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상혁 기자] ①편에 이어..

농구선수에서 구단 프런트로

농구선수로서 나는 항상 자신이 있었다. 나보다 키가 크건 스피드가 빠르건 간에 맞대결에 자신이 있었다. 신장이 큰 선수한테는 리바운드 과정에서 볼을 뺏는다든지 빠른 선수라면 길목을 미리 차단한다든지 하는 연구와 고민을 많이 했다.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해서 만약 경기에서 지면 다음날 어떻게든 이기려고 악을 쓰고 발버둥 쳤다. 그때 후회됐던 게 너무 아무 것도 모르고 몸을 막 굴렸다. 그때는 스트레칭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였는데 충분한 사전 준비운동 같은 것 없이 막 점프하고 뛰다보니까 무릎과 발목이 안 좋아졌다. 

대학교 때 아파서 쉰 게 1년을 넘는다. 4학년 때는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지원서도 안 넣으려고 생각할 정도였다. 몸도 안 좋고 운동에 대한 미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드래프트 신청 전날에 안 넣겠다고 하니 당시 건대에 있던 김승환(현 전자랜드 수석코치) 코치가 ‘야! 임마, 여태까지 한 게 아깝다. (지원서) 넣기라도 해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넣었는데  트라이아웃 첫날에 내가 설렁설렁한 데다 학교 숙소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그래도 둘째 날은 마지막이니까 잘해보자라는 생각에 진짜 열심히 했다. 그때 신세기 빅스에 계시던 유재학 감독님이 좋게 보셔서 2라운드 4순위로 뽑혔다.

하지만 정작 프로 입단 후에 제대로 뛴 적은 없다. 당시 신세기에 가드가 없어 나름 기회를 받겠지 했는데 일단 외국선수를 가드인 캔드릭 브룩스를 선발했다. 여기에 강기중, 최명도 선배가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했다. 주전은커녕 식스맨으로 나설 가능성도 없어졌다. 1군에서 좀처럼 기회를 받지 못하고 팀내에서도 점점 밀려나다보니까 내 스스로도 포기를 하게 됐다. 이러던 중에 첫 시즌이 끝나자 구단에서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군 입대를 하게 됐다. 

당시 상무는 현주엽(현 LG 감독)과 강혁(현 LG 코치) 등 쟁쟁한 선배들이 비슷한 시기에 도전장을 냈기 때문에 합격하지 못했고 의무경찰로 군복무를 했다. 기동대에 배치돼 훈련을 많이 하다 보니 몸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됐다. 그리고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이 되니 구단명이 신세기에서 전자랜드로 바뀌어 있었다.

바뀐 구단에서는 선수와 프런트 중 하나를 택하라는 제안을 해왔다. 연봉은 같다는 조건이 붙었는데 이때 사실 좀 후회가 된다. 결과론적으로 나는 프런트를 택했는데 아직 한창인 때였으니 선수로서 한번 더 도전해보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프로농구단의 지원팀 사원으로 많은 걸 배웠고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까지도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크게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도자 되고파

구단 프런트로 그리고 선수단 매니저까지 1년 정도 한 뒤에 전자랜드 구단을 나왔다. 팀에 남으려면 남을 수 있었지만 내가 모시던 감독, 코치님이 팀을 나오는 데 나 혼자 남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농구에서 벗어나 쉬고 싶다는 생각에 부모님이 계신 충남 대천으로 내려가 아버지 사업을 1년 정도 도왔다. 

대천에서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아는 선배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온양여중 농구부의 코치를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농구선수와 구단 프런트는 했지만 지도자 생활은 한 번도 안 해봤었기 때문에 의외로 새로운 목표와 욕심이 생겼다.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갔는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배운 대로만 가르치다가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고 내 눈높이에 선수를 맞추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양여중에서 1년을 지내다 서울의 대진고 농구부로 갔는데 이곳에서는 6개월 만에 나왔고 다시 온양여고의 코치로 부임했다. 온양여고에 오게 되면서 나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선수들을 배신하지 말자였다. 온양여중에서 다른 곳에 있다가 다시 복귀했으니 나는 이 친구들을 한 번 배신한 셈이었다. 그래서 이 학교 있으면서 비슷한 조건이라면 절대 다른 데로 옮기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두 번째는 이 친구들을 데리고 우승을 한 번 하자였다. 그래서 온양여중을 끝으로 관둔 선수들도 찾아가고 주위의 좋은 중3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면서 선수 구성을 했다. 그래서 복귀한 해에 4강까지 진출했고 9년간 온양여고에 있으면서 준우승만 2번을 했다.   

