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이번엔 정말로 기회가 왔다. 그토록 붙잡기 힘들었던 MVP와 파이널 우승의 꿈을 이룰 기회 말이다. 하든은 이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준비를 마쳤다. 리그를 호령하는 ‘수염남’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제임스 하든은 지금 퍼펙트 시즌을 꿈꾸고 있다. 

시작은 창대하지 않았다

요즘 TV 속 아디다스 광고에서 제임스 하든은 창조성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변칙적인 리듬의 드리블에 이은 돌파 그리고 슈팅. 이를 앞세워 하든은 NBA 최고의 가드로 올라섰다.

광고 속 하든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Do what you feel, always.(네가 느끼는 대로 해, 언제든지.)” 그렇다. 지금 하든은 코트에서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원하고 느끼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수준의 슈퍼스타다.

시작이 창대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오클라호마시티에 지명됐을 때, 그는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블레이크 그리핀(1순위), 리키 루비오(5순위), 스테픈 커리(7순위)가 2009년 드래프트 당일의 최고 스타였다.

하든이 데뷔한 2009년은 ‘벤치 에이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NBA에서 자리 잡던 시점이었다. 2008년에 샌안토니오의 마누 지노빌리가, 2009년에는 댈러스의 제이슨 테리가 올해의 식스맨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NBA에는 ‘슈퍼 식스맨’을 앞세운 세컨 유닛(second unit) 싸움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었다.

오클라호마시티에는 케빈 듀란트(2007년 2순위 지명), 러셀 웨스트브룩(2008년 4순위 지명)이라는 확고한 퍼리미터 코어들이 이미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루키 하든에게 벤치 에이스를 맡겼다. ‘볼 분배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식스맨 역할을 맡겼지만 마누 지노빌리처럼 최고의 벤치 에이스로 활약해 달라.’ 이것이 당시 오클라호마시티가 하든에게 바랐던 것이었다.

고비들이 있었다. 하든은 루키 시즌 평균 9.9득점 야투율 40.3%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제임스 하든의 평균 득점이 한 자릿수라고? 지금의 하든을 아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놀랄 이야기다.

하지만 진짜였다. 하든은 데뷔와 함께 혜성 같이 나타난 선수가 아니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코트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고 그렇게 슈퍼스타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NBA에는 이런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Fear The Beard.(수염을 두려워하라)” 수염이란 다름 아닌 제임스 하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2011-2012시즌 하든은 경기당 평균 16.8점 4.1리바운드 3.7어시스트 야투율 49.1% 3점슛 성공률 39.0%를 기록하는 확고한 벤치 에이스로 ‘폭풍 성장’했다. 이 시즌 하든은 올해의 식스맨상을 수상하며 데뷔 당시부터 비교 대상으로 꼽혔던 샌안토니오 마누 지노빌리의 업적을 하나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러셀 웨스트브룩, 케빈 듀란트와 함께 오클라호마시티를 파이널 준우승으로 이끈 하든은 자신이 코트 위 기량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루키 시즌(2013-2014시즌)을 앞두고 하든과 오클라호마시티는 장기 협상에 들어갔으나 결국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하든에 앞서 러셀 웨스트브룩과 서지 이바카에게 이미 대형 계약을 안긴 상황이었다. 결국 오클라호마시티는 4명의 핵심 유망주(듀란트, 웨스트브룩, 이바카, 하든)를 모두 붙잡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하든을 휴스턴으로 빠르게 트레이드했다.

훗날 제임스 하든은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될 당시 오클라호마시티가 자신에게 계약 조건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너무 적게 줬다고 이야기했던 바 있다. 그래서일까? 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소식을 처음 접한 뒤 하든이 너무 놀라고 섭섭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후일담은 이미 NBA에서 꽤나 유명하다. 거친 수염을 가진 최고의 스타 하든이 겨우 트레이드에 눈물까지 흘렸다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때까지 하든은 냉혹한 비즈니스에 익숙한 선수가 아니었다. 트레이드 당시 하든의 나이는 만 23살에 불과했다.

 

붉은 유니폼, 그리고 또 한 번의 성장

하지만 그가 오클라호마시티를 떠나게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든은 트레이드 4일 뒤 휴스턴과 5년 8000만 달러에 연장 계약을 맺었고, 로케츠의 일원으로서 새 행보를 시작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든이 슈퍼스타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한 이는 많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하든은 올해의 식스맨상을 갓 수상한 기대되는 유망주 가드에 불과했다. 오클라호마시티가 하든에게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을 꺼려했던 이유도 그가 한 팀을 끌고 가는 수준의 선수가 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하든이 데뷔 첫 3년 동안 자신이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될 잠재력을 미리 보여줬다면 오클라호마시티와 샘 프레스티 단장은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든은 휴스턴에서 침착하게 성장을 이어갔다. 이전 세 시즌 동안 오클라호마시티에서 하든이 선발 출전한 경기는 고작 7경기. 생애 처음으로 매 경기를 선발로 나서기 시작했음에도 하든에겐 적응을 위한 시간 따위는 필요 없었다. 휴스턴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12-2013시즌, 하든은 평균 25.9점 4.9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NBA 팬들을 또 한 번 놀라게 만든다. 이 시즌 하든은 올-NBA 서드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고 득점 부문에서는 리그 4위에 올랐다.

