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①편에 이어...

최근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극한 직업>에는 ‘왕갈비 통닭’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소개 멘트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곧바로 유행어가 됐다. 

WKBL 역시 신인들에게는 ‘극한 무대’로 꼽힌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수준 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무대에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민 당찬 신인들이 있다. 바로 우리은행 박지현과 OK저축은행 이소희다. 나란히 전체 1순위와 2순위로 2018-2019시즌에 프로에 입단한 두 명. 이들은 ‘친구’일까? 아니면 ‘라이벌’일까? (모든 기록은 2019년 2월 22일 기준)

우리은행에 이소희가? 박지현이 OK저축은행에?

공교롭게도 현재는 양 팀 사령탑이 두 신인 선수를 다루는 방법도 다르다. 팀 상황이 현재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박지현에게 팀 적응을 강조하는 편이다. 박혜진과 임영희, 김정은, 최은실 등 주전급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출중한 데다 박다정과 김소니아 등 식스맨들도 꽤 수준이 있다. 박지현에게 우리은행 특유의 조직력을 주문하는 것이 먼저인 이유다. 박지현도 위 감독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우리은행 농구를 하는 것이 먼저”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감독님이 리바운드와 몸싸움, 가드로서 빨리 치고 넘어가는 것을 많이 주문하세요. 사실 이게 농구의 기본이거든요.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의 주문대로 하다 보니까 공격과 수비에서 다음 동작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의 철학이 옳다고 느끼고 있어요. 내가 더 많이 성장하려면, 분명히 지금 부딪혀야 하는 게 맞아요. 지금 감독님이 얘기하시는 부분이 그동안 제가 소홀히 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반면 OK저축은행 정상일 감독은 이소희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요구한다. 정 감독은 “소희가 아직 어리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이소희 입단 전까지만 해도 OK저축은행에서 1군에 뛸 수 있는 가드는 안혜지가 유일했다. 가드진이 약점이었던 OK저축은행은 신인 이소희에게 자연스레 더 많은 출장 시간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소희는 “언니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 더욱 열심히 뛰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팀 언니들이 이번 비시즌에 태백을 3번이나 갔다 왔다고 들었어요. 엄청 힘들게 운동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새로 들어온 제가 그 자리를 빼앗은 꼴이에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뛰려고 해요. 언니들한테 미안하니까요. KB스타즈전에서 블록슛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실수를 해서 상대한테 속공을 내준 상황이었거든요. 만회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사실 체력적으로는 힘든데 이 악물고 뛰고 있어요.”

이후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드래프트 때 서로의 소속팀이 바뀌었다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박지현은 “내가 OK저축은행에 갔어도 시행착오를 분명히 겪었을 것”이라고 말한 뒤 “입단 이후 지금까지 감독님과 언니들 밑에서 보고 배운 것이 엄청 많다. 솔직히 훈련은 힘들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우리은행에 오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이소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정상일 감독님 밑에서 뛰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이후 “아마 위성우 감독님이 날 믿지 못해 출장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 중인 여자농구의 미래들

이들은 지금도 각자의 방법대로 성장하고 있다. 분명히 다른 신인들보다도 성장 폭이 빠를 것이다. 입단과 동시에 1군 경험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현은 팀 선배들의 존재가 큰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통합 6연패를 달성했던 팀 언니들을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베테랑 김정은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고. 

“(김)정은 언니가 방으로 저를 불렀어요. 아까 말씀드린 울었던 날에요. 저한테 나이가 무기라고 하면서 잃을 게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실패해도 괜찮다고요. 뭐가 잘 안되는지 알아야 앞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해주셨어요. 부담감 느끼지 말고 부딪혀보라고 하시면서요. 정은 언니 말이 너무 와 닿았어요. 그래서 방으로 돌아가서 정은 언니가 해준 말을 모두 다 적어놨어요.” 

이소희도 마찬가지다. 그도 팀 언니들에게 많은 조언을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감이다. 겁이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수라면, 스스로 조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아직 어리니까 쌓아둔 게 없잖아요. 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전 아무 생각 없이 뛰어요.(웃음)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경기에 들어갈 때도 아무 생각 없이 해요.”

둘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농구 일지’다. 박지현과 이소희는 모두 일지를 작성 중이다. 그날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지적 사항 등을 매일 적어 두고 항상 공부한다. 분명히 이들의 시행착오가 다른 신인들보다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지현이에게 소희가.. 소희가 지현이에게..

두 선수는 줄곧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인터뷰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소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지현이 특유의 리듬과 노룩 패스가 있어요. 피벗을 하면서 주는 패스가 있거든요.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속고요, 저는 알고 있는데도 속아요.(웃음) 솔직히 어떻게 보면 지현이는 다 갖춘 선수예요. 신(神)이 신장도 주시고, 센스도 주셨어요. 그런데 지현이가 프로에 막 왔을 때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잖아요. 그때 정말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락을 못 하겠더라고요.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게 아직도 조금 미안해요.”

물론 박지현도 이소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이소희와 함께 동고동락했기에 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소희가 정말 많이 넘어져요. 대표팀에서도 그랬는데, 지금 프로에 와서도 그러더라고요. 그때마다 다칠까 봐 걱정돼요. 서로 경쟁하는 것도 중요한데 다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부상 없이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우리의 우정이 변치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소희는 지면을 빌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소희는 먼저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이렇게 많이 뛰는 신인이 없잖아요. 저한테 이렇게 많은 믿음을 주시는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언제나 항상 잘해주는 언니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부모님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 친오빠도요. 생각보다 감사해야 할 사람이 정말 많네요.”

이소희는 목표도 함께 밝혔다.

“전 경기 내용에서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어이없는 실책을 줄이고, 찬스 때는 과감하게 득점과 연결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고요. 기본에 충실한 절실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박지현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라면, 잘하다가도 못할 때가 분명히 있어요. 저한테 질책보다는 많은 응원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제나 항상 노력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은퇴할 때까지 듣고 싶어요. 이 부분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습니다. 꼭 농구팬들의 기대대로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갈 선수로 성장하겠습니다.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그는 위성우 감독에게도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쑥스러워 직접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지현의 수줍은 고백을 대신 전한다. 

“제가 운 날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무리 소희가 잘한다고 해도 절 뽑은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요. 이 얘기를 듣고 정말 감사했어요. 감독님이 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직접 저를 먼저 뽑으신 거잖아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감독님의 기대대로 앞으로 우리은행을 이끌어갈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감독님! 앞으로도 농구 많이 알려주세요!”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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