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르브론 제임스다.

올해도 동부 왕좌의 주인공은 르브론이었다. 10년 전 그에게 뼈아픈 7차전 패배를 안긴 보스턴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34살의 베테랑이 올시즌 100번째 경기에서 48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클리블랜드의 파이널 진출을 이끌었다. 35점 15리바운드 9어시스트. 기가 막히는 활약이다. NBA 선수가 7차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경기를 르브론이 보여줬다.

이렇게 되니 다시 궁금해진다. 르브론은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농구의 신’이자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28일 르브론이 보스턴을 상대로 거둔 승리로 인해 케케묵은 이 논쟁에 또 다시 불이 붙었다.

 

2018년의 르브론, 새 역사를 쓰다

르브론이 마지막으로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2010년이었다. 동부지구 준결승에서 무릎을 꿇었다. 상대는 숙적 보스턴이었다. 26살의 르브론이 이끄는 리그 1위 클리블랜드는 6경기 만에 보스턴에 시리즈 승리를 내줬다.

2승 3패로 뒤진 채 맞이한 6차전. 2년 연속 MVP 르브론은 TD가든에 운집한 극성스러운 보스턴 팬들에게 매순간 조롱당했다. 르브론이 자유투 라인 앞에 서자 보스턴 팬들은 ‘New York Knicks!’라고 함께 외쳤다. 클리블랜드를 떠나 뉴욕으로 이적하라는 조롱이었다. 경기 종료 후 라커룸으로 향하며 르브론은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벗어 제꼈다. 그리고 그해 7월 르브론은 ‘더 디시전 쇼’를 통해 전세계 NBA 팬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 저는 저의 재능을 남쪽 해안가로 옮기고 마이애미 히트에 합류할 예정입니다.(In this fall, this is very tough, in this fall I'm going to 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and join the Miami Heat.)”

정확히 4년 뒤인 2014년 7월, 르브론은 이번엔 편지를 통해 중대한 결정을 팬들에게 알렸다. 그 내용인즉슨 친정팀 클리블랜드로 복귀하겠다는 것이었다.

‘오하이오 북부에서는 어떤 것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In Northeast Ohio, nothing is given. Everything is earned.)’

‘나는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I’m ready to accept the challenge. I’m coming home.)‘

NBA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두 번의 결정을 통해 르브론은 동부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 마이애미 소속으로 치른 2011년 플레이오프부터 르브론은 단 한 해도 빠짐없이 동부지구를 제패했다. 파이널에서는 괴로운 패배를 당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동부지구의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일은 없었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카이리 어빙, 케빈 러브 등을 호위병 삼아 매년 동부 왕좌를 지켜냈다. 그리고 르브론은 마이애미에서 2번, 클리블랜드에서 1번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며 우승 갈증도 해소했다.

하지만 올시즌은 상황이 다소 달랐다. 르브론과 함께하는 가장 강력한 호위병 한 명이 반란을 선언하며 다른 팀으로 떠났다. 카이리 어빙이었다. 하필 그는 르브론의 숙적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 어빙의 대가로 받아온 아이재아 토마스, 제이 크라우더는 모두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시즌 중에 다시 트레이드됐다. 트레이드 이후에도 반등에 실패한 클리블랜드는 동부지구 4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토론토, 보스턴, 필라델피아 밀려 간신히 1라운드 홈 코트 이점을 확보했다. 지난 7년 동안 르브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플레이오프에 대한 전망도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1라운드 첫 경기에서 인디애나에 충격적인 18점 차 완패를 당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클리블랜드는 폭주했다. 이미 먹어본 고기를 또 놓치지 않았다. 인디애나를 7차전 승부 끝에 극적으로 누른 클리블랜드는 2라운드에서 토론토를 4전 전승으로 손쉽게 제압했다. ‘르브론토(LEBRONTO)’라는 해시태그가 현지에서 유행할 정도로 완벽하고 압도적인 승리였다. 인디애나, 토론토와의 시리즈에서 르브론은 위닝 버저비터를 두 차례나 터트리며 클리블랜드 팬들을 열광케 했다. ‘킹 제임스’의 위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보스턴과의 시리즈는 결코 쉽지 않았다. TD 가든에서 치른 첫 2경기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 1차전은 25점 차로, 2차전은 13점 차로 졌다. 공격은 답답했고 수비는 망가져 있었다. 특히 2차전에서는 르브론이 42점 10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했음에도 무릎을 꿇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3차전부터 보스턴의 수비 구멍 테리 로지어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한 클리블랜드는 결국 시리즈를 2승 2패 동률로 만들었고, 5차전 패배 이후 다시 2연승을 거두며 극적인 시리즈 역전에 성공했다. 르브론에 무릎을 꿇으면서 보스턴은 창단 후 이어져온 2-0 리드 시리즈 37연승 행진이 중단됐다. 르브론이 또 다시 동부를 제패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르브론은 8년 연속 파이널 무대에 도전한다. NBA 역사상 8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 선수는 앞서 5명밖에 없었다. 모두 60-70년대 보스턴 소속 선수들이었다. 르브론은 6번째로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NBA의 가장 큰 변곡점으로 평가받는 1979년(3점슛 도입,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데뷔) 이후로 기준을 잡으면 8년 연속 파이널 진출은 오직 르브론만이 해낸 일이다.

