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염용근 기자] 서고동저(西高東底). 사전적 의미로 지형이나 기압 따위가 서쪽 지역은 높고, 동쪽 지역은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네이버 어학 사전 참조) 그러나 NBA에서는 상대적으로 강팀이 많은 서부 컨퍼런스의 경쟁이 동부 컨퍼런스에 비해 치열함을 뜻하고 있다. 상위권 팀들의 승률과 플레이오프 진출 커트라인 역시 서부 쪽이 훨씬 높다.
 
본격적으로 서고동저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은 L.A. 레이커스가 3연패를 달성한 0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레이커스는 필 잭슨 감독과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중심이 되어 리그를 지배했다. 다른 서부 팀들 역시 레이커스에 대항하기 위해 전력 보강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치열해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했던 동부의 경우 약체들의 드래프트 실패, 팀 리빌딩 성적 저조 등으로 인해 몇몇 강팀들을 제외하면 하위권을 전전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 00년대 초반 동부 최강자(?)였던 뉴저지 네츠는 파이널 무대에서 레이커스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처절하게 박살나기도 했다.
 
서고동저 현상이 발생한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부 강세는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시즌 양대 컨퍼런스간의 편차가 더욱 심해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시즌 컨퍼런스간 상대 전적과 지난 10년간 성적 등을 살펴보자.
 
2013-14시즌 컨퍼런스 맞대결 성적
동부 컨퍼런스 vs 서부 컨퍼런스 59승 119패 승률 33.2%
동부 8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14승 21패 승률 40% vs 서부 1승 11패
서부 8위 댈러스 매버릭스 20승 15패 승률 57.1% vs 동부 9승 4패
*1월 9일(이하 한국시간) 기준
 
이번 시즌 동부 팀들은 서부 팀과의 맞대결에서 승률 33.2%에 그치고 있다. 한 시즌에 서부 팀들과 홈&원정 2경기만 치른다는 사실이 다행일 정도다. 물론 동부에서 2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마이애미 히트(10승 2패), 인디애나 페이서스(8승 2패)는 서고동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서부 팀과의 맞대결들에서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팀은 마이애미 히트와 인디애나 페이서스 둘에 불과하다. 디트로이트가 1승 11패, 올랜도 매직 2승 11패, 뉴욕 닉스가 2승 10패, 보스턴 셀틱스가 3승 10패 등으로 대표적인 서고동저 현상의 희생양들이다.
 
이렇다 보니 서부 13위에 불과한 레이커스(14승 21패/승률 40%)가 동부로 가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덴버 너게츠(17승 17패/승률 50%)의 경우 동부로 가면 플레이오프 시드까지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동부 3위 애틀랜타 호크스(18승 17패/승률 51.4%)가 서부에 편입될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다.
 
실제로 전설의 2007-08시즌에 서부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48승 34패 승률 58.5%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반면 동부의 애틀랜타는 37승 45패 승률 45.1%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duncan.jpg

이번에는 지난 10년간의 순위표를 통해 서고동저 현상을 살펴보자.
 
2003-04시즌 동부 vs 서부 154승 266패 승률 36.6%
동부 8위 보스턴 셀틱스 36승 46패 승률 43.9%
서부 9위 유타 재즈 42승 40패 승률 51.2%
 
2004-05시즌 동부 vs 서부 194승 256패 승률 43.1%
동부 8위 뉴저지 네츠 42승 40패 승률 51.2%
서부 9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44승 38패 승률 53.7%
 
2005-06시즌 동부 vs 서부 198승 252패 승률 44.0%
동부 8위 밀워키 벅스 40승 42패 승률 48.8%
서부 9위 유타 재즈 41승 41패 승률 50.0%
 
2006-07시즌 동부 vs 서부 193승 257패 승률 42.8%
동부 8위 올랜도 매직 40승 42패 승률 48.8%
서부 9위 L.A. 클리퍼스 40승 42패 승률 48.8%
 
