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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트 로빈슨은 2000년대 단신선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키가 전부가 아니야!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단신 가드들

NBA는 2m짜리 선수가 슈팅가드를 보는 무대다. 210cm 선수에게 스몰포워드를 맡길까 고민하는 팀도 있다. 신체능력 면에서 NBA는 그 어떤 리그보다도 우월함을 자랑해왔다. 그런데 일반인 체격으로 당당히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 160cm로 주전가드를 맡았던 타이론 보그스, 170cm의 키로 덩크슛 챔피언이 됐던 스퍼드 웹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활약을 통해 ‘농구는 키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직접 입증해보였다. NBA 역사를 빛낸, 그리고 지금도 빛내고 있는 단신 선수 5인방을 소개한다.
 
글ㆍ황재훈 사진ㆍNBA 미디어 센트럴

 
이론 보그스 | 1965년생, 160cm, 전 샬럿 호네츠

타이론 보그스는 샬럿 호네츠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상대는 늘 그를 얕봤지만 사실 보그스는 고교시절부터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였다.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에서 활약했던 4학년 당시 14.8점, 9.5어시스트, 3.9스틸로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기도 했다.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미국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보그스는 단신 가드 중 경기운영 면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선수였다. 어시스트 수치 자체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쓸 데 없는 실수도 적었다. 다만 슛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제외하면 주전 포인트가드로는 나무랄 데 없던 1번 자원이었다.

보그스는 장신 선수들을 블록하는 장면으로 몇 차례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들어냈다. 덩크슛을 직접 보여준 적은 없지만 패트릭 유잉의 슛을 블록하던 장면은 지금도『유투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얼 보이킨스 | 1976년생, 165cm, 전 밀워키-골든스테이트

이시트 미시건 대학 출신의 얼 보이킨스는 NBA 드래프트에서 프로 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 탓에 CBA에서부터 프로 경력을 시작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작은 키 때문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보이킨스는 빠른 스피드뿐만 아니라 강한 체구까지 갖고 있었다. 장신들과 부딪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쉽게 포스트-업을 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좋았다.

보이킨스는 1999년 뉴저지 네츠에서 뛴 것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10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덴버에서 4시즌을 보낸 것 외에는 거의 매 시즌 팀을 옮기다시피 했다. 그만큼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이 많았다는 뜻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재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상대를 몰아치는 데에 능했다. 2004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상대로 생애 최다인 32점을 올리기도 했다. 『ESPN』은 "아마도 NBA 역사상 30점을 기록한 최단신 선수일 것"이라는 기사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뽑기도 했다.

이렇듯 그를 코트에서 오래 버티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투혼’ 덕분이었다. 32점을 올린 날, 보이킨스는 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코트를 누볐다.

 
스퍼드 웹 | 1963년생, 170cm, 전 애틀랜타

스퍼드 웹은 170cm 선수 가운데 가장 탄력이 좋았던 선수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나온 그는 신장이 작다는 이유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고 드래프트에서도 하위순번(4라운드 87순위)으로 지명되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농구장에 출입할 때 경비원이 신분증을 확인하는 촌극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핸디캡을 실력과 열정으로 커버했다.

흔히들 웹하면 가장 먼저 슬램덩크 이미지를 떠올린다. 1986년 올스타 슬램덩크 대회 당시, 그는 동료이자 전년도 우승자였던 도미니크 윌킨스를 꺾고 챔피언에 올랐다. 360도 회전 덩크는 모든 이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웹은 훗날 “덩크 대회에 나갔던 것이 후회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치가 덩크에만 한정된 것처럼 보여 섭섭했다며 말이다. 실제로 그의 전성기는 애틀랜타가 아닌 새크라멘토 킹스 시절이었다. 1991-92시즌, 웹은 16.0점, 7.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캘빈 머피 | 1948년생, 175cm, 전 샌디에이고/휴스턴
 
캘빈 머피는 단신 선수 가운데 단 한 번의 이적도 경험하지 않은 유일한 선수다. 또한 개인 득점력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로 기억된다. 덕분에 미국 농구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역대 최단신 NBA 선수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대학 시절, 머피는 올-아메리칸에만 3번 선정되는 등 무서운 기량을 지닌 선수였다. 1970년 NBA 드래프트 18순위로 NBA 팀의 부름을 받았던 그는 올-루키 팀에 선발되면서 재능의 싹을 보였다.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NBA에서 인정받는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날렵한 움직임과 수비력 덕분이었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수비는 만인의 호평을 받았다. 그 덕분에 줄곧 로케츠의 주전 가드로 나설 수 있었다.
 
또한 NBA 최고의 자유투 슈터이기도 했다. 1980-81시즌, 215개의 자유투 중 206개를 넣어 무려 95.8%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걷잡을 수 없는 폭발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머피는 1978년 3월 뉴저지 네츠를 상대로 무려 57득점을 퍼붓기도 했다.

 
네이트 로빈슨 | 1984년생, 175cm, 뉴욕 닉스

2000년대 단신선수의 상징(?)은 아마도 네이트 로빈슨이 아닐까 싶다. 2005년 드래프트 21순위로 NBA에 입성한 그는 정통 포인트가드보다는 탄력과 개인기가 좋은 듀얼가드에 가까운 선수다.

사실, 로빈슨이 NBA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기록이나 실력이 아닌, 화려한 덩크 때문이었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드와이트 하워드를 뛰어넘는 무서운 탄력을 선보이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올스타 슬램덩크 대회서 3번(2006, 2009, 2010년)이나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

포지션 본연의 역할을 잘 소화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올 시즌 시카고 불스에서 달라진 면을 보이고 있다. 탐 티보도 감독의 통제 아래 제법 성장했다는 평. 그 덕분에 데릭 로즈도 편한 마음으로 재활에 임할 수 있었다.

지난 2월 첫 주에는 17.8점, 6.8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하면서 동부 컨퍼런스 <주간 MVP>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노련함까지 갖추게 된 로빈슨의 활약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SIDE STORY | NBA에 도전했던 두 명의 일본인
 
NBA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두 명의 일본 출신의 단신 선수가 눈에 띈다. 와타루 미사카(170cm)와 타부세 유타가 주인공. 올해 나이 90세의 와타루 미사카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유타 대학 출신인 그는 1947년에 뉴욕 닉스에 입단해 NBA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흑인들조차 많이 뛰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동양계 선수로서는 더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 결국 3경기에서 7득점을 올린 뒤 방출됐다. 이후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며 전공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1999년, 유타 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로부터 55년 뒤, NBA에 또 다른 일본 선수가 등장한다. 175cm의 타부세 유타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와타루 미사카와는 달랐다. BYU-하와이에서 유학을 했던 그는 계속된 도전 끝에 CBA, ABA 등을 거쳐 2004-05시즌, 마침내 피닉스 선즈에 입단하는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활약 자체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2004년 11월 3일 피닉스와 계약을 맺은 후 40여일 뒤인 12월 16일에 방출 통보를 받고 말았다. 이후 2008년까지 꾸준히 NBA 문을 두드렸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일본 JBL로 컴백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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