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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스토리] ‘미네소타의 흑장미는 두 번 핀다’ 데릭 로즈

[루키=원석연 기자] 현지 시각으로 10월 31일. 미네소타 타깃 센터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유타 재즈의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치열한 접전. 경기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128-125로 미네소타가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권은 유타에게 있었다. 조 잉글스가 우측 코너에서 회심의 3점슛을 올렸으나 불발, 그러나 제이 크라우더가 리바운드를 건져내면서 다시 유타의 공격. 크라우더는 반대편 코너에 비어있는 단테 엑섬에게 패스. 와이드 오픈. 7초, 6초, 5초, 4초, 3초. 엑섬이 마지막 슛을 올린다.

“크라우더가 리바운드를 잡습니다. 엑섬에게 패스. 엑섬의 슛...이 블록슛에 막힙니다! 누군가요? 오, 데릭! 2011년 MVP! 로즈입니다!”

41분 출전 50득점 6어시스트 4리바운드. 팀의 첫 득점, 결승 득점, 마지막 득점 그리고 위닝 블록슛까지 책임지며 완벽하게 부활한 흑장미. 선수의 이야기를 이름으로 풀어보는 시간, <알파벳 스토리>의 두 번째 주인공은 ‘흑장미’ 데릭 로즈다.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12월호에 실렸습니다.

 

R : Return ‘귀환’

로즈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신인왕, 3번의 올스타, 2번의 올-NBA 퍼스트팀, 그리고 NBA 역대 최연소 MVP까지. 그러나 우리가 로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수상 경력 때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의 부상 경력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로즈의 프로필은 2012년을 전후로 나뉜다. 2012년 이전 로즈는 신인왕, 올스타, MVP 등의 굵직한 업적들을 일필휘지로 작성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장미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2012년 이후 그는 왼 무릎 십자인대 파열(2012), 오른 무릎 반월판 파열(2013), 오른 무릎 반월판 재발(2015) 등 보통의 선수들이 평생 한 번을 겪을까 말까 한 부상들을 해마다 겪으며 가파르게 추락한다.

지긋지긋한 부상으로 인해 로즈는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된다. 2016년에는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됐고, 2017년에는 한 때 MVP를 두고 경쟁을 펼치던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베테랑 미니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서도 제 기량을 찾지 못하고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된 로즈는 2018년 2월 방출의 아픔까지 겪는다. 한 달이 넘게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던 로즈에게 손을 내민 것은 시카고 시절의 은사 탐 티보도 감독이 이끌던 미네소타였다. 

선수 생활을 은퇴하는 것까지도 고려했을 만큼 힘겨웠던 시기. 특히 NBA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이미 MVP를 거머쥐며 일찌감치 정점에 섰던 그가 감당하기에는 더욱 가혹한 시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즈는 멋지게 돌아왔다. 팀내 핵심 자원인 제프 티그와 지미 버틀러가 결장하며 모두가 어렵다고 예측한 유타와 경기에서 은사 티보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데뷔 후 개인 최다인 50점을 퍼부으며 장미가 다시 폈음을 알렸다. 

더 놀라운 것은 로즈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즈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어 나타났다. 전성기 시절만큼 화려한 크로스오버 드리블은 없지만 16경기를 치른 현재 로즈의 3점슛 성공률은 무려 46%다. 경기당 3.8개의 3점슛을 던져 1.8개를 성공하는 스팟업 슈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올시즌 전까지 로즈의 커리어 3점슛 성공률은 29%에 불과했다. 유타전에서 3점슛 4개를 포함해 50점을 넣은 로즈는 “여름에 2만 개의 슛을 던지며 연습했다. 정말 죽도록 노력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O : Odds ‘가능성’
 
2008년 5월 21일. 전년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14개 팀의 대표와 아담 실버 부총재(현 총재)가 신인 드래프트 로터리 픽 추첨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팀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자리. 미국 전체가 TV를 통해 이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14순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입니다. 13순위는 포틀랜드, 12순위 새크라멘토…….6순위 뉴저지, 5순위 멤피스, 4순위는…시애틀 슈퍼 소닉스.”

실버는 하위 지명 순위부터 차례대로 추첨 결과를 발표했다. 시애틀의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전년도 신인왕 케빈 듀란트는 시애틀이 4순위에 호명되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이름은 단 세 팀. 전년도에 15승 68패로 최하위에 그친 마이애미와 22승 60패로 28위를 기록한 미네소타 그리고 33승 49패로 비교적(?) 성적이 괜찮았던 시카고였다. 시카고가 이 추첨에서 1픽을 차지할 가능성은 단 1.7%에 불과했다. 

실버는 세 팀의 대표를 단상 앞으로 불렀다.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마이애미의 간판스타 드웨인 웨이드와 미네소타의 어시스턴트 GM 프레드 호이버그(현 시카고 감독), 시카고의 경영 부사장 스티브 션월드가 떨리는 마음으로 단상에 섰다.

