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승기 기자] 제임스 하든과 러셀 웨스트브룩은 슈팅가드인가, 포인트가드인가? 앤써니 데이비스나 드마커스 커즌스는 센터일까 아니면 파워포워드일까? 르브론 제임스나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포지션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포지션 개념으로 구분하기 힘든 선수들이다. 현대농구의 변화된 흐름에 맞게 포지션을 다시 정립해보도록 하자.

 

♣ 전통적인 포지션 개념은?

원래의 전통적인 포지션 개념은 지금과 달랐다. 널리 알려진 현재의 5개 포지션(센터, 파워포워드, 스몰포워드, 슈팅가드, 포인트가드)이 아니라 센터와 포워드, 가드 이렇게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센터(Center)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우리 팀의 골밑을 사수하며 상대 골밑에 침투해 득점을 담당했다. 포워드(Foward)는 센터를 보좌하며 득점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역할이었다. 가드(Guard)는 볼 간수를 최우선시하며, 안정적인 경기운영에 힘썼다. 각 포지션의 역할은 영어 이름과 그 뜻 그대로였다.

그러다 포워드가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로, 가드가 슈팅가드와 포인트가드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워드 중 센터를 도와 궂은일을 전담하는 키 큰 포워드가 파워포워드로, 내외곽을 넘나들며 득점을 노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포워드가 스몰포워드로 구분됐다. 또, 가드 중 경기운영에 전념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플로어 리더가 포인트가드, 키가 조금 더 크고 패스보다는 중장거리 슈팅을 노리며 리딩가드의 경기운영도 돕는 가드가 슈팅가드로 불렸다.

각 포지션을 간단히 숫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포인트가드는 1번, 슈팅가드는 2번, 스몰포워드는 3번, 파워포워드는 4번, 센터는 5번으로 부른다. 만약 “저 팀은 5번이 좋은데 1번이 약해”라고 한다면, 센터는 강하지만 포인트가드 포지션이 약하다는 의미다.

♣ 전통적인 포지션별 역할

이쯤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포지션별 역할을 한 번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NBA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유형들이다.

센터는 말 그대로 센터였다. 팀 공수의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공격에서는 큰 키와 덩치를 바탕으로 골밑에서 가장 확률 높은 득점을 노렸다. 수비에서는 림 프로텍터 역할에 충실했다. 아무래도 가장 직접적으로 림을 공략하고, 또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키와 덩치가 큰 선수들이 센터 포지션을 맡아왔다.

조지 마이칸,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과 같은 초창기 슈퍼스타들은 모두 센터였다. 또, 1970~80년대를 수놓았던 카림 압둘-자바와 모제스 말론, 1990년대를 호령했던 하킴 올라주원과 패트릭 유잉,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알론조 모닝도 최고의 센터들로 각광받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야오밍과 드와이트 하워드가 센터 포지션에서 족적을 남겼다.

현 리그에서는 공수 양쪽에서 팀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센터들이 많이 사라졌다. 다재다능한 공격형(드마커스 커즌스, 니콜라 요키치 등)이거나 수비형(루디 고베어, 디안드레 조던 등)이 더 많다. 게다가 외곽으로 돌지 않고 페인트존에서만 활약하는 빅맨(안드레 드러먼드, 드와이트 하워드 등)들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비록 외곽슛을 이미 장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엘 엠비드와 마크 가솔, 칼-앤써니 타운스가 그나마 우직한 전통적 센터 플레이에 가까워 보인다.

파워포워드는 사실 센터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던 포지션이다. 센터를 도와 적극적으로 몸싸움하고, 수비하며, 리바운드에 가담한다. 득점을 노리기보다는 궂은일을 전담한다고 하여 ‘블루워커’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0년대 스타였던 벅 윌리엄스, 1990년대의 찰스 오클리 같은 선수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리그 역사를 살펴봐도 파워포워드 포지션의 레전드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파워포워드가 경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었던 다재다능한 파워포워드들(케빈 가넷, 찰스 바클리 등)이나, 포지션을 정확히 알 수 없던 선수들(팀 던컨, 덕 노비츠키 등), 압도적 득점력과 화려한 기술을 자랑했던 슈퍼스타들(칼 말론, 밥 페팃, 케빈 맥헤일 등)은 꽤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력자의 역할에 머물면서 정말 전통적 개념의 파워포워드 플레이로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데니스 로드맨)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현 리그에서는 유타 재즈의 데릭 페이버스가 이런 플레이를 한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타지 깁슨,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에드 데이비스 또한 정통파 파워포워드로 부를 만하다.