드와이트 하워드가 합류한 2013-2014시즌 하든은 입지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폭주했다. 생애 처음으로 올-NBA 퍼스트 팀에 선발됐는데 그와 함께 선발된 선수는 무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크리스 폴이었다. 불과 2년 만에 하든이 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후에도 하든은 시즌 평균 득점이 매년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4-2015시즌에는 27.4점, 2015-2016시즌에는 29.0점을 기록했고 2016-2017시즌에는 9.1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시즌엔 30.9점을 기록하며 생애 첫 평균 30득점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든이 이렇게 매시즌 달라진 모습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그의 팀 동료들은 적지 않게 바뀌었다. 드와이트 하워드, 챈들러 파슨스, 제레미 린이 그의 곁에 있다가 팀을 떠났고 지금은 크리스 폴, 에릭 고든, 클린트 카펠라, 트레버 아리자가 하든의 곁을 지키고 있다. 감독도 케빈 맥헤일에서 마이크 댄토니로 바뀌었다.

휴스턴의 로스터가 뒤바뀌고 코칭스태프까지 바뀌는 와중에도 하든의 입지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대릴 모리 단장이 이끄는 휴스턴 프런트는 건강하고 꾸준하며 폭발적인 하든을 절대 신뢰했다. 그리고 하든은 지난해 7월 휴스턴과 4년 1억 60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으며 기량과 공헌도를 인정받았다.(기존의 잔여 계약 2년을 포함하면 6년 2억 28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액이었다.)

 

하든에게 찾아온 퍼펙트 시즌의 기회

휴스턴 이적 이후 5년 동안 제임스 하든은 많은 것을 이뤘다. 올-NBA 퍼스트 팀 선발이 당연시되는 수준의 선수가 됐고, 그만큼의 부와 명예가 그를 따라왔다. 이제 NBA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하든을 아는 세상이다. 하든의 현란한 드리블과 폭발적인 득점력은 ‘가드의 시대’를 맞이한 NBA를 상징하는 무형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든도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MVP 트로피와 우승 트로피다. 사실 하든에게 MVP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리그 최고 수준의 가드로 꾸준히 군림했고, 팀 성적도 받쳐줬던 하든이다.

그러나 매번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생애 처음으로 강력한 MVP를 꼽혔던 2014-2015시즌에는 골든스테이트의 스테픈 커리에게 MVP 트로피를 빼앗겼다. 당시 일각에서는 하든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MVP 트로피를 커리가 팀 성적 덕분에 가로챘다는 논란이 있었다. 실제로 2014-2015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의 투표를 통해 이뤄진 ‘선수들의 MVP’ 시상식에서는 커리가 아닌 하든이 MVP를 받았다. 오히려 동료들에게 더 인정받은 선수는 커리가 아닌 하든이었다.

하든은 2016-2017시즌에 또 한 번 생애 첫 MVP 트로피를 가져갈 기회를 얻었다.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 부임하며서 포인트가드로 변신한 하든은 이 시즌에 평균 29.1점 8.1리바운드 11.2어시스트라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고, 많은 이들이 그를 강력한 MVP 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이번엔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러셀 웨스트브룩이 그의 MVP 트로피를 빼앗아갔다. 웨스트브룩은 역대 두 번째 시즌 평균 트리플-더블, 단일 시즌 역대 최다 트리플-더블 신기록(42회)을 동시에 세우면서 리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실 하든도 개인 기록은 웬만한 시즌이었다면 무조건 MVP를 수상해야 할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웨스트브룩의 ‘역대급 시즌’에 하든도 한 수 물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하든은 MVP 트로피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2017-2018시즌, 하든은 비로소 MVP 수상을 눈앞에 둔 모양새다. 올시즌 하든은 평균 30.7점 5.4리바운드 8.8시스트를 기록 중이며 야투율과 3점슛 성공률은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소폭 상승했다. 지난 1월 31일 올랜도전에서는 60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 역대 최초로 60득점 트리플-더블을 달성하며 NBA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올시즌 하든은 40득점 이상 경기만 11번, 50득점 이상 경기만 4번을 기록했으며 25번의 두 자릿수 어시스트 경기를 해내며 휴스턴의 독주를 이끌고 있다. 시즌 초반만 해도 르브론 제임스가 MVP 레이스 경쟁자로 여겨졌으나 리그 전체 1위를 질주 중인 휴스턴의 성적 때문에 하든은 올시즌이야말로 MVP 트로피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데미안 릴라드, 앤써니 데이비스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MVP 후보로 언급됐지만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인다. 현재 하든만큼 압도적인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동시에 갖춘 MVP 후보는 없다. 게다가 두 차례나 MVP 트로피를 아쉽게 빼앗겼다는 동정표까지 얻을 수 있는 상황. 하든의 MVP 수상은 사실상 확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MVP 트로피로 만족할 하든이 아니다. 올해는 우승까지 넘보고 있다. 올시즌 창단 첫 서부지구 1위 확정에 이어 지난 1일에는 리그 전체 1위까지 확정 지은 휴스턴이다.

마침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가 베테랑 자원들의 노쇠화와 핵심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올시즌 경기력이 지난 시즌에 못 미치는 상황. 게다가 휴스턴은 올시즌 크리스 폴, P.J. 터커, 루크 음바무테 등이 합류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골든스테이트를 플레이오프에서 능히 누를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휴스턴은 정규시즌 골든스테이트와의 세 번의 맞대결을 2승 1패로 마무리했다. 1패는 하든이 결장한 경기였으니, 사실상 풀 전력으로 맞선 두 경기에서는 휴스턴이 모두 웃었던 셈이었다. ‘골든스테이트가 7전 4선승제 시리즈에서 4번이나 지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말은 적어도 휴스턴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휴스턴은 골든스테이트를 충분히 4번 이길 수 있는 팀이다. 그만큼 올시즌 휴스턴은 정말 강력하다.

생애 첫 MVP 트로피와 파이널 우승을 동시에 노리고 있는 제임스 하든. 과연 하든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제임스 하든의 ‘퍼펙트 시즌’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진 제공 = 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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