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2018-2019시즌 프로농구의 중심에는 이대성이 있었다. 정규시즌 MVP 투표 2위에 올랐고 현대모비스의 5번째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챔프전 MVP도 이대성의 차지였다.

하지만 이런 성과 앞에서도 이대성은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MVP, 우승, 연봉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눈에 보이는 성공의 결과물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대성의 목표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한 세대에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선구자가 되는 것”. 이대성이 밝힌 자신의 최종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대성에게 지금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니다. 그는 훨씬 더 높고 큰 꿈을 향해 절박하게 도전하는 중이다.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6월호에 게재린 기사입니다.

 

 

봄비가 내리는 5월 27일 오전, 분당의 한 카페에서 이대성을 만났다. 당초 마곡에서 예정됐던 인터뷰는 이틀 전 급하게 장소가 바뀌었다. 이유가 있었다. 국가대표팀 16인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대성이 서류제출을 위한 검사를 급하게 분당에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승 후에도 누구보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한 이대성이었다. 4월 중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후 5월 초에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그 와중에도 개인훈련은 철저하게 진행했다. 6월 3일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한창 정신이 없을 시점. 그럼에도 이대성은 기꺼이 시간을 내 인터뷰에 임해줬다. 비시즌이 되어도 바쁜 스케쥴은 어쩌면 스포츠 스타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어느덧 이대성도 그런 경험을 할 정도로 큰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이대성은 2013년 드래프티다. 2라운드 1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이후 곧바로 두 번의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다. 이번 우승은 그에게 커리어 세 번째 우승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우승은 꽤나 남달랐다고 이대성은 말한다.

“확실히 느낌이 달랐어요. 사실 이전에도 우승을 두 번 해봤었죠. 상무에 가기 전에요. 하지만 그땐 팀의 주축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예전에는 우승이 쉬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연달아서 우승을 했었고 스스로 우승에 대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팀의 중심 선수로서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야 했죠.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농구 팬들에게 이대성은 솔직하고 과감한 선수다. 그의 말 하나, 하나가 화제를 모은다. 지난 시즌 초반에는 “53승 1패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과감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이유에 대해 이대성은 “내가 노력을 쏟으며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만큼은 솔직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거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런 인터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이유를 하나로만 꼽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일단은 솔직해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사람은 살면서 많은 것을 하고 많은 분야에 몸을 담게 되잖아요. 그 중에서도 저는 농구라는 분야에서는 가능한 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만큼 농구에 많은 것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고 과감한 발언으로 화제가 되지만 팬들에게 이대성은 전혀 미운 털이 박힌 선수가 아니다. 이대성은 한국 농구계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무모한 도전’을 시도해왔다. 그의 이력은 어떤 한국 농구선수보다 독특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2012년 중앙대를 자퇴하고 하와이 브리검영 대학에 편입했다. 부산에서 혼자 영어공부를 하며 미국 대학무대 도전을 준비했고, 결국 NCAA에서 시즌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와 KBL에 입성했지만 2017년에 G-리그 도전을 선언하며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무난하게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해 우승을 차지하고 최고의 스타로 올라서는 스토리는 이대성의 삶과는 아니었다.

올해 통합 우승을 차지하고 챔프전 MVP에 뽑힌 뒤 이대성은 주변에서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보다 편안하게 농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많은 얘기를 해줬어요. 이제 많은 걸 이뤘으니 조금 더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운동해도 되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1’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대성의 이야기다.

이유가 무엇일까. 소속 팀의 우승과 챔프전 MVP. 한국에서 농구를 하는 선수라면 모두가 꿈꾸는 짜릿한 경험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최고의 자리를 인정받은 셈이고 그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뒤따라온다. 흔히 말하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성은 자신이 지금까지 성취한 것은 자신이 바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고 힘주어 말했다.

“MVP가 되고 상을 받으면 기분은 정말 좋죠. 당연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에요. 그런 것들은 제가 농구선수로서 꿈꾸는 목표는 아니에요. 저는 MVP, 연봉 등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눈에 보이는 성공의 결과물엔 관심이 전혀 없어요. 신경을 아예 안 씁니다. 그것보다는 저 스스로가 농구선수로서 만족하는 모습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죠. 지금까지 이룬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시즌부터 이미 그랬다. 이대성은 “나에겐 개인상이 같은 게 아닌 다른 목표가 있다”고 말해왔다. MVP도, 현대모비스의 우승도 그에겐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농구선수 이대성이 꾸는 진짜 꿈은 무엇일까?

