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염용근 기자] 작년 12월 중순,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5연패를 당하며 서부 컨퍼런스 13위까지 추락했을 당시 현지 언론들은 이번 시즌은 힘들지 않겠냐는 비관적인 전망들을 쏟아냈다. 프런트와의 마찰로 재계약에 실패한 라이오넬 홀린스 감독의 저주, 숫자 세상에서 벗어나 현실 농구와 직면한 존 홀린져 부사장의 실책, 스몰 마켓(Small Market) 구단의 한계 등 저조한 성적과 관련한 입방아들이 속출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2014년에 접어들어 치른 9경기에서는 7승 2패를 기록, 기어이 5할 승률 고지를 수복했다. 또한 최근 5연승 상승세를 바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서부 8위 피닉스 선즈와의 승차를 2경기 차이로 바짝 좁혔다. 응원 팀의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조심스럽게 2014년 드래프트를 대비한 탱킹(tanking) 얘기를 꺼냈던 팬들 역시 다시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멤피스가 극적인 부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부활한 질식 수비, 적재적소의 선수 영입, 데이브 예거 신임 감독의 리그 적응 등 여러 가지 항목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즐리(Grizzly) 곰 군단의 1월 대반격을 집중 조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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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질식 수비

지난 시즌 동부 컨퍼런스를 대표하는 수비 팀은 인디애나 페이서스, 서부의 간판은 멤피스였다. 백코트 듀오인 마이클 콘리와 토니 앨런부터 시작해 지난 시즌 ‘올해의 수비수’ 선정에 빛나는 인사이드의 마크 가솔까지 홀린스 감독의 진두지휘 하에 매 경기 평균 89.3실점만 허용하는 짠물 수비 팀으로 명성을 떨쳤다. 다소 부족한 공격력으로 인해 화끈하게 승리하는 팀은 아닐지언정 진흙탕 승부 설계를 통해 쉽게 패배하지 않는 팀이었다.
 
멤피스의 수비력 변화 *( )안은 리그 순위
2012-13시즌
평균 89.3실점(1위)  상대 야투 성공률 43.5%(3위)  실책 유발 14.7개(6위)
스틸 8.6개(4위)  리바운드 마진 +3.6개(2위)  디펜시브 레이팅 100.3(2위)
2013-14시즌
평균 96.6실점(4위)  상대 야투 성공률 45.6%(19위)  실책 유발 13.5개(24위)
스틸 7.5개(16위)  리바운드 마진 +3.0개(6위)  디펜시브 레이팅 106.3(16위)
 
한 눈에 봐도 이번 시즌 대부분의 수비 지표가 크게 하락했다. 특히 최대한 상대가 공격 제한 시간에 쫓겨 슛을 시도하게 만드는 끈질긴 수비력이 실종되면서 야투 허용이 대폭 증가했다. 앨런과 가솔의 부상으로 인해 내외곽 수비의 핵심을 잃은 것도 수비 지표 하락의 주범이었다. 12월까지의 멤피스는 어렵게 승리하고 쉽게 패배하는 전형적인 약팀이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7승 2패의 호성적을 자랑하고 있는 올해 1월 수비 지표들을 살펴보자.
 
평균 94.1실점  상대 야투 성공률 43.8%  실책 유발 13.9개
스틸 7.2개  리바운드 마진 +2.4개  득실점 마진 +5.8점
 
작년 시즌에는 못 미치지만 확실히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가솔이 부상에서 복귀한 최근 3경기에서는 상대를 모두 91점 이하로 묶었다. 여기에는 폭주 중인 케빈 듀란트를 보유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최근 공격 삼각 편대를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던 새크라멘토 킹스가 포함되었다. 진흙탕 승부를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멤피스 특유의 경기 스타일이 되살아난 셈이다.
 
