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카 프로필
S.E.R.G.E로 풀어보는
서지 이바카 스토리
 
1993-94시즌 덴버 너게츠는 8.37개의 블록슛으로 NBA를 호령했다.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라가 1번 시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격침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올 시즌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평균 7.47개의 블록으로 19년 전 덴버 이후 최다 블록슛 기록을 세우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 블록슛의 선두 주자 두 명은 NBA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지역 출신이다. 바로 콩고가 낳은 ‘제 2의 디켐베 무톰보’ 서지 이바카다.
 
글ㆍ황재훈  사진ㆍNBA 미디어 센트럴
 
 
이바카 프로필
생년월일 1989년 9월 18일
출생 콩고 공화국
국적 콩고/스페인
신장/체중 208cm/107kg
NBA 드래프트 2008년 24순위
주요경력 2012년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NBA 블록슛 1위(2011-12시즌)
올림픽 은메달(2012년)
유럽선수권 금메달(2011년)

Sad Memory | 슬픈 기억

은퇴 후 봉사 활동에 주력하며 재능 기부에 힘쓰고 있는 무톰보. 4번이나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3년 연속 블록슛 1위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콩고가 낳은 역대 최고의 스포츠 선수였다.

그런 무톰보가 틈날 때마다 “자신을 떠오르게 하는 선수”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서지 이바카다. 1989년생인 이바카는 스페인, 콩고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농구 기술을 향상시켜준 발판이었을 뿐, 진짜 국적은 콩고라 보면 된다.

콩고 국가대표 출신인 아버지,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농구공을 잡았다.

하지만 유년기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일어난 내전 때문. 당시 대통령 집권을 반대하던 이들이 주도했던 내전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약 4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2,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니 그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이로 인해 무톰보의 고향으로 통하던 ‘자이르’가 붕괴됐고 그 이후 콩고 민주 공화국이 성립됐다.

이바카는 이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 역시 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탈출하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곳에서 그는 농구를 시작하며 자신의 재능을 키워갔다. 이바카는 “전쟁은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비극이었다.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라고 회상했다.
 
 
Earn the Chance | 기회를 얻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농구를 곧잘 했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유소년 팀에서 실력을 키워갔던 이바카는 2008년 NBA 드래프트 전체 24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지명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큰 신장에 긴 윙스팬, 빠른 스피드, 농구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다듬기에 따라 충분히 NBA에서도 통한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시애틀은 그를 곧장 불러들이진 않았다. 더 성장하고 와도 늦지 않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 당시 이바카는 겨우 10대에 불과했다. 스페인에서 뛸 때까지만 해도 이바카는 공간이 나지 않으면 덩크조차 못 올라갈 정도로 공격 솜씨가 많이 떨어졌다.

구단의 바람대로 이바카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리코 만레사 팀과 3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NBA 데뷔를 꿈꿨다. 당시 3년 계약 조건에는 시즌이 끝날 때마다 바이-아웃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첫 시즌 성적은 7.1점, 4.5리바운드, 1.0블록. 비록 팀과 개인 성적 모두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NBA 데뷔는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오클라호마시티로 연고지를 옮긴 구단은 2009년, 골밑 보강을 위해 이바카를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직접 바이-아웃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썬더 유니폼을 입혔다. 이바카의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Reputation | 명성

이바카의 미국 적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영어는 잘 구사하지 못했지만 젊은 동료들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은 당시 21살이었고 제임스 하든은 20살, 제프 그린도 22살에 불과했다. 팀 내 최고참은 서른 살의 이탄 토마스였다. 대다수가 젊은 덕분에 이바카도 더 쉽게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현재 이바카는 영어뿐만 아니라 불어, 스페인어, 까탈루나어, 콩고 상용어인 링랄라어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비록 기술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스캇 브룩스 감독은 이카바를 적극 활용했다. 하든, 에릭 메이너, 닉 칼리슨 등과 함께 세컨 유닛으로 기용, 팀에 에너지를 더해주는 역할을 맡겼다.