실버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올시즌 3순위 팀 발표하겠습니다. 3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들려오는 호이버그의 한숨 소리. “곧바로 2순위 발표하겠습니다. 2순위는... 마이애미 히트. 축하합니다. 2008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시카고 불스입니다” 션월드 부사장은 체면도 잊은 채 환한 웃음과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같은 시각, 션월드와 함께 똑같은 표정으로 만세를 부른 이가 있었다. 멤피스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 TV로 로터리 추첨을 보고 있던 1학년 데릭 로즈였다. 당시 로즈는 캔자스 주립대의 마이클 비즐리(현 LA 레이커스)와 함께 ‘탑 2’로 꼽히던 특급 유망주였다. 시카고 남부의 잉글우드에서 태어난 로즈가 고향 팀 시카고가 1.7%의 확률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자 만세를 부른 것은 당연한 일. 이후 시카고는 당해 드래프트에서 예상대로 홈보이 로즈를 지명했다. 포인트가드가 전체 1순위로 뽑힌 것은 1996년 앨런 아이버슨 이후 12년 만의 일이었다.

 

S : Stacey King ‘스테이시 킹’

스테이시 킹은 과거 1989년 전체 6순위로 시카고에 지명돼 마이클 조던과 함께 시카고에서 3번의 우승을 차지한 인물로, 이후 미네소타와 댈러스에서 벤치 선수로 뛰다가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그러나 킹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은퇴 후부터였다. 유니폼을 벗은 킹은 2년간 중국프로농구와 NBA D리그(현 G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다가 이내 시카고 불스의 전담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는다. 특유의 호들갑 섞인 입담과 독특한 코멘트로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킹의 목소리는 특히 데릭 로즈의 하이라이트 필름에 자주 등장한다. 현지에서는 킹의 코멘트를 딴 로즈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 

다음은 현지 팬들이 꼽은 ‘스테이시 킹이 함께 한 데릭 로즈의 최고의 장면’ 중 일부다. 

- “일어나든지 아니면 비키든지!(Either get up or get out the way!)” 
-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냅니다!(Big time players make big time plays!)"
- “로즈가 밀러의 발목을 부러뜨렸어요! 여기 의사 좀 불러주세요!(Is there a medic in the house!)”
- “로즈가 크로스오버로 수비수의 신발을 벗겨냈어요.(Almost came out of his Nike's.)”
- “드라기치, 그런 수비로 로즈를 막겠다고?(What are you doing Dragic?)”
- “로즈가 간다고 연락했을 텐데?(Did you not get the Memo?)“
- “너무 크고, 너무 세고, 너무 빠르고, 너무 잘합니다!(Too Big, Too Strong, Too Fast, Too Good!)"

 

E : Englewood ‘잉글우드’

“From 시카고! 가드 6-3! 넘버원! 데릭 로즈!” 경기 전 홈팀 선수들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From 시카고’에 걸치는 순간 유나이티드 센터를 꽉 채운 관중들의 데시벨은 항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황제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 있던 불스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가져온 구세주. 심지어 그가 시카고의 ‘홈보이’라니, 어떻게 열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이곳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찬 바람이 부는 도시 중 하나이며 해마다 7백 명 이상이 총격으로 사망할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총기 사고가 나는 곳이다. 또한 해마다 5만 건이 넘는 쥐 관련 신고가 접수될 만큼 우중충한 도시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시카고의 별명이 ‘윈디 시티(windy city)’ 혹은 ‘그레이 시티(grey city)’일까. 

그중에서도 로즈가 태어난 잉글우드는 시카고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우범지역 중 하나다. 로즈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른다. 로즈는 홀어머니와 세 명의 형들과 함께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농구를 처음 접한 것 또한 형들의 영향이었다. 로즈는 매일 저녁 형들과 함께 조던의 경기를 TV로 시청했고, 경기가 끝나면 코트로 달려다가 형들과 농구를 했다. 형제들은 농구와 조던, 그리고 불스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나이티드 센터를 방문하는 일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레이 시티 시카고에서도 가장 우울한 도시인 잉글우드의 4형제에게 유나이티드 센터 방문은 쳐다도 못 볼 나무 같은 곳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드러낸 로즈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언젠가 NBA 선수가 되어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뛰어보겠다는 의지로 끊임없이 연습에 나섰다. 

결국 그는 꿈을 이뤘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돼 자신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조던과 똑같은 유니폼을 손에 든 것이다.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로즈를 환영하는 입단식이 열리던 날,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의 손을 잡고 유나이티드 센터에 당당히 입성했다. 등번호는 대학 시절 달던 25번이 아닌 1번으로 결정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전체 1순위에 지명됐다는 자부심을 등에 새긴 것이다. ‘흑장미’ 로즈의 히스토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아디다스 제공

원석연 기자  hiro3937@rooki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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