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아버지와 세 형을 위해 숫자 4를 네 번, 어머니와 두 누나를 위해 숫자 3을 세 번 두들깁니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손으로 하늘을 가리켜요. 하늘에서 보고 있을 아버지를 위해서요.”

파이널 1차전을 하루 앞둔 5월 30일, 현지 베팅 업체 ‘시저스 스포츠북’이 파이널 MVP 배당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스테픈 커리가 가장 압도적인 배당을 받았고 카와이 레너드가 2위를 차지했다. 레너드 뒤로 드레이먼드 그린, 클레이 탐슨, 케빈 듀란트, 카일 라우리 등 쟁쟁한 올스타 출신 선수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러나 31일 1차전이 끝나고 중계 방송사 ESPN의 리포터 도리스 버크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건넨 선수는 커리도, 레너드도, 탐슨도 아니었다. 파이널 데뷔전에서 39분 44초 동안 32득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82% 야투율로 기록한 25살짜리 겁 없는 풋내기. 이날 경기 수훈 선수는 파스칼 시아캄이었다.

 

시아캄의 집안은 독특했다. 슬하에 사형제와 두 자매 총 육남매를 두고 있던 아버지는 농구를 사랑했다. 축구의 나라 카메룬에서 말이다. 다행히도 그의 자녀들은 모두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그는 첫째 아들 보리스 시아캄, 둘째 크리스티안 시아캄, 셋째 제임스 시아캄을 모두 NCAA 농구 선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형들과 달리 사형제의 막내 파스칼 시아캄은 11살 때까지만 해도 농구공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시아캄의 꿈은 사무엘 에투 같은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시아캄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2012년 여름이었다. 축구로 다져진 운동 능력과 남다른 신체 조건을 주의 깊게 본 한 관계자가 시아캄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국경 없는 농구 캠프(FIBA와 NBA가 주최하는 세계 각국의 유망주들을 초청하는 농구 캠프. 한국에서는 양재민, 이현중 그리고 박지현이 참가한 바 있다)’에 초대했다. 

시아캄은 남아공으로부터 날아온 이 초대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농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캠프에 참가했다. 시아캄은 지난해 ESPN의 잭 로우와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간단해요. 누나가 캠프가 열리는 남아공에 살고 있었어요. 누나를 안 본 지가 5년 정도 됐었거든요. 누나를 만나러 가는 김에 농구도 조금하고 오자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캠프가 열리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체육관에 도착한 시아캄이 처음으로 본 광경은 체육관 구석에 세워진 동상 앞에 몰려 있는 수많은 인파였다. “저 사람이 누군데? 왜 이렇게 모여 있는 거야?” 시아캄이 옆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시아캄을 수상한 눈초리로 훑으며 답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저 분이 누군지 몰라? 서지 이바카를?” 

 

그리고 캠프가 끝났을 때, 시아캄은 자신이 농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꿈은 더 이상 축구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카메룬의 농구 영웅 루크 음바 아 무테처럼 NBA에서 뛰는 것을 꿈꿨다. 시아캄은 NBA 도전을 위해 미국 뉴멕시코 주립대학 입학을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철부지만 같았던 막내아들이 스스로 꿈을 가졌다는 사실에 기뻤고, 그 꿈이 자신의 숙원이기도 했던 NBA 선수가 되는 것이었기에 더 기뻐했다. 시아캄 또한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뉴멕시코 주립대 1학년 시아캄은 낮에는 농구, 밤에는 영어 공부를 하며 아메리칸드림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시아캄의 미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농구도, 영어도 서툰 아프리카 이방인에게 선뜻 패스를 내주는 동료는 없었다. 외로운 시아캄을 지탱한 것은 단 하나였다. 밤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시아캄의 아버지는 아들이 NBA에서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시아캄이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던 2014년 10월, 시아캄의 아버지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충격에 휩싸인 시아캄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곧바로 고국 카메룬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카메룬에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가면 다시 미국에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거기 있는 것이 아버지를 위한 일이야." 어머니와 형제들은 시아캄을 만류했다.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길을 보지 못한 시아캄은 체육관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나는 오늘부터 아버지의 꿈을 위해 뛴다. 나는 NBA 선수가 된다."

 

그로부터 5년 뒤, 토론토 스코샤뱅크아레나의 홈팀이 대기하는 터널. 시아캄은 요하네스버그 체육관에서 올려다 봤던 동상의 실제 주인공 옆에 나란히 섰다. 그는 이바카와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맞춰 코트에 입장했다. 그의 루틴은 항상 똑같다. 유니폼에 새겨진 43번을 손으로 두드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

“아버지와 세 형을 위해 숫자 4를 네 번, 어머니와 두 누나를 위해 숫자 3을 세 번 두들깁니다. 그리고 성호를 긋고 손으로 하늘을 가리켜요. 하늘에서 보고 있을 아버지를 위해서요.”

파이널 1차전 최종 성적 32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누나를 보러 가기 위해 농구 캠프에 참가했던 소년, 불과 2년 전만 해도 G-리그를 전전하던 소년 시아캄은 이제 마이클 조던과 앨런 아이버슨 이후 파이널 데뷔전에서 30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올 시즌 150만 달러 연봉, 한국 돈 17억원을 받고 뛴 그는 토론토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캐나다에서 농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아름다웠던 밤, 시아캄은 중계 방송사 ESPN의 리포터 버크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널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라고요. 그 말을 아버지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저에게 농구는 더 특별합니다. 결과는 상관없어요. 제가 몇 점을 넣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농구는 제 존재보다 커다란 의미입니다. 저는 매일 밤, 그렇게 뛰고 있습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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