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정규시즌이 막바지로 흘러가고 있는 현재 각 팀들의 순위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놓여 있는 팀들의 경쟁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자신들의 순위를 낮추기 위한 팀들의 치열한 꼴찌 싸움 역시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 마치 2개의 리그가 따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과연 이토록 기이한 형태의 순위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모든 기록은 한국시간 3월 15일 기준)

 

탱킹이란?
탱킹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전적으로 정의를 하자면 ‘특정 팀이 시즌 성적을 포기하고 최대한 많은 패배를 적립해 자신들의 시즌 순위를 낮추는 행위’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보통 이러한 탱킹은 아직 실력이 여물지 않은 팀 내의 신인들이나 유망주들을 최대한 많이 기용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승부조작’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NBA에서 이러한 탱킹이 펼쳐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순위가 낮을수록 다음 신인드래프트에서 더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획득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플레이오프 진출이 힘든 팀들 입장에서는 애매한 순위로 시즌을 마감해 좋은 신인을 뽑을 기회를 날려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최하위권에 자리 잡으며 지명권 순위를 높이는 편이 훨씬 낫다. 또한 이러한 탱킹은 신인드래프트를 통한 정상급 유망주 수급 외에는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부족한 스몰마켓 팀들에게는 일종의 ‘생존 법칙’과도 같은 요소다. 

NBA의 역사에서는 탱킹을 시도한 팀들의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1983-84 시즌의 휴스턴을 비롯해 1989-90 시즌의 뉴저지 네츠, 2005-06 시즌의 포틀랜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 

또한 1996-97 시즌 샌안토니오는 팀 간판이던 데이비드 로빈슨의 부상 이탈과 함께 20승 62패의 성적에 머무르며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중단했는데 이때 획득한 지명권으로 팀 던컨을 지명하며 이후 2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2002-03시즌 17승 65패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후 르브론 제임스를 지명한 클리블랜드의 사례 역시 유명하다. 

최근에는 필라델피아가 무려 4시즌 동안 이른바 ‘무제한 탱킹’을 시도하며 탱킹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지난 4시즌 간 기록한 필라델피아의 승률은 고작 22.9%. 2015-16시즌에는 12.2%라는 기록적인 승률(역대 3번째 최저치)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극단적인 노선을 선택한 필라델피아는 많은 이들의 조롱 속에서도 착실히 유망주들을 수집해왔다. 그 결과 그들은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며 인고의 시간을 보상받고 있다. 

 

1위 싸움보다 더 치열한 꼴찌 싸움
이번 시즌에는 유독 이러한 탱킹을 시도하고 있는 팀들이 많다. 오죽하면 ‘1등보다 꼴찌하기가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현재 탱킹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팀만 하더라도 7~8개 팀에 달하며 이들이 1승이라도 거둘 시 순위가 2~3단계는 올라가는 기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탱킹에 나서고 있는 팀은 시카고다. 시즌을 앞두고 팀의 에이스인 지미 버틀러를 헐값에 넘기며 본격적인 탱킹 노선에 돌입한 시카고는 시즌 첫 23경기에서 3승 20패의 처참한 성적에 머무르며 무난히 최하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시카고의 시즌 플랜은 니콜라 미로티치의 등장과 함께 꼬이기 시작했다. 시즌을 앞두고 팀 동료였던 바비 포티스와 주먹다짐을 벌이며 결장을 이어오던 미로티치는 복귀와 함께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하며 팀의 7연승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미로티치의 계속된 활약으로 인해 승수가 쌓이자 불안해진 시카고 프런트는 결국 그를 뉴올리언스로 트레이드하기에 이른다. 

미로티치를 떠나보내긴 했지만 이미 많은 승수가 쌓여버린 시카고는 결국 후반기 시작과 함께 또 다른 긴급대책을 내놓게 된다. 전반기까지 선발로 출전하며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던 로빈 로페즈와 저스틴 할러데이를 로테이션에서 제외시켜버린 것. 이처럼 대놓고 탱킹에 나선 시카고는 결국 사무국의 공식적인 경고를 받기에 이른다. 

사무국의 경고 이후 시카고는 다시 이들을 로테이션에 합류시켰지만 10분여의 출전시간만을 부여하며 역할을 최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카고는 23승 44패의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12위에 올라있다는 것. 현재 탱킹에 나서고 있는 팀들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카고가 이처럼 탱킹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시즌이 터져버린 팀들도 있다. 대표적인 팀이 멤피스와 뉴욕. 특히 멤피스는 아직까지 후반기 들어 단 1차례도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는 등 18연패 수렁에 빠지며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시즌 초 팀이 흔들리던 당시 “리빌딩은 없다”며 단호하게 못 박았던 크리스 월라스 단장의 의지 역시 마이크 콘리의 시즌아웃 소식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현재 멤피스는 18승 49패의 성적으로 어느 때보다 치열한 탱킹 레이스 속에서도 당당히 최하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뉴욕은 크리스텝스 포르징기스의 시즌아웃 부상과 함께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케이스다. 시즌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꾸준히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꿈꿨던 그들이지만 이후 험난한 일정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포르징기스의 전방 십자인대 파열 부상과 함께 치명상을 입었다. 포르징기스의 이탈 후 13경기에서 1승 12패에 그치고 있는 뉴욕이지만 초반에 쌓아둔 승수 탓에 탱킹 레이스에서는 가장 뒤쳐져 있다. 

