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염용근 기자] NBA 2013-14시즌 개막 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올랜도 매직 등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의 가장 강력한 꼴찌 후보 중 하나였다. 오프 시즌 대대적인 팀 개혁을 단행해 단장과 감독을 물갈이 했고, 선수단 구성 역시 당장의 성적보다는 미래 대비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 33경기를 소화한 현재 12승 21패로 컨퍼런스 꼴찌는커녕 플레이오프 진출 마지노선에 위치한 8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승차가 단 2경기에 불과하다. 내심 우수한 자원들이 대거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드래프트 최상위권 지명권을 노리고 있던 팀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위치다. 로터리 추첨이라는 변수가 남았지만 현재 성적만 놓고 본다면 내년 드래프트 순위는 7위. 슬슬 샘 하인키 신임 단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가 2014년 드래프트에서 노리는 자원들
하킴 올라주원을 원하나? = 조엘 엠비드(캔자스)
링만 보고 점프한다? = 줄리어스 랜들(켄터키)
역시 드래프트는 최고의 재능! = 앤드류 위긴스(캔자스), 자비라 파커(듀크)
살림꾼 보강이 우선? = 단테 액섬(호즈), 마커스 스마트(오클라호마 주립) 
 
드래프트 7순위라면 위에서 언급된 특급 유망주들을 지명할 기회조차 못 가질 위험이 크다. 이번 시즌 홈 평균 관중 리그 최하위(13,266명)에 그치고 있을 정도로 흥행을 포기하고 2014년 드래프트에 운명을 건 팀에게 너무 가혹한 운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필라델피아가 예상 밖의 선전을 하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탱킹(tanking)을 염두에 두고 구성한 선수단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매우 흥미로운 공격 농구를 구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놀라운 신인’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그리고 지난 오프 시즌 즈루 할러데이(現 뉴올리언스 호네츠)와 달리 시장에서의 가치가 낮아 미처 처분하지 못했던 ‘이월 상품’ 3인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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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재미는 내가 맡는다! 마이클 카터-윌리엄스
2013년 드래프트 전체 11순위로 지명된 카터-윌리엄스는 사실 큰 기대를 받은 선수가 아니었다. 장신 포인트 가드(198cm)라는 명찰은 매력적이었던 반면 불안한 슛 샐랙션, 부상 위험, 경기 운영 능력 미숙 등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먼저 언급되곤 했다.
 
시즌 평균 35.5분 출전 17.2득점 5.7리바운드 7.2어시스트 2.9스틸 FG 40.1%
 
그랬던 카터-윌리엄스가 시즌 개막전부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무려 디팬딩 챔피언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말이다. 언제 마이애미가 가비지 타임을 만들어 낼지 여부가 관심사였던 개막전에서 22득점 7리바운드 12어시스트 9스틸이라는 ‘쿼터러블 더블’ 미수에 그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9개의 스틸은 리그 역사상 신인 데뷔전 최고 기록이었고, 오직 오스카 로버트슨만의 영역이었던 데뷔전 트리플 더블에 스틸 1개가 모자랐다.
 
카터-윌리엄스와 팀 성적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필라델피아는 그가 출전한 22경기에서 11승을 수확했다. 현재 팀 전체 승수가 12승임을 감안한다면 신인 포인트 가드가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결장했을 경우 팀 성적은 7연패 포함, 1승 10패였다. 특히 7연패 후 카터-윌리엄스가 복귀한 최근 7경기에서 5승을 쓸어담았다. 여기에는 지옥의 서부 컨퍼런스 원정 4연승이 포함되어 있다.
 
카터-윌리엄스 출전 여부에 따른 필라델피아 공격력 변화
有 - 11승 11패 평균 105.9득점 득실점 마진 ?3.1점
無 - 1승 10패 평균 98.1득점 득실점 마진 ?15.2점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속공 전개 능력과 상대 수비를 어렵지 않게 돌파하는 드리블 실력, 강심장이 돋보이는 마무리, 그리고 상대 패싱 루트 차단에 이은 재빠른 공수 전환이다. 필라델피아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속공 팀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카터-윌리엄스가 있기에 가능했다. 만약 현재 성적을 유지해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NBA 역사상 신인 신분으로는 최초로 경기당 평균 17득점-5리바운드-7어시스트-2.5스틸 이상을 기록한 선수로 남게 된다.
 
