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프런트 라인업
[루키] 염용근 기자 = 20세기였던 1998년과 21세기인 2014년을 비교해보자. 당시 최고 아이돌 그룹이 H.O.T.와 S.E.S. 등이었던 반면 현재는 소녀시대, EXO 등이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빌 클린턴에서 조지 워커 부쉬를 거쳐 버락 오바마로 바뀌었고, 한국 대통령 역시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변하기 않은 것도 있다. 바로 NBA의 영원한 강호 샌안토니오 스퍼스다. 1998년 당시 56승 26패 승률 68.3%를 기록했던 그들은 이번 시즌에도 51승 16패(3월 21일, 이하 한국시간 기준) 승률 76.1%로 리그 전체 1위를 질주 중이다. 17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승률 61.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팀 리더이자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인 팀 던컨의 노쇠화 얘기가 나온 시점이 50승 32패 승률 61.0%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탈락한 2010년이었다. 그는 4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도 여전히 리그 정상급 빅맨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1,0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역대 감독 중 956승 439패 승률 2위(68.5%)인 그렉 포포비치 역시 사령탑을 유지 중이다.
 
샌안토니오는 1997년 드래프티인 던컨과 역시 같은 해부터 감독직을 수행한 포포비치 쌍두마차 체제 하에서 치른 총 1,331경기 중 939경기에서 승리를 거뒀고, 승률은 무려 70.5%다. 파이널 진출 5회에 우승 4회, 플레이오프 진출은 17회. 리그 역사상 최고의 왕조였던 60년대 보스턴 셀틱스, 80년대 보스턴&LA 레이커스, 90년대 시카고 불스 등과 함께 시대를 지배했던 위대한 팀으로 분류될 만하다.
 
사실 이번 시즌의 경우 올스타전 휴식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썩 전망이 밝지 못했다. 6할 승률 자체는 계속 유지했지만 ‘강팀 판독기’라고 불렸을 정도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만날 라이벌들과의 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 시즌 개막 후 2월 중순까지 성적을 살펴보면 6할 승률 이상 팀과의 전적이 11경기 1승 10패에 불과했다. 물론 강팀의 조건 중 하나는 약체들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승수를 챙기는 것이다. 샌안토니오는 해당 조건에 충실했지만 정작 강팀들을 상대로 승수를 모두 토해내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번에는 올스타전 휴식기 이후 성적을 살펴보자. 후반기 개막과 함께 지옥의 일정이었던 LA 클리퍼스-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백투백 원정 경기를 모두 잡았다.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잠시 숨을 고르나 싶더니 이후 11연승을 질주했고, 댈러스 매버릭스, 마이애미 히트, 시카고 불스, 포틀랜드 등 강호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후반기 14경기에서 기록한 성적은 다음과 같다.
 
14경기 13승 1패  평균 111.4득점 100실점 득실점 마진 +11.4점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승리한 셈이다. 실제로 14경기 기간 동안 디팬딩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에게 24점차 대승을 거두는 등 접전 승부조차 거의 없었다. 아울러 마이애미, 인디애나 페이서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등 라이벌들이 부진한 틈을 타 어느새 리그 전체 1위로 올라섰다. 최근 10경기 성적을 살펴보면 인디애내가 5승 5패, 마이애미 4승 6패, 오클라호마시티 역시 6승 4패로 썩 좋지 못했다. 현재 흐름이 시즌 종료 시점까지 연결될 경우 리그 전체 1위와 플레이오프 전체 홈 어드벤테이지 모두 사정권에 들어왔다.
 
샌안토니오가 오랜 기간 동안 리그 정상권에 군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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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농구

우선 시스템 농구가 완벽하게 정착되었다. 던컨과 파커가 중심이 된 ‘알고도 못 막는’ 투맨 게임, 유기적인 모션 오펜스에 이은 스팟 3점슛과 상대 팀을 질리게 만드는 집요한 컷인 등 코트 위의 모든 선수들이 톱니바퀴처럼 약속된 플레이를 48분 내내 구현한다. 승부처에서 경기를 매조지할 수 있는 던컨, 파커, 마누 지노블리 등 해결사들을 다수 보유한 것도 큰 장점이다.
 