이들 외에도 탱킹에 나서고 있는 팀들은 무수히 많다. 구단주가 직접 “남은 기간 최대한 패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옵션”이라고 했다가 60만 달러의 벌금 철퇴를 맞은 댈러스를 비롯해 피닉스, 새크라멘토, 애틀랜타, 올랜도 등이 꼴찌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을 펼치고 있다.   

 

‘무분별한 탱킹’ 그 원인은?
그렇다면 이처럼 이번 시즌 유독 탱킹이 무분별하게 발생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적으로 다음 시즌 드래프트에 참가할 예정인 신인들의 수준을 꼽을 수 있겠다. 내년 드래프트에는 빅맨들의 뎁스가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동의 1순위 후보이자 컴패리즌이 무려 데이비드 로빈슨인 디안드레 에이튼(애리조나대)을 필두로 자렌 잭슨 주니어(미시건 주립대), 마빈 배글리 3세(듀크대), 모하메드 밤바(텍사스대), 웬델 카터 주니어(듀크대) 등 많은 팀들이 군침을 흘릴만한 유망주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이외에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미 프로 생활을 하고 있는 루카 돈치치, ‘제 2의 스테픈 커리’로 불리며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트레이 영(오클라호마대) 등이 대어급 유망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두터운 뎁스를 자랑하는 신인 드래프트로 인해 많은 팀들이 높은 픽을 행사하기 위해 탱킹을 감행하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필라델피아의 성공 사례 역시 탱킹 팀들에게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필라델피아는 2013년부터 시작된 ‘무제한 탱킹’을 통해 다수의 유망주들을 끌어 모았다. 2013년 드래프트 당일 올스타 가드였던 즈루 할러데이(現 뉴올리언스)를 내주고 너렌스 노엘(現 댈러스)을 영입하며 탱킹을 천명한 필라델피아는 이후 4시즌 동안 19승(2013-14시즌), 18승(2014-15시즌), 10승(2015-16시즌), 28승(2016-17시즌)을 거두는데 그치며 리그 최하위권을 전전했다. 

덕분에 드래프트에서 항상 최상위권 순위를 거머쥔 필라델피아는 조엘 엠비드(2014년 3순위), 다리오 사리치(2014년 12순위), 자힐 오카포(2015년 3순위), 벤 시몬스(2016년 1순위), 마켈 펄츠(2017년 1순위) 등 정상급 유망주들을 싹쓸이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이번 시즌 현재까지 36승 30패의 성적으로 동부 컨퍼런스 6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현재 탱킹에 나서고 있는 팀들은 이러한 필라델피아의 성공을 똑똑히 목격했다. 

최근 리그의 트렌드와 같이 자리 잡은 슈퍼 팀의 등장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크리스 폴과 제임스 하든을 동시에 보유한 휴스턴, 스테픈 커리와 케빈 듀란트, 클레이 탐슨 등이 건재한 골든스테이트 등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슈퍼스타들이 뭉쳐서 우승을 노리는 트렌드의 등장으로 인해 최근 리그에서는 웬만한 로스터를 가지고는 우승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구단들 입장에서는 어중간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허무하게 광탈(?)하느니 차라리 유망주라도 끌어 모아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욱 낫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이번 시즌의 탱킹 레이스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는 사무국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못한 소식. 사무국에게 NBA 팀들의 경기는 그들이 팬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상품’과도 같다. 리그 내에 탱킹이 만연하다는 것은 곧 이러한 ‘상품’이 훼손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무국에게도 이는 결코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였던 셈이다. 

결국 사무국은 다양한 카드를 꺼내들어 탱킹 방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선 그들은 2019년 드래프트부터 적용될 로터리 지명권의 추첨 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전년도 리그 최하위 팀에게 무려 25.0%나 주어지던 1순위 당첨 확률은 14.0%까지 줄어들었다. 동시에 사무국은 2번째로 승률이 낮은 팀과 3번째로 승률이 낮은 팀의 1순위 당첨 확률도 최하위 팀과 동일한 14.0%로 조정했다. 즉, 최하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할 이유를 없애버린 셈이다. 물론 여전히 낮은 성적의 팀일수록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차지할 확률은 높지만 최하위 팀이 가져갈 메리트를 줄였다는 점은 ‘탱킹 방지’라는 목적 하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다.

<표> 2019년부터 달라질 드래프트 1순위 추첨 확률

또한 사무국은 최근 구단들에게 메모를 남겨 탱킹에 대해 공식적으로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메모에서 아담 실버 총재는 “남은 기간 모든 팀들의 플레이를 세심히 관찰할 것이다. 만약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가 일부러 패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증거가 발견된다면, 사무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내릴 것”이라며 노골적인 탱킹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이어 실버 총재는 “코트 위에서의 경쟁심은 우리 리그가 유지되는 주춧돌과도 같다. 그것은 우리가 팬들과 서로에게 한 약속이며, 우리가 매우 우수한 스포츠 조직으로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또한 우리가 돈을 받고 판매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뀌어도, 그것만큼은 변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무분별한 탱킹과 관련한 문제는 이번 시즌 가장 주요 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에 사무국 역시 발 빠른 조치에 나서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드래프트를 통한 유망주 수급 외에 팀 전력을 업그레이드시킬 요소가 많지 않은 스몰마켓 팀들 입장에서는 이번 사무국의 조치가 불만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6~7개 팀이 동시에 탱킹에 나서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과연 사무국의 이러한 대책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사진 = 펜타프레스, NBA 미디어센트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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