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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선수에서 통역으로
 
KGC인삼공사 통역 최은동
 
2008 국내선수 드래프트는 ‘황금 세대’라 불린다. 하승진(KCC), 김민수(SK), 윤호영(상무), 강병현(KCC), 차재영(삼성) 등 국가대표 5인방이 참가한 드래프트였기 때문. 이들 외에도 언론이 주목한 선수가 있었다. 해외 교포 최금동-은동 쌍둥이 형제가 주인공. 이들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모비스와 KGC인삼공사에 수련선수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쌍둥이 형제 가운데 KGC인삼공사 통역으로 변신한 최은동을 만나 다양한 농구인생을 들어보았다.
 
글ㆍ이재범 사진ㆍ최은동, KBL 제공
 
 
Q_ 최금동-은동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2008 KBL 드래프트에 지원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왜 KBL을 선택했나.
최은동(이하 최)_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서) 한국에 오기 일주일 전까지 KBL을 잘 몰랐다. 아버지께선 고교 때부터 한국에 가서 농구하자고 말씀하셨는데 (드래프트 마감 직전 드래프트 참가를) 급하게 결정하면서 일이 바쁘게 진행되었다. 해외교포 자격으로 일반인 전형을 통해 2군 선수(당시 수련선수)로 KGC인삼공사에 뽑혔다. 그리고 아직 농구판에 남아 있다(웃음).
 
Q_ 대학 때는 NBA에 도전한다고 했었다.
최_ 미국에서 성장한 농구선수는 그 꿈밖에 없다. 생각보다 바람이 컸다(웃음). 여기 와서 느낀 건데 외국선수들만 봐도 우리나라에 맞는 선수도 있고 아닌 선수가 있다. 그렇듯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KBL에 대한) 적응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Q_ 7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걸로 안다.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한국 농구에 적응하는 데엔 어려움이 따랐을 거 같다.
최_ 코트 내 문제보다는 선후배 관계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아예 개념이 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엔 한국 친구가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해서 한국말을 할 기회도 적었다. 한국에 와서 농구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농구 외적인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밖에서 적응을 못 하니 자연스레 충돌이 일어났다. 다 내 잘못이다.
 
Q_ 드래프트 전에 주희정(SK)과 매치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운명처럼 주희정이 있던 KT&G에 입단했다.
최_ 그 인터뷰에 임하기 전에는 NBA를 목표를 삼았다. 제일 잘하는 선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짱(최고)이 되기 위해서 잘하는 선수를 꼽았다. 희정이 형 고향이 부산이라 그런지 같이 많이 데리고 다니며 잘 챙겨줬다. 희정이 형이 쌍둥이를 낳았다고 해서 놀랐다(웃음). 연습 때 매치업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미국과 달리 일대일 플레이는 거의 없었다.
 
Q_ 해외교포 선수 중 자리를 잡은 선수는 김효범(KCC)이 유일하다. 해외교포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최_ 아예 이미지가 박혔다. 효범이 형 같은 경우,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데다 신체 조건도 좋다. 또 2~3년 정도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 (팀에서) 계속 키워줬고 한국 문화에 적응할 기회도 주어졌다. 반면, 나와 금동, 리차드 한(한상웅) 등은 그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럴 틈도 없었다. 매일 이겨야 하는데 선수를 키우기 위해 경기에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이미지로 판단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한국에 온지 5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한국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농구도 지난 시즌에 제일 많이 배웠다. 5명, 나아가 팀원 모두 뭉쳐야 우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점들을 아직 잘 모르는 선수들도 꽤 있을 것이다.
 
Q_ 2008-09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수련선수였다. 그런데 2011-12시즌부터 통역을 맡았다. 1년 공백이 있었는데 그 동안에는 뭘 했나.
최_ 7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처음 한국에 왔었다. 2년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더 홈(집)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운동이랑 영어 밖에 없었다. 1년여 동안 헬스 트레이너, 영어 강사를 했다. 어느 날 안양 경기장에 왔다가 감독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우연히 기회를 주셨다. 예전에도 시즌 도중에 잠깐 (통역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날 인터뷰가 걸렸다. 조나단 존스로 기억하는데 엄청 서툴렀다. 아마 포털사이트에 동영상이 있을 거다. 최악이다 최악!(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 농구를 알고 영어도 하니까 기회를 주셨던 것 같다.
 