스몰포워드는 자고로 매우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맡아 왔다. 파워포워드처럼 리바운드를 따내고, 슈팅가드처럼 득점하고, 포인트가드처럼 경기를 지휘하는 등 내외곽의 교두보 역할을 해내야 하기 때문. 1960년대 레전드 엘진 베일러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스몰포워드 개념으로 활약했던 첫 번째 스타 플레이어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릭 배리, 존 하블리첵, 래리 버드, 줄리어스 어빙, 알렉스 잉글리시, 애드리언 댄틀리, 제임스 워디, 도미니크 윌킨스, 크리스 멀린, 데일 엘리스, 글렌 라이스, 스카티 피펜, 그랜트 힐 등 스몰포워드 레전드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클라이드 드렉슬러, 조지 거빈의 공식 포지션은 슈팅가드였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들은 사실 스몰포워드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플레이스타일이 정통파 스몰포워드에 가깝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맥그레디나 폴 피어스도 같은 케이스로 보면 된다.

그런가 하면, 현 리그 역시 스몰포워드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브론 제임스와 카멜로 앤써니, 케빈 듀란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뒷세대인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 지미 버틀러, 고든 헤이워드 등 또한 탁월한 3번 자원들이다. 게다가 ‘포지션 파괴자’ 야니스 아데토쿤보 역시 스몰포워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슈팅가드는 원래 포인트가드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었다. 센터와 파워포워드의 관계가 바로 포인트가드-슈팅가드의 관계라고 보면 된다.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때문에 ‘슈팅가드’하면 ‘리그 최고의 득점기계이자 테크니션’을 떠올리지만, 전통적 개념의 원래 슈팅가드는 현재의 ‘3 & D’처럼 롤플레이어에 더 가까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된 임무는 역시 중장거리 슈팅이었고, 포인트가드를 도와 볼을 운반하곤 했다.

역대 레전드로는 단연 빌 샤먼과 레지 밀러, 미치 리치먼드를 꼽을 수 있다. 또,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한 이후의 레이 앨런도 이에 부합했다. 현 리그에서는 클레이 탐슨, CJ 맥컬럼과 브래들리 빌이 정통파 슈팅가드에 가깝다. 또, 카일 코버와 JJ 레딕, 웨슬리 매튜스, 웨인 엘링턴, 앨런 크랩 등을 꼽을 수 있다.

포인트가드는 코트 위의 사령관이다. 공을 가장 오래 소유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볼 핸들링 능력이 필수적이며, 동료들의 득점 기회를 잘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하므로 패싱력도 대단히 중요하다. 게다가 뛰어난 전술이해도와 상황판단력 역시 필수적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포지션이며, 흔히들 센터 다음으로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말한다.

역대 정통파 포인트가드 레전드로는 ‘포인트가드의 원조’ 밥 쿠지와 ‘포인트가드의 교과서’ 존 스탁턴이 있다. 아이재아 토마스와 마크 잭슨, 제이슨 키드와 스티브 내쉬 또한 전통적 의미에 충실한 포인트가드였다. 역사상 최고의 1번으로 손꼽히는 매직 존슨이나 오스카 로버트슨은 사실 스몰포워드에 가까운 변종 플레이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정통파 포인트가드로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인의 득점보다 패스를 최우선시하는 정통파 포인트가드는 현 리그에서는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포지션이다. 그나마 크리스 폴과 존 월 정도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7-18시즌 신인 론조 볼과 벤 시몬스 역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팀인 북산고교의 ‘베스트 5’를 보자. 공수 양쪽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우직한 센터 채치수, 그런 그를 보좌하는 허슬 플레이의 달인이자 ‘리바운드의 제왕’ 파워포워드 강백호, 전천후 득점기계 스몰포워드 서태웅, 최고의 3점슛터 슈팅가드 정대만, 빠른 스피드로 코트를 휘젓는 ‘선패스 마인드’의 돌격대장 포인트가드 송태섭까지. 농구의 전통적 포지션 개념을 그대로 이식했음을 알 수 있다. NBA 버전으로 치환하면, 패트릭 유잉-데니스 로드맨-마이클 조던-레지 밀러-케빈 존슨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 포지션 파괴 현상과 그 역할 변화 - 프런트코트