 

르브론 VS 조던, 논쟁은 뜨거워지고 있다

NBA 파이널은 오는 6월 1일에 시작된다. 아직 르브론과 맞붙을 상대는 결정되지 않았다. 골든스테이트와 클리블랜드의 4년 연속 파이널이 성사될 수도 있고, 휴스턴이 23년 만에 파이널 무대를 밟을 수도 있다. 29일 오전에 열릴 휴스턴과 골든스테이트의 7차전이 끝나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파이널도 아직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물론 어떤 팀이 올라오든 서부 우승 팀이 더 강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9번째 파이널을 통해 르브론은 우승 횟수 4번, 준우승 횟수 5번을 기록한 선수가 될 수도 혹은 우승 횟수 3번, 준우승 횟수 6번을 기록한 선수가 될 수도 있다. 우승은 당연히 그의 커리어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준우승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치명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파이널이 시작되기 전에 르브론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분명 재밌는 일이다. 올해 파이널 결과와 별개로 르브론이 쌓아온 업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르브론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번(2007년)을 제외하고 매년 빠짐없이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됐다. 횟수로 따지면 12번. NBA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정규시즌 MVP는 4번 차지했고 올스타는 2005년부터 꾸준히 선정되고 있다. 2008년에는 득점왕을 차지했고 올-NBA 디펜시브 팀도 6번 차지했다. 수상 실적은 웬만한 선수를 손쉽게 능가한다. ‘그분’ 마이클 조던을 제외하면 말이다.(올-NBA 퍼스트 팀 10회, 올-NBA 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정규시즌 MVP 5회, 득점왕 10회, 스틸왕 3회)

르브론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통산 기록이다. 르브론은 현재 정규시즌 통산 득점(31,038점), 야투 성공(11,280개)에서 조던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으며, 어시스트 부문에서는 현역 1위 크리스 폴에 불과 500개 뒤진 채 역대 11위에 랭크돼 있다. 플레이오프 기록은 더 대단하다. 8년 연속 파이널 무대를 밟으면서 르브론은 누구보다 꾸준히 플레이오프 누적 기록을 쌓아왔다. 다음은 르브론이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주요 플레이오프 통산 기록이다.

득점: 6,775점(1위)
스틸: 414개(1위)
야투 성공: 2,408개(1위)
3점슛 성공: 364개(2위)
자유투 성공: 1595개(1위)
자유투 시도: 2153개(2위)
수비 리바운드: 2088개(2위)
어시스트: 1647개(3위)

현지에서는 이미 많은 매체들이 르브론을 확고부동한 역대 2위 이상의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폭스스포츠」는 NBA 역대 최고 선수 25인을 발표하며 르브론을 마이클 조던에 이어 2위로 놓았다.

‘2016년 파이널에서 르브론은 클리블랜드를 1승 3패 상황에서 우승으로 이끌면서 NBA 역대 2위에 오를 수 있는 선수가 됐다. NBA 역사상 르브론처럼 압도적 존재감, 다재다능함, 영리함을 동시에 갖춘 선수는 없었다. 아직 말하기엔 조금 이르지만 르브론은 10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할 수도 있는 선수다. 그럼에도 르브론을 싫어하고 싶다면 싫어해도 좋다. 하지만 르브론보다 이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마이클 조던)뿐이다.’ 「폭스스포츠」의 코멘트다.

