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상혁 기자] ①편에 이어..

내 농구 인생의 가장 큰 기억, 삼성생명

입단 당시 나는 계약금 3천만원의 보잘것없는 선수였지만 운이 따랐다. 기존의 가드 언니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갖고 있었고 내 바로 위의 가드 선배도 1년 만에 팀을 나갔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입단 2년차부터 스타팅 가드로 나설 수 있었다. 

가드인 나는 그때 최고의 센터인 (정)은순 언니에게 혼나면서 많이 배웠다. 그러면서 기록이 좋았던 게 상대팀에서는 우리가 공격할 때 은순 언니에게 더블팀이 많이 갔다. 그런데 내 매치업 상대가 신입인 나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골밑으로 뛰어 들어갔고 은순 언니가 주는 볼을 잡아 가볍게 레이업을 넣곤 했다. 은순 언니 말로는 “이 어린 애가 그렇게 뛰어 들어와서 볼을 내가 주면 정말 잘 넣더라”라고 할 정도였다. 

그때는 잘하는 선수들과 뛰다 보니 내 농구도 늘고 기록도 좋아져 기사도 많이 나올 때였다. 당시만 해도 종합지 헤드라인과 1면에 여자농구가 나올 때였는데 ‘신데렐라’, ‘진흙속의 진주’라는 타이틀로 몇 번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어린 축에 들던 나도 프로가 되면서 점차 고참 축에 들기 시작했다. 프로에서도 우승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좋은 지명권을 갖지 못해서 좋은 신인을 많이 뽑지 못했다. 그리고 외국인선수가 들어오면서 다른 팀들의 도전도 거세졌다. 우리은행에는 타미카 캐칭이라는 선수가 있었고 신한은행에는 외국인선수 외에 하은주라는 장신 센터가 있었다. 이 두 팀 때문에 한때 준우승만 하는 팀이 되기도 했다. 

선수 시절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여러 경기가 있다. 국가대표로 마지막 대회였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도 기억에 남는다. 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 방식이 처음 변경됐을 때 신한은행과의 3~4위전이 기억난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에서 마지막 3차전을 신한은행 홈에서 했다. 1점차로 우리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앰버 해리스가 마지막 슛을 시도해 실패했는데 그걸 내가 팁인 득점으로 마무리하면서 우리 팀이 극적으로 이긴 경기였다. 그때 나를 막던 선수가 김단비였다. (김)단비가 나중에 대표팀에서 말하는데 “언니 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어요. 언니가 팁인을 성공해서 우리 플레이오프 떨어진 그 경기예요”라고 하더라. 

그때 경기 끝나고 신한은행의 그 누구도 단비한테 책임을 못 물었다고 했다. 상대가 미선 언니니까 괜찮아라는 얘기만을 들었다고 한다. 근데 단비는 자기가 박스아웃만 제대로 했더라면 하면서 잊을 수 없는 경기라고 하더라.(웃음) 우리는 정작 신한은행 전에서 체력이 바닥 나 챔프전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졌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리가 안 떨어질 정도였다. 

은퇴 후 미국에서의 지도자 연수 그리고 귀국 

나이를 먹어갈수록 은퇴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커져갔다. 팀도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 역시 고민은 있었지만 너무 농구가 재밌어서 결정을 못 내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딱 농구가 재미없어졌다. 선배들도 어떤 이유건 간에 그 시기가 온다고 하던데 나한테 딱 그 시기가 온 것이었다. 팀도 마침 세대교체를 해야할 시점이어서 이때가 그만둘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은퇴 후에도 농구 쪽 일을 하고 싶었다. 지도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그래서 미국 연수도 간 것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사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은퇴 후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다른 일도 해봤는데 재미가 없었다. 또 기본 지식이 없다보니 대화가 잘 안됐고 사회생활을 한 것도 아니어서 얘기가 안 통했다. 집 이외에는 농구 코트에 있는 게 제일 재밌었다. 

