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박정은 칼럼니스트] 5라운드가 끝났다. 

팀 당 10경기 정도밖에 남지 않으며 순위 싸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 주 ‘주간 그뤠잇’은 소속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큰 공헌을 한 선수들에 주목해봤다.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신한은행의 르샨다 그레이다. 우리은행한테 지면서 7연승은 끝났지만 신한은행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데는 그레이의 역할이 컸다.

국내 선수들 중에서는 그레이만큼 반짝하는 모습을 보인 선수는 없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우리은행의 김정은이 좋은 활약을 보였던 것 같다.

신한은행에 안정감을 불어넣은 르샨다 그레이
vs 삼성생명(1/24) | 28:04 31점 14리바운드 2블록슛 야투율 70.6%(12/17)
vs 우리은행(1/27) | 22:46 18점 11리바운드 3블록슛 야투율 53.8%(7/13)
vs 하나은행(1/29) | 24:50 19점 9리바운드 야투율 77.8%(7/9)

정규리그 우승을 다투고 있는 우리은행과 KB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사실상 결정한 반면 3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경기차로 앞선 신한은행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남아있는 맞대결을 모두 삼성생명이 이기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전체적인 전력 면에서도 신한은행이 조금은 앞서는 것 같다. 우선 신한은행은 지난 주, 가장 큰 고비 중 하나였던 삼성생명과의 경기에서 이겼다. 주역은 그레이였다.

신한은행이 연승을 시작할 즈음부터 이전보다 견고한 플레이를 보여주기 시작한 그레이는 정말 중요한 승부에서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카일라 쏜튼이 폭발력은 있지만 기복이 있는 것과 반대로 그레이는 이제 안정감 있게 꾸준한 역할을 해준다.

그레이는 올 시즌 WKBL에 있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정통 센터에 충실한 것 같다. 190cm가 넘는 샨테 블랙(KDB생명)이나 다미리스 단타스(KB), 나탈리 어천와(우리은행)보다도 정통 센터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픽앤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스크린 후 골밑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상당히 빠르고 좋다. 김단비를 비롯한 동료들의 어시스트가 많아졌는데, 패스도 좋았지만 그레이의 효과적인 움직임이 이들의 A패스를 이끌었다. 그레이가 동료들의 어시스트 패스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자세도 많이 낮아졌고, 과감하게 스텝을 넓게 가져가며 골밑에서 안정감 있게 자기 슛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에는 트래블링으로 지적될 장면이 많았지만 자세와 스텝이 안정감을 찾으며 위력이 높아졌다.

24일 삼성생명 전도 그런 모습이 많이 나왔다. 

리그 정상급 선수인 엘리사 토마스가 힘이 좋기 때문에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토마스를 상대로 자신 있게 몸을 부딪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레이는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면서 자기 플레이를 했다.

삼성생명으로서는 토마스가 5반칙으로 퇴장 당한 장면이 아쉬웠을 것이고, 분명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내내 같은 형태의 경기를 펼친 그레이에 대해 조금 더 영리한 수비를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레이는 높이도 있는데다가 파워와 탄력을 갖췄고 정점에서 슛을 던지다 보니 타점이 높다. 골밑에서 정확한 스텝에 이어 슛을 시도하면 상대 선수가 손을 뻗었을 때 손목 아래쪽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아 바스켓 카운트를 통한 3점 플레이를 많이 이끌어낸다.

그레이가 좋은 위치에서 볼을 잡고 돌아섰을 때, 수비가 높이에서 확실한 이점을 갖고 있는 선수가 아니라면 슛을 막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레이가 좋은 포지션에서 안정적으로 볼을 잡지 못하도록 볼 투입 전부터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레이의 또 다른 장점은 코트에서 정말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열심히 스크린을 걸고, 이후 적극적으로 골밑으로 자리를 잡아 들어가고 많은 움직임을 가져간다. 플레이가 투박하고 거칠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센터는 키가 큰 대신 느리다는 고정 관념이 있어서 움직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면 가장 부지런해야 하는 포지션이 센터일 수 있다. 그레이의 부지런함은 국내 센터들도 배울 필요가 있다.