물론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돌파 후 페인트존에서의 마무리 실력에 비해 중거리 점프슛 적중률이 평균 이하다. 3점슛 성공률 역시 29.3%에 불과하다. 또한 장신 가드의 영원한 숙제인 빠르고 민첩한 상대와의 매치업에 있어 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신 가드의 또 다른 위험 요소인 부상 역시 큰 불안 요소다. 앤퍼니 하더웨이, 션 리빙스턴 등 촉망받던 장신 포인트 가드들이 부상으로 커리어를 망쳤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카터-윌리엄스 역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무릎 부상 등으로 인해 벌써 11경기에 결장했다. NBA 역사에 있어 빛나는 별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하더웨이의 커리어를 망친 부상 부위 역시 무릎이었다. 신인왕 욕심이 나겠지만 팀 성적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 시즌인 만큼 적절한 출전 시간 조정과 휴식일 배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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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에반 터너, 테디어스 영, 스펜서 허즈 등 현재 필라델피아 주전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은 모두 트레이드 가치가 낮은 관계로 팀에 잔류한 자원들이다. 영의 경우 시즌 초반, 오마르 아식(휴스턴 로케츠)과의 트레이드 루머에 연루되었지만 휴스턴이 원하는 미래 드래프트 지명권을 탱킹 팀인 필라델피아가 내줄 리가 만무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시즌 뚜껑을 열어보니 터너, 영, 허즈가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터-윌리엄스의 버프 영향도 있지만 팀과의 미래가 불투명한 해당 선수들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터너와 허즈는 이번 시즌 종료 후 FA가 될 수 있으며 계약 기간이 긴 영의 경우 여지없이 트레이드 루머에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세 선수는 뭔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구)겉절이 3인방의 통산 vs 시즌 성적 비교
에반 터너

통산 평균 11.3득점 5.5리바운드 3.2어시스트 0.8스틸 FG 43.1%
시즌 평균 19.8득점 6.7리바운드 4.0어시스트 1.1스틸 FG 44.4%
테디어스 영
통산 평균 13.3득점 5.5리바운드 1.2어시스트 1.3스틸 FG 51.2%
시즌 평균 18.3득점 7.0리바운드 1.8어시스트 1.7스틸 FG 50.8%
스펜서 허즈
통산 평균 9.4득점 6.2리바운드 1.9어시스트 1.1블록슛 FG 46.9%
시즌 평균 14.6득점 8.8리바운드 3.3어시스트 1.5블록슛 FG 48.7%
 
터너는 NCAA 시절, 선수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을 모두 휩쓴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였다. 이는 지난 201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 지명으로 이어졌다.(1순위 존 월/워싱턴 위저즈) 그러나 프로 무대에서는 좀처럼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했다. 포지션 대비 최고 리바운드 능력에 비해 최고 장점이었던 득점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경기 운영 능력도 기대치에 비해 모자랐다. 대학 무대에서 다재다능했던 선수가 상위 리그인 NBA에서 특별한 장점이 없어지는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다행히 터너의 고민은 할러데이 트레이드를 통해 일거에 해소되었다. 대학 시절 주로 볼을 소유하며 플레이를 즐긴 터너는 NBA 입성 후 동료 할러데이에 밀려 슈터 타입으로 강제 개조(?)되었다. 본인 특유의 플레이 흐름을 살리지 못하다보니 부진은 당연한 결과였다. 개별 선수의 볼 소유 정도를 측정한 USG%를 살펴보자. 지난 시즌 21.2%에 불과했던 반면 이번 시즌 탈 할러데이 효과로 인해 25.5%로 대폭 상승되었다. 볼 소유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시즌 종료 후 터너와의 이별을 고려했던 구단 입장에서도 장기 계약 여부를 놓고 고민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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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트위너 포워드(3번과 4번 포지션을 번갈아 담당하는 위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선수 중 하나다. 실제로 트레이드 가치 역시 터너와 허즈에 비해 확실히 높았다. 문제는 긴 계약 기간으로 인해 리빌딩 팀에게 전혀 매력적인 선수가 아니었고, 상위권 팀들은 영과 같은 트위너 타입의 어중간한 자원이 필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중하위권 팀에 잘 어울리는 선수다.
 
