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길 칼럼
        엉망이 되어버린 시즌
 

2012-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시즌만큼 다사다난했던 시즌도 없을 것이다. 승부조작, 고의패배, 무성의한 경기 등 각종 악재들이 터지며 ‘전설’ 서장훈의 은퇴, 최초로 열린 프로-아마농구 최강전, 서울 SK 나이츠의 창단 후 첫 우승, 홈 최다 연승 기록 등 각종 경사들이 모조리 묻히고 말았다.
 
글ㆍ최연길(MBC SPORTS+ 농구 해설위원) 사진ㆍKBL 제공
 

몇 년 전부터 농구인들과 관계자, 농구팬들은 “한국 농구가 위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농구행정을 맡고 있는 관계자들과 농구인들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탓에 농구 인기와 경기력 하락세가 줄곧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은 농구에 관심조차 없던 일반인들에게도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농구는 바닥을 파고들어가 이제는 아예 지하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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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라운드부터 이어진 재미없는 농구

수비자 3초 위반 규정을 없애고 맞이한 첫 해, 프로농구는 극심한 저득점에 빠져들었다. 80득점 이상 올린 팀이 전무한 반면, 60득점 대에 그친 팀은 두 개나 되었다. NBA, FIBA 등 여타 다른 리그들이 공격농구를 장려하기 위해 규정을 바꾸고 있지만 KBL은 오히려 수비농구를 장려하며 뒷걸음질 쳤다. 국제무대 성적을 위해서라지만 과연 효과를 거둘 지는 의문이다.

5라운드 들어 가관이 펼쳐졌다. 창원 LG 세이커스가 로드 벤슨을 트레이드하며 노골적으로 6강에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더니 부산 KT 소닉붐, 원주 동부 프로미도 6강을 회피한다는 의혹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패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형편없는 경기력과 더불어 부상이라는 이유로 주축 선수들을 빼버리며 맥 빠진 경기를 펼쳤다.

한선교 KBL 총재가 나서 고의패배에 대한 경고를 했음에도 나아진 점은 없었다. 농구 팬들은 이들의 경기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KBL이 긴급이사회를 개최해 드래프트 제도를 수정하기에 이르렀지만 사후약방문이었다. 이번 시즌부터 소급 적용되는 규정이 아닌 탓에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 KBL의 이번 행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6강 진출에 강한 집착을 보였던 서울 삼성 썬더스가 수혜 아닌 수혜를 입었다. 승률 5할에 턱없이 부족한 성적으로 2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삼성은 일부 팬들로부터 “다른 팀들의 성의 없는 시즌 운영 덕분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며 평가절하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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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기름을 부은 강동희 사건

그렇지 않아도 위기의식이 고조된 가운데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한국농구의 전설적인 포인트가드로 허재와 함께 1980, 90년대를 이끌었던 강동희가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리며 구속된 것이다.

강동희는 원주 동부 프로미 감독을 맡은 지난 3년 동안 4강 1번, 준우승 두 번, 정규리그 우승 1번을 차지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2년 전, 4강 진출이 확정된 이후 브로커로부터 4천만 원을 받고 김주성, 윤호영 등 주전들을 제외한 채 약체 대구 오리온스에게 대패하는 등 4경기에서 승부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어 큰 충격을 안겼다.

대부분의 농구팬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유죄입증을 자신했고 강동희 감독이 금품 수수를 시인한 후 법원 측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농구팬들의 신뢰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커다란 배신감을 느낀 팬들은 KBL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 이후 KBL 경기장을 찾는 관중 수는 급감했다.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동부는 6위를 지키며 플레이오프행이 유력해보였다. 하지만 이후 연거푸 대패하더니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긴장감이 사라진 6강 경쟁구도 재미를 더욱 반감시켰다.

강동희의 승부조작 사건은 우리나라 4대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감독이 관여된 사건으로 충격 여파가 매우 컸다. 이후 방송사들은 노골적으로 농구를 외면했고 스포츠토토는 KBL을 프로토 대상경기에서 제외했다.

승부조작 사건에 가장 잘 대처했다는 프로축구와 달리, KBL은 어설픈 사후처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일부 감독들이 “순위가 결정되고 나면 으레 주전들을 뺀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하려 한 것을 비롯해 도덕적 불감증에 사로잡힌 행동을 여러 차례 보였다. 축구나 야구처럼 적극적인 조사로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소극적인 태도로 덮으려는 인상마저 남기는 등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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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로 가려진 서울 SK 돌풍

이런 악재들은 결국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그 중 하나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서울 SK 나이츠다. SK는 한 시즌에 두 차례나 10연승 이상을 거둔 최초의 팀으로 자리매김했다.

KBL 최다 홈 연승 행진을 이어나가고 역대 세 번째로 라운드 전승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십성 기사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SK의 우승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스포츠뉴스 꼭지에서도 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SK는 시즌 중반까지 WKBL의 우리은행과 함께 ‘만년 꼴찌의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각종 악재로 이러한 반전은 별다른 파장을 내지 못했다. 홈 22연승을 비롯해 지난 시즌 동부가 기록했던 한 시즌 최다승 도전도 외면을 받아야 했다.

창단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돌풍을 일으킨 SK는 예기치 않은 승부조작 사건, 6강 회피를 위한 고의패배에 저 멀리 밀려났다. 그 어떤 챔피언도 올 시즌의 SK보다 초라하진 않았을 것이다.
 
 
씁쓸한 전설의 퇴장

또 다른 희생양은 서장훈이다. KBL 역사상 최다 득점,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두 차례 우승에 입맞춤 한 ‘살아있는 전설’ 서장훈은 지난 시즌의 초라한 성적을 만회한 후 은퇴하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유종의 미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안양 KGC 인삼공사, 부산 KT 소닉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구단 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여는 등 서장훈의 마지막 원정길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했다.

하지만 전설의 퇴장은 의외의 암초를 만나 더욱 쓸쓸해졌다. 부산 KT가 6강 진출에 실패하며 정규리그 종료일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마저 터지며 전설 서장훈의 은퇴는 또 다른 전설에 의해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많은 농구 관계자와 농구팬들은 서장훈의 은퇴가 NBA의 줄리어스 어빙이나 카림 압둘-자바, 래리 버드처럼 되길 바랐다. 하지만 서장훈은 이들과 달리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팬들로부터 플레이오프 탈락에 대한 원망까지 들어야 했다. 쓸쓸한 퇴장이 아닐 수 없다.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처럼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과연 한국 농구계는 나쁜 일을 극복하고 좋은 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농구의 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농구인과 농구관계자들 본인들이다. 결국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것도 농구인들과 농구 관계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모두가 한데 모여 위기 탈출의 묘책을 강구해야 할 시기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시즌을 능가하는 충격을 또 다시 겪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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