「폭스스포츠」에 10개월 앞서 「CBS스포츠」도 르브론을 마이클 조던에 이어 역대 2위의 선수로 평가했다. 「CBS 스포츠」의 평가는 조금 더 자극적(?)이었다.

‘2016년 6월 이후 르브론은 마이클 조던의 전설을 진짜로 위협할 수 있는 최초의 선수가 됐다.’

28일 르브론이 보스턴을 누르고 8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하면서 소위 ‘르브론 VS 조던’ 논쟁은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르브론이 그만의 영역을 완전히 개척해냈다고 보는 이는 이미 충분히 많으며, 조던과 충분히 비교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보스턴과의 7차전이 끝난 후 코비 브라이언트는 트위터를 통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르브론의 이름과 비브라늄(Vibanium)을 합성한 ‘르브라늄(Lebranium)’이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해 르브론의 강력함과 폭발력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면서 ‘NBA 팬들은 누구도 평가절하하지 않고 (르브론의 위대함을) 즐길 수 있다. 나는 르브론이 보여주는 플레이를 사랑한다. 정답이 나오지 않을 논쟁은 더 이상 하지 말자’라고 썼다.

제레미 린은 아예 직접 르브론과 조던 중 누가 더 나은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르브론은 조던과 비교하면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거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 답을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린이 트위터에 쓴 말이다.

22년 동안 NBA 리포터로 일하며 조던과 르브론의 플레이를 모두 현장에서 지켜본 TNT 리포터 데이비드 알드리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음은 알드리지가 7차전 종료 직후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오늘 르브론이 성취한 업적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의 심보가 싫다. 르브론은 8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했고 이미 올-타임 레벨의 위대한 선수다. ’조던과 르브론 중 누가 더 나은 선수야?‘와 같은 멍청한 논쟁은 이제 그만 잊어버려라. 지금 르브론은 위대하다.’

 

지금 르브론은 시카고의 유령을 쫓고 있다

2016년 8월의 일이다. 두 달 전 극적으로 커리어 세 번째 우승을 맛본 르브론에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내용인즉슨 이미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상황에서 그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르브론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바로 내가 쫓고 있는 한 유령이다. 시카고에서 뛰었던 그 유령.”

‘시카고에서 뛰었던 그 유령’이란 다름 아닌 마이클 조던이었다. 은퇴 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로 남았기에 ‘유령’이라고 칭한 것이리라. 어쨌든 르브론은 이 인터뷰를 통해 조던의 업적을 쫓아가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르브론의 커리어가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역대 2위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르브론이 이미 조던을 위협하고 있다고, 혹은 조던과 동등한 수준의 선수가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르브론의 플레이, 르브론이 쌓아온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도 꽤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르브론은 이제 ‘역대’를 논할 만한 수준의 선수가 됐으며, 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던과 비견될 만한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34살의 나이에 82경기를 모두 소화하고 시즌 100번째 경기에서 48분 풀타임을 출전한 르브론이다. 데뷔 이래 플레이오프 경기를 부상 때문에 단 한 번도 결장한 적이 없는 역대 최고 수준의 ‘금강불괴’다. 르브론이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노쇠화를 최대한 늦추면서 커리어를 오래 이어간다면 그의 통산 기록과 수상 실적, 나아가 우승 횟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재 존재하는 조던과의 격차는 더 줄어들 여지가 있다.

혹여나 르브론이 은퇴 전에 마이클 조던과 동일한 우승 횟수(6회)를 달성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NBA 팬들은 농구 역사상 가장 골치 아프고 시끄러운 논쟁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은 때가 조금 이르다. 르브론의 커리어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34살의 나이에도 그는 어떤 20대 선수보다 강력하고 압도적이다. 르브론의 커리어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당연히 그가 은퇴할 때 어떤 수준의 업적을 쌓아뒀을지도 아직은 전망하기 힘들다. 그저 우리는 때로는 숨죽이며, 때로는 열광하며 지켜보면 될 일이다.

왜냐고? 우리는 모두 목격자이기 때문이다.(Because we are all witnesses.)

 

 

사진 = 펜타프레스, 나이키 제공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