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이승기 기자 = “의리!”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 『투캅스2』가 개봉했던 지난 1996년 이후, 배우 김보성은 근 20여 년 간 끊임없이 “의리!”를 부르짖었다. NBA에도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선수들이 있다. 마이애미 히트의 터줏대감, 유도니스 하슬렘 역시 으리으리한 ‘의리’를 자랑한다.
‘의리’도니스 하슬렘!
르브론 제임스가 재능을 사우스 비치로 가져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2010년 7월 12일(이하 현지시간)이었다. 마이애미의 지역 언론 『마이애미 해럴드』는 유도니스 하슬렘이 마이애미와 재계약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계약 조건은 5년간 2천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팬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존경으로 점철되었다. 하슬렘이 마이애미와 재계약하기 전에 이미 여러 팀에게 더 좋은 조건의 오퍼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 네츠), 댈러스 매버릭스, 덴버 너게츠는 하슬렘에게 3년간 2천만 달러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혹은 그 이상을 제시받았다는 루머도 돌았다.
하지만 하슬렘의 선택은 마이애미였다. 더 나은 처우와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원 소속팀과 계약하는 훈훈한 사례를 남긴 것이었다. 이는 분명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최근 많은 선수들이 프랜차이즈를 지키는 대신 돈 혹은 우승을 쫓아 이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슬렘의 사례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야말로 '김보성급 의리'가 아닌가.
그런데 과거에도 한 차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하슬렘은 2005년 여름 이미 한 차례 FA 시장에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소속 팀과의 의리를 지켰다. 하슬렘은 당시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면 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전적 이득을 더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히트에 남았다. 마이애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탓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현명한 선택이 됐다. 마이애미가 2005-06시즌 NBA 챔피언에 등극했기 때문이었다. 드웨인 웨이드와 샤킬 오닐이라는 걸출한 듀오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고, 하슬렘 역시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몸을 사리지 않으며 팀의 우승에 일조한 바 있다.
마이애미 구단의 ‘의리!’
하슬렘이 마이애미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사실 NBA에 드래프트 되지 않은 선수다. 4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친 늙은 신인에게 손을 내미는 NBA 팀은 없었다. 하슬렘에게는 특별한 기술도, 압도적인 운동능력도 없었다. NBA 팀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낄 만한 재능이 없었던 것.
2002 드래프트에 낙방한 하슬렘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시범경기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낙심한 하슬렘은 결국 프랑스 리그의 살롱 쉬르 손에 입단하여 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2003년 여름이 밝았다. 하슬렘은 마이애미와 자유계약을 통해 간신히 NBA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을 받아주는 팀이 없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고마운 팀이 바로 마이애미였던 것이었다.
하슬렘이 마이애미를 사랑하는 것처럼 마이애미의 팬들 역시 하슬렘을 격하게 아낀다. 코트 안에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코트 밖에서는 언제나 프랜차이즈를 먼저 생각하는 듬직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팬들도 “의리!”
2010년 6월 9일, 훈훈한 일화가 있었다. 그날은 하슬렘의 생일이었다. 홈 팬들과 구단은 그런 하슬렘을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다. 하슬렘의 집 대문에 'WE WANT U(Udonis)BACK(유도니스, 돌아오길 바라)', 'HAPPY BIRTHDAY UDONIS!(생일 축하해, 유도니스!)'라는 초대형 플랜카드를 붙여 놓은 것. 당시 자유계약신분을 획득한 하슬렘이 히트와 재계약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게다가 관련 티셔츠를 제작해 단체로 입고서 귀가하던 하슬렘을 반겼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인척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케익을 자르고 선물을 전달하는 등 하슬렘의 생일을 축복했다. 하슬렘은 팬들의 ‘의리’에 더 없이 감격한 얼굴이었다. 이런 곳을 떠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슬렘은 2010년 여름 마이애미와의 재계약 후 인터뷰에서 “DNA가 바뀌지 않는 이상 돈을 쫓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가슴 따뜻한 명언을 남겼다. 이쯤 되면 그를 진정한 남자라고 불러도 될까.
어쩌면 하슬렘의 DNA는 오직 승리를 향한 열정과 프랜차이즈를 위한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그를 가리켜 ‘유도니스 하슬렘’이라고 쓰고 ‘의리!’라고 읽는다.

사진 제공 =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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