휴스턴과의 트레이드 루머가 발생했을 때 팀 잔류를 희망했던 영은 이번 시즌 커리어 하이에 해당하는 득점력으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트위너 포워드의 본질적인 한계인 수비 약점은 여전하지만 각각 50% 이상의 야투 성공률, 40% 이상 3점슛 성공률에 속공 농구에 적합한 기동력은 현재 필라델피아 팀 컬러에 잘 어울린다. TS%, eFG%, PER 등 각종 2차 기록에서도 포지션 대비 준수한 성적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영이 좋은 활약을 선보일수록 팀에 잔류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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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는 좋은 신체조건과 BQ에 비해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던 타입이다. 종종 흐트러지는 집중력과 30분 이상을 소화하기 힘든 체력이 문제였다. 지난 시즌 허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센터 포지션인 앤드류 바이넘(예비 실업자)을 영입했던 구단의 처사를 떠올리면 잘 알 수 있다.
 
허즈 입장에서 탱킹을 선언한 이번 시즌 팀 노선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바이넘과의 재계약 포기, 할러데이 트레이드로 합류한 너렌스 노엘의 시즌 아웃 부상 등으로 인해 센터 포지션이 무주공산이 된 것이다. 확연한 출전 시간 증가는 곧 성적 상승으로 도출되었다. 이번 시즌 전체 센터 포지션에서 평균 득점 5위(14.6점), 어시스트 2위(3.3개)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매 경기 1.7개의 3점슛을 적중시키고 있다. 성공률 역시 44.5%로 전 포지션을 통틀어 7위다. 최근 리그 추세에 부합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이 가능한 빅맨에 3점슛 능력까지 갖췄다보니 상대 수비 입장에서 대응하기 무척 까다롭다.
 
화끈한 공격 농구로 상대를 파.괴.한.다
필라델피아는 유난히 심한 서고동저 흐름 속에서도 서부 컨퍼런스 팀을 상대로 5승 10패를 기록하고 있다. 동부 8위 디트로이트의 서부 팀 상대 전적은 1승 10패에 불과하다. 또한 마이애미, 휴스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져스 등 최상위권 팀들을 종종 잡아내며 도깨비 팀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 필라델피아 농구의 철학인 공격 농구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필라델피아의 공격 농구 *( )안은 리그 순위
평균 득점 103.3점(11위)    평균 속공 득점 16.9점(3위)
속공 효율 1.89(6위)          경기 페이스 102.53(1위)
실책 득점 연결 606점(6위) 페인트존 득점 1,694점(3위)
 
카터-윌리엄스를 필두로 터너, 영, 홀리스 톰슨, 토니 워튼 등 속공에 적합한 선수들이 주축 로테이션의 대부분을 구성 중이다. 허즈의 경우 속공 참여가 다소 어렵지만 대신 세컨드 속공 찬스에서 동료에게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시야와 센스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페인트존 득점을 보면 알 수 있듯 돌파와 컷인을 통한 쉬운 득점이 무척 많이 발생한다. 필라델피아가 44.5%의 다소 저조한 팀 야투 성공률(리그 17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페인트존 득점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속공과 저돌적인 돌파&컷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피닉스 선즈나 포틀랜드 같은 더 강한 공격 팀, 우수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같은 팀을 상대로는 공격 농구가 처절한 실패와 맛보는 경우도 많았다. 분명한 사실은 필라델피아가 화끈한 공격 농구를 통해 팬이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플레이오프 진출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팬과 구단 모두 바라지 않는다.
 
아마 필라델피아는 현재의 호성적(?)이 계속 유지될 경우 영의 트레이드 같은 강수를 들고 나올 것이다. 현재 구성원들을 발전시켜 대권을 노리기에는 지난 30년간 어중간한 성적으로 고통 받았던 세월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필라델피아의 마지막 우승은 1982-83시즌이었다) 비록 성적은 포기했지만 재미있는 농구를 선보이고 있는 필라델피아가 이번 시즌 어떤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지 여부를 지켜보자.
 
사진 제공 = ⓒ gettyimages/멀티비츠, NBA 미디어 센트럴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inc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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