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김은혜 칼럼니스트]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플레이오프와 조금은 일방적이었던 챔피언 결정전. 단기전에 가장 유리한 고지인 1위 자리를 정규리그에서 거머쥐었던 KB가 프로 출범 후 첫 통합 우승의 기쁨을 누렸고, 6년간 정상을 지켰던 우리은행은 삼성생명에게 패하며 챔프전에 오르지 못했다. 2018-19시즌의 마지막 순서로 이번에는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 승부를 펼쳤던 3팀의 이번 시즌을 돌아봤다.

2년만의 챔프전 진출, 희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삼성생명
삼성생명은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다. 19승 16패의 성적은 단일리그가 35경기로 정착된 2012-13시즌 이후 삼성생명의 팀 최다승 기록이다. 일찌감치 3위로 순위가 고정되며 7라운드를 선수 안배에 중점을 뒀음을 감안하면(7라운드 1승 4패), 이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

몇 차례 지적했지만, 2017-18시즌 삼성생명은 개인적으로 기대에 가장 못 미친 팀이었다. 16승 19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경기력에 비해서는 성적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엘리사 토마스에 대한 의존이 상당했고, 국내 선수들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유기적인 농구를 보기 힘들었다.

그런 삼성생명이 올 시즌 국내 선수들에게 무게 중심을 옮기겠다고 선언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부진했던 주축 선수들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으며 삼성생명의 저력을 보여줬다.

정규리그는 물론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까지 꾸준히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김한별은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힘과 탄력에서 다른 국내 선수들을 압도하는 김한별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항상 출전 시간에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 김한별은 프로 9시즌 만에 처음으로 평균 출전시간 30분을 넘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뛴 시즌이었다. 3경기를 결장했지만, 데뷔 후 처음으로 1000분 이상(1053분 23초)을 소화했다.

국가대표를 다녀 온 대부분의 선수들이 체력적인 준비가 제대로 안되며 어려움을 겪은 것과 달리 김한별은 그 어느 시즌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코트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위협적인 선수인지를 증명했다. 출전 시간은 물론 득점(12.8), 리바운드(9.1), 어시스트(3.7) 스틸(2.0)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김한별과 함께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또 한 명의 선수는 배혜윤이다. 배혜윤 역시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등 모든 지표에서 2011-12시즌 이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배혜윤은 센터치고 큰 신장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뿐, 기술적인 부분과 경험, 노련미 등에서는 오히려 현재의 박지수보다도 장점을 갖고 있는 선수다. 올 시즌 배혜윤의 활약은 현재 박지수를 도와 함께 국가대표에 승선할 수 있는 센터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배혜윤은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과거 배혜윤은 멘탈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주장으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배혜윤은 달랐다. 특히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이 인상적이었다. 배혜윤은 5반칙으로 퇴장을 당했다. 그러자 배혜윤은 코트에 남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다독거리며 마지막까지 격려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전까지의 배혜윤에게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그만큼 배혜윤은 코트 안팎에서 리더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삼성생명은 기대 이상의 시즌을 보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우리은행과 치른 3경기 모두가 명승부였다. 정규리그 3위 확정 후 7라운드에 너무 정돈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 우리은행을 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마지막까지 그 기세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역시 챔프전에 올랐던 2년 전과 비교해도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던 한 시즌이었다.

WNBA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티아나 하킨스의 팀 합류가 너무 늦었다는 점, 그리고 이 후에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부분이 아쉬웠지만, 삼성생명은 윤예빈이나 이주연과 같은 어린 선수들이 급성장하며 더 밝은 미래를 약속받았다. 삼성생명으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고 생각한다.

왕좌에서 내려와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우리은행
우승 실패. 단 1팀에게만 허락되는 우승 여부를 놓고 냉정하게 성공과 실패를 평가받는 팀은 정말 몇 안 되는 것 같다. 우리은행이 바로 그런 팀이다. 지난 6년간 꾸준히 우승을 해왔기 때문이다. 위성우 감독이 매년 힘들다고 말했던 것이 모조리 엄살이 될 만큼 우리은행은 그동안 정말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 비록 7연패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우리은행의 이번 시즌 역시 훌륭했고,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은행이 강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은행의 객관적인 전력은 지난 시즌부터 분명 내리막을 맞이했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며 정상을 지켰고, 이번 시즌에도 마지막까지 정규리그 1위 싸움을 펼쳤다. 

