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지난 10년 동안 NBA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경기 속도와 3점슛 시도의 증가다.

‘페이스 앤 스페이스(pace and space)’로 불리는 이 같은 트렌드는 골든스테이트 왕조의 탄생과 함께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올 시즌에도 많은 팀들이 속도전과 3점슛 생산력을 앞세워 경기를 운영하는 중이다.

<바스켓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올 시즌 NBA의 경기 페이스 수치는 99.5로 1988-1989시즌(100.6)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다. 경기당 평균 3점슛 시도 개수는 31.3개로 사상 최초로 30개를 넘어섰다.

여기에 선수들의 전반적인 득점 능력 및 슈팅력까지 향상되면서 올 시즌 NBA는 1984-1985시즌 이후 가장 높은 리그 평균 득점을 기록 중이다.(110.5점) 단순 득점 기록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의 공격 효율도 향상됐다. 올 시즌 NBA 전체의 공격효율지수는 110.2로 역대 최고치다.

리그 전반적인 공격력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지도자들의 수비 연구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에는 상대의 3점슛 시도를 전면 봉쇄하기 위한 스위치 수비의 빈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지난 시즌 서부지구 결승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휴스턴과 골든스테이트는 과감한 올-스위치(All-switch) 전략을 통해 공수에서 극단적인 포지션 파괴 농구를 펼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올 시즌 NBA는 수비 전술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지역방어 활용의 증가다.

<바스켓볼 브레이크다운>의 닉 하우즐먼 코치는 올 시즌 개막 후 지난 1월 15일까지 NBA 30개 팀의 지역방어 활용 횟수를 확인했는데, 그 결과 절반에 가까운 12개 팀이 지난 시즌보다 지역방어를 2배 이상 자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1-201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7년여 동안 NBA 전체의 지역방어의 활용 빈도가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던 것과 대비되는 변화다.

*2018-2019시즌 지역방어 활용 TOP 5 팀(1월 15일 기준)*
마이애미: 323회
브루클린: 204회
뉴욕: 161회
클리블랜드: 131회
토론토: 78회

올 시즌 지역방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팀은 마이애미다. 11월 말까지 7승 13패의 부진에 빠져 있었던 마이애미는 12월부터 두 가지 변화를 통해 반전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첫 번째는 3&D 자원이었던 저스티스 윈슬로우를 포인트가드로 기용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2-3 지역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었다.

닉 하우즐먼 코치에 따르면 올 시즌 마이애미는 지역방어를 활용할 때 1회 수비당 0.864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 팀인 오클라호마시티가 맨투맨 수비를 할 때의 1회 수비당 실점 기록(0.902점)보다도 좋은 기록이다.

마이애미 선수단도 지역방어 활용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드웨인 웨이드는 지역방어 활용 증가에 대해 ”코칭스태프가 천재적인 판단을 내렸다“라고까지 평가했다.

웨이드는 「마이애미 해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팀 선수들이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수비를 할 때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역방어를 쓰면 자연스럽게 코트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덕분에 선수들의 전반적인 수비 시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좋아졌다”라고 설명했다.

 

브루클린 역시 지역방어의 효과를 크게 보고 있는 팀이다.

12월 초 8연패 늪에 빠졌던 브루클린은 이후 22경기에서 무려 17승 5패를 기록하며 현재 동부 6위에 올라 있다. 이 같은 상승세의 중심에는 변칙적인 지역방어 활용이 있었다. 

올 시즌 브루클린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지역방어를 쓰고 있다. 바로 2-3 지역방어와 박스-앤-원(box-and-one)이다. 박스-앤-원은 1명의 선수는 상대의 핵심 공격수를 맨투맨으로 전담 마크하고 나머지 4명의 선수는 페인트존을 중심으로 사각형 대열로 서서 지역방어를 펼치는 수비법이다.

