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5월 15일 진행된 2019 NBA 로터리 추첨 결과 발표식. 1순위를 차지한 팀은 뉴욕도, 클리블랜드도, 피닉스도 아닌 뉴올리언스였다. 뉴올리언스가 이번 추첨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갈 확률은 고작 6.0%. 2순위 지명권 역시 멤피스가 단 6.3%의 확률을 뚫고 가져갔다. 심지어 레이커스도 2.8%의 확률로 4순위에 당첨됐다. 올해부터 로터리 추첨 확률을 전격 조정한 것이 원인일까. 로터리 추첨에서 ‘역대급’ 이변이 나오면서 탱킹에 대한 회의감이 리그에 감돌기 시작했다.

 

탱킹과의 싸움을 선포하다

2017년 6월 2일로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아담 실버 총재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로터리 추첨 확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날 그는 “현재의 로터리 추첨 방식에 손볼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로터리 추첨 확률 조정에 대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는 로터리 추첨 방식을 과거로 되돌리길 원한다. 지금까지는 선수노조와의 노사 협상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로터리 추첨에 당장 변화를 추진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노사 협상 결과 로터리 추첨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계획은 로터리 추첨 확률을 과거에 가깝게 되돌리는 것이다. 현재의 로터리 추첨 방식에 손볼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버 총재의 말이다.

여기서 실버 총재가 언급한 ‘과거’란 1994년 이전의 로터리 추첨을 말한다. 리그가 시작된 이래 NBA는 로터리 추첨 방식과 드래프트 제도를 꾸준히 바꾸고 보완해 왔다.

1965년까지는 연고지 선수 우선 지명제도가 실시됐으며 1966년부터 1984년까지는 양대 지구 꼴찌를 차지한 두 팀 중 동전 던지기에서 승리한 팀이 1순위 지명권을, 패한 팀이 2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는 방식이 운영됐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는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팀 중 하위 7개 팀이 동등한 1순위 추첨 확률을 가지는 제도가 운영됐으며(25개 구단으로 리그가 확대된 1989년에는 9개 팀), 1990년부터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모든 팀들이 성적 역순으로 더 높은 1순위 추첨 확률을 가지는 현대적인 로터리 추첨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리그 최하위 팀이 가지는 1순위 추첨 확률이다. 1994년 로터리 추첨에서 리그 전체 꼴찌 댈러스는 25.0%의 1순위 추첨 확률을 가져갔다. 그러나 이전까지만 해도 로터리 추첨에서 리그 꼴찌 팀과 꼴찌가 아닌 팀이 가지는 1순위 추첨 확률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1993년 로터리 추첨을 되돌아보자. 리그 꼴찌 댈러스가 16.67%의 1순위 추첨 확률을 획득했고 그 뒤를 미네소타(15.15%), 워싱턴(13.64%), 새크라멘토(12.12%), 필라델피아(10.61%)가 이었다. 최하위권 5개 팀 사이에 1순위 추첨 확률이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리그 꼴찌가 아니어도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1994년 드래프트부터 리그 꼴찌의 1순위 추첨 확률이 25.0%로 크게 올랐고 이는 지난해 드래프트까지 20년 넘게 그대로 유지됐다. 30개 구단 체제가 시작된 2005년에 로터리 추첨 확률 조정이 있었으나, 리그 꼴찌 팀의 1순위 확률은 25.0%로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성적이 좋지 않은 팀들이 차례로 19.9%, 15.6%, 11.9%의 1순위 지명권 확득 확률을 가져갔다. 성적이 더 좋지 않으면 1순위 당첨 확률이 3-4%씩 높아졌다. 탱킹(tanking, 고의 패배)을 시도할 만한 유인이 충분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리그 전체 꼴찌 팀이 4년 연속으로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면서(미네소타, 필라델피아, 브루클린, 피닉스) 탱킹은 NBA 팀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됐다. 특히 앤드류 바이넘 트레이드 실패 이후 리빌딩에 돌입한 필라델피아의 노골적인 탱킹은 사무국에 고민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 구단과 팬들은 “Trust The Process”를 외칠 수 있었으나,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몇몇 팀들의 반복되는 고의 패배가 리그 재미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담 실버 총재가 로터리 추첨 제도에 대한 조정 의지를 드러낸 지 3개월여 만인 2017년 9월에 변화가 일어났다. 30개 구단 이사회에서 로터리 추첨 확률 조정안이 통과됐다. 30개 팀 중 28개 팀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 혹은 기권표를 던진 팀은 2개 팀에 불과했다.(오클라호마시티 반대, 댈러스 기권) 말 그대로 압도적인 결과였다.