출발은 너무 좋았다. 11월 한 달을 전승으로 시작한 우리은행은 라이벌 KB를 1-2라운드에 연파했고 개막 9연승으로 출발했다. 크리스탈 토마스가 높이를 앞세워 수비에서 역할을 해주고, 공격은 국내 선수들이 분담하는 형태로 경기를 풀었고, 기본적으로 우리은행 특유의 강력한 수비 농구로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결국 위성우 감독이 우려했던 것처럼 체력적인 문제가 나타났던 것 같다. 국내 선수들이 체력적인 어려움을 보이는 가운데 부상도 이어졌고, 미덥지 않았던 토마스도 부상이 겹치며 모니크 빌링스로 교채됐다.

빌링스가 팀에 합류한 뒤 공격적인 면에서는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수비에서는 아니었다. 높이가 낮아졌고, 수비에서 핼프 디팬스를 비롯한 우리은행의 견고한 팀 수비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빌링스가 합류했던 시점에 즈음해 저득점 농구를 하던 우리은행이 갑자기 공격적인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우리은행이 갖고 있던 기존의 강력함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우리은행은 스크린을 활용하는 능력이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팀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예년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크린을 정확히 걸어주는 모습도 없었고, 수비에서는 오히려 상대 스크린에 너무 쉽게 걸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빌링스로 외국인 선수가 교체된 후 이 부분이 더 두드러졌던 것 같다.

토마스가 공격에서 힘을 보태지 못했고, 발목 부상 이후 느린 토마스의 움직임도 위축되면서 국내 선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렸기에 외국인 선수 교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빌링스가 합류한 후 팀이 조금 더 활기를 찾은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로 시즌을 완주했어도 빌링스가 함께하며 올린 성적과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6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에 실패한 우리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 번 도약을 다짐했지만 KB에게 도전할 기회도 잡지 못했다. 삼성생명에게 덜미를 잡혔다. 치열한 접전으로 재미있는 시리즈를 치렀지만, 3경기 모두 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아쉬움이 컸던 플레이오프였다.

우리은행은 역시 박혜진이 이전과 같은 지배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가장 컸다고 본다.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이지만 다른 선수가 잘하는 것과 박혜진이 잘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기에 미치는 파급력 자체가 다르다. 

박혜진이 ‘얼마나 휘저어줄 수 있냐’와 ‘클러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냐’가 우리은행 승리에 가장 큰 열쇠고, 통합 6연패를 하는 동안 박혜진이 꾸준하게 보여줬던 능력이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후반에 박혜진이 해결사 역할을 해줬고, 다른 선수들도 살아나며 승리를 챙길 수 있었지만 이어진 경기에서는 오픈 찬스에서도 박혜진의 슛이 림을 외면했다. 박혜진은 이번 시즌 체력적인 부담과 발목 부상, 손가락 부상을 달고 시즌을 뛰며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치열한 시기를 보낸 것 같다.

통합 6연패에서 멈춘 우리은행은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임영희의 은퇴가 선수들에게 주는 영향은 상당할 것이다. 여전히 좋은 선수들이 많은 우리은행이지만 임영희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래도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는 박지현을 선발한 것은 우리은행에게 큰 행운이다.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꾸준하게 이어졌던 우리은행의 농구가 본격적인 세대교체와 맞물려 어떤 변화를 가져갈지 궁금하다. 또한 높이의 약점이 분명한 만큼 국내 빅맨 포지션에서의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어떻게 찾아낼지도 관심이 간다. 우선은 FA시장에서 최은실을 지켜내는 것이 첫 번째 숙제가 될 것 같다. 박혜진은 말할 것도 없다.

‘기필코 우승’을 이뤄낸 KB의 V1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면서도 WKBL 출범 후 유일하게 우승이 없었던 KB가 드디어 우승컵을 안았다. 꾸준히 우리은행을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지만 결국 마지막 승부에서는 무릎을 꿇었던 KB가 드디어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간절하게 외쳤던 ‘기필코 우승’의 꿈을 이뤘다.

