣으면 돼”라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해결책을 시즌 내내 주입시키기도 했다. 시즌 도중 박지수가 마음에 안든다고 했던 염윤아는 우승을 차지한 후 “이제는 지수가 맘에 든다”며 활짝 웃었다.

“둘이 잘 만났어요. 저는 외향적이라서 사람들이랑 어울릴 때 같이 돌아다니는 스타일인데, 윤아 언니나 지수는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와요. 저는 예민해서 시즌 때 잠도 잘 못 잘 때가 많은데, 둘은 밤 10시부터 아주 숙면을 취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잘 수가 있죠?” (강아정)

강아정의 말을 염윤아에게 그대로 옮기니 “(강)아정이랑 정말 안 맞는다”며 깔깔대고 웃는다. 반면 같은 방을 쓰는 박지수가 마냥 귀엽다고.

염윤아는 “지수는 작은 침대를 쓰면 안 된다. 자다가 뒤척일 때 그 긴 팔이 좌우로 펄럭펄럭 왔다갔다 한다. 공룡같이 귀엽다. 처음에는 내가 큰 침대를 쓰라고 양보했는데 언젠가부터 자기가 먼저 큰 침대 쪽에 가서 ‘언니~’라고 하면서 귀여운 척을 한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지수는 그냥 하는 짓이 다 귀엽다”고 한다.

“팀에서 가장 친한 건 (심)성영이에요. 신기하죠? 얘하고는 사실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성영이는 농구 빼고 다른 건 전부 다 엄청 느린 애에요. 아주 속이 터져요. 저는 그냥 다 빨리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친해요. (김)가은이랑도 친하고... 아! 이번에 이적해 온 (최)희진이는 저랑 너무 잘 맞아요! 운명이야! 사실 지수랑 제일 친했던 거 같은데, 지금 미국 가서 옆에 없으니까... 지수는 그냥 시즌 친구로 하죠 뭐. 그런데... 친하다는 게, 그냥 나만 혼자 좋아하는 거지 당사자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12
KB는 다음 시즌에도 우승 후보 1순위다.

기본적으로 중심 전력의 누수가 없다. 미국에서 부침을 겪고 있지만 21살에 WKBL 최고 자리에 오른 박지수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시즌 부상에 신음했던 강아정도 작년 이 맘 때보다는 좋은 상태를 보이고 있고, 외국인 선수도 카일라 쏜튼이 2년 연속 함께하게 됐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 많은 가운데 무엇보다 작년 우승 전력들이 그대로 가동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지난 시즌과 초반에 나왔던 시행착오를 덜 수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큰 무기다. 염윤아의 목표도 당연히 우승이다. 

“이번 시즌의 제 동기 부여는 우승 여행이에요. 작년에 우승 여행을 어떻게 갔으면 좋겠냐를 두고 선수들이 투표를 했는데 반응이 소극적이었어요. 후배들은 선배들 눈치를 봤고, 선배들은 반대로 ‘애들이 우리랑 같이 가는 걸 싫어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이지 않았거든요.”

KB는 베트남의 나트랑으로 우승 여행을 다녀왔다. 나트랑 역시 주목받는 여행지이긴 하지만, 역대 WKBL 우승팀들의 우승 여행이 대부분 미국 하와이나 유럽 등지였음을 감안하면 다소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년에는 무조건 유럽입니다! 가야해요! 난 결혼했잖아요! 아줌마라서 이럴 때 아니면 애들이랑 놀러 다닐 기회가 없어요. 꼭 가야해요! 사실 다른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트랑 갔다 온 것도 완전 재밌었거든요. 아줌마라 그런가?”

박지수는 염윤아에 대해 ‘자기애가 넘치는 언니’라고 했다. 어느 날 문득 셀카를 찍고 나서는 너무 예쁘게 나오지 않았냐고 자랑을 했다는 것. 강아정은 염윤아가 셀카를 엉망으로 찍는다며 "SNS에 본인이 찍어서 사진 올리지 말고, 우리가 찍어준 것만 올리라“고 했지만 염윤아는 막무가내다. 자기 사진이 그냥 마음에 든단다.

염윤아의 ‘자기애 폭발’은 다른 장면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하나은행 시절 ‘부천 탕웨이’라는 별명을 듣고는 자신이 탕웨이와 닮지 않았다고 부인하면서도, 별명에 대해서는 “아주 마음에 든다”며 뿌듯해했다.

지난 시즌 중에는 여자농구 관련 영상에서 “나 홍수현 닮았냐”고 직접 언급해 ‘청주 홍수현’으로 거듭났다. “(김)수연 언니(신한은행)가 닮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이라고 했지만 ‘청주 홍수현’이라는 별명이 싫은 눈치는 아니다. 

“솔직히 프로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서른 넘어서 이 나이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매 시즌 뭔가 하나씩 이루면서, 저 스스로 많이 칭찬을 해주고 싶어요. 그런 게 자기애라고 할 수도 있겠죠? 지난 시즌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제가 지수랑 같이 MVP 후보에 올랐더라고요. 저는 그것만으로 제가 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상 받은 것처럼 기뻤어요. 뭔가를 잘 할 때마다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하나은행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후 5시즌 연속으로 30경기 이상을 출전한 염윤아는 스스로에 대해 “이제 프로에서 5년을 보낸 것”이라고 말한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자기 역할을 해내는 염윤아는 WKBL 대기만성의 새로운 상징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를 WKBL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임영희(우리은행 코치)의 뒤를 이을 성공신화를 준비 중이다. 여자농구 관계자들은 “염윤아라면 정말 임영희처럼 마흔살까지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평가한다.

마흔 살까지의 선수생활. 기량은 물론 자기 관리까지 완벽하지 않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목표다.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염윤아는 “그런데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삭신이 쑤시던데”라고 뜻밖의 위험신호를 언급했다.

하지만 “마흔살까지 선수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때까지의 선수생활을 목표라고 말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선수로서 드디어 전성기에 접어든 염윤아에게 30대의 나이를 이유로 ‘언제까지’라는 시점을 지정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적절치 않을 것이다. 한 시즌, 한 시즌을 꾸준히 보내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가 도달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 게 될 것이다.

KB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시대를 이어 왕좌를 이어 받았다. 통합 6연패라는 주기가 두 번을 돌아 패권을 쥔 KB. 새로운 왕조 건설 여부는 이번 시즌에 그 단초가 발견될 것이다. 지난 시즌 KB가 이룩한 V1과 관련해 ‘신의 한 수’라고 평가 받았던 염윤아가 이번에는 KB가 세울 왕조의 마지막 조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챔피언 결정전 당시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나와서는 “삐었다. 플레이에 지장은 없다”고 말했던 염윤아. 그는 사실 양쪽 손가락을 훈련 중 모두 다쳤고, 오른쪽 손가락은 뼛조각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열흘 안에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챔프전을 3차전에서 끝내야 했다고 한다. 박지수에게 BTS 콘서트라는 이유가 있었다면 염윤아에게는 수술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손가락 부상은 아무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한거냐”고 묻자 “아픈 거 알고 물어본 거 아니었냐? 난 알고 물은 줄 알고 그렇게 말했지”라며 천연덕스럽게 넘어갔던 염윤아는 정미란의 은퇴와 김수연의 이적으로 자연스럽게 팀의 맏언니가 됐다.  

대기만성의 새로운 아이콘이자 자기애의 화신, 알 수 없는 직설화법의 주인공이자, KB에는 전에 없던 캐릭터, 그리고 맏언니인 염윤아가 써나갈 KB에서의 역사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사진 = 박진호 기자  ck17@rookie.co.kr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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