사실 남편은 선수 이미선을 항상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에 조금 더 뛰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했지만 내 의사를 존중해줬다. 그리고 미국 연수에 관한 것들도 알아봐주고 도움을 줬다. 어렵게 간 미국이지만 사실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어학원에서 오후 2시에 오면 할 것이 없었다. 유학생들도 나이가 20대 초반이라 못 어울렸고 무엇보다 혼자 다니고 지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러던 중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얘기에 급히 돌아왔는데 결국 내가 귀국하는 날 돌아가셨다. 부친상을 치른 뒤에는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당분간 쉬면서 무얼 할까 하는 와중에 임근배 감독님에게서 연락이 왔고 코치직을 제안하셨다. 친정팀 코치로 뛸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감독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오게 됐다. 

코치 이미선은 아직 배워가는 중

지난해 8월에 팀에 왔으니 코치로 햇수로 2년차, 시즌으로도 두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보고 생각했던 코치가 단순히 운동만 가르치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체크해야 하고 신경써야 한다. 

아무래도 여자선수 출신이다 보니 선수들을 보면 선수들의 심리, 마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을 대충 알게 된다. 감독님께서도 ‘왜 쟤가 저렇게 하는지?’ 같은 것들을 더 신경쓰라고 하신다. 처음에는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되도록 언니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선수들, 특히 고참 선수들과는 내 스스로 선을 그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니까 그게 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농구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른 얘기도 많이 하려고 한다. 또 그 와중에서 선수들이 고충을 이야기하면 감독님한테 얘기를 드려서 해결방법을 찾으려고도 한다.  

코치가 되고 나서 첫해는 정말 ‘어어’ 하다가 시즌에 들어갔고 정신없이 치른 것 같다. 지금은 혼내고 훈련 가르치고 하는 건 다 감독님이 하시니까. 나는 어린 선수들이 혼나고 난 뒤 의기소침해질 때 달래주고 사기를 북돋워주려고 한다. 훈련할 때도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코트 위 러닝 3차례라면 ‘코치님 한번 빼주세요’라는 소리가 나온다. 아마 이것은 어느 구단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빼주는데 대신에 “오늘 빼면 내일은 해야 된다”라고 말한다. 감독님이 평소에 스스로 하는 걸 강조하시는 편이라 선수들도 잘 받아들인다. 

감독님과 선수들의 중간에 있으면 매번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이쪽 입장도 이해되고 저쪽도 이해가 되고. 그래서 ‘한 번 내가 받으면 한 번은 양보해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선수들에게 한다. 그걸 무조건 말하는 게 아니라 이해가 되게끔 설득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만은 않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 감독님 밑에서 그걸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부분들이 내가 배워야 되는 건지 그런 걸 조금씩 찾고 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진짜 한 번에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은 사실 되게 어려운 것 같다. 선수로서 여러 감독님들과 생활했지만 코치로서는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다. 자기만의 확실한 게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코치 이미선은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배워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 그렇지만 계속 노력해서 찾고 배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

이미선 코치한테 기대하는 건 아무래도 우리 코칭스태프가 모두 남자들이다보니까 중간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여자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보고 그런 부분에서 가교 역할을 바라고 있다. 또 본인이 선수 시절에 갖고 있던 노하우나 그런 것들을 우리 선수들 특히 앞선 가드진들에게 잘 알려주는 역할도 바라고 있다. 사실 나도 코치 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코치라는 역할이 상당히 힘들다. 마음먹고 하려면 힘들 수도 있고 대충 하려면 대충 할 수도 있는 자리지만 이 코치는 지금까지 잘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배혜윤 삼성생명 주장

너무너무 좋은 코치님이다.(웃음) 저나 선수들에게 정말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특히 저랑은 같이 선수 생활도 해서 제가 어떤 걸 보강해야 되고 어떤 걸 살려야 하는지도 잘 알려주신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나 선수들에게 해주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믿음이 간다. 화내실 때는 다소 무섭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선수들한테 인기만점인 코치님이다. ‘미소천사 이미선’이라고 부를 정도다. 선수단과 감독님 사이에서 중간가교 역할도 너무 잘해주셔서 언제나 감사하라 따름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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