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김은혜 칼럼니스트] 신인들이 사라졌다. 올 시즌 WKBL을 보면 신인상 후보 자격을 갖고 있는 2년차 이내의 신인들의 활약을 보기가 어렵다.

올해 드래프트가 예년보다 늦은 1월로 결정된 것도 이유겠지만 지난해 입단한 선수들이 각 팀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도 이유다. 

작년 신입선수선발회에서 선발된 14명의 선수 중 올 시즌 경기를 뛴 선수는 김진희(우리은행), 임주리(KB), 김나연, 최정민, 황미우(이상 삼성생명) 등 5명. 하지만 가비지타임이 아닌 상황에 출전한 선수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 이들 중 감독이 “기회를 주겠다”고 직접 거론했던 유일한 선수인 김진희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신인상 후보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뉴페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목에서 쓰는 말처럼 ‘중고신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유망주로 잠재력을 인정받던 선수들이 올 시즌에는 확실히 눈도장을 받고 있다. 

신인상 듀오였지만 오랫동안 부상에 신음했던 하나은행의 김이슬과 신지현은 올 시즌 팀의 주전 1번 자리를 양분하며 부활을 알리고 있다. 벤치 멤버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신한은행의 김아름과 KB의 김민정은 올 시즌 주전 자리를 넘보는 선수로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우리은행도 최은실이 주전 자리에 연착륙한 가운데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식스맨 자리에서 김소니아와 박다정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삼성생명은 양인영, 윤예빈, 이주연 등 유망주 군단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고, 리빌딩을 피할 수 없게 된 OK저축은행에서는 안혜지의 역할은 물론, 최근에는 진안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이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명의 선수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김소니아(우리은행)
지난 시즌까지 기록 : 9G 5:05 2.1점 1.4리바운드 0.4어시스트 
이번 시즌 : 15G 20:07 7.1점 5.5리바운드 1.0어시스트

박혜진, 임영희, 김정은을 보유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이들과 너무 차이가 난다는 우려를 안고 있었던 우리은행은 최은실이 주전으로 제 몫을 해주고 있고, 지난 시즌에는 팀에 없었던 김소니아와 박다정이 벤치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비교적 단신(공식 프로필에는 178cm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176cm정도로 알고 있다)인 김소니아는 힘과 탄력을 앞세워 우리은행의 약점이 된 높이의 고민을 덜어주며 확실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까지 우리은행에서 9경기를 뛰었던 김소니아는 2013-14시즌 퓨처스리그에서 6경기에 나서 평균 25분 50초를 뛰며 10.8점 11.2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차세대 3-4번 자리를 맡을 선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확실한 주전들이 자리잡고 있던 우리은행에서는 1군 경기에 9경기밖에 나서지 못했고 2013-14시즌 이후 WKBL을 떠나있었다. 

이후 터키와 폴란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루마니아에서 3X3농구 국가대표를 뛴 것이 더 대표적인 커리어로 알려진 김소니아는 5년만의 WKBL 복귀였지만, 복귀전에서 9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등 빠른 적응을 보이고 있다. 

개인적인 노력과 기량의 강점도 있지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기가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하게 한 팀 역할도 김소니아의 빠른 적응을 도운 것 같다.

김소니아에게 주어진 임무는 리바운드와 궂은 일, 그리고 주요 선수들에게 수비가 쏠려 오픈 찬스가 났을 때 자신 있게 슛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정할 수 있다. 이것은 김소니아와 박다정, 어쩌면 외국인 선수인 크리스탈 토마스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힘이 좋고 탄력과 투지를 앞세워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리바운드 가담을 펼치는 것은 누가 봐도 흡족한 모습. 수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 볼 때 김소니아의 수비가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5년 만의 팀 복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도 나쁘지 않다.

공격도 마찬가지. 득점 기복이 있고 경기당 5.5점 정도를 더하고 있어 공격 면에서 가시적인 역할을 확실히 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국내 3인방의 위력이 확실한 우리은행임을 감안할 때 상대 수비를 끌어당기며 찬스에서 슛을 시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너지효과를 만들 수 있다. 

인사이드를 책임지기에는 작은 신장, 여전히 오른쪽 돌파 비중이 현저히 높고, 슛 또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김소니아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분위기를 바꾸는 확실한 변속기어다. 단순히 리바운드 1개를 더하는 게 아니라 흐름을 가져오고 떨어지는 팀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활력소다. 

우리은행 자체도 김소니아의 몸 상태에 맞춰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김소니아에게 바라는 점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임영희의 은퇴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은행이기에 김소니아에게 주어질 옵션은 더 다양해질 것이다.

지난 21일 삼성생명 전 당시 박혜진이 발목이 좋지 않아 교체 아웃되자 볼을 몰고 넘어오는 역할을 김소니아가 담당했다. 김소니아를 막는 상대 선수가 대부분 4번 포지션이고, 이런 선수들이 수비에서 적극적으로 압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김소니아가 이 역할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조금씩 역할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안혜지(OK저축은행)
지난 시즌까지 기록 : 71G 9:09 1.6점 1.1리바운드 1.4어시스트 3P 17.0% 
이번 시즌 : 15G 32:34 6.5점 3.1리바운드 6.1어시스트 3P 29.9%

이전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올 시즌 가장 괄목할 성장을 보인 선수가 바로 안혜지가 아닐까?