“한 세대에 영감을 주는 선수가 되는 것이죠” 이대성의 대답이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한국 농구계는 재능 있는 선수가 나오면 무난하게 그대로 성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재능이 없는 선수를 지도자가 기술을 잘 가르쳐 성공하게 만든 사례는 사실 없죠. 선수의 타고난 재능과 운동능력에 많이 의존하고 분위기도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이에요. 스티브 내쉬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농구를 못했고 사실 농구를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은 그만뒀을 선수예요. 그런데 여기까지 왔죠.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에게 제가 좋은 선례가 되고 싶어요. 제 궁극적인 목표는 NBA 무대를 밟는 거예요. NBA 선수가 돼서 맹활약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정말 NBA 경기에 출전해서 그 무대를 밟아보는 거예요”

“물론 그게 이뤄지기 정말 힘든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꿈만큼은 그렇게 꾸는 거죠. 어린 시절에 꿈을 꾸게 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게 앞선 사람들의 선례를 확인하고 살펴보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엔 국내 대학을 자퇴했을 정도로 실패를 경험해본 선수가 결국엔 미국 대학에 편입하고 G-리그에 도전하고 NBA까지 진출한 사례가 전혀 없어요. 제가 꿈을 향해 도전을 이어가고, 그 꿈을 이루게 되면 훗날 후배들에게 큰 영감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바라는 거죠”

“선구자가 되는 것은 외롭고 고달픈 게 맞습니다. 고민도 많고 자책도 많이 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고통도 느낍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은 제가 꿈을 이루길 원하는 탓에 스스로 만들어내는 고통이라는 거예요. 똑같은 고통도 내가 선택해서 받는 고통과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인에게서 받는 고통은 받아들이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사실 우리 팀이 예전부터 훈련 량이 많기로 유명한 팀이었어요. 힘들었죠.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오히려 해도 되지 않을 훈련을 알아서 더 많이 했어요. 그렇게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훈련은 힘들지 않거든요. 내가 아닌 타인이 주는 고통은 실제 고통이 3이라도 10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겪는 고통은 실제 고통이 10이라도 2나 3 정도로 느껴지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부러 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쪽을 택하는 겁니다. 그만큼 절박한 것이기도 하고요”

 

국내농구 팬들에게 이대성은 ‘절박한 도전자’로 상징된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농구에 대한 절박함을 이야기하는 이대성이다. 그 절박함은 꿈을 향한 것이고 이는 곧 도전의 원동력이 된다.

“브리검영 대학에 편입해서 NCAA 무대에 도전하고 G-리그에 도전했을 때도 제가 아는 사람들 중 열 중 아홉은 응원해줬어요.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면서 말이죠”

“물론 면전에서 어떻게 제 도전이 무모하다고 말하겠어요. 제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조롱하는 팬들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솔직히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노모 히데오(LA 다저스에서 뛰었던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소시민은 도전하는 사람을 비웃는다’고. 나를 무시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지금도 제 도전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죠, 뭐”

이대성의 삶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꼽는 시기가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동안 상무에서 보낸 시간이다.

“상무에서 보낸 2년이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대성의 말이다.

“솔직히 스스로를 엄청나게 괴롭히며 훈련했죠. 당연히 고통스러웠어요. 하루하루가요. 그런데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어요. 고통스럽게 하루하루 노력을 이어나가니 제가 매일 더 발전하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해요. 그렇게 노력이 쌓이니 G-리그에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대성은 상무 자체를 경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선수였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유재학 감독이 이대성을 대표팀 예비 명단에 발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중에 다친 발목 부상의 여파로 결국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금도 유재학 감독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이 이대성에게 “그 부상이 너무 아쉽다”고 말할 정도다. 어쩌면 군면제를 받고 2년의 시간을 더 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발목 부상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다.

“그 부상이 KT를 상대로 부산에서 경기를 하던 중에 덩크를 시도하다가 당한 부상이에요. 사실 그 부상을 당하기 전에 저희 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셨거든요.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시고 말슴을 못할 정도였어요. 감독님께 할머니의 상태를 설명드리고 직접 뵈러 갔죠.(이대성의 고향은 경남 삼천포다.) 정말 신기한 게 저를 보시더니 할머니가 말씀도 좀 하시고 정신을 차리시는 거예요. 그 뒤에 얼마 안 지나 돌아가셨죠. KT전에서 발목을 다친 건 할머니를 뵌 직후예요”

“느낌이 안 좋았어요. 부상을 당한 후에 마음 속으로 할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발목 부상이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만큼 저에게 상무에서 보낸 2년이 정말 소중하고 의미가 컸거든요”

