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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R] 가족을 위해 택한 한국, 가장 큰 목표는 팀의 PO 진출 LG 조쉬 그레이 ①

[루키=박상혁 기자] 창원 LG의 단신 외국선수인 조쉬 그레이는 입단이 결정된 직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던 선수다. 전주 KCC의 마퀴스 티그, 서울 삼성의 글렌 코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려한 테크니션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 실제로 그는 시즌 개막과 동시에 LG의 주전가드로 활약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그의 소속팀인 LG는 2018년 11월 14일 현재까지 13경기를 치러 8승 5패를 기록하며 서울 SK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지난 시즌 6강 플레이오프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세. 특히 승부처에서 팀이 필요로 할 때 날카로운 드라이브 인으로 수비를 벗겨내고 득점을 올리는 장면은 올 시즌 LG의 하이라이트 필름이 된지 오래다. 이렇게 화려한 플레이로 송골매 군단의 비상을 이끌고 있는 그레이를 <루키 더 바스켓>이 만났다.(모든 기록은 2018년 11월 14일 기준)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그레이와의 만남이 이뤄진 날은 리그가 한창인 11월 14일 저녁이었다. 오후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를 만난 곳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LG 챔피언스파크. 전날 KGC인삼공사와 혈전을 벌인 뒤 아쉽게 패해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그는 모든 질문에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답변해주었다. 훈련 후 귀한 휴식시간을 내준 그레이 선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어린 시절의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준 농구 

그레이는 1993년 9월 9일,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다. 홀어머니 아래 성장했는데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았다. 여기에 그가 16살이던 해에는 어머니마저 여의면서 더더욱 어려움에 직면했다. 어머니를 잃고 우울증이 생겼을 정도였고 생활에서도 엇나갔다.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고 경찰에 체포된 것도 여러 차례였다. 그가 고등학교만 3군데를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그의 유일한 위안거리는 농구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취미 활동에 불과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단순히 취미를 넘어 더욱 더 몰입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가정환경이 안 좋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우울증이 생겼는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농구였다. 농구를 하면 할수록 애정이 생겼고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잘하게 됐다. 농구로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레이의 말이다. 

그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코트에 쏟아 부었다. 농구선수치고 작은 신장이었지만 순발력과 스피드라는 타고난 재능도 있었다. 첫 학교인 워싱턴 메리언 마그넷고교에서는 2학년 때에 팀을 2010 루이지애나 클래스 4A 세미 파이널까지 이끌었다. 이어 두 번째 학교인 크리스찬 라이프 센터 아카데미에서는 경기당 평균 20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마지막 휘슬리 고교에서는 24점 6어시스트 3스틸의 평균 기록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모두 스타팅으로 나섰고 팀의 리더로서 역할을 했다.  

고교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세 군데나 거쳤다. 시작은 텍사스 공대였다. 여기서 그는 신입생 때 이미 경기당 평균 26분 7초를 뛰는 선수였다. 기록도 평균 9.3점 3.2어시스트 2.5스틸로 나쁘지 않았다. 텍사스 공대에서 1년을 보낸 그는 2학년 때 오뎃사 칼리지로 전학했다. 여기서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경기당 평균 34.7점 5.9어시스트 2.7스틸을 기록한다.

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지금까지 인생 경기로 꼽을 만한 경기가 이때 나왔다. 상대가 어떤 팀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61득점을 올린 적이 있었다. 매 경기가 소중하지만 굳이 인생 경기를 꼽는다면 이때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했다.

이어 3학년이 되는 해에는 루이지애나 주립대학(LSU)로 적을 옮긴다. 이곳에서는 평균 기록은 7.1점 2.3리바운드 3.8어시스트로 다소 줄었지만 쟁쟁한 멤버들과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현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활약 중인 벤 시몬스가 당시 그레이의 팀 메이트다. 

대학 때까지 승승장구하던 그지만 졸업 후에는 높은 프로의 벽에 부딪쳐야 했다. 2016 NBA 신인 드래프트에 나섰지만 그를 선택한 구단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올랜도 매직의 서머리그 캠프에 참가하며 NBA 진출의 꿈을 불태웠다. 

