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삼성생명이 반격에 성공했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는 16일 용인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8-2019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82-80으로 승리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은행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삼성생명 선수는 역시 김한별이다. 1차전에서 양 팀 최다인 28점을 쏟아 붓고도 5반칙 퇴장으로 패배를 지켜봐야 했던 김한별은 2차전에서는 27점을 폭격하며 삼성생명의 반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2차전 반격을 이끌었던 선수는 김한별만이 아니다. 김한별이 사이즈와 힘의 우위를 앞세워 삼성생명 공격의 중추로 활약했다면, 이주연은 뛰어난 스위치 수비와 헬프 디펜스, 공간 지각 능력으로 삼성생명의 공수 양면에 엄청난 도움을 줬다. 기록상으로는 김한별의 활약이 더 뛰어났지만, 공수 전체를 봤을 때는 이주연도 2차전 승리에 공헌한 부분이 결코 적지 않았다.

이주연은 2차전에서 어떻게 삼성생명의 반격를 이끌었을까? 수비 장면을 통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주연의 가장 큰 장점은 포지션 대비 뛰어난 힘과 탁월한 민첩성을 활용한 수비력이다.

하지만 이주연이 단순히 피지컬만 앞세우는 수비수인 것은 아니다. 상대 팀의 공격 방식을 이해하고 여기에 대응함으로써 팀 수비에 도움을 주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 한 마디로 매우 영리한 수비수다.

 

1쿼터 초반 우리은행의 공격 장면이다. 우리은행이 수비 성공 후 빠르게 하프라인을 넘어왔고, 이로 인해 이주연은 페인트존 부근에서 자신보다 신장이 큰 임영희를 마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재밌는 공격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스페인 픽앤롤이다.

스페인 픽앤롤이란 기본적으로 2대2 게임으로 전개되는 픽앤롤 플레이에 제3의 공격수가 참여해 스크리너의 수비수에게 스크린을 걺으로써 또 다른 득점 기회를 보는 공격 방법이다.

(스페인 픽앤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이동환의 앤드원] 픽앤롤의 진화 '스페인 픽앤롤' https://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398&aid=0000010620 )

위 장면을 보면 탑에서 박혜진과 빌링스가 픽앤롤을 시도하고 있고 이주연이 막고 있는 임영희가 빌링스(스크리너)의 수비수인 하킨스에게 다가가 스크린을 걸 준비를 한다. 전형적인 스페인 픽앤롤의 모습이다.

 

박혜진은 오른쪽으로 드리블을 이어가고 스크린을 걸었던 빌링스는 림 왼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때 빌링스의 수비수인 하킨스는 자유투 라인과 3점슛 라인 중간 지점에 처져서 박혜진의 돌파 동선을 체크하고 있다. 드랍 백(drop back) 수비다.

한편 임영희는 스크리너(빌링스)의 수비수인 하킨스의 등 뒤로 다가가 백 스크린을 준비한다. 스페인 픽앤롤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다.

 

이때 임영희의 움직임이 흥미롭다. 하킨스에게 정확하게 스크린을 걸기보다는 3점슛 라인 밖으로 빠질 준비를 한다.

동시에 빌링스는 계속 림을 향해 달려 들어가는 한편 손을 들어 박혜진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하킨스가 박혜진의 돌파를 막기 위해 노골적으로 박혜진 쪽으로 쏠린 것이 보인다. 때문에 박혜진의 랍 패스(lob pass)가 빌링스에게 향할 경우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빌링스에게 아주 쉬운 골밑 득점을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주연의 진가가 여기서 드러난다. 3점슛 라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자신의 마크맨 임영희를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페인트존 부근에서 오픈이 된 빌링스를 순간적으로 체크해 오픈 상태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 빅맨이 아닌 선수가 로우 포스트 혹은 페인트존 안에서 상대 공격수를 체크해주는 이 같은 수비 동작을 태깅(tagging)이라고 부른다.

박혜진의 마크맨인 박하나와 빌링스 근처에 있는 배혜윤의 움직임도 훌륭하다.

박하나는 박혜진이 랍 패스를 시도할 가능성을 예측하고 팔을 뻗어 볼을 강하게 압박한다. 배혜윤 역시 키가 작은 이주연의 태깅 위로 랍 패스가 올 것을 대비해 자신의 마크맨인 최은실과 거리를 두고 페인트존 가까이 처진다. 삼성생명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하킨스가 빌링스에게 돌아왔고, 박하나의 압박에 빌링스에게 바로 볼을 주지 못한 박혜진은 탑으로 빠져나온 임영희에게 패스를 한다. 페인트존에서 태깅을 하던 이주연은 하킨스가 빌링스 가까이 돌아오자 자신의 마크맨이었던 임영희를 곧바로 따라간다.

