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전드들의 은퇴
사진으로 돌아보는
레전드들의 은퇴
레전드들의 은퇴
지난 3월 19일은 2012-20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대미를 장식한 날이었다. 하루에 다섯 경기나 열렸지만 일찌감치 순위가 결정된 탓에 TV 중계가 모조리 쉬었던(?) 그 날, 유일하게 방송 중계차가 출동한 곳은 8위 KT와 10위 KCC의 경기가 열린 부산사직체육관이었다. ‘국보급 센터’ 서장훈이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치른 사직체육관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 찼다.
글ㆍ황재훈 사진ㆍKBL 제공
일찌감치 예고한 은퇴였다. 서장훈은 KT에서 마지막 한 시즌을 보내면서 자신의 연봉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돈이나 기록 때문이 아니라 서장훈이라는 선수의 자존심을 걸고 뛰겠다는 의미였다.
비록 팀은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지만 서장훈만큼은 눈부셨다. 13,000득점 고지를 넘겼고 5,000리바운드를 넘게 잡아낸 유일한 선수. 여전히 매치업을 상대로 페이더웨이를 성공시키고 훅슛을 던질 수 있는 불혹의 스타. 그 이름은 바로 서장훈이었다.
서장훈을 위해 각 구단들은 전무후무한 행사를 벌였다. 마치 ‘은퇴 여행’처럼 KT가 원정경기를 치를 때면 의미 있는 행사를 마련해 서장훈의 마지막을 빛내주었다.



KGC인삼공사, 오리온스처럼 서장훈이 한 번도 몸담지 않았던 팀들도 그가 팬들에게 고별인사를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과거에 서장훈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성철, 조상현 등 베테랑들이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도 있었다.
친정팀이었던 삼성과 SK, 전자랜드는 서장훈의 눈물을 쏙 빼놓았다. 문경은 SK 감독은 “화면에 나오는 영상과 (서)장훈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라며 후배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진짜 눈물을 쏙 빼놓은 행사는 서장훈의 은퇴식 당일이었다. KT는 “단 한 시즌이었지만 한국프로농구를 위해 15시즌 간 열심히 뛰어준 서장훈을 기념해주고 싶었다"며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한 이유를 밝혔다. 서장훈 기념 티셔츠를 만드는가 하면 선수 시절 영상을 마련해 큰 박수를 받았다.
흔히 다른 팀 언급은 되도록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KT는 넓은(?) 마음으로 SK, 삼성, KCC 시절의 영상까지 담으면서 서장훈을 기념했다. 이 날 은퇴 자리에는 월드스타 싸이까지 함께 해 훈훈함을 더했다. 서장훈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도중 눈물을 보였다. 이를 본 팬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KBL은 서장훈을 기념할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지난 2013 KBL 올스타전에서도 서장훈을 배제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구단들만큼은 전설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비로소 역사를 기념해야겠다는 마인드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농구대잔치 세대들의 마무리는 조촐했다. 허재 정도만이 은퇴경기와 은퇴식을 치렀을 뿐 김영만과 조성원은 제대로 된 영구결번 대접조차 받지 못한 채 농구 코트를 떠났다. 물론, 김영만의 경우 당시 소속팀이 모호하긴 했지만 너무나 쓸쓸한 마지막 인사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람보슈터’ 문경은과 ‘에어본’ 전희철의 은퇴를 계기로 조금씩 KBL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SK에서 뛰었던 기간이 다소 애매하고 우승을 안겨준 것도 아니었기에 논란이 따랐지만 SK 구단은 한국농구를 대표했던 스타들을 품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두 선수의 영구결번과 함께 대대적인 은퇴식을 열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NBA에서는 우승이나 다른 공적을 세운 선수의 경우, 설령 이적하더라도 영구결번 행사를 열어주곤 한다. 그런 면에서 전희철이 오리온스의 부름을 받지 못한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KBL은 2008년 10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식을 개최했다. 김재훈, 정종선, 장영재, 성준모 등 준주전급 선수들을 위한 자리였다. 취지는 좋았다. 다만 일회성으로 그친 것이 아쉬웠다. 그리 주목받지 못한 자리였기에 더 큰 안타까움을 남겼다.



코트를 떠난 레전드 중 가장 아쉬움을 남긴 이는 바로 이상민이 아니었을까. 기자회견 후 곧바로 유학길에 오르는 바람에 이상민은 이렇다 할 은퇴식도 열 수 없었다.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진 가운데 이상민의 팬클럽 회원들이 연세대 내 소극장을 빌려 은퇴식을 연 이유이기도 했다.
KCC는 차기 시즌에 이상민의 영구결번식을 거행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KBL을 빛낸 최고 왕별이었던 이상민이었지만 정작 떠날 때는 대접이 가장 소홀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추승균, 신기성 등 농구대잔치 세대가 하나둘 코트를 떠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들에 의해 ‘스타 문화’가 생겨나더니 이제는 이들을 시작으로 은퇴식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뒤늦게나마 전설들을 챙기고 기록을 아낄 줄 아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KBL과 선수들이 ‘포스트-농구대잔치’ 시대를 맞아 이들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디 퇴보 없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길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