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최근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 <극한 직업>에는 ‘왕갈비 통닭’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소개 멘트는 영화의 흥행과 함께 곧바로 유행어가 됐다. 

WKBL 역시 신인들에게는 ‘극한 무대’로 꼽힌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수준 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 무대에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민 당찬 신인들이 있다. 바로 우리은행 박지현과 OK저축은행 이소희다. 나란히 전체 1순위와 2순위로 2018-2019시즌에 프로에 입단한 두 명. 이들은 ‘친구’일까? 아니면 ‘라이벌’일까?(모든 기록은 2019년 2월 22일 기준)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대형 신인 박지현의 ‘좌충우돌’ 프로 적응기 

최근 WKBL은 신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고졸 혹은 대졸 신인이 곧바로 리그에서 활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데뷔와 동시에 1군 무대에서 주로 활약한 선수는 박지수 뿐이다.(수상이 박탈된 첼시 리는 제외)

더군다나 한 시즌에 신인 두 명이 동시에 주목받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하는 두 명의 신인이 있다. 지난 2018-2019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나란히 전체 1·2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박지현(우리은행)과 이소희(OK저축은행)다. 

박지현은 지난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전체 1순위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드래프트는 ‘박지현 드래프트’라고 불릴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박지현은 고등학생임에도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남북단일팀 구성원으로 참가했다. 2018 FIBA 여자농구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단숨에 팀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자원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였다. 

하지만 입단과 동시에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데뷔 초반 다소 부진했다. 데뷔전이었던 1월 16일 신한은행과의 경기에서 10분 동안 7점을 기록한 이후 세 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다. 지난 2월 9일에 열린 KB스타즈와의 정규리그 6라운드 맞대결에서는 코트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박지현도 “사실 초반에 부담이 컸다.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초반에는 뭔가를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고 돌아봤다. 

결국 그는 눈물을 쏟았다. 울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교롭게도 친구 이소희와의 매치업으로 관심을 끌었던 OK저축은행전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자신의 프로 통산 두 번째 경기였다. 당시 박지현은 6분 54초 동안 무득점에 그쳤다. 자존심이 상해서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울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음 날 훈련에 나갔어요. 그런데 그날 감독님한테 혼이 났어요. 전날 경기에서 부진했던 것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물론 구석에서 울었어요. (웃음) 그런데 그걸 또 감독님이 발견하셨어요. 감독님이 오라고 하신 뒤에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2순위 이소희, 박지현의 라이벌로 등장하다

한편 인성여고 출신인 이소희는 지난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OK저축은행에 지명됐다. 수비와 스피드가 장점이라고 꼽히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박지현보다 관심도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이소희보다는 박지현에게 무게감이 쏠렸다. 이소희조차도 “1순위는 당연히 (박)지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단 이후 평가가 조금씩 달라졌다. 짧은 머리의 이소희는 빠른 발과 악착같음으로 무장해 종횡무진 코트를 누볐다. 공교롭게도 그의 데뷔전 매치업 상대는 박지현이었다. 데뷔 무대여서 떨릴 법도 했지만, 이소희는 오히려 상대가 박지현이어서 조금 더 편했다는 말도 했다. 

“그때 (한)채진 언니가 아팠어요. 몸을 풀고는 있었는데, 얼떨결에 들어가게 된 거죠. 멤버 체인지할 때 엄청나게 떨렸어요. 그런데 그때 상대편에서 지현이가 나오더라고요. 언니들은 아마 낯설었을 텐데, 저는 지현이가 익숙하잖아요.(웃음) 그래서 조금 더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이후 이소희는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프로 통산 4번째 경기였던 2019년 1월 26일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는 볼을 빼앗긴 이후 재빠르게 달려가 상대의 속공을 블록으로 저지했다. 이소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프로에 들어오면서 뛰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했죠. 목표는 5분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때 정말 잘하던 언니들도 프로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많이 뛰어야 5분 뛰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또한 이렇게나 오래 뛸지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는 ‘라이벌’ 아닌 ‘친구‘, 함께 눈물 흘린 사연은?

‘라이벌’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둘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절대 라이벌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손사래를 쳤다. 박지현은 “이제 막 사회인이 됐는데, 사회가 무섭다는 것을 벌써 느끼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소희가 잘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경쟁 상대가 있다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의식이 전혀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죠. ‘신인상’ 같은 미묘한 경쟁도 있고요. 나눠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서로가 잘했으면 좋겠어요. 여자농구가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저희처럼 유망주 중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서 여자농구가 꼭 예전처럼 인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소희도 마찬가지다. 박지현을 ‘친구’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친구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걱정된다고도 했다. 

“전 부담감이 크지는 않아요. 사실 전 지금 아무 생각이 없거든요.(웃음) 그런데 전 지현이가 더 걱정이에요. 사람들이 지현이한테 기대를 많이 했잖아요. 이렇게 조금만 주목을 받아도 부담스러울 텐데, 지현이는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고 프로에 왔으니까요.”

서로를 라이벌이기보다 친구라고 강조하던 둘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을 동시에 떠올렸다. 박지현과 이소희는 지난 2018년 인도에서 열린 U18 아시아 여자농구 챔피언십에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주장으로 대회에 참가한 박지현은 이소희와 함께 부둥켜 울었던 기억을 꺼냈다. 

박지현은 “첫 경기였던 대만전을 끝내고 나랑 소희랑 엄청나게 울었다. 서로 자신의 경기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버스 뒤쪽에 앉아서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울었다. 그러다 나중에 서로를 위로했다”고 돌아봤다. 

이소희도 “나는 고교 시절에도 꾸준히 1번을 봤다. 그런데 대표팀에서는 얼떨결에 2번을 보게 됐다.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니까 너무 어려웠다. 결국 대만전에 경기를 망쳐버렸다. 그런데 지현이도 대만전에서 그랬다.(웃음) 뒤쪽에 앉아서 함께 울었다”고 떠올렸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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