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정은 칼럼니스트] 경기 내내 팽팽했던 경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경기의 치열함이 유지됐다. 챔피언 결정전 다운 승부였다. 농구인으로서 흡족했던 경기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벤치와 선수들은 힘들겠지만 이런 경기가 계속 나와야 여자농구의 인기도 더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은행이 먼저 웃었다. 아산 우리은행 위비는 17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17-18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63-57로 청주 KB스타즈를 눌렀다. 챔프전에 선착해있던 우리은행은 통합 6연패에 한발 더 다가섰다.

경기 흐름 주도한 우리은행
정규 리그 내내 접전을 펼친 양 팀의 경기였지만 6-7라운드에 KB가 승리를 거둘때와는 조금 흐름이 달랐다. 

팀의 조건과 상황이 상반된 두 팀은 원하는 흐름도 정확히 대비된다. 높이가 약하고 체력에 여유가 있는 우리은행은 게임 스피드를 높여야 하고 정 반대의 입장인 KB는 이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우리은행이 앞섰다. 

우리은행은 빠른 트랜지션으로 기회를 만들며 지속적으로 경기 분위기를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또한 정상적인 수비 상황에서는 강력한 압박을 통해 KB가 하프라인을 넘어오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며 세트 오팬스 상황에서 KB가 공격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위 ‘타짜의 차이’도 있었다. 승부처에서 믿고 결정을 지을 수 있는 선수가 많다는 건 이런 큰 경기에서 상당히 유리한 부분이다.

우리은행의 ‘빅3’인 김정은(14점), 임영희(13점), 박혜진(12점)은 고르게 득점을 올렸고, 정말 필요한 승부처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했다. 상대의 약점을 찾으면 거기에 맞춰 주 공격수가 바뀌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우리은행의 강점이 그대로 나타났다.

모니크 커리가 안고 있는 수비의 약점은 물론 김민정과 심성영을 집요하게 공략하며 고비마다 상대의 분위기를 꺾었다.

우리은행은 상대에게 분위기를 쉽게 내주지 않기 때문에 강팀의 위용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오늘 경기도 그랬다.

3쿼터 중반 이후, 강아정에게 3점슛을 허용하고 커리에게 계속해서 실점하며 역전을 당했지만 바로 되갚으며 리드를 찾아왔다. 경기 내내 앞서다가 그런 형태로 역전을 당하면 분위기가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인데, 우리은행은 동요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수비에서 우위 가져간 우리은행
수비에서도 우리은행의 성과가 나타났다. 김정은의 역할이 인상적이었다. 단신 선수가 장신 선수를 막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정석적인 플레이가 나왔다. 

우리은행의 팀 수비도 좋았다. 박지수를 페인트존 밖으로 밀어내서 볼을 잡게 했고, 박지수가 포스트업을 위해 드리블을 시도하면 외곽에 있던 선수들이 적절한 타이밍에 핼프를 들어왔다. 박지수로서는 볼을 잡은 후 슛을 시도하기도, 드리블을 치기도 애매한 상황이 경기 내내 이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KB는 다미리스 단타스가 좋지 못했다. 신한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적절한 인아웃 움직임을 보여줬던 단타스는 오늘 경기에서는 아웃 사이드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전략적으로 노렸다기보다는 체력적으로 밀려 나온 느낌이었다. 단타스가 밖으로 나가면서 김정은의 미스매치가 더 크게 보일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은행의 수비가 성공을 거둔 모습이었다.

KB는 강력한 인사이드를 바탕으로 안팎이 동시에 연동하는 강점을 갖고 있는데, 우리은행은 전략적으로 안쪽에서 줘야 하는 것은 주겠다는 자세로 경기에 나선 느낌이었다. 오히려 외곽을 철저히 봉쇄하며 인-아웃이 조화를 이루는 KB의 장점을 제어했다.

단타스가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가운데 국내 선수들의 득점 지원이 저조하자, KB는 커리를 투입해 활로를 찾고자 했지만 이는 수비에서 약점으로 이어졌다. 

커리가 코트에 있을 때, 우리은행이 박지수를 데리고 픽앤롤을 시도하면 나탈리 어천와에 대한 수비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신 선수들의 로테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때마다 우리은행은 이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 들었다.

고군분투하면서도 힘든 경기를 펼친 KB의 박지수는 이번 챔프전을 통해 비슷한 신장의 선수가 자신을 맡을 때와 작은 선수가 맡을 때를 구분하여 다른 공략법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으면 한다.

해리스 변수, 웃은 쪽은 우리은행
이날 경기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앰버 해리스의 역할 부분에서는 우리은행이 웃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경기 흐름에 가장 영향이 없었던 1쿼터 막판에 해리스를 투입한 우리은행은 해리스가 크게 나쁘지 않자 2쿼터 초반까지 뛰게 하며 어천와의 체력을 최대한 아꼈다.

해리스가 제 역할을 한 것은 3쿼터였다. 

분명 체력과 스피드 모두 떨어졌지만 볼을 흘리지는 않았고, 높이와 힘이 있는데다가 시야도 나쁘지 않고 WKBL을 잘 알고 있으니 팀이 리드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태는 모습을 보여줬다.

데스트니 윌리엄스가 있었다면 KB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사이드를 공략했겠지만 196cm의 해리스가 있으니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픽앤롤과 무빙 오펜스를 통해 해리스의 약점을 노렸지만 우리은행이 여기에 로테이션 수비로 맞서며 어느 정도 약점을 상쇄했다.

부지런하지 못하고 스피드가 떨어져서 국내 선수들과 동선이 겹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경기 운영 능력이 뛰어나고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은 우리은행이라 이런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매번 KB를 상대로 3쿼터에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은행이 정규리그때와 다른 모습을 보인 데에는 해리스의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3쿼터에 외국인 선수 2명이 뛸 때와는 달리 혼자 뛸 때는 조금 다른 상황이 나타날 수 있음은 주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은행은 어천와의 성격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국내 선수들은 웬만해서 흥분하는 모습이 없는데 어천와는 KB의 커리처럼 다혈질이다. 승부욕이 강해서 나타는 모습이지만, 커리와 어천와가 각자의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은행 벤치가 적절히 대응하겠지만 어천와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은행에게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치열한 승부를 펼친 양 팀은 2차전도 오늘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 같다. 어느 한 팀이 쉽게 치고 나가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KB는 1차전 패배에 대한 피로감 극복이 중요하다. 접전 끝에 패했을 때 선수들이 느끼는  체력적인 부담은 이겼을 때와 완전히 다르다. 1차전 패배로 KB는 플레이오프에서 누적된 피로감까지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만약 KB가 2차전 초반에 좋은 흐름을 가져가지 못하면 이후로는 체력적인 문제가 예상 밖으로 크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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