선수단 구성을 살펴보자. 놀랍게도 던컨을 제외하면 드래프트에서 로터리 픽으로 지명되었던 선수가 단 한명도 없다. 심지어 지노블리 1999년 2라운드 57순위, 파커 2001년 1라운드 28순위 등 하위권에서 지명되었던 선수가 수두룩하다.
 
또한 ‘레드 맘마’ 맷 보너, 패티 밀스, 티아고 스플리터 등 장단점이 명확한 다수의 선수들이 샌안토니오에서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있다. 대니 그린, 마르코 벨리넬리 등은 이전 소속 팀에서 실패를 경험했던 선수들이다. 철저하게 선수의 장점만을 버무려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선수의 단점을 만회할 수 있는 것도 결국 확고하게 정립된 시스템 농구 덕분이었다.
 
샌안토니오 시스템의 변화 *( )안은 리그 전체 순위
2008-09시즌  평균 97.0득점(23위) 93.3실점(2위) 득실 마진 +3.7점(7위) 페이스 88.4(26위)
2009-10시즌  평균 101.4득점(15위) 96.3실점(8위) 득실 마진 +5.1점(4위) 페이스 91.7(19위)
2010-11시즌  평균 103.7득점(6위) 98.0실점(14위) 득실 마진 +5.7점(5위) 페이스 92.3(14위)
2013-14시즌  평균 105.5득점(6위) 98.0실점(6위) 득실 마진 +7.4점(1위) 페이스 94.9(12위)
 
그들은 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던컨이 중심이 된 수비 중심의 농구를 구사했다. 2008-09시즌 경기당 평균 실점이 93.3점으로 리그 2위였다. 반면 2009-10시즌부터 감지된 변화의 흐름이 2010-11시즌부터 대대적으로 도입되더니 이번 시즌 완벽하게 정착되었다. 바로 수비 팀에서 공격 팀으로 변모한 것이다. 감독과 주축 선수, 단장 모두 그대로인 상태로 말이다. 이는 던컨에서 파커로 팀 공격 1옵션이 바뀐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파커 중심의 빠른 농구를 구사하면서 적게 실점하고 승리하는 팀에서 많이 득점하고 승리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어쨌든 승리라는 대명제를 충족시키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
 
경기 페이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00년대 후반까지 가장 정적인 농구를 구사하는 팀 중 하나였지만 이번 시즌의 경우 평균 94.9로 리그 1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수비 팀이든 공격 팀이든 득실점 마진이 언제나 리그 최상위권인 것도 동일하다. 주축 선수들의 전성기 변화를 파악해 발 빠르게 대처하는 유동성을 발휘한 것이야말로 샌안토니오 시스템 농구의 진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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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시즌 운영 노하우

모범적인 시즌 운영 노하우도 다른 팀들이 감히 흉내 내기 힘들다. 샌안토니오 경기를 살펴보면 주축 선수들이 큰 부상이 아님에도 슈트를 입고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부상이 없어도 휴식 차원에서 던컨, 지노블리, 파커, 레너드, 그린 등 주전 선수들이 포포비치 감독으로부터 데이 오프(day-off) 지시를 받는다. 지난 시즌 전국 방송을 타는 마이애미 원정 경기에서 던컨, 파커, 지노블리, 그린을 아예 경기장에 대동하지도 않고 비행기를 태워 샌안토니오로 돌려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포포비치는 당시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의 철학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82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핵심 전력들의 컨디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샌안토니오처럼 주축 선수들의 나이가 많고, 오프 시즌 각종 국가 대표 팀 대회 참가로 피로가 누적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눈앞의 1승에 연연하지 않고 82경기 전체 그림을 구상하는 포포비치는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는 현(現) NBA 최고 감독이다.
 
