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김은혜 칼럼니스트]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1순위 신인 박지현이 WKBL 무대에 섰다. 

지난 16일 신한은행과의 경기에 깜짝 등장해 정확히 10분을 뛰며 7점 1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한 박지현은 이후 OK저축은행, KB스타즈와의 경기에 나섰고, 평균 7분 19초를 뛰며, 2.3점 0.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경기를 뛴 퓨처스리그에서는 28분 18초를 뛰며 12점 11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다소 이른 시간에 5반칙으로 물러나기도 했다.

‘역대급 재능’이라는 평가 속에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만큼 박지현에서 쏠린 이목과 기대는 상당했다. 데뷔전에서 짧은 출전시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득점력을 보이며 박수를 받은 박지현은 그러나 이어진 두 경기에서는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지금의 모습이 박지현의 가능성과 기대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지현은 충분히 예상됐던, 그리고 당연히 겪어야 하는 성장통을 시작한 것이다.

프로 데뷔와 1군 무대
데뷔전에서 7점을 넣은 후 많은 호평이 잇따랐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고 본다. 2쿼터와 4쿼터의 내용이 달랐다. 득점과 좋은 플레이가 많이 나왔던 것은 가비지 타임이었던 4쿼터였다. 진정한 평가의 기준이 된 것은 두 번째 경기였던 OK저축은행 전이었을 것이다.

이 경기 후,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이것이 현재 박지현의 모습”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위성우 감독이 공식적인 인터뷰를 통해 특정 선수를 지적하는 모습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이날 박지현은 우리은행이 10점차의 리드를 잡고 있던 2쿼터 중반에 투입되어 전반이 종료될 때까지 6분 54초를 뛰었다. 전반을 마쳤을 때 점수차는 14점차로 더 벌어졌지만 박지현의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볼을 잡고 시간을 오래 끌었고,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패스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망 다니거나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플레이. 위성우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이다. 만년 꼴찌에 머물던 팀에 부임하면서 위성우 감독이 가장 먼저 바꾸려 했던 것이 이런 플레이와 습관이었다. 신인 선수들한테 많은 것을 주문하지 않는 편인 위 감독이 언짢은 표정으로 박지현에게 무언가를 지적하는 모습이 잡혔는데 아마도 이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박지현은 재능이 많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선수다. 그 장점을 본인 스스로 상황에 맞게 사용하면서 고교 무대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정상의 자리에 올랐겠지만 프로는 다르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고, 갖고 있는 장점 중 가장 강력한 부분을 예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선은 팀에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다. 제일 기본적인 부분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팀 적응 과정에서 박지현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벽을 경험할 것이다. 

기준과 상식에 대한 벽 ① 훈련과 준비
박지현은 자신의 상식으로 알고 있던 농구에 대한 기준, 그러니까 경기를 뛸 수 있는 몸 상태나 체력, 플레이 스타일 등과 관련한 기준을 리셋해야 한다. 위성우 감독의 기준 자체가 일반적인 기준보다 훨씬 혹독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따라가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위성우 감독은 박지현에 대해 “지난 11월 이후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연 박지현이 두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을까? 아니다. 나름대로 몸을 만들기 위해 숭의여고에서 개인적인 훈련도 했고, 스킬트레이닝도 한 것으로 안다. 프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조금씩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준비가 우리은행의 눈높이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이번 시즌 위성우 감독은 비시즌 훈련이 충분치 않아 선수들의 몸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해 부상 우려가 있다며 휴식 기간의 여유가 있을 때도 원하는 훈련을 충분히 못한다고 아쉬움을 꾸준히 토로한다. 그런데도 박지현은 우리은행에 합류한 후 사흘 만에 근육이 올라와서 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팀들은 시즌이 시작되면 비시즌 때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의 강도를 낮춘다. 그러나 위성우 감독은 그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다. 비시즌만큼 강하게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훈련에 합류한 박지현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강도의 훈련을 소화하는 중이라고 여길 것이다. 몸에 알이 배겨서 여기저기가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훈련을 하던, 지금보다 가벼운 훈련은 없을 것이라는 게 팩트다.

