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승기 기자] 지난 시즌 보스턴 셀틱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은 거인’ 아이재아 토마스는 올시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그 어디에도 토마스를 반겨주는 곳이 없다. 팬들 역시 토마스를 질타하고 있다. 슈퍼스타로 성장한 토마스는 왜 한 시즌 만에 환영받지 못하는 선수가 됐을까.(모든 기록은 2월 24일 기준)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신장보다 큰 심장을 지닌 남자

아이재아 토마스(175cm)는 농구를 시작한 이래 언제나 언더독이었다. 농구는 신장이 클수록 유리한 스포츠다. 그런데 토마스는 언제나 키가 작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남들을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다. 토마스는 피나는 노력 끝에 이를 익혔고, 덕분에 농구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탁월한 운동능력의 영향도 간과해선 안 된다. 엄청난 스피드와 민첩성을 비롯, 빼어난 운동능력을 타고 난 점은 축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워싱턴 대학 시절의 토마스는 어떤 선수였을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를 주무기로 코트 내외곽을 휘저으며 득점을 담당했다. 신입생 시절 이미 평균 15점 이상 올릴 만큼 골 감각이 좋았다. 3학년 때는 평균 16.8점 6.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패싱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끝내 전미 최고의 선수들만 뽑힌다는 올-아메리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년 연속 올-PAC 10 퍼스트 팀에 선정됐고, 2년 연속 PAC 10 토너먼트 MVP를 수상하는 등 나름대로 기량을 인정받았다.

3학년 시즌을 마친 후, 토마스는 프로 무대에 도전했다. 2011 NBA 드래프트에 호기롭게 지원했으나, 1라운드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팀은 없었다. 드래프트가 끝나가도록 토마스는 호명되지 못했고, 이대로 드래프트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마지막 지명권을 가진 새크라멘토 킹스에 의해 2라운드 30순위(전체 60순위)로 간신히 막차를 탈 수 있었다.

토마스의 순위가 이렇게 밀린 이유는 간단했다. 토마스는 175cm의 단신 농구선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수비에서 마이너스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의 공격력이 그 모든 약점을 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워낙 작기 때문에 그가 가진 기술이 장신들이 즐비한 NBA에서 통할 정도인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구단들이 그의 지명을 꺼렸던 것이다.

당시 킹스는 토마스 외에도 브리검영 대학의 짐머 프레뎃을 1라운드 10순위로 영입했다. 프레뎃은 2010-11시즌 NCAA가 낳은 최고의 신데렐라였다. 그는 평균 28.9점으로 전미 득점왕에 오르는 등 그야말로 경이로운 시즌을 보내며 각종 언론으로부터 개인상을 싹쓸이했다. 덕분에 많은 나이와 낮은 성장 가능성, 떨어지는 운동능력 ‘3종 세트’에도 불구하고 로터리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2011-12시즌이 개막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프레뎃의 실력은 너무나도 기대 이하였다. 반면 기대치가 0에 수렴했던 토마스의 기량은 NBA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수준이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두 선수의 입지가 달라졌다. 프레뎃의 출전시간은 점점 줄었고, 토마스는 늘어났다. 급기야 토마스는 선발로 올라서기까지 했다.

이후 토마스는 새크라멘토의 부동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 잡았다. 3년차가 된 2013-14시즌에는 평균 20.3점(6.3어시스트)을 기록하며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6피트(약 183cm)가 안 되는 선수 중 역대 5번째로 평균 20점의 벽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떠오르지 않았던 피닉스의 태양

그런데 새크라멘토는 토마스를 구단의 미래로 여기지 않았다. 마침 가드 중심의 농구를 원하던 피닉스 선즈가 토마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킹스는 알렉스 오리아키(2013 드래프트 전체 57순위 지명자, NBA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유럽을 전전하고 있다)에 대한 권리를 받는 대가로 토마스를 피닉스에 넘겼다. 평균 20점-6어시스트를 올리는 가드를 이렇게 헐값에 넘길 정도면, 당시 킹스가 토마스를 얼마나 과소평가했는지 잘 알 수 있다.

