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원석연 기자] ‘미스터 클러치(Mr. Clutch)’. LA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캐스터 칙 헌은 과거 클러치 타임을 지배했던 제리 웨스트에게 '미스터 클러치'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그리고 웨스트가 은퇴하고 44년이 흐른 지금. 2010년대 NBA를 대표하는 ‘미스터 클러치’는 카이리 어빙이다. 그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다. MVP는커녕 올-NBA 수상 경력도 2015년 써드팀이 전부다. 하지만 승부가 팽팽해질수록, 그리고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는 시간이 임박할수록 어빙의 진가가 나타난다. 마지막 포제션, 어떻게든 한 점이 필요한 클러치 타임에서 어빙은 그 어떤 MVP도 부럽지 않은 슈퍼스타가 된다.

선수의 이야기를 이름으로 풀어보는 시간, <알파벳 스토리>의 세 번째 주인공은 카이리 어빙이다.

*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1월호에 실렸습니다.

 

K : Kid ‘아이’

클리블랜드 시절, 르브론 제임스는 어빙을 ‘키드’라고 불렀다. 르브론에게는 애정 어린 호칭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빙 본인은 이 별명을 아주 싫어했다. 

어빙은 타고난 슈퍼스타다. 고교 시절 2년 만에 1,000득점을 올리며 주목받기 시작해 미국 대학농구의 대표적인 명문인 듀크대에 진학, 대학농구를 1년 만에 평정한 뒤 2011년 전체 1순위에 지명됐다. NBA 무대에서도 데뷔 시즌 18.5득점을 기록하며 120표 중 117표를 휩쓸며 가뿐히 신인왕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2016년 파이널 7차전에서는 스테픈 커리의 머리 위로 클리블랜드의 역사상 첫 우승을 확정하는 위닝샷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7경기에 모두 출전해 경기당 27.1득점으로 양 팀을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 평균 득점(1위 르브론)에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위닝샷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MVP 투표에서 어빙에게 표를 던진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클리블랜드의 ‘홈보이’ 르브론에게 돌아갔다. 훗날 보스턴으로 이적 후 어빙은 자신이 클리블랜드를 떠난 이유로 사람들은 모두 ‘킹’ 르브론에게 관심을 쏟을 뿐 자신은 그저 ‘키드’ 취급받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Y : “Young blood! Don't Reach!” “애송이! 손대지마!” 

26살의 어빙은 이미 성공한 농구선수이자, 성공한 사업가이며, 성공한 ‘배우’다. 어빙은 올여름 개봉했던 영화 ‘엉클 드류’의 주연 배우로 출연해 무려 5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거머쥐었다.

어빙이 출연한 ‘엉클 드류’ 시리즈는 과거 음료 회사 ‘펩시’의 바이럴 마케팅으로 시작됐다. 백발의 노인으로 분장한 어빙이 길거리 농구에서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몰래카메라 형식의 이 5분 남짓한 시리즈는 의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결국 영화화까지 되어 올해 여름 개봉됐다. 

영화의 인기 역시 대단했다. 박스오피스 데이터 업체 '더 넘버스'에 따르면 엉클 드류는 극장가에서만 무려 4천 40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DVD 등의 부대 수입까지 합치면 대략 4천 800만 달러(약 540억 원)의 이익을 남겼다. 

백발의 엉클 드류가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젊은이를 따돌리며 외치는 “애송이! 손대지마!(Young blood! Don't Reach!)”라는 대사는 엉클 드류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다.
 