Q_ 미국에서 농구를 했다. 농구공을 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최_ 4살 차이의 형이 한 명 더 있다. 축구면 축구, 태권도면 태권도, 공부면 공부, 못 하는 게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축구는 인기가 없더라. 덩치가 작아 미식축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농구를 선택했다.
 
Q_ 팀에서 선수로 활약하다가 통역이 된 특별한 케이스다. 다른 통역들보다 뚜렷한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최_ (후안) 파틸로는 외국에서 처음 농구하는 데다 성격이 정말 특이한 선수다. 미국에서 흑인선수들과 농구를 많이 했는데 정말 별의별 애들을 다 봤다. 이런 실전 경험이 있다 보니 농구와 사생활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국선수의 마음을 편안하게끔 해줄 수 있지 않나 싶다.
감독님께서 모든 지시를 하나하나 내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농구를 직접 해봐서 그런 고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내가 선수 때 하지 못한 것들을 비롯해 자세, 위치, 스탠스 등 감독님께서 말씀하지 않는 것도 외국선수들에게 이야기한다. 감독님께서도 이를 잘 아신다. 그러면서도 나를 신뢰한다. 그런 세부적인 게 큰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Q_ 수련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외국선수를 따진다면 약 20명에 가깝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선수는 누군가.
최_ 로드니 화이트. (그가 한국에) 오기 전에 사건(마리화나를 재배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음)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관리를 위해) 둘이 같이 살았다. 사실 NBA 경력자에다 돈도 많이 번 선수였다. 자칫 (나와) 같이 생활하면 불편해 할 수 있다. (같이 살고 안 살고는) 전적으로 화이트의 결정이었다. 만약 안 된다고 했으면 내가 일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거다. 같이 살아서인지 특별했다. 화이트 자기만의 세상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직도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낸다. 그리고 괜히 NBA에 진출한 게 아니었다.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개인 기량이 가장 뛰어났다.
 
Q_ 당신이 팀에 합류한 이후 KGC인삼공사(KT&G 포함)의 최고 외국선수 조합은 2008-09시즌의 마퀸 챈들러와 캘빈 워너가 아니었나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 조합을 꼽는다면.
최_ 외국선수들만 보면 워너와 챈들러도 좋았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면서도 좋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설령 워너가 있었어도 우승은 어려웠을 거 같다. 프로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시즌(크리스 다니엘스)이 제일 성공했다고 본다. 2009-10시즌의 다니엘스와 조셉 테일러도 지난 시즌의 국내선수 멤버와 함께 뛰었다면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다.
 
Q_ KGC인삼공사에서 뛰었던 테일러가 오리온스의 대체 외국선수로 왔다.
최_ 어제(3월 14일) 통화했다. 테일러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1년 선배다. 테일러가 대만에서 출국하며 “KBL에 복귀할 것이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나자”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재미있어질 거 같다. 매치업 상으로는 리온(윌리엄스)의 체력 부담이 있기에 테일러를 영입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테일러는 스피드가 빠르고 자리를 잘 잡는 선수다. 둘 다(테일러와 파틸로) 괴물이라 기대된다. 좀 더 일찍 와서 올스타전 덩크 컨테스트에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Q_ KGC인삼공사는 2008-09시즌부터 매 시즌 통역이 바뀌었다. 다양한 통역자들을 접해봤는데 지금 일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듯싶다.
최_ 선수일 때 ‘나라면 이렇게 전달하겠다’는 생각에 직접 설명을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네가 통역해”라는 말이 돌아왔다. 실컷 혼났다. 외국인코치가 국내선수들에게 지시를 많이 내린다. 그런데 내 스스로가 한국말이 서투르다.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그 때 감독님께서 두꺼운 팻 라일리의 책을 번역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작업을 하면서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다 좋은 추억이다. 원정경기를 가면서 기차 안에서 핸드폰으로도 번역하는 등 틈만 나면 공부를 했다.
 