기준과 상식에 대한 벽 ② 몸싸움과 리바운드
위성우 감독은 “고교시절 리바운드를 많이 잡았다고 해서 연습을 시켜봤는데 김소니아가 15개를 잡을 동안 1개를 잡았다”며 “고등학교 때 잡은 것은 리바운드가 아니다. 키가 크고 빅맨을 수비하다 보니 골밑에서 그냥 잡은 것일 뿐”이라고 박지현의 리바운드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위성우 감독이 리바운드 훈련을 시켜봤다는 것은 아마도 5대5 박스아웃 훈련을 말하는 것 같다. 공격조와 수비조가 5대5 박스 아웃을 한 뒤, 오펜스 리바운드 3개와 디펜스 리바운드 6개를 놓고 먼저 잡은 쪽이 이기는 훈련이다. 지는 쪽은 무조건 뛴다. 훈련 내내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거칠고 힘든 훈련이다. 여기서 박지현이 김소니아한테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리바운드 훈련 과정에서 박지현이 어떤 느낌을 가질지는 조금 이해가 된다. 리바운드를 대하는 위성우 감독의 기준도 일반적인 시선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나는 같은 포지션에서도 키가 큰 편이었기 때문에 뛰어 들어가면서 잡는 리바운드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는 위성우 감독에게는 기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무조건 박스 아웃이 먼저다. 한 번 바디체크를 하고 뛰어 들어가서 잡으면 기본적으로 장신 선수들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위성우 감독이 강조하는 리바운드 싸움은 무조건 골밑에서의 치열한 박스 아웃이 먼저다. 실제로 리바운드를 잡는 것은 박스 아웃 다음의 일이다. 리바운드보다 박스 아웃을 더 강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2012-13시즌, 우리은행에 있을 당시 나는 리바운드 훈련에서 양지희와 붙었다. 힘 좋은 양지희를 상대로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달려 들어가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성우 감독은 기본적으로 몸싸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없이 강조했다. 나보다 힘에서 월등히 앞서는 선수를 상대로 치열하게 몸싸움을 펼치며 박스 아웃을 하는 것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동반하며,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박지현도 김소니아를 상대하면 같은 심정일 것이다. 힘과 탄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고자 하겠지만, 강력한 몸싸움과 박스아웃을 먼저 수행하지 않으면 위성우 감독의 불호령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박지현은 고교시절 많은 리바운드를 잡았고, 퓨처스리그 첫 경기에서도 1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1군 경기에서는 3경기에 총 22분 가까이를 뛰면서 단 1개의 리바운드도 잡지 못했다. 1군 무대에서는 지금까지와 같은 방법으로 리바운드를 잡을 수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기록으로 이렇게 나타나니 위성우 감독이 다른 방법을 찾을 이유도 없다.

승리와 최고의 자리가 고착화 시킨 습관의 벽
위성우 감독은 신한은행 전을 마친 후 인터뷰를 통해 박지현이 “배짱이 있고 센스가 있는 선수”라고 칭찬을 하며, “자기가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스스로 구분해서 뛴다”고 덧붙였다. 이 부분은 곱씹어볼 부분이다. 칭찬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 감독은 선수가 코트 안에서 자신이 뛰는 양과 체력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린 선수라면 특히 그렇다. 선수는 어떤 상황이든 코트 안에서 100%를 쏟아내야 하기에  비시즌 체력 훈련을 통해 그토록 혹독하게 준비한다. 안배는 지도자의 몫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기술과 능력이 탁월했던 박지현은 스스로 조절해서 뛰는 것에 익숙하다. 중고교 지도자들이 같은 의견을 말했고, 몇 차례 내가 직접 봤던 ‘고등학생 박지현’의 경기 모습도 그랬다. 이 습관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은행에서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숭의여고 시절에는 5명의 선수가 풀타임을 뛰는 상황이었기에 스스로 안배하며 운영하는 것이 ‘영리한 플레이’였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은행에서는 ‘게으른 플레이’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은행은 에이스 박혜진은 물론, 지난 해 팀에 합류할 당시 서른 살이었던 김정은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했다. 올 시즌 식스맨으로 기회를 잡고 있는 박다정과 김소니아 역시 마찬가지다. 에이스, 베테랑, 백업 선수들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같다. 박지현이라고 다를 수는 없다.

볼 없는 농구와 움직임에 대한 습관
플레이 스타일에서 나타나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박지현은 기본적으로 볼을 갖고 하는 농구에 강점이 있다. 혼자서 1대 5의 농구를 해도 결과를 낼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안배를 하면서 뛰었기 때문에 더욱 이런 습관이 고착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에서는 박지현이 볼을 오래 잡을 수가 없다. 개인 플레이보다 팀 조직력을 특히 강조하는 우리은행이다. 게다가 개인기와 경기 조율능력, 득점력 등에서 이미 리그 최정상급으로 검증받은 박혜진, 김정은, 임영희가 있는 팀이다. 