R : Rate ‘비율’
 
지난해 여름, 어빙의 트레이드 요청은 리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73승의 골든스테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팀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도 놀라울뿐더러, 파이널 7차전 이후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어빙과 르브론이 사실 처음부터 불편한 관계였다는 뉴스는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어빙은 르브론 때문에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했다. 르브론은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포워드’로 여타 스몰포워드와 달리 포인트가드처럼 탑에서 공을 쥐고 경기를 조율한다. 자신이 경기에서 더 많이 공을 쥐고,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하기를 바랐던 어빙은 결국 클리블랜드를 떠나 보스턴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놀라운 기록이 있다. 어빙은 데뷔 후 르브론과 함께 뛴 183경기에서 28%의 공 점유율(USG%)을 기록하면서 경기당 22.1득점을 올렸다. 그렇다면 르브론 없는 경기는 어땠을까. 어빙은 홀로 뛴 285경기에서 29%의 공 점유율과 22.0득점을 기록했다. 소유율은 고작 1%밖에 차이나지 않았으며 득점은 오히려 르브론과 함께 뛸 때 더 높았다. 

183경기 28% USG% 22.1 PTS 3.1 REB 5.3 AST 46% FG% WITH 르브론 
285경기 29% USG% 22.0 PTS 3.8 REB 5.7 AST 46% FG% WITHOUT 르브론

 

I : Important possession ‘중요한 포제션’

현지 시간 2016년 6월 19일. 골든스테이트의 홈구장 오라클 아레나에서 열린 파이널 7차전은 경기 종료까지 단 1분 9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점수는 89-89로 동률.

르브론에게 인바운드 패스를 건네받은 어빙은 '1분 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우승구로 기념될' 바로 그 공을 천천히 드리블하며 오른쪽 45도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후 J.R. 스미스의 스크린을 받아 수비수를 클레이 탐슨에서 스테픈 커리로 스위치. 동료들은 어빙의 아이솔레이션을 위해 모두 길을 열었다. 

남은 시간은 53초. 이번 포제션은 어쩌면 어빙의, 아니 클리블랜드의 시즌 마지막 포제션이 될지도 모른다. 공격을 위해 허리를 굽힌 어빙은 자신의 앞에 있는 만장일치 MVP를 응시하며 정확히 6차례 공을 튕겼다. 이후 오른쪽으로 잠시 멈칫하고 나서 한 걸음 물러나 커리의 머리 위로 슛.

클리블랜드는 그렇게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댄 길버트 클리블랜드 구단주는 훗날 이 장면을 두고 “한평생 가장 중요한 포제션이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어빙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빙은 올여름 보스턴의 저명한 기자인 빌 시몬스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이날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차분하게 생각했어요. 일단 슛을 던져보고 ‘어떻게 되든 인정해야지’라고 생각했죠. 그 슛은 내가 16살 때부터 연습한 슛이었거든요. 오른쪽으로 헤지테이션 무브 후 스텝백으로 수비수와 공간을 만들어 낸 뒤 슛을 하는거죠. 사실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졌는데 각도가 좋았어요. 결국 들어갔죠.”

“그때가 당신 커리어의 최고의 순간이었나요?” 시몬스가 어빙에게 물었다. “아니요” 어빙이 답했다. “제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어요.“

 

E : Earth ‘지구’

지난 12일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앵커브리핑을 통해 어빙을 언급했다. 손 앵커는 “미국 NBA 스타 카이리 어빙. ‘지구는 납작하다. 눈앞에 놓여있는 진실이다’ 이것은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전파를 타고 나간 순간 당장 중·고등학교에서 사달이 났습니다”라며 어빙의 발언이 불러일으킨 파장을 예로 들어 가짜 뉴스의 위험성에 대해 역설했다. 

손 앵커의 말대로, 어빙은 한 때 정말로 ‘지구 평면설’을 주장했다. 때는 지난해 2월, 어빙은 클리블랜드 구단 팟캐스트에 출연해 다짜고짜 “지구는 납작하다. 눈 앞에 놓여있는 진실이다”라며 다소 황당한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어빙의 발언은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됐다. 어빙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과학 교사들을 음모론자로 취급한 것. 과학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동영상까지 보여줬으나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음모론자로 생각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한술 더 떠 골든스테이트의 드레이먼드 그린 역시 “나 또한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다. 지구가 둥글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 있을까”라며 맞장구쳤다.

파장이 커지자 어빙은 “사람들이 배운 것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뭐든 스스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며 “지구는 당연히 둥글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린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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