위에 한참이나 기술한 정통 포지션 개념은 현대농구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농구의 공수 전술이 엄청난 발전을 이뤘고, 이에 따라 리그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면서 포지션 파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2000년대에 일어난 리그 트렌드의 변화를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지역방어의 부분적 도입(2001-02시즌), 핸드체킹 규정의 강화(2004-05시즌), 모션오펜스의 발전, 스페이싱의 중요성 대두, 픽앤롤 활용폭 증가, 공격 효율성 연구에 따른 3점슛의 재평가 등이 맞물리면서 페인트존보다는 퍼리미터가, 포스트업보다는 페이스업이, 먼 거리에서의 2점슛보다는 3점슛이 더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경기의 무게중심 역시 인사이드 플레이어에서 벗어나 백코트 플레이어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포지션은 아마 센터일 것이다. 원래는 공수 양면에서 모두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센터가 블루워커 역할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는 팀 던컨과 케빈 가넷, 크리스 웨버, 덕 노비츠키, 저메인 오닐, 라쉬드 월러스, 안토니오 맥다이스, 엘튼 브랜드, 칼 말론 등 뛰어난 파워포워드가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이들이 자연스레 팀의 기둥이 되면서, 센터는 이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는 파워포워드가 센터를 돕는 포지션이었는데, 그 반대가 된 것이었다. 다재다능함을 장착하고 등장한 파워포워드들은 내외곽을 넘나들며 플레이했고, 센터는 파워포워드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게 됐다. 이는 1990년대처럼 압도적인 기량을 갖춘 센터가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또 한 번 트렌드가 바뀐다. 계속되는 센터 기근 시대, 스몰볼의 유행 등으로 인해 파워포워드들이 센터로 기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팀 던컨, 케빈 가넷, 드와이트 하워드 등이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해 뛰었다. 이때부터 파워포워드들이 센터를 겸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정통파 센터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더군다나 리그의 경기 페이스가 점점 더 빨라지고 스페이싱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덩치 크고 느린 센터들은 뛰어난 공격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수비에서의 마이너스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경기에 투입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어갔다. 주전에서 식스맨으로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다면 어떤 빅맨들이 각광을 받았을까? 잘 달리는 수비형 빅맨이 그 대안이 됐다. 상대의 스페이싱으로 생긴 공간을 커버하고, 외곽슛 수비 로테이션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트랜지션 상황에서 빠르게 잘 뛰어 트레일러 역할이 가능하고, 백코트도 빨라야 했다. 게다가 확실한 림 프로텍팅 능력과 보드 장악력, 든든한 스크린 능력까지 요구됐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선수는 그만큼 귀했고, 공급과 수요 법칙에 따라 연봉이 천정부지로 솟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 어차피 공격은 백코트 선수들이 알아서 할 것이기 때문에, 인사이드 플레이어의 득점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고려 요소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대 빅맨들이 골밑에 밀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바깥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골밑에 공간이 발생해 우리 팀 선수들의 돌파도 수월해지고, 상대 수비를 더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스트레치 4’였다. 긴 슛 거리를 바탕으로 상대 빅맨을 외곽으로 끌어내, 동료들에게 코트 위 공간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파워포워드들을 일컫는 용어다. 처음에는 4번 포지션에 한정한 개념(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덕 노비츠키, 라쉬드 월러스 정도를 제외하면 외곽슈팅력을 갖춘 파워포워드는 많지 않았다. 이후 앤트완 재이미슨, 숀 매리언, 라샤드 루이스 등이 스몰포워드에서 파워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외곽에서 3점슛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이는 곧 리그의 대세가 됐다)이었으나, 이제는 그냥 ‘스트레치 빅맨’으로 통합하여 부른다. 4번이고 5번이고 간에 무조건 외곽슛을 익혀야 하고, 또 그것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면서 빅맨들의 중장거리 슈팅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통파 센터들은 서서히 도태되고, 잘 달리고 3점슛 가능한 빅맨들만 살아남게 됐다. 페인트존을 잘 벗어나지 않던 기존 빅맨들도 이러한 시류를 타고 하나 둘 외곽슛을 장착해나갔다. 이제 정통파 센터들은 리그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NBA 사무국은 이러한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했다. 그들이 내놓은 2013 올스타전 투표 용지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기존의 센터, 포워드, 가드로 이루어진 포지션 분류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프런트코트와 백코트, 두 가지로 개편해버렸던 것. 센터와 포워드를 그냥 프런트코트로 통합해버렸던 것이었다. 리그 사무국은 프런트코트 부문에서 3명에게, 백코트에서 2명에게 표를 던질 수 있게 나눴다. 4, 5번 포지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로 인해 더 이상 포지션을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게 되자 그냥 시원하게 하나로 합쳐버린 NBA 사무국의 과감함은 분명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투표 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포지션 파괴 현상과 그 역할 변화 - 백코트