당장 팀이 필요로 했던 것은 화려한 득점이 아닌 리바운드와 수비, 그리고 제 타이밍에 우직하게 들어올 수 있는 스크린 같은 궂은 일이었다. 이바카는 첫 시즌에 18.1분씩을 뛰며 6.3점, 5.4리바운드, 1.3블록을 기록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LA 레이커스와의 2차전에서 세운 이바카의 블록슛 7개는 PO 최연소 최다 기록으로 남았다.
 
 
Grow | 발전

이바카는 매 시즌 기록이 좋아지고 있다. 출전시간과 블록슛, 리바운드 등 모든 면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슛 터치도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경기당 1.9개의 자유투를 75.3%의 성공률로 넣었다.

그러자 주전 자리도 자연스럽게 굴러들어왔다. 켄드릭 퍼킨스와 골밑을 책임지게 된 이바카는 듀란트-웨스트브룩 콤비의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을 맡고 있다. 스크린 후 치고 들어가 내리 꽂는 슬램덩크는 이바카의 트레이드 마크. 덧붙여 퍼킨스와 함께 온 몸을 날려 상대를 막아내는 육탄 수비 역시 일품이다.

2011-12시즌, 이바카는 14점-15리바운드-11블록으로 생애 첫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그가 기록한 블록슛이 총 241개였는데 이는 브루클린 네츠 팀 전체가 한 시즌 동안 기록한 블록슛(260개)보다 겨우 19개 모자란 수치였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이바카는 <올해의 수비수> 투표에서 타이슨 챈들러에 이어 2위에 오를 수 있었다. NBA 데뷔 4시즌 만에 일군 성과였다.

단순히 오래 그리고 많이 뛴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바카 역시 ‘연습 벌레’로 유명하다. 휴스턴까지 찾아가 하킴 올라주원으로부터 과외 수업을 받는 등 개인기 연마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비시즌뿐만 아니라 시즌 중에도 짬을 내 연습에 매진할 정도로 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렬하다.

이러한 자세는 그를 국제무대로도 이끌었다. 이바카는 2011년,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한 뒤 유로바스켓에 출전, 가솔 형제를 도와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는데 2012년에는 모두가 꿈에 그리는 무대인 올림픽에 출전해 팀의 은메달 획득을 도왔다.
 
 
Era Began | 이바카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바카는 지난 2012년 8월, 구단과 4년, 4,8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곧 하든과의 연장 계약에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결국 하든은 팀을 떠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이바카의 잔류는 옳은 선택이었다. 아직 실수가 잦지만 미국 나이로 이제 23살임을 감안하면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듀란트-웨스트브룩-이바카의 ‘코어’가 지속되는 한, 언제든 정상에 도전할 만한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는 의미다.

NBA 역사를 빛낸 챔피언을 봐도 핵심 라인업이 동반 성장을 거듭하면서 결국 정상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들은 2012년 NBA 파이널에서 쓴 맛을 한번 봤던 경험을 갖고 있다. 누구보다도 상심이 컸기에 정상 도전에 대한 열망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바카는 여전히 아프리카와 콩고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11 NBA 올스타전에서 ‘NBA AFRICA’라는 문구가 생긴 깃발을 들고 나와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는 “콩고 국민들이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책임감을 느끼기에 코트에서 더 열심히 뛰게 된다”며 자신의 신념을 전하기도 했다.

이바카는 오클라호마시티와 아프리카 농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덧붙여 스페인 포스트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두 어깨가 더 무겁다. 그러나 여태껏 데뷔 후 보여준 자세와 열정을 봤을 때 이바카의 발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껏 가속도가 붙은 채 말이다.

득점이 아닌 리바운드와 수비로 이토록 단시간에 리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서지 이바카가 제 2의 디켐베 무톰보로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