브루클린은 2-3 지역방어와 박스-앤-원 수비를 통해 상대 에이스의 공격 리듬을 흔들고 이를 통해 상대 팀 전체가 불편하게 공격을 전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지역방어를 연속해서 사용하는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고, 기본적으로는 맨투맨 수비를 쓰다가 기습적으로 지역방어를 활용함으로써 상대 팀이 지역방어에 쉽게 적응하고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케니 앳킨슨 감독의 지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동부 1위를 달리고 있는 토론토도 지역방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팀이다. 마이애미, 브루클린만큼 자주 쓰지는 않지만 경기 흐름을 바꾸는 방편으로 1-2-2 지역방어를 활용한다. 장신 포워드인 파스칼 시아캄이 최전방에 서서 탑에서의 볼 흐름을 견제하고, 뒷선의 4명이 박스 형태로 서로의 거리를 벌렸다가 좁히며 페인트존과 45도, 코너 근방을 커버하는 방식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토론토의 이 같은 지역방어를 조명하며 ‘토론토의 1-2-2 지역방어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사실 근래 들어 NBA는 지역방어를 활용하기 쉽지 않은 리그였다. FIBA 룰을 따르는 경기에 비하면 더더욱 어려웠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① NBA 선수들의 전반적인 3점슛 능력이 너무 좋아진 탓에 지역방어를 계속 쓸 경우 3점슛만 얻어 맞으며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3점슛의 시대를 맞이한 NBA에서 지역방어를 쓰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위처럼 보였다.

② NBA는 FIBA 경기와 달리 수비자 3초 룰이 존재한다. 수비자는 선수를 마크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페인트 존에 3초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이로 인해 지역방어를 쓰는 것이 FIBA 경기에 비해 까다롭다. 한 마디로 지역방어 활용에 제약이 있다.

③ NBA는 FIBA에 비해 3점슛 거리가 더 멀다. NBA의 3점슛 거리가 7.24미터인 반면, FIBA는 6.75미터다.(물론 NBA도 코너 3점슛 거리는 6.70미터로 다소 짧다) 이로 인해 지역방어를 활용할 때 각 수비수들이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조금 더 넓은 편이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서는 여러 NBA 팀들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역방어를 보다 자주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역방어의 장점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방어는 상대 팀 선수들에게 3점슛 시도를 허용할 가능성은 높지만 일정 수준의 조직력을 갖춘 상황에서는 3점슛을 방해하는 컨테스트 수비를 하기에 오히려 용이하다. 선수들이 자신의 수비 구역만 효과적으로 지키면 되고 수비 시의 이동거리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지역방어를 기습적으로 잘 활용할 경우 상대에 질 좋은 오픈 3점슛 기회를 내줄 가능성은 오히려 줄일 수 있다. 앞선에 팔이 길고 운동 능력이 좋은 가드를 보유한 팀은 이 같은 장점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역방어의 또 다른 장점은 ‘낯섦’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NBA는 지난 몇 년 동안 지역방어 활용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지역방어를 상대로 공격을 펼치는 것을 낯설어 한다. 스타급 플레이어들도 다르지 않다. 수비수들의 동선과 움직임이 목적이 맨투맨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자주 상대해보지 않으면 이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MBC스포츠플러스의 최연길 해설위원은 “지역방어는 기습적으로 쓰일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수비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은 “사실 최근 NBA에서 지역방어가 줄어들었던 것은 3점슛이 많아진 것보다는 경기 템포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역방어가 얼리 오펜스에 취약한 수비법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상대의 공격 템포를 늦췄다는 전제 하에서 지역방어는 여전히 장점이 있는 수비법이다. 전술의 기습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어떤 전술을 쓰면 그 효과가 더욱 커진다는 개념이다. 지역방어도 그렇다. 갑자기 지역방어를 쓰면 준비가 안 된 상대가 공격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때문에 지역방어를 여러 포제션 연속해서 쓰는 것보다 맨투맨 수비와 섞어서 기습적으로 쓸 경우 그 효과는 더 극대화된다. 상대 입장에서는 언제 지역방어를 쓸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대처하기가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최 위원은 “NBA는 한 팀이 특정 팀과 만나는 것이 한 시즌에 적으면 2번, 많으면 4번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지역방어를 잘 활용할 경우 NBA에서는 다른 리그에 비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며 NBA에서 지역방어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서 그는 “게다가 같은 지역방어를 쓰더라도 팀마다 전열이 변형되는 형태가 다르다. 때문에 시즌 중에 특정 팀을 자주 만나지 못하는 NBA에서는 지역방어가 가지는 기습성이 더욱 커진다. 물론 7전 4선승제로 진행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지역방어의 효과가 얼마나 클지 잘 모르겠다. 상대가 잘 적응하고 대처할 가능성이 경기를 치를수록 커지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올 시즌 NBA에 다시 불고 있는 지역방어의 바람. 이 같은 변화는 리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역방어를 앞세워 순위 싸움을 펼치는 NBA 팀들이 이미 등장했다는 것이다. NBA의 전술은 여전히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NBA가 매력적인 리그인 이유다.

 

사진 제공 =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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