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 그는 준비된 신인이었다. 농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주전으로 활약한 김윤태는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어 실전에 바로 투입 가능했다. 주전들의 부상으로 잇몸조차 없던 KGC인삼공사의 간니(영구치)처럼 활약한 김윤태를 만나보았다.
 
글ㆍ이재범   사진ㆍ김윤찬 기자, KBL 제공
 
Q_ 농구선수 김윤태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김_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처음엔 육상과 축구를 했다. 그런데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선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축구를 그만두려던 참에 농구부가 창단했다. 어릴 땐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최고 성적은 3위였다. 안남중 3학년 때 우승도 해봤다. 제물포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오)세근이 형(KGC인삼공사)과 (김)명진이 형(KT) 덕분에 곧바로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2학년 때도 챔피언에 올랐다. 3학년 땐 체전(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Q_ 어릴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도 많이 경험했다. 동국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_ 고등학교 코치님께서 “네 조건에 맞춰서 대학을 알아봐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동국대를 택했다. 코치님 말씀대로 입학하자마자 주전으로 뛰면서 팀을 MBC배와 종별선수권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4학년 때 종별 우승(김윤태는 MVP에 선정)도 차지했다. 1~2학년 때에 비해 다소 주춤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아쉬웠지만 대학 졸업 후 좋은 프로구단에 왔다. 지금까지는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Q_ 드래프트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빠른 순번(8순위)에 뽑혀서 기쁘다’고 말했다. 팀 동기 이원대(7순위)보다 늦게 선발되었는데 진심이었나.
김_ 솔직히 말하면 아쉽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더 잘 된 것 같다. 정말 이 팀에 잘 왔다고 생각한다. 대학 때 KGC인삼공사 농구를 많이 챙겨봤다. 빠른 농구를 좋아하는데 KGC인삼공사가 그런 경기를 펼쳤다. (김)태술이 형, (박)찬희 형(상무), (이)정현이 형이 있어서 뛸 자리가 없지 않을까 했는데 팀 내 선배들에게 보고 배울 점들이 정말 많아 기쁘다. (박)찬희 형(상무)이 복귀하면 아마도 더 늘어날 것이다. (선발 순위가 밀린 것은) 아쉽지만 오히려 더 잘 풀리지 않았나 싶다.
 
Q_ KGC인삼공사에 올 수 있었던 건 결국 전태풍, 이승준, 문태영의 이적 덕분이다(이들의 이적으로 KGC인삼공사는 드래프트 7,8,11순위 지명권을 가짐).
김_ 맞는 말이다. 여기 와서 들은 건데 찬희 형과 정현이 형이 나란히 입대하니까 원대와 나까지 두 명을 모두 보고 있었다고 했다. 감독님께서 누구를 먼저 뽑을지 물었을 때 아무나 먼저 지명해도 상관없다고 답했다. ‘가나다 순으로 뽑지 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고 하더라(웃음).
 
Q_ 기량만 놓고 보면 로터리 픽을 노릴 만 했다. 그래도 대학 4학년 때 프로 진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
김_ 대학에선 매년 선수들이 바뀐다. 1학년 때 팀에는 (김)동량이 형(모비스), (이)민재 형(LG)이 있었다. 형들이 나가고 난 후 내 경기 스타일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겁 없이 다 해서 2학년까지 잘 한다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다. 고학년이 된 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왜 저러지’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 공격해야 하는 스타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그 날 잘 하는 선수가 있으면 그 움직임을 살려야 했다. 4학년 되자 어느 순간에 ‘멘탈 붕괴’가 왔다. 가면 갈수록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년 선수와 경기 스타일이 바뀌면서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Q_ 드래프트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소감은 보통 “감독, 코치, 부모님께 감사하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부모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박수도 나왔고. 아무튼 참 인상적이었다.
김_ 부모님께서 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남들에게 주눅 들지 않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어릴 땐 철이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데 마침 자리가 주어져서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Q_ 프로 팀에 중-고교 선배인 오세근이 있어 더 기분이 좋았겠다.
김_ 물론이다. 세근이 형과 농구하는 선수들 모두가 부러웠다. 나도 인삼공사에 가서 손발을 맞추고 싶었는데 마침 여기에 오게 되었다(웃음).
 