2007-08시즌 동부 vs 서부 192승 258패 승률 42.6%
동부 8위 애틀랜타 호크스 37승 45패 승률 45.1%
서부 9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48승 34패 승률 58.5%
 
2008-09시즌 동부 vs 서부 231승 219패 승률 51.3%
동부 8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39승 43패 승률 47.6%
서부 9위 피닉스 선즈 46승 36패 승률 56.1%
 
2009-10시즌 동부 vs 서부 204승 246패 승률 45.3%
동부 8위 시카고 불스 41승 41패 승률 50.0%
서부 9위 휴스턴 로케츠 42승 40패 승률 51.2%
 
2010-11시즌 동부 vs 서부 189승 261패 승률 42.0%
동부 8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37승 45패 승률 45.1%
서부 9위 휴스턴 로케츠 43승 39패 승률 52.4%
 
2011-12시즌 동부 vs 서부 114승 156패 승률 42.2%
동부 8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35승 31패 승률 53.0%
서부 9위 휴스턴 로케츠 34승 32패 승률 51.5%
 
2012-13시즌 동부 vs 서부 188승 262패 승률 41.7%
동부 8위 밀워키 벅스 38승 44패 승률 46.3%
서부 9위 유타 재즈 43승 39패 승률 52.4%
 
10년 전, 36.6%까지 떨어졌던 동부 vs 서부 승률은 2008-09시즌 50% 이상으로 회복된다. 동부에서 클리브랜드 캐벌리어스, 보스턴, 올랜도가 3강 체제를 형성한 가운데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이 리빌딩의 효과를 보던 시점이다. 하지만 이후 점진적으로 전통적인(?) 서고동저 현상이 재개되었다. 지난 시즌 맞대결 승률 41.7%를 거쳐 이번 시즌 33.2%라는 일방적인 성적표를 도출하고 있다.
 
서고동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서부 팀들이 운영을 잘 한 것도 있다. 00년대 초중반 동부의 강팀이었던 인디애나, 디트로이트, 클리브랜드 등이 몰락한 반면 서부의 강호였던 샌안토니오, 댈러스 매버릭스, 레이커스 등은 꾸준하게 7할 승률 이상을 유지해 왔다. 팀 던컨, 덕 노비츠키 등 해당 팀의 주축 선수들도 건재하다.(코비는 부상으로 쓰러졌지만)
 
1911.jpg
 
그렇다면 왜 동부는 서부처럼 최강 팀을 견제하기 위한 약팀들의 전력 보강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을까?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샬럿 밥캣츠, 토론토 랩터스, 뉴욕 닉스 등 하위권 팀들의 드래프트가 실패로 점철된 탓이 컸다. 리빌딩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드래프트 최상위권 출신 유망주들이 잇따라 실패하다보니 성적 반등이 힘들었다.
 
뉴욕, 디트로이트, 보스턴(‘빅 3’ 결성 이전) 등 전통의 강호들이 잘못된 팀 운영을 했던 것도 서고동저 현상을 부추겼다.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디트로이트는 조 듀마스 단장이 00년대 중반 이후 ‘감’을 잃었으며 보스턴은 운이 너무 없었다.
 
물론 서고동저 현상이 궁극적인 목표인 파이널 우승에까지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우승 팀을 살펴보면 동부와 서부가 정확하게 5회씩 나눠 가졌다. 아무리 정규 시즌에서 서부 팀이 강세를 이어갔다 한들, 최강자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파이널 무대에서 만큼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번 시즌 역시 마이애미, 인디애나는 서고동저 현상과는 별개로 좋은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다수의 팀들이 2014년 드래프트를 위해 탱킹(tanking)을 시도하고 있다. 탱킹으로 의심되는 팀들 역시 동부 소속이 압도적으로 많다.(서부의 경우 피닉스 선즈와 유타 재즈를 제외하면 딱히 탱킹 팀이 없다) 동부에서 시즌을 포기한 팀이 다수 발생했기 때문에 이번 시즌 역시 서고동저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동부 팀들의 반격이 언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보자.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shemagic2@naver.com
저작권자 ⓒ 루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