향후 전망도 나쁘지 않다. 가솔이 경기를 치를수록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있는 가운데 앨런이 곧 부상에서 복귀한다. 새롭게 영입된 제임스 존슨과 코트니 리도 팀 수비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으로 세월무상을 실감하게 했던 베테랑 테이션 프린스가 1월 들어 조금씩 기량을 회복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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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팀 기둥들

멤피스가 최악의 위기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최대 원동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팀의 양대 기둥 자크 랜돌프와 마이클 콘리의 존재 덕분이었다.
차츰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는 1981년생 랜돌프는 더 이상 경기당 평균 20득점-10리바운드 이상 기록할 수 있는 압도적인 빅맨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리그에서 실종되다시피 한 매일 밤 림 아래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90년대 스타일’ 빅맨으로서의 전투력만큼은 여전하다. 평균 3.0개의 공격 리바운드는 전체 12위, 평균 리바운드는 10.4개로 9위를 달리고 있으며 이번 시즌 단 9명밖에 없는 평균 16득점/10리바운드 이상 그룹에 포함된 상태다.
 
또한 패스 능력이 대폭 개선되었다. 이번 시즌 평균 2.6개의 어시스트로 파워 포워드 부분 1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팀이 가장 힘들었던 12월의 경우 무려 3.5개의 어시스트를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물론 과거 볼이 투입되면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는 ‘블랙홀’ 시절에도 평균 2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현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정말 자신이 슛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패스했다면 이번 시즌의 경우 팀의 패싱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정도로 시야가 좋아졌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처럼 리그 빅맨 중 최고 패싱 능력을 보유한 가솔과 장기간 함께 하면서 이타적인 마인드가 배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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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리는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인트 가드로 성장했다. 지난 시즌 활약 역시 우수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득점력 자체가 폭발하면서 경기당 평균 18.2득점 6.5어시스트 1.6스틸 야투 성공률 45.9%의 올스타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워낙 팀 상황이 풍전등화다보니 본인이 직접 나서 공격을 이끈 것이다. 2경기 결장을 유발한 허벅지 부상 역시 팀을 위해 너무 무리한 안타까운 결과였다. 그리고 20득점 이상 경기도 벌써 14번이나 기록했다. 지난 시즌의 경우 80경기에서 17번에 불과했다.
 
1월 성적은 더욱 놀랍다. 평균 21.1득점 7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48.9%에 2.1개의 3점슛 성공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다. 멤피스 천적으로 자리 잡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도 비록 패배했지만 30득점 6리바운드 5어시스트 3스틸로 디팬딩 서부 챔피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3.27에 달하는 경기당 어시스트/실책 비율이다. 이번 시즌 평균 30분 이상 출전해 18득점 7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45% 이상, 어시스트/실책 비율 3.2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크리스 폴(L.A. 클리퍼스)과 그가 유이하다. 또한 콘리는 폴에 버금가는 수비력(어쩌면 앞서는)을 보유한 일선 수비수다. 리그에서 가장 밸런스가 우수한 포인트 가드를 꼽는다면 2인자는 단연 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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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풍파가 단련시킨 감독과 선수단

시즌 초반 예거 신임 감독은 저조한 팀 성적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승부처에서 초초한 얼굴로 코트를 살필 뿐 해결책 도출에 실패하면서 전임 홀린스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을 노출했다.
 
반면 12월 후반부터는 확실하게 달라진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적재적소의 선수기용과 작전 타임, 접전 승부에서의 승기를 잡는 전술 구사를 통해 다시 멤피스를 위닝 팀으로 변모시켰다. 이는 감독직 적응에 시간이 걸렸을 뿐, 멤피스에서 7년간 어시스턴트 코치 생활을 하며 누적된 경험이 마침내 실전에 녹아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식스맨들의 성장도 주목해야 한다. 멤피스는 지난 시즌 벤치 전력 열세로 인해 늘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당한 이번 시즌 성적 추락으로 연결되었다.
 