계속적으로 하부리그의 문을 두드리던 그는 그토록 고대하던 NBA 무대를 밟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댈러스 매버릭스와 경기를 앞두던 피닉스 선즈에서 당시 소속이던 이사야 가나안이 부상으로 빠지게 된 것. 이에 피닉스 구단은 하부팀인 노던 애리조나 선즈 소속이던 그레이와 10일 계약을 맺고 그를 콜업시켰다. 이것이 올해 2월 1일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댈러스 전에서는 나서지 못했고 다음 경기인 유타 재즈 전에 8분간 출전해 7점 1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로서는 꿈만 같던 NBA 무대를 처음 밟은 경기다. 그리고 같은 해 2월 6일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자신의 NBA 최고 기록인 9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한국행

꿈만 같던 NBA 무대를 밟은 것은 좋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그는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약혼자가 있었고 둘 사이에 케이슨이라는 아들도 생겼기 때문이다. 농구선수로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안정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이 먼저였다. 

“(KBL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족이었다. 약혼자가 있고 또 아들도 생기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수입이 필요했다. 만약 혼자였으면 아직도 NBA 트레이닝캠프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NBA 트레이닝캠프는 물론이고, G리그 구단들에서도 오퍼가 많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장된 게 없어서 가족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농구나 KBL에 전혀 몰랐던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과거 오리온에서 뛰었던 조 잭슨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농구, 그리고 KBL만의 스타일, 외국선수에 대한 처우 등을 듣고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사실 미국을 벗어나 해외에서 살고 해외리그를 뛰는 것은 처음이다. KBL의 경우는 첫 번째는 미국과는 다른 공인구에 적응을, 두 번째는 심판들의 판정에도 적응을 해야 할 것 같다. 미국과는 조금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익혀가는 중이다. 리그 외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숙소나 주변 환경도 좋고 LG 구단에서 많이 신경을 써주고 잘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렇게 가족과 같이 나와서 해외에서 농구를 할 수 있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기가 없거나 쉬는 말이면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약혼자가 집에서 해주는 식사를 하고 아들인 케이슨을 돌보는 게 유일한 일. 케이슨은 LG 선수들 사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특히 현주엽 감독의 애정이 남다르다. 인터뷰가 이뤄진 날도 그레이가 가족들과 함께 체육관에 오자 비디오 미팅 룸에서 바로 나와 케이슨을 번쩍 안아들고 놀아줬다. 워낙 덩치가 큰 현 감독이 애를 안다 보니 원체 작은 아기가 더 작아 보이기도.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께서 케이슨을 워낙 예뻐하신다”며 귀띔했다.

그레이는 한국 음식도 잘 먹는 편이다. 외국선수치고는 드물게 국물 종류를 좋아하며 매운 것도 잘 먹는다고. 야채 라면을 좋아하다보니 젓가락질도 조금 한다는 통역의 설명이 이어졌다. 구단과는 별개로 에이전트가 간식을 챙겨주는 데 찐빵이나 단팥빵 같은 것도 잘 먹는다.  

시간이 될 때 밖에 나들이를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No!'라고 대답했다. 약혼자가 답답해하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그는 “나는 쉬는 날에도 체육관에서 슈팅을 하거나 아니면 집에서 주로 휴식을 취한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집에만 있었다. 집돌이 수준인데 물론 약혼자는 나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지만 나가지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듯 남편 노릇은 잘 못하는 편이지만 아빠 노릇은 많이 한다. 동생만 3명이 있던 집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영화도 보고 낚시도 가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여기에 실제로 아들이 생기면서부터는 틈나는 대로 아들과 놀아주려고 하고 있다. 케이슨 역시 아빠를 따라다니길 좋아해서 훈련 때도 체육관에 나와서 아빠의 훈련 모습을 보고 웃거나 박수를 치곤 한다.  

이런 그레이의 농구 외 취미는 낚시였다. KBL을 거친 외국선수 중에 낚시라는 취미를 가진 선수는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어쨌든 그의 취미는 낚시다. 여기에 그냥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오랜 내공을 지닌 고수에 속한다. 

“13~4살 때 아버지와 처음 갔다. 그 이후로 낚시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하는 낚시를 즐겼다. 개인 낚시도구도 있는데 한국에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곳에 와서 낚시터에 못 가봤는데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다.” 

KBL에도 감독과 선수들을 포함해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 시즌이 끝나면 농구인 낚시대회가 열렸다는 말을 하자 “Oh, Great!"을 외치며 지금도 하냐고 물어왔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는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이 영락없는 미국 강태공이었다.   

“내가 잡았던 생선 중에 가장 큰 것은 고어 피쉬라고 하는데 길이가 약 6피트(약 183cm) 정도 되는 물고기였다. 입이 좀 길고 악어 껍질을 갖고 있는데 워낙 커서 두꺼운 낚시줄로 낚은 경험이 있다.” 

기자가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

②편에서 계속... 

사진 = 한규빈 기자, KBL 제공 

박상혁 기자  jumper@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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