수비에서의 미스매치, 슛에서의 약점이 두드러지면서 OK저축은행의 딜레마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대안이 없기에 꾸준히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안혜지는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데뷔 후 지난해까지의 모습을 감안하자면 지금까지는 올 시즌 최고의 MIP라고 말하는 데 무리가 없다.

농구 선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신장의 절대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에 전체 1순위로 선발될 만큼 안혜지는 갖고 있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인사이드로 찔러주는 패스의 강점이 확실하다. 안혜지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함께 달려주는 선수들이 있을 때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무척 위력적이다.

물론 야투 정확성은 더 키워야 한다.

꾸준한 득점을 원하는 게 아니다. 완벽한 찬스를 잡았을 때, 한 두 개씩만 꽂아주면 된다. 여전히 많은 팀들이 안혜지에 대해 외곽에서 버리는 수비를 한다. 때문에 오픈 찬스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안혜지가 득점을 올리면 상대가 뜻대로 수비를 내릴 수 없다. 상대 수비가 조금만 붙어도 돌파를 이용해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안혜지다.

최근 들어 안혜지의 외곽슛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하나은행 전부터 지난 20일 열린 신한은행 전까지 5경기에서 24개의 3점슛을 던져 11개를 성공했다. 45.8%의 성공률. 일시적이라고 치더라도 지난 시즌까지 3점슛 평균 17.0%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확실한 성장이다.

특히 14일부터 20일까지는 야투 상승세와 맞물려 3경기 연속 두 자리 수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24일 KB전에서는 다시 3점슛이 주춤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올 시즌 안혜지는 충분히 매력있고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선수라고 생각한다. 수비수를 자신에게 붙이면 그 장점이 더 커진다. 슛의 약점으로 부담이 있다면 장점을 더 극대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6일 우리은행 전때는 상대 수비가 떨어지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패스 플레이를 안혜지가 펼쳤고, OK저축은행 전체적으로도 볼이 잘 돌았다. 그러자 상대 벤치에서 안혜지에게 붙으라는 지시가 나왔다. 패스 시야를 가리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 경기에는 우리은행이 외국인 선수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인 패스 능력을 극대화하면 슛의 약점을 극복해서 상대 수비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안혜지도 느꼈을 것이다.

현재 OK저축은행은 안혜지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자원이 마땅치 않다. 어찌됐던 안혜지는 많은 출전 시간을 가져가며 많은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다. 팀에게는 마냥 좋은 상황이 아니지만, 안혜지에게는 좋은 기회다. 감독이 자신을 꾸준히 투입해주고 있음을 느끼는 만큼 자신감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안혜지가 지금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예빈(삼성생명)
지난 시즌까지 기록 : 14G 7:04 2.1점 0.6리바운드 0.1어시스트 3P 0%
이번 시즌 : 15G 21:14 7.7점 1.9리바운드 0.7어시스트 3P 27.7%

지난 시즌에 비해 국내 선수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삼성생명은 유망주들의 역할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느낌이다.

박하나-김보미-김한별-배혜윤-카리스마 펜을 선발이라고 봤을 때 교체 자원은 강계리, 양인영, 윤예빈, 이주연, 최희진 등이다. 그러나 벤치 멤버들 역시 선발로 나서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전력이 전체적으로 안정되어가는 것 같다.

팀내 유망주들 중에서는 윤예빈이 가장 눈에 띈다.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뛰지 못했던 윤예빈은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하고 있으며, 절반가량은 선발로 경기에 나섰다. 정신적인 면은 물론 기량 면에서도 확실히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상 트라우마의 극복보다는 기량 성장이 올 시즌 활약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윤예빈은 장신 가드라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기량도 좋다.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기술도 갖춘 선수이고, 신장의 우위가 있는데다가 슛의 타점도 좋아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 팀에서 볼 때도 활용가치가 상당한 선수로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1번 치고는 빠르지 않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지만, 높이를 활용해 포스트업을 할 수도 있고, 외곽슛도 자신 있게 올라간다. 

아직 어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윤예빈의 경기력이 좋은 날은 삼성생명도 윤예빈에게 경기 리딩을 일임한다. 1번 선수가 경기를 리딩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여자농구에서 21살 선수가 온전히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윤예빈의 가장 큰 장점은 배짱인 것 같다. 

학창시절, 워낙 정상급 선수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인지 플레이에 자신감이 넘치고 선배들을 상대로도 배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벤치에서는 꾸준히 어린 선수의 패기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WKBL 전체를 놓고 봐도 윤예빈 만큼 자신 있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는 흔치 않다. 

게다가 윤예빈은 패기만 앞세우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농구를 알면서 한다는 느낌이다. 

경험이 없을 때는 자기 페이스에만 너무 집중해서 경기 흐름과 겉도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플레이를 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팀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를 안기는 경우다. 하지만 윤예빈은 어린 선수들이 흔히 겪는 이런 모습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여자농구의 저변이 좁아지면서 능력 있는 자원들이 많이 나오지 못하는 문제도 아쉽지만 장신 선수가 많지 않은 것도 큰 아쉬움이다. 그런 면에서 180cm의 장신 가드 등장은 분명한 호재다.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윤예빈의 꾸준한 성장은 삼성생명은 물론 한국 여자농구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윤예빈이 포스트 박혜진(우리은행)으로 성장해주길 기대해본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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