Q_ 한 시즌을 치르며 자신감이 생겼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지닌 최대 강점인데.
김_ 이번에 좀 생겼다. 대학과 달리 볼도 많이 못 잡고 선수들 간에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 처음엔 주눅이 들었다. 눈치도 많이 살폈다. 다행히 (은)희석이 형, (김)성철이 형이 조언을 많이 해줬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이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대로 통했다. 그게 한두 번 되다 보니 5라운드 후반, 6라운드 들어와 자신감이 쌓였다.
희석이 형은 기술적인 면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강약조절이나 훼이크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셨다. 전략에 대한 조언은 성철의 형의 몫이었다. 두 분 모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다른 신인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Q_ 이상범 감독이 똑같은 포인트가드인 이원대보다 당신을 더 자주 코트에 내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_ (이)원대보다 힘이 조금 더 낫다. 태술이 형과 뛰면 2번(슈팅가드)을 봐야 하는데 상대 2번이 포스트-업을 해도 버틸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다. 감독님께서 늘 ‘도움수비 없이 네 혼자 막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신다. 말하기 쑥스럽지만 슛도 앞선다. 원대는 아직 슛 밸런스가 잡혀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대학 때부터 슛 거리가 길었다. 웬만한 지점에서도 슛이 날아간다. 그래서 원대보다 빨리 적응하지 않았나 싶다.
 
Q_ 동국대 시절 ‘제 2의 김승현’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_ 농구를 하고 있는 타 대학 친구들을 통해 ‘김윤태를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제 2의 김승현’이란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만 나는 그저 나, 김윤태일 뿐이다.
 
Q_ 김태술은 KBL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보고 배웠나. 또, 꼭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점이 있다면.
김_ ‘이 상황에서 이런 패스를 줄 수 있나’하는 놀라움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예상치 못한 패스가 와서) 놀라며 슛을 쐈는데 백차(에어볼)가 났다. 밖에서 볼 때도 ‘저렇게 패스가 가나?’라는 장면을 여러 번 보게 된다. 성공률 90%가 넘는 원 드리블 슛은 꼭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벤치에서 보다 보면 ‘저걸 어떻게 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Q_ 프로 데뷔전(18일 vs KT)에서 깨끗한 3점슛을 림에 꽂았다. 역시 ‘김윤태는 강심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뷔전을 되돌아본다면.
김_ 솔직히 긴장을 많이 했다. ‘아 내가 프로에서 뛰게 됐구나’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 때 3점슛도 ‘쏴야겠다’보다 ‘어 쏜다’라는 마음으로 던졌는데 다행히 깨끗이 들어갔다. 정신이 없었지만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또, 새로웠다. 대학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Q_ 다른 대학에 비해 팬층이 두꺼운 편인 동국대에서 대학농구리그를 경험했다. 대학과 프로는 서로 어떻게 다른 것 같나.
김_ 프로에 입단한 뒤 연습할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직업이지만 TV에서 보던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고 함께 밥을 먹으며 운동을 하는구나.’ 정말 신기했다. 다른 대학에 비해 동국대 경기는 관중이 많았지만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로는 어린 친구부터 나이 많으신 분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경기장 스케일도 더 크다.
 
Q_ 서울 삼성 전에서 동국대 출신이자 최고의 농구스타 김승현과 매치업을 이뤘다.
김_ 경기 전에도 ‘김승현 선수와 매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에 경기 전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합 중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웃음). 참 새로웠다. 대학교 시절, 교내 언론 인터뷰에서 동국대를 진학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승현 선수를 좋아해서 동국대에 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 선수와 경기를 뛰니까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다. (한 코트에서) 못 뛸 수도 있었던 데다 그저 눈으로만 지켜보는 선수였는데 함께 뛸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Q_ 가장 존경하거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_ ‘양동근 같은 스타일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슛이나 돌파를 좋아하고 다른 가드들에 비해서 패스를 뛰어나게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양동근을 보고 배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동시에 패스도 잘하고 싶다. 그래서 태술이 형에게 많이 배우려 노력 중이다. 동근이 형 스타일이면서도 패스를 잘 하는 태술이 형! 어렵나?(웃음) 결론은 태술이 형이다.
 
Q_ 동국대 서대성 감독은 수비를 많이 강조했다. 이상범 감독은 더욱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는 지도자다. 대학 때의 경험이 적잖은 도움이 될 텐데.
김_ 동국대 시절보다 더 열심히 수비를 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압박수비를 하는데 이상범 감독님께서 ‘아니다. 뚫려도 되니까 더 붙어서 따라다니라’고 주문하셨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지금은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 밸런스가 잡혔다. 감독님께서 미리 알고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 물론, 한참 더 배워야겠지만 수비 균형이 잡혀가는 걸 느낀다.
 