순간적으로 임영희에게 오픈에 가까운 찬스가 났다. 그러나 이 상황은 사실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올 시즌 임영희는 3점슛 성공률이 29.1%에 불과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주연이 태깅 후에 다소 늦게 임영희를 쫓아가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임영희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갈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이주연이 자유투 라인 부근까지만 달려간 뒤 정지하는 것이 보인다. 일종의 새깅(sagging)이다.

 

임영희 역시 과감하게 3점을 던지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빌링스에게 생긴 페인트존의 공격 기회를 봐준다. 하지만 이후 배혜윤의 더블 팀으로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다.

이주연이 적절한 타이밍에 영리하게 빌링스를 체크해주지 않았더라면 페인트존에서 손쉽게 득점을 허용할 수도 있었던 수비 장면이었다. 다른 삼성생명 선수들의 수비도 좋았지만, 이주연이 수비 센스가 굉장히 좋았던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수비 장면을 살펴보자. 2차전에서 삼성생명은 매우 적극적인(사실은 노골적인) 스위치 수비를 감행했다. 스위치를 할 수만 있다면 웬만한 상황에서는 스위치를 과감하게 했는데, 이런 삼성생명의 수비 콘셉트에서도 이주연의 능력은 크게 빛났다.

 

45도에서 최은실이 볼을 가지고 있고 임영희가 다운 스크린(베이스라인을 향하는 스크린)을 걸고 있다. 이주연의 마크맨인 박혜진이 임영희의 다운 스크린을 활용해 3점슛 라인 쪽으로 뛰어 나가려고 한다.

 

삼성생명의 대응이 매우 좋다. 김보미가 패서(passer)를 등지고 박혜진의 동선을 막아선다. 박혜진이 우리은행에서 가장 위협적인 슈터이기에 충분히 이런 수비를 할 만하다. 이처럼 다운스크린을 받는 슈터의 동선을 미리 막아서는 수비를 ‘탑-락(top-lock)’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높은(top) 지점에서 미리 슈터의 동선을 봉쇄(lock)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보미와 이주연은 자연스럽게 스위치 수비가 이뤄진다. 사실 이 장면을 더 정확한 순서로 설명한다면 김보미와 이주연이 미리 약속된 스위치 수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보미가 박혜진의 동선을 막는 ‘탑-락’ 수비를 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로우 포스트(low post)에서는 이주연이 스크리너이자 자신보다 신장이 큰 임영희를 막는 상황이 또 다시 발생했다.

 

최은실의 판단이 매우 좋다. 지체하지 않고 로우 포스트에 자리잡은 임영희에게 훌륭한 타이밍에 패스를 뿌려준다. 이제는 임영희의 마무리만 남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때 이주연의 수비력이 다시 빛을 발한다. 강한 힘을 활용해 볼이 로우포스트에 도달할 때까지 임영희의 포지셔닝을 방해한다. 그리고 볼이 들어오자 점프하면서 오른팔로 볼을 쳐냈고 루즈 볼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이 정도면 로우 포스트 공격을 통한 스위치 수비를 공략을 완벽하게 막아냈다고 볼 수 있다. 이주연의 힘과 영민함을 확인할 수 있는 수비 장면이다.

 

이번엔 스위치 수비에 대한 이주연의 이해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을 살펴보자.

왼쪽 45도에서 이주연이 박혜진을 막고 있고 김정은은 스크린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때 반대 사이드에서 우리은행의 움직임이 좋다. 임영희의 스크린을 받아 박지현이 45도로 컷인을 한다.

 

임영희의 마크맨인 박하나가 범핑(bumping)을 통해 박지현의 컷인 속도를 늦추려 했으나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페인트존에서 순간적으로 박지현이 오픈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자신의 사이드에서 벌어지는 픽앤롤 상황에 보다 신경 쓰던 박혜진이 박지현의 상황을 놓치고 만다. 대신 박혜진은 김정은이 걸어주는 볼 스크린(ball screen)의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돌파를 시도한다.

이때 임영희의 마크맨이었으며 박지현에게 범핑을 시도했던 박하나가 뒤늦게 스위치 수비로 박지현을 쫓아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박혜진의 돌파가 워낙 날카로웠기에 김소니아를 마크하던 김한별이 페인트존 안에 처져서 돌파를 견제한다. 박지현을 따라가던 박하나도 골밑에 자리잡았다. 이주연은 이때 박혜진에게 사실상 돌파를 허용한 상태다.

이때 반대 사이드에서 김소니아는 코너로 이동하고 임영희는 코너에서 엘보우로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드리블러가 돌파를 할 때도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우리은행의 볼 없는 움직임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김한별과 박하나의 도움 수비로 인해 돌파가 막힐 것을 예상한 박혜진이 엘보우로 올라온 임영희에게 패스를 건냈다.

이때 김보미는 자신의 마크맨인 임영희를 쫓아가지 않고 스위치 수비를 통해 김소니아를 쫓아간다. 이제 임영희를 책임져야 할 수비수는 김한별이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진 일이다.

