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스포엘스트라
선수 잘 만났다고? NO! 감독을 잘 만난거지!
        에릭 스포엘스트라

 

NBA 감독 가운데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 남자, 바로 마이애미 히트 감독 에릭 스포엘스트라가 아닐까 싶다. ‘초짜’ 감독으로 한때 선수 장악력에 의심을 받기도 했던 그는 2012년 NBA 정상에 오른 뒤 23연승 대기록의 주인공으로 NBA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글ㆍ황재훈  사진ㆍ NBA 미디어 센트럴
 

스포엘스트라 감독은 필리핀계다. 인종차별은 옛말이라고들 하며 하물며 ‘혼혈’이란 말도 금기시되는 분위기이지만 자유분방한 미국에서조차 피부색은 보이지 않는 장벽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러한 차별을 뚫고 능력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포틀랜드 태생인 그는 타고난 근면함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스포엘스트라 감독도 선수 출신(포인트가드)이다. 다만 NBA에서 뛴 건 아니다. 고교 시절, 유망주란 유망주는 죄다 알아본다는 소니 바카로의 눈에 들어 올스타 캠프에 출전하기도 했지만 포틀랜드 대학에서는 그리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NBA 진출에도 실패했다.

선수 은퇴 후 첫 행선지는 바로 독일이었다. 그곳에서 유소년 팀을 지도하면서 코치 경력의 딱지를 뗐다. 스포엘스트라 감독이 히트에 합류한 것은 1995년의 일이었다. 감독으로 부임한 팻 라일리가 그를 비디오 분석관으로 임명했던 것.

이는 스포엘스트라에게 크나큰 기회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수석 분석관이 됐고 이어 스카우트 역할까지 맡기에 이르렀다. 선수 경력조차 보잘 것 없었던 스포엘스트라에게는 쾌속 승진이었다.
 
 
초고속 상승세

그의 상승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1년에 어시스턴트 코치까지 승진하는데 그때도 전략 전술을 짜기보다는 훈련을 돕고 스카우트를 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라일리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2006년에는 라일리 곁을 지키면서 생애 첫 NBA 파이널 트로피 쟁취의 기쁨도 맛봤다.

그랬던 스포엘스트라 감독에게 잊지 못할 기회가 찾아온다. 히트 감독직을 맡아보라는 라일리의 특별 지시가 있었던 것. 흔히 생각하는 ‘낙하산 인사’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디오 분석관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감독까지 된 경우는 제법 많다. 스포엘스트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라일리는 “신세대답게 숙련된 첨단 기술을 갖고 있으며 생각도 젊다. 게다가 지도력을 타고 났다. 선수들도 잘 따를 것”이라는 말로 그의 장점을 소개했다.

사실, 농구팬들에게 낯설긴 해도 스포엘스트라가 어디서 뚝 떨어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부친인 조 스포엘스트라는 포틀랜드, 덴버, 버팔로, 뉴저지 등에서 NBA 구단 임원으로 일했고 할아버지는 스포츠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흔히 말하는 ‘그쪽 세계’에서는 이미 이름이 충분히 알려졌던 셈이다.
 
 
리더로 올라서다

그 기대답게 스포엘스트라는 ‘스타군단’ 마이애미를 무난하게 이끌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합류했던 2010-11시즌, 곧바로 팀을 NBA 파이널에 올려놨다. 비록 댈러스 매버릭스에 2승 4패로 물러나긴 했지만 그에게는 최고의 수업료였다.

그리고 맞이한 2011-12시즌, 스포엘스트라 감독은 꿈에 그리던 NBA 우승을 이루었다. 르브론 제임스도 생애 첫 챔피언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우승에도 불구하고 스포엘스트라는 겸손했다. 반면, 선수들에게는 관대했다. 분위기를 한껏 살리면서 선수들의 장점을 취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성공을 거뒀다.

단점이 보일 때면 라일리와 상의했다. 1980년대 LA 레이커스를 이끌며 지도력을 검증받은 라일리는 그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스포엘스트라는 “틈날 때마다 라일리에게 배우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물론,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포엘스트라 감독은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라일리의 그림자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힘든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 콜린스 필라델피아 76ers 감독 역시 그의 지도력을 인정한다. “히트의 조직력은 흠잡을 데가 없다. 감독이 팀을 정말 잘 만들었다”라며 말이다. 물론,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가 히트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스포엘스트라 감독의 역량이 있었기에 시너지 효과가 더 발휘될 수 있었다. 또, 팀 내 스타들을 휘어잡기보다는 잘 포용하면서 분위기를 잘 꾸렸다는 평가다.

매직 존슨 역시 방송을 통해 “팀이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갖고 집중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잘 만들었다. 그것만큼은 스포엘스트라의 공적이며 <올해의 감독>이 되기에 충분하다”라고  평했다.
 
 
덕장의 면모를 갖추다

그동안 스타 플레이어가 한데 뭉친 팀은 많았다. 그러나 결과가 좋았던 팀은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콜린스나 매직의 스포엘스트라에 대한 평가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쯤 되자 선수들도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지난 파이널에서 마리오 챌머스, 마이크 밀러, 세인 베티에 등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면서 최상의 효과를 뽑아냈던 것도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된 덕분이었다.

르브론은 “우리 관계에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 신뢰는 매일 커져가고 있다. 스포엘스트라 감독에게는 선수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다. 편하게 경기에 임하게 해주는 역량도 지녔다. 책임감을 부여하면서 서로가 더 열심히 하게 만들어준다”며 그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했다.

3월 19일 현재, 마이애미는 보스턴 셀틱스를 꺾고 NBA 사상 2번째로 긴 연승을 기록한 팀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이 연승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그들의 NBA 2연패 가능성만큼이나 말이다.

이제 히트를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감독과 선수가 굳건한 신뢰를 쌓아온 것처럼 히트와 스포엘스트라 감독의 능력도 이제는 믿음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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