김소니아와 박다정은 물론 또 한 명의 주전인 최은실 마저도 볼을 잡고 끄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크리스탈 토마스는 논외로 하자.) 박지현도 마찬가지다. 당장 볼을 들고 농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받을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박지현은 18일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박혜진과 교체로 투입되며 1번 역할을 맡았지만 볼을 소유하면서 확실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위성우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플레이가 나왔다. 

신입선수 선발회 때부터 당장 1번으로 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위성우 감독이다. 박지현이 공을 오래 잡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1군 무대에서 빨리 주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박지현 스스로 볼 없는 농구에 익숙해져야 한다. 위크사이드에서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쓰고, 다른 우리은행 선수들처럼 빠르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스크린을 걸어줘야 한다. 박지현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습관의 벽이다.

벽이 뚜렷하기에 기대가 큰 슈퍼루키
언급한 내용만 보면 ‘1순위 신인 박지현의 거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재능과 가능성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부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위성우 감독 부임 후 신인 선수가 팀 합류 한 달도 안 되어, 1군 경기에 연속적으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은 것은 우리은행에서 박지현이 최초다. 그만큼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타고난 센스와 시야가 탁월하고, 180cm가 넘는 신장에 1-3번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은 박지현에게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부분이다. 다른 능력에 비해 야투가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데뷔전에서 100% 야투율을 기록하는 등 발전 가능성도 일찍부터 보여주고 있다.

데뷔 전 이후 두 경기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지만, 코트에 나선다는 것 자체로 박지현은 기대에 맞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즉시 전력감’이라는 평가는 그만큼 가진 것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프로 적응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은행에서 2년은 견뎌내야 팬들이 박지현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지가 박지현의 과제가 될 것이다. 어차피 우리은행에서 중간은 없다. 극복하고 성장하거나 견디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박지현은 자신을 누구보다 혹독하게 단련시킬 강력한 지도자를 프로 입문과 동시에 만났다. 프로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정은 조차도 ‘문화충격’을 받을 만큼, 강한 채찍질과 조련이 있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박지현에게는 극복해야 할 충격의 높이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우리은행에는 강력한 지도자 뿐 아니라, 센터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에서 리그 정상급 능력을 갖춘 선배들이 버티고 있다. 모두가 박지현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함께 훈련을 하고, 옆에서 보는 것을 통해 성장할 것들도 많다. 또한 경쟁자다.

게다가 박지현에게는 이소희라는 라이벌도 있다. 전체 2순위로 OK저축은행에 지명된 이소희는 2경기에서 평균 11분 52초를 뛰며 2.5점 1.0어시스트 0.5리바운드를 기록 중이다. 

저돌적이고 거침이 없는 선수다. 수비 자세도 안정적이다. 기본기도 좋고, 특히 드리블을 하는 리듬이 매력적이다. 팀에 확실한 1번이 안혜지 밖에 없는 상황이라 박지현보다 출전 기회를 더 많이 잡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리그 적응과 성장 속도는 이소희가 더 빠를 수도 있다. 

항상 최고라는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박지현에게는 좋은 라이벌이고, 자신을 발전시킬 자극제다.

WKBL에는 오랫동안 같은 포지션의 동년배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았다. 강아정(KB)과 김단비(신한은행), 박혜진(우리은행)과 박하나(삼성생명)가 스타일은 다르지만 비슷한 포지션의 신인드래프트 1-2순위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2011 신입선수 선발회를 통해 배출된 이승아(우리은행)와 홍아란(KB)이 가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지만, 두 선수 모두 일찍 WKBL을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비교적 어린 선수들 중에는 하나은행의 강이슬과 OK저축은행의 구슬이 친구이자 라이벌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역대급 재능’이라는 평가와 기대 속에 데뷔한 박지현이 겪는 현재의 상황은 당연한 성장과정이고 예정된 성장통이다. 농구는 물론 운동 외적으로도 상처받고 힘들 일이 많겠지만 모든 선배들이 걸었던 길이다. 박지현에게 쏠린 시선에는 이런 어려움도 당연히 넘어설 것이라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다. 

박지현은 물론, 오랜만에 등장한 포지션 라이벌 구도와 함께 어린 선수들의 성장 드라마가 WKBL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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