Q_ 통역은 외국선수의 의사소통만을 돕는 것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외국선수들의 바깥 생활에도 불편이 없도록 도와줘야 한다. 개인 생활이 없어 힘들지는 않나.
최_ 이 일의 제일 큰 단점이다. 그 이유 때문에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더라. 구단마다 다르겠지만 A구단은 외국선수 차량의 기사가 따로 있고 B구단은 입국할 때 국제 면허를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 개인적으로 차량을 제공한다. 현재 우리 팀 선수들의 이동을 맡고 있는데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밥도 외국선수와 매일 같이 먹는다. 아침은 따로 장을 봐주지만 그 외는 같이 먹다 보니 살이 많이 쪘다. 지금은 조절하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모든 생활에 익숙해졌다.
 
Q_ 통역으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무엇인가.
최_ 말을 전하는 게 통역의 가장 작은 일이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라도 할 수 있는 업무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국제 업무나 (외국선수) 스카우트는 1년 내내 돌아간다. 에이전트와 인맥을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Q_ 이번 시즌은 거의 끝났다. 외국선수 자료 수집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최_ 물론이다. 우선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NBA D-리그 선수들, 대학 졸업생들의 기록과 영상을 확인한다. 그 중에 몇 명을 고르면 (감독님께서) 직접 현장에 가서 기량을 살펴보신다. 3월 현재, 선수가 워낙 많아서 그 수를 줄이고 있는 상태다. 가장 먼저 유럽 쪽부터 살펴보고 있다.
우리(KBL) 시즌이 끝나면 유럽의 마지막 라운드와 D-리그의 플레이오프를 볼 수 있다. 감독님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인보다는 여러 나라에서 뛰어본 선수들을 선호한다. 여러모로 코트 안팎에서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외국선수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자원들이 많다. 그래서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한국 에이전트와는 한계가 있다. 미국 현지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인맥을 쌓는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2~3시에 그 쪽 친구들이 출근한다. 밤새면서 통화하고 관심을 보여야 그들도 우리에게 흥미를 보인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 개념이 없다(최은동 통역은 인터뷰 전날 외국선수 스카우트 업무로 밤을 샌 뒤 인터뷰에 임했다).
 
Q_ 외국선수와 가장 가깝게 지내기에 잘 알 거다. 외국선수들은 정말 한국 생활에 대해서 만족하나.
최_ 직접 뛰어보고 경험한 선수들은 (KBL에 대해) 나쁜 말을 거의 안 한다. 다만, 심판 욕은 많이 한다. 이에 반해 국내선수들이나 경기, 체육관, 지도자에 대한 불평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음식이 잘 나오고 가족 초청도 잘 해줘 좋아하는 듯하다.
지금은 연봉이 줄면서 관심도도 함께 하락했다. 다른 나라는 세금을 뺀 연봉을 제시한다. 외국선수들은 미국에서도 세금을 내야 한다. 이건 수정(세금 공제 후 연봉으로 공지)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외국선수들의 또 다른 불만은 재계약 관련이다. 상호간에 합의 후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선수가 싫다고 하면 무려 5년 동안 KBL에 돌아오지 못한다. C선수 같은 경우, KBL은 마음에 들지만 구단 정책에 이견을 보였다. 결국 그는 다른 팀 이적을 노렸다. 하지만 어이없는 규정 때문에 5년 동안 KBL에 발길조차 들이지 못하고 있다.
 