Q_ 이 감독은 그래도 공격에서 선수들에게 자유를 주는 편이다. 이런 팀 분위기가 당신이 활약하기에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할 듯싶다.
김_ 이상범 감독님께선 ‘수비가 되면 공격도 자연스레 잘 풀린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늘 수비를 강조한다. 단, 공격에서 기회가 났다 싶으면 무조건 (슛을) 쏴야 한다. 머뭇거리는 걸 굉장히 싫어하신다. 벤치에 있다가 바로 (코트에) 들어가도 찬스가 나면 곧장 야투를 시도해야 하는 이유다. 그 상황에서 패스를 하게 되면 동료들이 어렵게 슛을 쏠 수밖에 없다.
5개 쏴서 설령 모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신다. 계속 야투가 말을 듣지 않으면 잠시 (벤치에서) 쉬었다 들어가면 된다. 공격은 자유롭고 편하되 정해진 룰 안에서 하면 그만이다.
 
Q_ 12개의 1부 대학 중 동국대가 숙소와 체육관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프로 팀 중 유일하게 체육관과 숙소가 한 건물에 있다. 연습을 편하게 할 수 있겠다.
김_ 대학 때는 정말 가까웠다. 새벽 운동하고 나서 오전, 오후, 야간까지 꾸준히 연습했다. 거의 생활화되었던 하루 일과였다. 당연히 이렇게 (숙소와 체육관이) 가까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KGC인삼공사도 예전에는 운동을 한 번 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했다고 들었다. (프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팀은 개인 운동이 많은 편이다. 나와 원대, (김)민욱이 셋이서 꾸준하게 연습했다.
 
Q_ KGC인삼공사는 지난해 챔피언이다. 팀 내에 디펜딩 챔피언만의 분위기가 있을 것 같은데.
김_ 감독님과 형들이 ‘경기에 이기든 지든 우리는 전 시즌 우승팀이다’라며 ‘지난 시즌에는 안 이랬나? 자부심을 가져라’라고 말씀한다. 자만하는 대신 자신감을 가지라고 늘 강조하신다.
 
Q_ 이번 시즌 오세근을 시작으로 팀 내에 부상자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플레이오프를 예상한다면? 4강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SK를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김_ SK에게 꽤 강한 편이다. 사실은 최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부상이 팀을 덮쳤다. 지금까지 이 멤버로 잘 해왔다. 플레이오프 역시 지금 로테이션 그대로 갈 것 같다. 부상 선수가 많아서 아쉽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활약은 펼친다면 우리에겐 플러스가 되는 일이다.
 
Q_ 10년 뒤 김윤태는 어떤 모습일 거 같나.
김_ ‘김승현’처럼 ‘대단했다’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선수. 어딜 가든 박수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한때’라고 해도 정말 잘 했고 우승도 해본 그런 선수 말이다.
 
Q_ 김태술은 한 세대 위라고 볼 수 있다. 1월 드래프티인 김시래(모비스), 김명진(KT)부터 10월 드래프트 동기 유병훈(LG), 정성수(SK), 김지완(전자랜드) 등과 경쟁해야 한다. 박경상(KCC)은 이미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그들을 넘어서야 넘버원 가드가 될 수 있다.
김_ ‘누가 잘 했다’ 는 말이 들리고 박경상, 시래 형, 명진이 형 등이 활약한 기사도 눈에 보인다. 지금 앞서 있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따라갈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좋겠다. 얼른 격차를 없애고 싶다.
 
Q_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해 달라.
김_ 김윤태라는 선수를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구단과 팬, 부모님을 위해 항상 열심히 할 것이다. 굳이 일부러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런 선수도 있구나’라고 여기신다면 만족할 것 같다.
 
QUICK INTERVIEW | 김윤태에게 OOO이란?
Q_ 김윤태에게 김명진이란?
김_ 뗄 수 없는 관계. 친형제 같은 사이라 할 수 있다. 초-중-고를 같이 나온 덕분에 같이 살다시피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잘 하기 위한 신경전을 많이 펼쳤다.
 
Q_ 김윤태에게 최고의 경기는?
김_ 포인트가드의 첫 번째 조건이 경기운영과 패스다. 이를 통해 팀을 승리로 이끈다면 내 인생 최고의 경기가 될 것이다.
 
Q_ 김윤태에게 포인트가드란?
김_ 바로 나! 김윤태라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맡은 역할이 포인트가드이고 포인트가드 포지션이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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