프런트코트가 센터, 파워포워드, 스몰포워드로 이루어져 있다면, 백코트는 슈팅가드와 포인트가드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 백코트 개념은 비교적 간단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슈팅가드는 슛을 했고, 포인트가드는 패스를 했다. 그게 맡은 주요 임무였기 때문이다.

밥 쿠지는 포인트가드라는 포지션을 정의한 원조격 선수로 꼽힌다. 환상적인 볼 핸들링 능력과 우월한 패싱력, 탁 트인 시야 등을 무기로 1950~60년대 NBA 레전드로 군림했다. 또, 10년 연속 올-NBA 퍼스트 팀, 8년 연속 어시스트왕, 우승 6회, 1956-57시즌 MVP 등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았다. 

쿠지의 백코트 파트너는 빌 샤먼이었다. 그는 ‘슈팅가드의 조상’으로 평가 받는다. 1950년대에 이미 정교한 점프슛을 구사하며 4회나 우승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쿠지가 패스했고, 샤먼이 받아 넣었다. 둘의 플레이스타일 및 관계는 곧 포인트가드-슈팅가드의 포지션 정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현대농구에 이르러 전통적인 백코트 포지션 개념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앨런 아이버슨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포인트가드인지 슈팅가드인지 알 수 없는 선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포인트가드의 신장으로 슈팅가드처럼 플레이했다. 또, 포인트가드처럼 어시스트하고 슈팅가드처럼 득점하는 등 두 포지션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아이버슨을 필두로, 스테판 마버리, 스티브 프랜시스, 배런 데이비스 등이 줄줄이 성공을 거뒀다. 물론 제이 윌리엄스, 조셉 포르테, 드완 와그너 같은 실패 사례들도 있었지만, 듀얼가드의 리그 침공은 이미 시작된 뒤였다. 2010년대 들어서는 리그가 듀얼가드들의 천국이 됐다.

뿐만 아니라 스윙맨(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를 고루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을 말한다)들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팀 공격을 대부분 포인트가드가 주도하게 되면서 스윙맨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졌다. 이에 따라 이 포지션 선수들은 3점슛과 수비(Defense), 딱 두 가지만 잘해도 출전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각 팀들 역시 전술적 활용도가 높은 이러한 선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른바 ‘3 & D’ 유형의 탄생이었다. 또, 슈팅가드나 스몰포워드나 사실상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두 포지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 현대농구 포지션은 이렇게 재정의 되어야 한다!

이제 센터, 파워포워드, 스몰포워드, 슈팅가드, 포인트가드로 구분되는 다섯 포지션은 현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현대농구의 포지션은 맡은 역할에 따라 다음과 같이 빅맨, 스윙맨, 볼 핸들러 세 가지로 나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는 어디까지나 공격시의 역할에 따른 구분법이다. 수비시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빅맨

센터와 파워포워드는 사실상 같은 포지션으로 봐야 한다. 하는 일이 같다. 그간 체격이 더 좋은 선수가 센터를 맡았을 뿐이었다. 센터와 파워포워드 중 기량이 더 좋은 선수가 팀의 중심이 됐다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1993-94시즌 휴스턴 로케츠의 하킴 올라주원(센터)과 오티스 쏘프(파워포워드)의 경우, 누가 봐도 올라주원의 기량이 낫기 때문에 센터인 올라주원이 팀의 기둥 역할을 하고 쏘프가 보조 역할을 했다.

반면, 1990년대 후반 유타 재즈의 경우는 다르다. 센터 그렉 오스터텍보다 파워포워드 칼 말론의 기량이 압도적이었기에, 파워포워드인 말론이 팀의 핵심이 됐고, 오스터텍은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센터와 파워포워드의 역할이 뒤바뀐 것. 전통적 의미의 포지션 구분에 따르면, 사실상 말론이 센터고 오스터텍이 파워포워드가 된다. 