핵심 식스맨들의 성적 변화
에드 데이비스
11월 평균 15.4분 출전 5.1득점 3.9리바운드 0.9블록슛 FG 50.0%
12월 평균 20.1분 출전 9.7득점 3.7리바운드 1.0블록슛 FG 60.8%
존 루어
11월 평균 9.8분 출전 3.0득점 1.5리바운드 0.2어시스트 FG 35.0%
12월 평균 22.5분 출전 11.6득점 5.5리바운드 0.9어시스트 FG 52.8%
코스타 쿠포스
11월 평균 21.1분 출전 6.4득점 6.3리바운드 1.3블록슛 FG 45.3%
12월 평균 23.4분 출전 8.7득점 8.4리바운드 0.9블록슛 FG 44.1%
 
결과론적으로 가솔의 장기 부상 공백은 대체 자원들의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었다. 쿠포스의 경우 역할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성적에 손해를 봤지만 대신 팀에서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데이비스와 루어는 착실하게 성장했다. 거친 인사이드에서의 생존법을 배우고 있는 데이비스, 팀 전술 활용 폭을 넓힌 루어는 가솔 복귀 후에도 충분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선수단 모두가 어려움을 공유한 끝에 더욱 강해진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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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홀린져의 승리?

멤피스는 지난 시즌 구단주가 바뀌면서 프런트 역시 2차 기록에 기반을 둔 효율적인 농구를 추구하는 인사들로 대폭 교체되었다.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에서 2차 기록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던 홀린져를 구단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표면적으로 홀린져는 팀을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성장시킨 일등공신인 홀린스 감독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홀린스가 신뢰했던 루디 게이와 대럴 아서를 트레이드로 처분하면서 자신의 구단 운영 노선을 명확하게 표출했다. 새롭게 영입된 루어, 데이비스, 오스틴 데이, 쿠포스 등은 모두 그의 입맛에 맞는 저비용/고효율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파워 싸움이 발생했고, 결국 홀린스는 프랜차이즈 최초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팀과 재계약에 실패한다. 구단 역사상 최다승 감독이자 위대한 리더의 씁쓸한 퇴장이었다.
 
그렇다면 올드 스쿨(Old School)을 상징하는 홀린스를 내친 홀린져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까지만 하더라도 암울한 상황이었던 반면 팀이 대반격을 개시한 1월부터 성공 가능성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우선 게이 트레이드를 통해 팀의 미래 선수단 연봉 구조를 개선시킨 부분은 마땅히 박수 받아야 할 대목이다. 멤피스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스몰 마켓을 보유하고 있다.
 
루어와 데이비스가 가능성을 선보인 가운데 시즌 중 전력 보강을 위해 긴급 영입한 제임스 존슨과 코트리 리 역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는 점도 홀린져에게 긍정적인 신호다. 존슨은 프린스에게서 사라진 에너지를 코트에 주입시켰고, 리의 경우 앨런의 부상 공백을 무난하게 메워 주고 있다. 앨런이 3번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향후 콘리-리-앨런-랜돌프-가솔로 구성된 플레이오프 라인업을 구성할 수도 있다. 내년 시즌 계약이 만료되는 프린스가 고액 연봉 잉여 자원으로 전락할 위기지만 홀린져라면 창의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홀린져가 2차 기록에 기반을 둔 인물의 최초 등장은 아니다. 다만 그가 워낙 해당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존재였다 보니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뿐이다. 휴스턴 로케츠의 대럴 모리 단장, 오클라호마시티의 샘 프레스티 단장 등 최근 리그에서 각광받고 있는 구단 오피니언 리더들 중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 인물들이 꽤 존재한다. 바야흐로 농구 종목에서도 2차 기록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은 지금부터
현 시점에서 멤피스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인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거친 서부 컨퍼런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1월 후반~2월 초반 일정만 살펴봐도 휴스턴전 2경기,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져스전 1경기, 오클라호마시티전 1경기, 댈러스 매버릭스전 1경기 등 상승세 유지 여부의 분수령이 될 강팀들과의 경기가 연속해서 기다리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더 이상 그들이 같은 지구 팀들을 상대로 9전 전패를 당했던 동네북이 아니라는 점이다.(멤피스가 소속된 사우스 웨스트 지구는 서부 컨퍼런스 내에서도 가장 격전이 펼쳐지는 무대다) 지난 시즌의 멤피스는 5할 승률 이상 팀들을 상대로 28승 19패, 같은 지구 팀들을 상대로는 10승 6패를 기록한 강호였다. 만약 멤피스의 1월 대반격이 일시적인 상승세가 아닌 완벽한 부활이라면 서부의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제공 = ⓒ gettyimages/멀티비츠, NBA 미디어 센트럴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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