달라진 추첨 확률은 2019년 드래프트부터 적용되기로 결정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로터리 추첨 확률 변화가 곧바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5월 15일 열린 2019 NBA 로터리 추첨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뉴올리언스, 멤피스, LA 레이커스가 각각 6.0%, 6.3%, 2.8%의 확률을 뚫고 1, 2, 4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충격과 공포의 2019 로터리

로터리 추첨 발표식은 매년 화제의 중심에 선다.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팀들이 저마다의 확률을 가지고 ‘복권’을 긁은 결과를 발표하는 행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로터리 추첨은 해당 시즌의 성적을 포기한 대가를 각 팀이 확인하는 이벤트다. 그리고 그 이벤트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사행적’인 성격이 포함돼 있다. 누군가는 대박이 나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된다. 로터리 추첨은 NBA에서 한 시즌 동안 진행되는 일정 중 가장 자극적인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올해 로터리 추첨은 가뜩이나 자극적인 이 이벤트에 ‘자이언 윌리엄슨’과 ‘뉴욕 닉스’라는 달고 짠 조미료가 첨가됐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학무대 최고의 스타 자이언 윌리엄슨의 뉴욕행. NBA 시장에 엄청난 부가 창출 효과를 불러올 초유의 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이번 로터리 추첨 결과 발표식에 전 세계 농구 팬들의 눈과 귀가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뉴욕 팬들이 바란 일은 끝내 벌어지지 않았다. 10% 이상의 1순위 지명권 획득 확률을 가졌던 정규시즌 최하위 5개 팀(뉴욕, 클리블랜드, 피닉스, 시카고, 애틀랜타) 중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간 팀은 등장하지 않았다. 4순위 이내 지명권을 획득한 팀조차도 뉴욕(3순위)이 유일했다. 클리블랜드, 피닉스, 시카고, 애틀랜타는 5-8순위를 차례로 가져갔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짜릿한 대박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정규시즌에 33승 49패를 기록했던 뉴올리언스가 단 6.0%의 확률로 1순위에 당첨됐다. 추첨 전 뉴올리언스는 7순위 이하 지명권을 얻을 확률이 무려 73.6%에 달했던 팀이었다. 앤써니 데이비스의 갑작스러운 트레이드 요청이 아니었다면 정규시즌 막판까지 플레이오프 티켓 경쟁을 할 수도 있었던 팀이었다. 그랬던 뉴올리언스가 뜬금없이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멤피스도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났다. 6.3%의 확률로 2순위 지명권을 가져갔다. 멤피스는 8순위 지명권 당첨 확률이 31.2%, 9순위 지명권을 가져갈 확률이 34.1%에 육박했던 팀.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2순위 지명권을 가져가면서 마크 가솔 트레이드 이후의 시대를 준비할 수 있게 됐다.