KB는 이번 시즌, 대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우승후보 0순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통합 6연패를 한 우리은행보다 KB에 대한 평가가 높았다. 그만큼 전력 면에서 최고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초반의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삐걱거림이 있었다. 연승을 하던 동안에도 경기력이 꾸준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즌 중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면서 팀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아정이 부상으로 빠져있는 동안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3라운드 이후 우리은행과의 5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선수들의 자신감이 높아졌다. 시즌을 치르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강팀인지를 스스로 자각한 것 같다. 시즌 초반의 KB와 시즌 후반의 KB는 전혀 다른 팀이었다. 

올스타전 휴식기를 전후해서 확실히 팀이 좋아졌다. 열흘 남짓한 기간에 완전히 팀 분위기와 전력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것들이 어떤 게 있는 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답을 못하겠다. 그런 극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는 나도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시즌 KB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고, 우승과 함께 선수들도 ‘위닝 맨털리티’를 갖추게 된 것 같다.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KB 우승에 마지막 퍼즐이 된 염윤아의 영입과 외국인 선수로 카일라 쏜튼을 선택한 것 모두 성공적이었다. 사실 이 두 부분 모두 의구심은 있었던 부분이다. 

염윤아가 KB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슛 거리가 긴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KB의 강점인 인사이드에 공간을 만들어 주는 부분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봤다. 보상선수로 김보미를 내준 부분은 그래서 더 아쉬웠다. 하지만 염윤아는 원래 KB에 있던 선수처럼 높은 적응력을 보여줬고, 자신의 장점이었던 수비와 궂은일은 물론, 공격에서도 효과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눈에 보이는 역할과 보이지 않는 역할 모두 인상적이었다.

쏜튼 역시 마찬가지다. 안덕수 KB감독이 쏜튼을 지명한 후, 지난 시즌 부족했던 속공에 대한 보완을 말했을 때, 박지수를 데리고 있는 팀이 굳이 달리는 농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지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쏜튼은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파괴력을 보여줬고, 시즌 중반 이후에는 박지수를 이용해 자신의 득점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포스트를 공략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KB에 최적화 된 외국인 선수로서 위력을 더했다.

정규리그를 우승한 KB는 챔피언결정전에서는 1위의 위용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체력적인 부분의 우위를 감안하더라도 챔프전의 KB는 완벽한 팀처럼 보였다.

우선 박지수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3경기 모두 더블더블을 넘어 20-10을 기록했고, 인사이드를 완벽하게 지배했다. 쏜튼 역시 꾸준하게 득점을 올리면서 박지수를 도왔다. 정규리그 때 삼성생명에게 유독 약했던 박지수는 부진을 씻기라도 하듯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삼성생명만 만나면 신바람을 냈던 쏜튼은 그 위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KB의 경기력이 우려됐던 1차전에는 강아정이 3점슛을 연달아 꽂아 넣으며 삼성생명을 질리게 했다. 염윤아는 시즌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템포를 이용해 상대를 흔들었고 미들레인지 안쪽에서 높은 결정력을 보여줬다. 큰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심성영도 3경기 내내 상대를 휘젓고 다니며 자기 플레이를 펼쳤고, 김민정도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개개인의 플레이는 물론 팀 수비도 좋았다. 챔프전 내내 KB의 골밑 로테이션 수비는 정말 유기적이었다. 삼성생명이 2대2를 시도할 때 작은 선수가 매치업 되어 있으면 장신 선수가 커버를 들어와 주고 바꿔주는 과정이 정말 매끄러웠다. 

다득점 경기였던 1차전에는 다소 수비 미스가 있었지만 2-3차전에는 수비 로테이션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며 삼성생명을 괴롭혔다. 체력적인 여유를 안고 시작한 시리즈에서 공수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한 KB에게 챔프전 승리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KB의 다음 시즌은 결국 외국인 선수가 열쇠를 쥐게 될 것 같다. 

박지수를 중심으로 한 국내 선수들은 확실히 구축이 된 상태다. 이번 시즌의 쏜튼은 KB에 딱 어울리는 선수로 자리 잡았고, WKBL에서 보낸 3시즌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지금과 같다면 KB를 제외하고는 쏜튼을 선택할 수 있는 팀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변수가 있는 만큼 어떤 외국인 선수를 뽑느냐가 KB가 올 시즌의 상승세와 우승이라는 결과를 왕조로 이어가는 데 가장 큰 관건이 될 것 같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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