토마스에게 피닉스는 결코 적응하기 쉽지 않은 팀이었다. 당시 선즈의 구상은 이랬다. 에릭 블렛소와 고란 드라기치, 아이재아 토마스라는 ‘듀얼 가드 빅3’를 구축해 빠른 농구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다. 선발은 블렛소와 드라기치가 맡되, 토마스를 키 식스맨 역할로 활용하고, 승부처에서는 세 선수를 모두 기용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는 생각만큼 잘 돌아가지가 않았다. 시너지도 전혀 없었다. 세 명 모두 공을 필요로 하는 스타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 선수의 탁월한 재능 덕분에 5할 승률은 유지했으나, 이건 피닉스가 기대한 그림이 아니었다. 결국 선즈가 결단을 내렸다. 트레이드 마감일에 맞춰 토마스를 보스턴 셀틱스로 보내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불과 반년 만에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시인한 셈이었다.

 

기회의 땅에 연착륙하다

토마스는 1년도 되지 않아 세 번째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리빌딩 중이었던 보스턴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토마스는 단번에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은 토마스가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 토마스가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해당시즌 보스턴은 토마스 영입에 힘입어 후반기 20승 11패를 기록,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다. 2015-16시즌 토마스는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며 보스턴을 또 한 번 플레이오프로 인도했다.

2016-17시즌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토마스는 평균 28.9점 5.9어시스트 3점슛 3.2개 야투율 46.3%를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4쿼터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클러치 타임 퍼포먼스도 압도적이었다. 올-NBA 세컨드 팀에 오른 토마스와 함께 보스턴은 우승후보로 발돋움했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승승장구는 거기까지였다. 토마스는 컨퍼런스 파이널 2차전 도중 고관절 관절와순 파열 부상을 당하며 그대로 아웃됐다. 토마스는 3월 정규리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전에서 이 부위에 처음 부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2경기에 결장했고, 완치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시즌을 치렀다. 부상은 점점 악화됐고, 플레이오프 도중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 부상이 토마스의 선수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는 것이다. 셀틱스의 대니 에인지 단장은 토마스가 이번 부상을 기점으로 기량이 하락할 것임을 정확히 예견했다. 그래서 2017-18시즌을 앞두고 제이 크라우더 등을 끼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카이리 어빙과 맞바꿨다. 토마스는 또 다시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했다. 그렇지만 당장 복귀도 쉽지 않았다. 토마스는 2018년 1월이 되어서야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활을 마치고 코트에 돌아온 토마스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토마스가 아니었다. 오랜 기간 쉬었기 때문에 경기 감각이 엉망진창이었다. 진짜 심각한 것은 고관절 부상의 여파로 인해 민첩성과 저돌성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공격력이 현격히 떨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기동성마저 감소하면서 수비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낮아졌고, 경기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토마스 본인 스스로는 “내 몸상태는 이전의 70~80% 정도”라고 말했으나, 실제 코트 위 기량은 이보다 훨씬 좋지 못했다.

 

내부갈등 그리고 뚜렷한 기량 하락

고관절 부상은 토마스의 운동능력을 앗아갔고,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클리블랜드의 팀 성적 역시 추락을 거듭할 뿐이었다. 그런데 코트 밖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토마스가 클리블랜드의 라커룸에서 파벌을 만들고 있다는 루머가 퍼졌다. 토마스 주도 하에 선수들이 케빈 러브에게 책임을 따져 묻는 등 라커룸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안 그래도 부진했던 토마스가 팬들에게 ‘비호감’ 이미지를 얻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훗날, 당시 러브 사냥을 주도했던 이는 토마스가 아니라 드웨인 웨이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미 비호감 낙인이 찍혀버린 후였다.)

당장 우승을 노리는 클리블랜드 입장에서는 토마스를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공격력은 하락했고, 수비력은 더 약화되었으니, 토마스가 코트 위에 올라오면 당연히 득보다 실이 많았다.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뛸 때의 효율 및 생산성도 끔찍했다. 토마스는 공을 들고 있을 때 그 위력이 발휘되는 유형이다. 부상 여파로 야투율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스팟업 슈터로 기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컷인에 능하지도 않아 활용도가 영 애매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또, “우리 팀은 코트 위에서 다 따로 논다”고 인터뷰하는 등 기존 동료들과 잘 융화되지 못하고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고 있었기 때문에 구단 입장에서는 마냥 좌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2월 초, 캐벌리어스는 토마스와 채닝 프라이를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하고 조던 클락슨과 래리 낸스 주니어를 데려왔다. 이에 토마스는 또 다시 둥지를 옮기게 됐다. 아직 부상에서도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는데, 또 한 번 새로운 도시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악재가 겹쳤다.

