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폴 피어스는 큰 경기, 결정적 순간에 강했다. ‘The Truth'라는 멋들어진 별명이 전혀 아깝지 않게 결정적 순간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보스턴을 떠나 점차 기량이 하락하던 브루클린, 워싱턴, 클리퍼스 시절에도 마찬가지.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피어스의 커리어 베스트 경기들을 뒤돌아보자. (모든 날짜는 한국시간 기준)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2월호에 실린 기사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1. 2002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The Answer’를 압도한 ‘The Truth’

피어스는 NBA 무대에 입성한지 4번째 시즌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나선다. 피어스의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필라델피아. 당시 필라델피아에는 정규시즌 평균 31.4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한 앨런 아이버슨이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었다. 

리그 최고의 득점 기계를 상대로 피어스는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보스턴은 피어스의 활약 속에 홈에서의 첫 2경기를 잡아냈지만 원정에서 치러진 2경기를 모두 내주고 말았고 결국 승부는 마지막 5차전으로 흘러갔다(당시 NBA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는 5판 3선승제로 진행되었다). 

지면 그대로 시즌을 마쳐야 하는 운명의 5차전 경기. 플레이오프 첫 나들이에 나선 24살의 애송이는 무려 46점을 폭발시키며 31점에 그친 득점왕을 압도한다. 그날 피어스가 시도한 25개의 야투 중 16개가 림을 갈랐으며 10개를 시도한 3점슛은 8개가 그물을 출렁였다. 위기의 순간 엄청난 폭발력을 선보인 피어스와 함께 보스턴은 120-87의 대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 2라운드 티켓을 거머쥐었다. 

 

2. 2002년 동부 지구 결승 3차전: 21점 차 역전극을 만들다

피어스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경기. 앞서 언급한 첫 플레이오프 도전에서 피어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까지 진출했다. 그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제이슨 키드가 이끌던 뉴저지였다. 

1승 1패로 팽팽히 맞선 채 자신들의 홈으로 돌아온 3차전. 보스턴은 1쿼터 초반을 6-22로 끌려가는 등 뉴저지의 위력에 맥을 추지 못한다. 첫 16개의 슛 중 15개가 들어가지 않았으며 3쿼터 중반에는 차이가 26점까지 벌어졌다. 3쿼터가 끝났을 때 스코어는 53-74. 그렇게 경기는 뉴저지의 완승 분위기로 흘러갔다. 

모두가 끝난 경기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4쿼터 시작과 동시에 야금야금 추격을 개시한 보스턴이 기적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모습을 연출하며 최종 94-90의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4쿼터 두 팀의 스코어는 무려 41-16. 특히 피어스는 자신의 28득점 중 19점을 4쿼터에 몰아치며 대역전극을 주도했다. 

3. 2008년 동부지구 준결승 7차전: 르브론 제임스와의 ‘쇼다운’

2007년 여름 트레이드로 레이 알렌과 케빈 가넷을 영입한 보스턴은 직전 시즌보다 42승을 더 따내며 여유롭게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른다. 1라운드에서 7차전 고전 끝에 애틀랜타를 물리친 보스턴의 2라운드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가 버티고 있던 클리블랜드. 이번에도 보스턴은 7차전까지 치르며 고전을 이어갔다. 

이 시리즈에서 피어스는 6차전까지 평균 15.8점에 그치며 아쉬운 모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 빛을 발했다. 

마지막 7차전에 나선 피어스는 혼자서 41점을 퍼부으며 클리블랜드 수비를 박살내 버린다. 특히 이 경기에서는 르브론 역시 45점을 기록하며 피어스와 엄청난 쇼다운을 펼쳤으나 최종 승자는 97-92로 승리한 피어스가 되었다.

4. 2008년 파이널 1차전: 드라마를 연출하다

생애 첫 파이널 무대에 나선 피어스. 상대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끌던 레이커스였다. 많은 기대 속에 나선 파이널 무대였지만 1차전부터 엄청난 불운이 그에게 들이닥친다. 접전이 이어지던 3쿼터 중반 코비의 돌파를 수비하던 피어스가 무릎을 잡고 쓰러진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 피어스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휠체어에 실린 채 라커룸으로 빠져나간다. 누가 보더라도 이 경기에서 그는 더 이상 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피어스는 기적을 연출한다. X-레이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피어스는 약 2분여 만에 영웅처럼 다시 코트에 돌아왔다. 그리고 피어스는 곧바로 3점슛 2개를 꽂으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러한 피어스의 투혼 속에 1차전을 98-88로 잡아낸 보스턴은 6차전 만에 승부를 끝내며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5. 2015년 동부지구 준결승 3차전: 살아 있었던 클러치의 제왕

2012-13시즌을 끝으로 보스턴을 떠난 피어스는 브루클린-워싱턴을 거치며 조금씩 기량이 하락하고 있었다. 2014-15시즌 워싱턴 유니폼을 입은 피어스의 정규시즌 성적은 평균 11.9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피어스 특유의 클러치 능력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그가 또 다시 이를 증명한 경기는 애틀랜타와의 플레이오프 2라운드 3차전. 101-101로 팽팽하게 맞서던 4쿼터 마지막 공격에 나선 워싱턴은 피어스에게 팀의 운명을 맡겼다. 

그리고 피어스는 종료 버저와 함께 환상적인 중거리슛을 꽂아 넣으며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그를 수비하던 데니스 슈로더에 이어 슛을 쏘는 순간에는 켄트 베이즈모어까지 달려들었으나 소용없었다. 경기 후 슈로더는 “운이 좋았다”며 애써 폄하했지만 피어스의 커리어를 똑똑히 목격한 이들은 모두 슈로더의 발언에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6. 2017년 2월 6일: TD 가든 마지막 경기

워싱턴에서 1시즌을 뛴 후 피어스는 클리퍼스로 이적해 닥 리버스 감독과 재회했다. 그러나 클리퍼스에서의 피어스는 전혀 우리가 알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클리퍼스에서 뛴 2시즌 동안 피어스는 한 자릿수 평균 득점에 머무르며 점점 팀의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갔다. 

2016-17시즌은 은퇴를 선언한 피어스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 2월 6일, 피어스는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TD가든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에서도 피어스는 5분 17초를 소화하는데 그쳤으나 마지막 19.8초를 남기고 코트에 들어선 후 멋진 3점슛을 꽂아 넣으며 경기를 마쳤다. 그런 그를 향해 보스턴의 관중들은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고 피어스는 코트 중앙 팀 로고에 입을 맞추며 보스턴 팬들과의 작별을 고했다. 

사진 제공 = NBA 미디어센트럴

일러스트 제공 = 홍기훈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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