Q_ 이번 시즌부터 외국선수 제도가 바뀌었다. 외국선수들의 선발 라운드에 따라 차등 연봉이 지급되고 있다. 외국선수들의 불만은 없나.
최_ 우리 팀의 경우, 두 선수를 잘 활용하고 있어 별 상관이 없다. 간혹 경기에 많이 나설 때 불만이 있긴 하지만 계약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년 계약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뛴다.
현재 외국선수들의 연봉이 3만 5천 달러와 2만 5천 달러로 나뉘어 있는데 구단에서 6만 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5만 불 외국선수를 데려오면 다른 한 명을 1만 불짜리 외국선수로 메우는 식으로 말이다.
 
Q_ 작전타임 중 감독이 외국선수에게 화를 낼 때 통역하기가 참 난감할 것이다.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았나.
최_ 내 생각엔 있는 그대로 통역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나도 한국말을 제대로 못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이 욕을 하던 칭찬을 하던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 코트 안에서 다른 선수에게 따로 지시할 때가 많은데 (외국선수도) 그런 정보까지 모두 알아야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외국선수라고 맡은 역할만 하라고 하면 그 생각은 정상이 아니다. 항상 그렇게 말을 해준다. 그래야 코트 안팎에서도 잘 어울릴 수 있다. 트레이닝 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외국선수에게 밖에서 무슨 농담을 하며, 왜 웃고 있는지 그대로 말해준다. 그러면서 다 친해지고 가족이 되는 거다.
 
Q_ 외국선수들도 한 시즌을 보내고 나면 한국말을 몇 마디 익힐 것이다. 가장 빨리 익히는 말과 자주 사용하는 말은 무엇인가.
최_ ‘감사합니다’와 ‘안녕하세요’다. 식당에 갔을 때에는 ‘저기요’가 유용하게 쓰이는 듯하다. 한 시즌만 있으면 10개 이상 단어를 익힌다. 욕도 조금 할 줄 안다. 연습이나 작전 등에 쓰이는 숫자도 종종 배운다.
 
Q_ 시즌 초반, 파틸로가 한창 잘 나갈 때, 경기 전이나 경기 후 인터뷰 자제를 요청했었다.
최_ (그 정도로 잘 할 거라고) 예상을 못했다. 파틸로는 어린 선수다. 칭찬하고 띄워주면 기고만장해지고 자만해질까봐, 그렇게 되면 구단과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특별히 신경을 썼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대학 때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다행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같이 공유한 게 많아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했다.
 
Q_ 파틸로가 이상범 감독의 눈 밖에 났다. 이유가 궁금하다.
최_ 한두 번 했던 행동 때문이다. 다 문화 차이다. 파틸로는 외국생활을 처음 경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기만 스타가 되어야 살아남고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팀 승리보다는 자기만 잘 하면 되는 듯한 플레이를 했었다.
감독님께서는 그런 행동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렇다고 우리 팀에 스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파틸로는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다행히 지금은 목표가 우승으로 바뀌었다. 5분을 뛰던 10분을 뛰던 팀을 위하는 선수로 변신했다.
 
Q_ 키브웨 트림이 시즌 초반과 완전 달라졌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는데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_ 자신감이다. 파틸로가 초반에 잘해주면서 트림이 백업 역할을 맡았는데 여기서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그러던 중, 갑자기 파틸로를 교체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감독님은 트림을 거의 풀타임 출전시켰다. 마침 키브웨의 여자친구가 입국했을 때였다. 이야기 상대도 있었고 기회를 잘 잡은 덕분에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즌 끝날 때까지 자신감을 가져갔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조금 떨어진 상태다. 여자친구를 다시 불러야 할 듯싶다(웃음). 그래도 경험이 많아 적응을 잘 하는 편이다. 또, 선수들과 손발을 맞추기 위해 늘 노력한다. 코트 밖에서도 신사다.
 
Q_ 단순하게 농구단에 남고 싶어서 통역이 되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을 텐데.
최_ (통역이) 평생 직업은 아니다. 아직도 많이 배우는 입장이다. 가장 자신 있는 건 국제업무 스카우터다. 계속 이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목표다.
 
Q_ 이번 인터뷰 질문, 식상하지 않았나.
최_ 인터뷰를 자주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내겐 배움의 시간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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