토마스는 자신감이 넘치는 선수다. 자존심도 매우 세다. 2016-17시즌 종료 후, 토마스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191cm나 196cm였다면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가 됐을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전 세계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토마스의 기술 레벨과 그간 보여준 퍼포먼스를 보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다. 동시에 이는 토마스가 얼마나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간 토마스를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최근에는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본인의 기량 하락을 아직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보인다. 레이커스 이적 직후 토마스는 에이전트를 통해 “벤치 출전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주전이 아니라면 바이아웃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레이커스는 현재의 토마스를 선발로 내보낼 만큼 바보가 아니다. 대신 이전과 다름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뛰고 있다. 여전히 공을 오래 끌고, 슛도 자주 한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야투는 부정확하고, 실책만 연발한다. 16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원정경기 4쿼터 승부처에서는 상대 수비에 꽁꽁 묶여 잦은 실수를 범하며 팀 패배를 자초하기도 했다.

고관절 부상은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신체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마스는 수년간 누적되어 온 잔부상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작은 체구로 엄청난 운동능력을 발휘하고, 거구들과 부딪히고 쓰러져가며 수없이 뛰어다닌 탓에 연골이 많이 닳았고, 약간의 관절염도 앓고 있다고 한다. 이러니 몸 상태 회복이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2016-17시즌에 보여준 환상적인 경기력을 되찾을 가능성이 낮게 전망되는 이유다.

 

무너진 대형계약의 꿈

토마스는 2018년 여름 FA가 된다. 데뷔 이래 줄곧 실력에 비해 낮은 연봉을 받고 뛰어온 토마스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형계약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토마스에게 맥시멈 계약을 안겨줄 구단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곧 만30세가 되는 175cm의 단신 듀얼가드. 커리어를 위협할 만한 고관절 부상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현재 컨디션이 매우 안 좋으며, 운동능력을 꽤나 상실해버린 상태. 슈팅력은 한참 퇴보했고, 수비는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수준. 그러나 자존심이 매우 강한 편이며, 여전히 많은 역할을 맡길 바라고 있는 선수.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위에 기술한 내용이 바로 토마스의 현주소다. FA를 앞두고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대형계약 기회가 날아가 버리게 생긴 토마스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조급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래프트 컴바인 당시 측정했던 토마스의 맨발 신장은 5피트 8과 3/4인치(약 174.6cm)로, 프로필(175cm)과 조금 작다. 그런데 여기서 운동능력까지 떨어진다면 그가 코트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성장은 이미 끝났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기량 하락이 너무나도 뚜렷하다는 것은 매우 큰 악재다. 토마스는 본인의 건강과 기량을 증명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결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원하는 계약을 따내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토마스는 지난 1년 사이 두 차례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FA 자격을 획득하는 7월이면 또 이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토마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빅맨들이 토마스를 위해 스크린을 서는 등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며, 토마스를 대신해 상대 백코트 에이스를 수비해 줄 선수도 필요하다. 토마스가 다시 MVP급 기량을 발휘한다면 모를까, 현재의 그를 위해 팀 전략전술을 새롭게 수정할 팀이 있을까 싶다. 모두의 응원을 받으며 어디서나 환영 받았던 토마스는 한 시즌 만에 어디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선수가 됐다.

 

[Box] 피어스의 영구결번식에 토마스의 헌정영상이?

아이재아 토마스는 올시즌 몇 차례 잡음을 일으켰다. 그중 ‘헌정영상’ 논란은 꽤나 이슈였다. ‘보스턴 레전드’ 폴 피어스의 영구결번식은 현지시간 2월 11일 보스턴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 하프타임 때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토마스가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보스턴을 방문하는 날이기도 했다. 보스턴 구단은 토마스에 대한 헌정영상을 준비해 피어스의 영구결번식날 틀어주기로 결정했다. 일이 꼬였던 것이다.

피어스는 당연히(?)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보스턴 구단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심 중이었다. 이에 토마스가 “내 영상을 틀지 말아 달라. 피어스의 날이기 때문에 그에게 온전히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런데 토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됐고, 이 때문에 피어스의 영구결번식날 현장에 참석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헌정영상을 둘러싼 논란이 자연스레 해결(?)된 것이었다.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 제공 = NBA 미디어센트럴, 펜타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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