2013-14시즌 샌안토니오 주전-벤치 활용도
주전 평균 출전 시간 26.9분(30위) 득점 59.8점(28위)
벤치 평균 출전 시간 21.3분(1위) 득점 45.6점(1위)
 
세상에 이런 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주전과 벤치간의 격차가 거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워낙 시스템 농구가 완벽하게 정착된 덕분에 누가 출전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경기력을 구현할 수 있다. 여기에 포포비치의 칼 같은 출전 시간 분배로 인해 라이벌 대결에서도 절대 주축 선수들이 무리하는 법이 없다. 던컨이 1976년생, 만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역시 팀이 철저하게 출전 시간을 관리해줬기 때문이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플레이 스타일을 보유한 파커와 지노블리도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는 다른 팀 소속이었다면 벌써 NBA 커리어가 종료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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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건한 프런트 라인업

포포비치는 1997년 샌안토니오 감독에 부임한 이래 현재까지 지휘봉을 잡고 있다. 또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단장 역할까지 병행했다. 프랜차이즈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뛰어난 셈이다. 2002년 단장직을 내려놓은 후에는 후임 R.C. 뷰포드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프런트 체계가 굳건하게 유지되다 보니 팀의 기본 철학이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현재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단장들을 떠올려보자. 오클라호마시티의 샘 프레스티 단장은 과거 샌안토니오에서 프런트 경험을 쌓았다. 00년대 중반 포틀랜드에서 혁신적인 리빌딩 과정을 선보였던 케빈 프리차드(現 인디애나 단장) 역시 포포비치 밑에서 어시스턴트 코치 역할을 맡았던 사례가 있다. 훌륭한 시스템 하에서 배운 단장들이 다른 팀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샌안토니오 프런트의 위엄이다.
 
지도자 배출 부문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크 브라운(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마이크 부덴홀저(애틀랜타 호크스), 마이크 브렛(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에이브리 존슨(前 브루클린 네츠) 등 많은 전?현직 감독들이 샌안토니오 시스템을 거쳐 감독직에 데뷔했다. 특히 포포비치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던 부덴홀저는 이번 시즌 애틀랜타에서 아예 친정 팀 시스템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샌안토니오는 성적으로 시대를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NBA 각 팀들의 구단 운영, 지휘 체계, 전술 등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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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즌 전망

현재 성적을 감안한다면 서부 컨퍼런스 1위가 유력한 상황이다. 라이벌 오클라호마시티는 에이스 케빈 듀란트의 체력 저하, 부상 전력인 러셀 웨스트브룩의 몸 관리 등으로 인해 페이스가 많이 다운되었다. 서부 컨퍼런스 1위는 물론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통해 파이널 홈 어드벤테이지까지 획득할 수 있다.
 
샌안토니오는 지난 시즌 파이널 6~7차전을 마이애미 원정으로 치렀다. 만약 홈에서 경기를 가졌다면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통해 홈 어드벤테이지를 가져오는 것은 중요하다.
 
현재 성적 그대로 시즌이 마감될 경우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멤피스 그리즐리스 또는 댈러스가 될 전망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에 시즌 맞대결에서도 6전 전승을 쓸어담았다. 2라운드 맞대결이 유력한 LA 클리퍼스 또는 휴스턴 로케츠는 쉽지 않는 상대지만 그들은 플레이오프에서 중요한 노련미가 부족하다. 여우같은 포포비치와 던컨의 아성을 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오클라호마시티, 그리고 동부 컨퍼런스 1위가 유력한 마이애미 또는 인디애나를 뛰어 넘는 것이다. 이미 지난 시즌 파이널 진출을 통해 공격 위주로 바뀐 시스템 농구가 정규 시즌뿐만 아닌 플레이오프 큰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샌안토니오는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K-pop 스타 시즌 1 우승자인 박지민양이 태어났던 1997년부터 현재까지 언제나 정상권에 군림해왔다. 이번 시즌 흐름도 매우 좋다. 과연 그들이 던컨&포포비치 체제 하에서 5번째 우승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보자.
 
염용근 기자(shemagic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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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제공 = [루키]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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