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키 = 이승기] 랜디 포이(30, 193cm)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덴버 너게츠는 4일(이하 한국시간) 콜로라도 덴버 펩시 센터에서 열린 2013-14시즌 NBA 정규리그 경기에서 LA 클리퍼스에 116-115 신승했다. 포이는 경기 종료와 함께 버저비터 역전 3점슛을 터뜨리며 영웅이 됐다.
포이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얼떨떨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위닝샷 성공 후) 동료들이 나를 깔아뭉갰는데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믿기지가 않는다"고 전하며 방긋 웃어 보였다.
포이는 이번 시즌 45경기 중 43경기에 선발로 나서 평균 11.3점, 2.6리바운드, 2.8어시스트, 3점슛 1.9개(36.3%)를 기록 중인 평범한 슈팅가드다. 지난 여름 3년간 9백만 달러에 계약하며 덴버에 왔다. 2006년 데뷔 이후 벌써 다섯 번째 팀이다.
포이는 대학 시절 NCAA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4학년 시절 빌라노바 대학을 3월의 광란 토너먼트 '엘리트 에잇(Elite Eight, 8강)'까지 이끌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드래프트 전체 7순위로 NBA에 입성했다. 드래프트 당일 브랜든 로이와 유니폼을 맞바꿔입으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 입단했다.
포이는 2006년 여름 섬머리그에서 MVP를 차지하며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덕분에 "제2의 드웨인 웨이드"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하지만 미네소타에서 보낸 첫 세 시즌은 실망스러웠다. 신인 시절에는 올-NBA 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되기는 했으나 신인상을 차지한 로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두 번째 시즌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세 번째 시즌에는 평균 16.3점, 3.1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올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그러나 애매한 포지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미네소타는 당초 포이를 포인트가드로 키울 심산이었다. 실제 신장이 약 189cm에 불과한 포이를 슈팅가드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당시 미네소타의 감독이었던 랜디 위트먼(현 워싱턴 위저즈 감독)은 "포이에게 전권을 줄 생각"이라며 포이에게 많은 자율권을 허락했다. 하지만 성과는 미비했다. 포이는 돌파 후 마무리에 약점을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경기운영 또한 미숙했다.
결국 미네소타는 포이를 워싱턴으로 트레이드하며 결별을 고했다. 이후 포이는 워싱턴과 LA 클리퍼스, 유타 재즈로 옮겨다니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포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힘든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포이는 당초 에이스감으로 기대받았다. 그러나 포이의 그릇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잦은 부상으로 인해 운동능력이 많이 저하되었다. 허술한 마무리 실력 또한 문제였다. 결국 포이는 캐치-앤-슈터로 보직을 변경했다. 주도적인 선수에서 롤 플레이어로 역할을 바꾸고 나니 오히려 포이가 빛이 나기 시작했다.
포이의 통산 야투 성공률은 40.9%에 불과하다. 그러나 통산 85.5%의 자유투 성공률을 올릴 정도로 기본적인 슛 감각은 좋은 선수다. 또, 통산 37.5%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 중인 훌륭한 외곽 자원이다. 스스로 만들어 던지는 상황이 아니라 받아먹는 것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덴버에서 포이의 출전 시간은 평균 27분 여. 포이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지난 1월 8일에는 무려 7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1월 30일에는 혼자 33점, 7어시스트를 올렸으며, 2월 1일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타이 로슨을 대신하여 포인트가드로 출전, 10점, 16어시스트를 기록한 바 있다.
데뷔 당시 받았던 기대와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포이. 하지만 롤 플레이어로서의 포이는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에이스도 아니고 주목을 받는 선수도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갈 포이를 지켜보도록 하자.
사진 제공 = NBA 미디어 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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