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번 이상 우승하고 싶다"던 그렉 오든은 15분도 못 뛰는 선수가 됐다 = ⓒ 그렉 오든 페이스북
[루키] 오언석 기자 =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드래프트 로터리 제도가 시행된 1985년 이후 기대에 못미쳤던 NBA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를 살펴보자.
1989년 1순위 퍼비스 엘리슨
통산 평균 9.5점, 6.7리바운드
'역대 최악의 1순위'의 원조격인 선수. 206cm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인사이드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였다. 당시 풍토에 따라 대학 4년을 모두 마치고 NBA 드래프트를 신청, 1순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입성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다. 부상으로 인해 첫 두 시즌간 고작 110경기에 출전해 평균 9.7점, 7.1리바운드를 남기는데 그쳤다. 1순위 빅맨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부진이었다. 킹스가 첫 시즌만 마치고 워싱턴 불리츠로 트레이드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1991-92시즌에는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워싱턴의 선발 센터로 올라서며 평균 20.0점, 11.2리바운드, 2.9어시스트, 2.7블록을 기록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해당시즌 기량발전상을 수상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엘리슨은 1992-93시즌 다시 한 번 부상을 당하며 쓰러졌다. 양쪽 무릎이 모두 나간 엘리슨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엘리슨은 부상에 시달리며 저니맨 생활을 하다 2001년 은퇴했다. 프로 통산 12년간 고작 474경기 출전에 그쳤을 정도로 부상의 악령에 시달렸다.
1995년 1순위 조 스미스
통산 평균 10.9점, 6.4리바운드
대학농구를 초토화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조 스미스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첫 세 시즌은 나쁘지 않았다. 루키 시즌에는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고, 소포모어 시즌에는 평균 18.7점, 8.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문제는 1999-2000시즌을 앞두고 터졌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스미스와 부정계약을 맺은 사실이 밝혀졌던 것. 리그 사무국은 분노했고, 미네소타의 향후 1라운드 지명권 다섯 장을 박탈했다. 이는 미네소타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랜 암흑기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됐다.
스미스의 기량 또한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잔부상을 달고 살면서 제 컨디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평균 득점이 반토막 났고 결국 벤치로 밀려야 했다. 스미스는 프로 통산 16년간 평균 10.9점, 6.4리바운드를 남기고 사라졌다.

'캔디맨'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마이클 올로워캔디의 프로생활은 전혀 달콤하지 않았다 ⓒ = NBA 미디어 센트럴
1998년 1순위 마이클 올로워캔디
통산 평균 8.3점, 6.8리바운드
2014 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필라델피아 76ers에 지명된 조엘 엠비드는 NBA 레전드 하킴 올라주원과 종종 비교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올라주원의 비교대상이 됐던 선수가 있다. 1998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LA 클리퍼스의 유니폼을 입었던 마이클 올로워캔디다.
올로워캔디는 올라주원과 흡사한 길을 걸었다. 나이지리아 태생으로 미국 땅에 건너 와 NCAA 농구를 했다. 3학년까지 다니고 NBA 드래프트 진출을 선언, 1순위로 지명된 것도 똑같다.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부터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났다.
올로워캔디는 대학 3학년 때 평균 22.2점, 11.2리바운드, 2.9블록, 야투 성공률 60.8%를 올렸다. '빅 웨스트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NBA 관계자들은 올로워캔디의 가능성을 높이 사며 1순위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약체 팀에서의 '뻥튀기' 기록이었다. 올로워캔디는 NBA 무대에서 뛰기에는 기량이 많이 모자랐다. NBA에서 단 9년만에 은퇴하고 말았다. 두자릿수 평균 득점을 올린 것도 두 번 밖에 되지 않았다.

콰미 브라운은 실패한 고졸 선수의 표본이 됐다 ⓒ = NBA 미디어 센트럴
2001년 1순위 콰미 브라운
통산 평균 6.6점, 5.5리바운드
"드래프트 1순위는 망한다"는 '3년 주기설'이라도 있는 것일까. 1995 조 스미스, 1998 마이클 올로워캔디에 이어 또 다시 3년 만에 실패한 1순위 지명자가 나왔다. 워싱턴 위저즈의 구단주였던 마이클 조던이 선택한 콰미 브라운이다.
당시는 고졸 드래프트 참가자 열풍이 드셌다. 코비 브라이언트, 케빈 가넷 등의 성공으로 고졸 선수들의 직행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너도 나도 고졸 유망주를 뽑아 키워보려 안달이었다.
'넥스트 케빈 가넷'을 기대했던 콰미 브라운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고등학교 무대에서는 왕이었지만 NBA에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돌아오는 것은 조던의 호통 뿐이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조던한테 혼날까봐 무섭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수비형 빅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비력만큼은 쓸만했기 때문. 하지만 1순위 지명자의 기대감은 이미 산산조각난 뒤였다. 2012-13시즌을 마지막으로 빅 리그에서 종적을 감췄다.
2007년 1순위 그렉 오든
통산 평균 8.0점, 6.2리바운드
부상이 모든 것을 앗아간 케이스.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입성했는데 NBA 데뷔는 2008년 10월 28일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2009-10시즌에 또 부상을 입고 21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0-11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는 아예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벌써 세 번이나 무릎 수술을 받았다. 더 이상 무언가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오든은 대학농구를 평정했던 슈퍼스타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샤킬 오닐, 데이비드 로빈슨 등 전설적 센터들과 비교됐던 그였다. '팀 던컨 이후 최고의 빅맨'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코트 안에서의 경기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위협을 줬다. 그만큼 수비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반칙 관리가 미흡했던 것이 흠이었지만 말이다. 건강했다면 대학시절의 경기력을 재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데뷔한지 7년이 흘렀지만 NBA 무대에서 고작 105경기를 소화했을 뿐이다.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 뛰어야 선수다. 앞으로도 '역대 최악의 1순위'를 꼽을 때 톱시드를 놓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앤써니 베넷은 이제 갓 데뷔했지만 '역대 최악의 1순위' 후보로 손색이 없다 = ⓒ 앤써니 베넷 인스타그램
2013년 1순위 앤써니 베넷
통산 평균 4.2점, 3.0리바운드
203cm, 107kg의 탄탄한 체구. 대학시절부터 이미 NBA급 체격을 갖췄다는 평을 받았다. 대학무대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NBA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실제 맨발로 잰 신장이 201cm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NBA에서 스몰포워드를 상대하기에는 스피드가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다고 파워포워드를 소화하기에는 신장이 작다. 여러 모로 딜레마가 있었다. 애초에 1순위 지명자로 거론되었던 후보도 아니었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덜컥 1순위로 지명했을 뿐.
그렇기는 하지만 프로 첫 해 보여준 베넷의 활약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평균 4.2점, 3.0리바운드, 야투 성공률 35.6%, 3점슛 성공률 24.5%. 데뷔전에서 2점, 5리바운드에 그친 것도 모자라 무려 14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다.
물론 이제 막 첫 시즌을 치렀기 때문에 향후 발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NBA에 어느 정도 적응한 2월에는 두 차례 더블-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어쨌든 베넷의 악몽 같았던 첫 시즌은 역대 최악의 1순위 후보로 놓기에 충분했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사진 캡처 = 그렉 오든 페이스북, 앤써니 베넷 인스타그램
오언석 기자(kobeckh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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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캡처 = 그렉 오든 페이스북, 앤써니 베넷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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