이렇게 온양여고를 이끌고 있을 때 당시 KEB하나은행의 박종천 감독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시 박 감독님은 “면접 한 번 보러 오라”고 하셨고 서울로 찾아와 만나 뵙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박 감독님은 한 팀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왔던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하셨다. 한 팀에 오래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사건사고 없이 잘 있었다는 얘기고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 점수를 줬다고 하셨다. 사실 그전까지는 일면식도 없고 접점도 없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연락을 자주 드리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온양여고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내 딴에는 준우승이라는 성적도 내고 다른 아마추어 팀이 아닌 프로구단에 왔기 때문에 나름의 조건을 만족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서운함과 섭섭함을 뒤로 하고 나를 이해해줬기 때문에 하나은행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선수들과 연락을 하고 제자들이 WKBL 6개 구단에서 각자 선수와 매니저 등으로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나은행에 온 지 올해로 벌써 3년째가 된다. 온지 얼마 안 돼 팀 내부적으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코치로서 맡은 바 일에만 충실하며 버텨왔다. 지금은 수석코치로서 이환우 감독님과 선수단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 굉장히 어렵다. 중간 입장에서 양쪽의 말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대로 전달할 게 있고 약간은 희석해서 전달할 게 있는데 그걸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기준이 안 선다. 양쪽의 입장을 다 아니까 더 고민이 된다. 

감독님과는 처음에 수석코치와 코치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감독과 수석코치 사이가 됐다. 3년을 지내면서 이제는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원하시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됐다. 선수들이 농담 삼아 나를 ‘김환우 코치’라고 부를 정도인데 그 정도로 감독님 스타일에 동화된 것 같다.  

이환우 감독님과 있으면서 몰랐던 농구 이론은 물론이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있다. 그리고 당장의 목표는 일단 팀이 잘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감독님을 잘 보좌해서 감독님이 추구하려는 농구를 선수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게끔 옆에서 서포트하는 게 나의 할 일이다.  

또 지금 배우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해서 나만의 철학을 성립하고 싶다. 그리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물론 선수들은 나에게 벽을 두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안 들게끔 하고 싶다. 코트 위에서는 타협과 예외 없이 훈련을 하겠지만 코트 밖에서는 선수들이 나를 편하게 대할 수 있게끔 공감대 형성을 많이 할 것이다. 지금 선수들과 나이 차가 많게는 20살 가까이 나는데 삼촌이나 작은 아버지 같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이환우 하나은행 감독
김완수 코치와는 하나은행에 와서 처음 만났다. 온양여중고에서 10년 정도 있으면서 여자농구 돌아가는 것이나 어린 여자 선수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 팀에 젊은 선수들이 많은 편인데 김 코치가 선수들의 정신적인 면을 잘 케어해주기 때문에 선수들도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현재 팀의 수석코치로서 팀 훈련이나 경기 플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또 경기 중에 내가 못 보거나 놓친 부분에 대해 어드바이스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나 역시 김 코치의 조언을 듣고 경기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 지금처럼 팀을 위해 많이 공부하고 많은 것을 이야기해줬으면 한다.

백지은 하나은행 주장
어떻게 보면 강한 면도 있는데 섬세한 면이 많으시다. 웬만해서는 화를 잘 안 내시는데 정말 화나셨을 때는 무섭기도 하다. 그렇지만 선수들을 혼낸 다음에 미안해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여리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팀에서 혼자 고참이다 보니까 선수들을 관리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 그럴 때마다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신다. 선수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하시고 코치님이 편하니까 선수들도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다. 감독님과 선수들 중간에 계시다보니 많이 힘드실 것이라 생각된다. 선수들이 항상 투덜대는 것도 감독님이 아니라 코치님께 하는 게 많은데 힘드실 것 같아도 다 들어주고 수용해주시려고 한다. 지금처럼 계속 도와주시고 선수들을 많이 아껴주시고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주셨으면 좋겠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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