레이커스는 이번 로터리 추첨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지은 빅마켓 팀이었다.(뉴욕, 시카고는 물론이고 새크라멘토의 지명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보스턴도 이번 로터리 추첨에서 웃지 못했다. 새크라멘토의 픽은 무난하게 14순위 지명권이 됐다.) 11순위에서 14순위 지명권을 가져갈 확률이 80.6%에 달했던 레이커스는 놀랍게도 2.8%의 확률로 4순위 지명권을 가져갔다. 르브론 제임스의 14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가 사실상 예년의 탱킹에 준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로터리 추첨에서 뜻밖의 결과가 쏟아지면서 당장 올여름 이적시장에 대한 전망 역시 달라졌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은 뉴올리언스는 데이비드 그리핀 신임 경영 부사장을 앞세워 앤써니 데이비스의 잔류를 설득할 전망이다. 2순위 지명권을 가진 멤피스는 포인트가드 유망주 최대어 자 모란트(머레이 주립대)를 지명하고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크 콘리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월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마크 가솔을 토론토로 트레이드한 멤피스는 콘리 역시 트레이드할 수 있었으나 일단은 팀에 잔류시켰던 바 있다.

레이커스 역시 선택지가 많아졌다. 4순위 지명권을 기존 유망주들과 묶어 앤써니 데이비스 트레이드를 다시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혹은 롭 펠린카 단장의 말대로 당장 팀에 전력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망주를 수급할 수도 있다. 레이커스의 4순위 지명권 획득은 앤써니 데이비스 트레이드는 물론이고 보스턴, 브루클린, 뉴욕의 FA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이 됐다. 이번 로터리 추첨 결과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시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되는 이유다.

 

탱킹은 사라질 것인가

아담 실버 총재가 로터리 추첨 확률을 조정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탱킹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추첨 확률이 바뀐 첫 해부터 이변이 쏟아졌다. 2018-2019시즌에 탱킹을 시도했던 팀들은 모두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관건은 이번 결과가 각 팀 경영진들의 계획과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다.

사실 당장 한 해의 이변을 가지고 각 팀 단장들이 탱킹이라는 구단 운영 전략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올해 같은 이변이 계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때마침 우연한 확률로 올해 로터리 추첨식에서 이변이 쏟아진 것일 수도 있다. 로터리 추첨 확률 변경과 추첨 이변의 상관 관계가 완전히 입증될 만큼 많은 샘플이 나오지는 않았다. 앞으로 몇 년은 로터리 추첨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하며 단장들도 그 결과에 맞게 탱킹을 포기할 것인지, 혹은 탱킹을 구단 운영 전략의 하나로 계속 활용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

다만 이번 로터리 추첨 결과가 탱킹을 고민하는 각 구단 운영진에 일종의 공포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최하위권 5개 팀 중 어느 팀도 1순위 지명권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30승대 팀들이 4순위 이내 지명권 4장 중 3장을 가져가 버렸다. 아무리 져도 1순위 지명권 혹은 최상위 순위 지명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탱킹을 할 이유가 없다.

탱킹은 드래프트 지명권의 순번이 높아지는 것 외에는 얻는 것이 전혀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경기에 계속 지기 때문에 팬들은 화가 나고 구단 수익은 감소한다. 그리고 선수들도 사기가 떨어지고 팀에 일종의 ‘루징 스피릿(losing spirit)’, 즉 패배 의식이 자리잡는다. 한 번 잘못 심겨진 패배 의식은 완전히 뿌리 뽑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드래프트에서 최고급 유망주를 수급해 로스터를 젊고 재능 있는 선수로 완전히 물갈이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탱킹이 언뜻 보면 합리적이면서도 위험성이 높은 구단 운영 방식인 이유다.

이번 로터리 추첨으로 인해 곧바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올해 같은 이변이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반복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우리는 ‘탱킹의 종말’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드래프트 연령 제한이 다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2022년 드래프트가 열릴 때까지만 구단들이 로터리 추첨 결과와 무관하게 탱킹을 구단 운영 전략으로 유효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과연 NBA에서 탱킹은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담 실버 총재가 추진한 로터리 추첨 확률 변화와 2019년 로터리 추첨의 충격적인 결과가 어떤 물결을 만들어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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