 

임영희가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하고 있다. 미드레인지 구역 혹은 엘보우 구역에서 볼을 받았을 때 이전에 자신이 움직이던 속도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살려 돌파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때 박하나와 이주연의 상황을 주목하자. 박혜진의 돌파를 막기 위해 골밑에 자리를 잡았던 박하나는 이제 박혜진의 마크맨이 돼 버렸다. 이로 인해 45도 컷인을 했던 박지현이 왼쪽 코너에서 오픈이 된 상황이다.

헌데 이날 삼성생명의 전반전 수비 컨셉은 사실상 ‘무한 스위치’였다. 때문에 코너에서 오픈이 돼 있는 박지현을 스위치 수비로 체크해야 할 선수는 다름 아닌 이주연이었다. 박하나가 스위치 수비로 박혜진을 막게 됐기 때문이다.

 

김한별의 수비에 돌파가 막힌 임영희가 코너의 박지현에게 볼을 빼준다. 이주연은 자신이 막아야 할 공격수가 이번엔 박지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클로즈-아웃 수비(close-out defense, 멀리 떨어져 있는 수비수에게 달려가서 공격을 봉쇄하는 수비)를 시작한다.

 

이주연의 클로즈-아웃 수비를 박지현이 돌파로 공략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임영희를 스위치 수비하던 김한별이 또 다시 스위치 수비를 통해 박지현의 돌파를 막아선다.

박지현이 임영희에게 패스를 했고, 이로 인해 이주연은 이번엔 임영희를 막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스위치 수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포제션에만 벌써 세 번째 스위치다.

 

하지만 계속되는 스위치 수비에도 이주연의 발은 느려지지 않는다. 볼을 받은 임영희가 빠르게 펌프페이크를 한 뒤 베이스라인 돌파를 시도했으나 이주연이 페이크에 전혀 속지 않고 민첩한 사이드 스텝으로 완벽하게 막아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임영희는 급하게 원 드리블 풀업 점프슛을 던졌고, 이주연은 이 슈팅마저도 완벽하게 방해하는 수비를 해냈다. 삼성생명의 무한 스위치 수비 속에서 이주연의 지치지 않는 클로즈-아웃 수비 및 슛 방해 능력, 짧은 시간에 계속 마크맨이 바뀌는 스위치 수비에 대한 탁월한 지각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이주연의 수비력은 파울 트러블에 걸린 4쿼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직접 장면을 살펴보자.

① 스위치 수비를 통해 오른쪽 로우 포스트에서 이주연이 임영희를 막게 됐다, 명백한 미스매치다.

② 우리은행이 오른쪽 사이드로 볼을 옮겨 임영희과 이주연의 미스매치를 공략하려 한다. 이주연이 오버가딩을 통해 엔트리 패스(entry pass)가 들어올 각도를 없애버리는 것이 보인다. 

임영희는 이런 이주연의 오버가딩을 더 위로 밀어냄으로써 베이스라인 쪽의 공간을 더 넓히려 한다. 그러나 이주연의 힘이 워낙 좋아 잘 밀리지 않는다.

③ 엔트리 패스 각도가 나오지 않자 김정은이 드리블을 통해 45도로 움직인다.

이때 이주연의 대응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턴 동작을 통해 오버가딩에서 포스트업에 대비하는 수비 자세로 빠르게 전환한다.

이주연이 수비 자세를 전환하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엔트리 패스를 먼저 받은 임영희는 이주연의 무게 중심을 역이용해 아주 손쉽게 득점을 쌓았을 것이다.

오버가딩을 하는 중에도 엔트리 패스를 시도하는 김정은의 움직임과 의도를 파악해내는 이주연의 영리함과 경기 이해도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④ 수비 자세를 전환한 이주연은 결국 범핑 이후 슈팅 방해를 통해 임영희의 포스트업 공격을 막아내고 직접 수비 리바운드까지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파울 트러블에 걸린 선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터프하고 영리한 수비다.

이 외에도 2차전에서 이주연은 순간적인 스위치 수비를 통해 우리은행의 손쉬운 돌파 득점을 막아내는가 하면, 적절한 타이밍에 페인트존을 체크해준 뒤 클로즈-아웃 수비를 통해 우리은행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도 보여줬다. 3쿼터 중반에는 임근배 감독이 이주연의 수비에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을 정도로 이날 이주연의 수비는 발군이었다.

그러나 이주연이 2차전 승리에 기여한 부분은 수비만이 아니었다. 이주연은 김한별, 하킨스, 배혜윤 삼각 편대가 중심이 된 삼성생명의 공격 시스템에서 뛰어난 공간 지각 능력을 통한 스페이싱, 탄탄한 체격을 활용한 스크린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칼럼을 통해 알아가 보도록 하자.

2차전에서 뛰어난 공수 활약을 펼친 이주연이 3차전에서도 삼성생명의 승리를 이끌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KBS N 스포츠 중계화면 캡쳐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