이대성은 부상 없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군 면제를 받았더라면 자신의 G-리그 도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돌이켜 보면 그때 발목을 다치고 상무에 가서 시간을 보낸 것이 G-리그 도전을 가능하게 했어요. 그때 부상 없이 군 면제를 받고 KBL에 자리를 잡고 FA 선언이 미뤄지지 않았더라면 G-리그 도전은 생각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연봉도 올라가고 FA도 다가오면서 현실에 만족했을 테니까요”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대성의 도전 정신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절박함을 내려놓은 채 만족감을 느끼며 조금은 편안하게 커리어를 이어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이대성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를 농구를 통해 표현하고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를 더 잘하고 더 뛰어난 선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계속 가지게 되는 거죠. 중앙대 시절에 부모님이 삼천포에서 올라와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만을 지켜야 했던 경험을 통해 느낀 자괴감, 그때 나를 알아봐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 복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제 도전 정신과는 전혀 무관해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저에게 정말 일차원적인 것이고 별 것 아닌 것이죠. 저는 그냥 농구를 더 잘하고 싶고 농구로 저를 더 알리고 싶은 거예요. 더 훌륭한 선수가 되어 후대에 영감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뿐이죠” 이대성의 말이다.

도전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대성은 대학 시절 두 달 동안 교회를 다녔던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딱히 종교를 믿거나 성경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를 다닐 때 두 달 동안 교회를 나갔죠. 찬송가를 부르거나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가서 기도만 하고 오는 거예요. 이렇게 기도를 했죠. 제가 전생에 만약 너무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았다면, 이번 생에는 어떤 일이든 제가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만 해주면 그에 따르는 고통은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오직 제가 제 삶을 선택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요즘도 이대성은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다. 하루 중 이대성이 눈을 붙이는 시간은 고작 4시간이다.

이대성은 “일어날 때마다 정말 고통스럽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스스로 계속 그렇게 생각한다. 게을러져서 농구를 못하게 됐을 때 느끼는 고통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훈련을 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느끼는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크냐고. 나는 전자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아침 일찍 일어나 훈련을 하러간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대성은 “처음에 비하면 지금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힘든 것도 아니예요. 고통을 느끼고 그걸 인내하고 버텨낼 수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만드는 과정이 진짜 힘든 거죠. 그걸 해낸 다음에는 어떤 걸 해도 생각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사실 이제는 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게 습관이 돼 있어요. 너무 편안하게 있으면 오히려 불안해지죠” 이대성의 말이다.

그런 이대성이 꼽는 롤 모델이 두 명 있다.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와 김효범이다.

“제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 중 롤 모델은 코비 브라이언트입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가면서 직접 만난 사람 중에서 롤 모델은 (김)효범이 형이에요. (김효범은 현재 G-리그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효범이 형에 대해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합니다. 현대모비스를 나가서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연봉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죠.”

“하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보편적인 성공의 기준을 신경 쓰지 않아요. 저는 계속 도전하고 자신이 꿈꾸는 위치에 다가서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효범이 형은 저에게 정말 소중한 롤 모델이다. G-리그에서 코치 생활을 하며 꿈에 다가서고 있잖아요”

 

이대성은 다가오는 2019-2020시즌의 목표는 3점슛 향상과 미드레인지 게임 장착이라고 답했다. 2대2 게임을 더 능숙하게 하는 것도 목표로 꼽았다.

“그게 아세요? 지난 시즌에 제가 평균 3점슛 성공 KBL 전체 1등이었던 거.(이대성은 경기당 2.1개의 3점슛을 성공했다. 국내선수 중 1위였다.) 성공률은 30% 중반을 넘었는데 다음 시즌엔 40%대를 기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상무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농구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뒀거든요. 지난 시즌 전에 하루에 800개씩 3점슛을 성공하는 훈련을 했었어요. 일주일 중 월, 화, 수, 목, 금을 그렇게 훈련했죠. 그렇게 반복하니까 제가 3점슛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자연스럽게 감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상무에서 많은 훈련량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갖추지 않고 절박함을 더 강하게 가져두지 않았다면 아마 하루 800개 3점슛 성공 훈련은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2대2 게임에 대한 저의 매커니즘을 다양한 방향으로 시뮬레이션도 하고 있죠. 그리고 제 약점이 미드레인지 게임이 없다는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한 보완도 준비 중입니다”

이대성은 오는 8월 말에 시작되는 농구월드컵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상대해보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죠. 좋은 팀, 좋은 상대를 만나봐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거든요. 솔직히 G-리그에서 뛰어난 선수들을 워낙 많이 상대해봤기 때문에 월드컵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그래도 월드컵은 분명 기대가 되고 설레는 무대입니다”

만족을 경계하는 남자, 이대성은 과연 자신이 바라는 진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한 시간 넘게 진행되는 인터뷰를 통해 이대성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졌다.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대성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 = KBL 제공,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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