그런가 하면 2000년대 후반 팀 던컨의 경우도 재미있다. 팀 던컨은 센터로 뛰든, 파워포워드로 뛰든 언제나 팀의 중심이었다. 그와 함께 뛴 빅맨 파트너는 포지션에 상관없이 항상 블루워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던컨의 진짜 포지션은 센터인가, 파워포워드인가?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몰볼의 유행으로 인해 4번 선수들이 5번으로 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케빈 러브나 알 호포드, 라마커스 알드리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라이언 앤더슨이나 패트릭 패터슨 같은 선수들도 센터로 뛰는 시간이 꽤나 된다. 이처럼 더 이상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구분할 수도 없다. 그냥 ‘빅맨’이라는 포지션 하나로 묶는 게 나을 것이다.

스윙맨

스윙맨은 원래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를 아우르는 선수들을 통칭하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더 그 의미를 확장해도 좋을 것 같다. ‘3 & D’ 유형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공격시 빅맨과 볼 핸들러가 아닌 모든 선수들을 스윙맨 카테고리에 넣어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케빈 듀란트의 포지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공식 프로필상으로는 스몰포워드지만, 공격시에는 딱히 정해진 포지션 없이 코트 전역을 넘나든다. 슈팅가드인지 빅 포워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수비시에는 빅맨 역할까지 해낸다. 카멜로 앤써니, 카와이 레너드와 폴 조지, 지미 버틀러 역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듀란트와 앤써니는 파워포워드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고, 폴 조지는 스몰포워드, 지미 버틀러는 슈팅가드로 구분된다. 대체 이들의 역할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들을 스윙맨 개념으로 묶어버리면 해결된다. 고정적인 역할 없이 2번부터 4번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선수들 말이다. 이에 따라 래리 버드, 줄리어스 어빙,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클라이드 드렉슬러, 트레이시 맥그레디 등도 같은 포지션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포지션을 전부 다 소화하는 야니스 아데토쿤보도 궁극적으로는 스윙맨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스테픈 커리도 스윙맨으로 볼 수 있다. 주로 공을 몰고 패스를 건네는 드레이먼드 그린이 볼 핸들러, 코트를 휘젓고 다니는 커리는 스윙맨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볼 핸들러

현대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바로 이 ‘볼 핸들러’다. 전통적인 포지션 구분과 상관없이, 주로 공을 몰고 다니며 경기운영에 관여하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볼 핸들러’ 포지션에 해당된다. 이는 포인트가드와 비슷한 개념이기도 하고, 볼 소유가 높은 듀얼가드 또한 이 개념에 종속된다.

르브론 제임스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르브론은 사실 데뷔 이후 언제나 공격시에는 포인트가드 역할을 소화해왔다. 공식 프로필은 스몰포워드 혹은 파워포워드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역할은 ‘메인 볼 핸들러’가 맞다. ‘슈퍼루키’ 벤 시몬스 또한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드웨인 웨이드, 제임스 하든이나 러셀 웨스트브룩처럼 애매한(?) 포지션을 가진 선수들도 이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포인트가드도, 슈팅가드도 아니다. 그냥 ‘메인 볼 핸들러’다. 앨런 아이버슨, 브랜든 로이, 페니 하더웨이, 매직 존슨, 피트 마라비치, 제리 웨스트 등도 이제야 진짜 포지션을 찾았다. (조던이나 코비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확실한 시스템 아래 뛰었기 때문에 볼 핸들러가 아니라 스윙맨으로 분류하도록 한다.)

♣ 마무리하며

이처럼 현대농구의 포지션을 역할에 따라 재정립해보았다. 위에 언급했듯, 수비시에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수비시의 듀란트, 르브론의 포지션은 빅맨이 될 수도, 스윙맨이 될 수도 있다. 커리 역시 공격시에는 스윙맨이지만 수비시에는 볼 핸들러가 될 수 있고, 드레이먼드 그린 또한 공격시에는 볼 핸들러, 수비시에는 빅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전통적인 방식의 다섯 가지 포지션 구분법은 유명무실해졌다. 수비시에 편의상 포지션 구분을 할 때가 아니면 딱히 활용될 일도 없다. 이제는 모든 선수가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다. 농구선수들의 포지션은 어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역할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거친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사진 = 펜타프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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