박지수(KB)의 경우에는 그레이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WKBL에서 압도적인 높이를 갖고 있는데다가 모든 플레이에서 센터가 해야 할 역할을 본능적으로 해내는 센스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외의 센터들을 보면 높이나 센스 면에서도 장점이 없는데 부지런한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레이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나라 센터들이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그레이의 세리머니도 국내 선수들이 배웠으면 한다. 

신한은행은 그레이 뿐 아니라 쏜튼도 적극적으로 세리머니를 펼친다. 자기 감정을 표현하면서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세리머니는 프로 선수라면 스스럼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보여지는 것 때문 만은 아니다.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감정의 공감대는 함께 뛰는 선수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쏜튼이나 그레이가 코트에서 포효할때 신한은행 선수들은 더 큰 자신감과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팀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상대를 위축시키는 효과도 있다. 

지나치면 안되겠지만 적당한 세리머니는 우리 선수들도 자신있게 했으면 좋겠다.

김정은, 정상급 선수가 보여주는 절실함
vs 신한은행(1/27) | 38:24 19점(3점슛 3/4) 8리바운드 3어시스트 야투율 63.6%(7/11)

우리은행은 지난 주 1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 선수를 선택한 것은 지난 한 주간 확실한 인상을 심어준 국내 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5연승과 7연승을 달리던 팀들끼리의 대결이었던 만큼 이 승부에서 이긴 우리은행이 얻은 수확도 상당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7일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기에서는 신한은행이 김단비로 박혜진에게 맞불을 놓았다. 에이스끼리 서로를 묶은 상황에서 우리은행은 김정은과 임영희가 공조하며 이길 수 있었다. 김정은은 득점 뿐 아니라 양 팀 국내 선수 중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잡으며 승리에 기여했다.

특히 김정은을 선택한 것은 이번 주 뿐 아니라 올 시즌 내내 보여준 플레이도 어느 정도 감안을 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을 보면 확실히 전성기 때의 몸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재활을 하고 우리은행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전의 몸 상태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폭발적인 공격력을 갖고 있는 선수인 건 분명하기 때문에 상대팀으로서는 김정은에 대한 수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박혜진과 임영희에게 몰리는 수비가 분산된다. 최은실과 함께 뛸 수도 있어 노장인 임영희의 과부하를 막아줄 수 있다. 

김정은이 코트에 있는 것만으로 우리은행은 이런 효과를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은 자기 득점을 만들어내는 기본기가 상당히 좋은 선수다. 찬스가 오면 공격에서 자기가 해야 할 것은 해 줄 수 있다. 

특히 상대 진영을 돌파할 때 정말 좋은 드라이브인 자세를 보여 준다. 자세가 낮고 어깨를 사용할 줄 안다.

현역시절 김정은의 돌파를 막을 때 공격자 파울을 유도하려고 했는데, 김정은의 어깨에 명치를 부딪힌 적이 있었다. 드라이브인의 첫 발을 디딜때 어깨가 수비수의 명치에 닿을 만큼 낮은 자세에서 출발하고, 어깨를 이용해 수비를 밀어낼 수 있는 선수다. 

현재 WKBL의 포워드 중에 이런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는 김정은과 김단비(신한은행) 정도인 것 같다.

또한 김정은은 올 시즌 수비와 궂은일에서도 자기 역할을 해준다. 

사실 김정은이 농구를 하면서 수비를 하는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에 데뷔했으니 프로 12년 만에 처음으로 수비를 하는 것이다. 학창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수비를 처음 한다는 이야기다.

김정은은 신인 때부터 워낙 공격력에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수비 때는 체력을 세이브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격에 특화되고 치우쳐진 선수였다. 그런 김정은이 올 시즌에 수비를 하고 있다. 

4번으로 높이가 높지는 않지만 힘이 좋아서 상대 빅맨이나 외국인 선수와의 매치업에서도 버텨주고 있다. 김정은이 스피드가 있는 편은 아니니, 발 빠른 포워드를 상대하는 것 보다는 빅맨과 인사이드에서 싸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냉정히 객관적으로만 평가할 때, 올 시즌 김정은의 수비 자체는 높은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의 농구 경력과 우리은행이라는 팀을 감안하면 80점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김정은은 농구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은 선수다. 또 성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를 못하면 코트에 설 수 없는 우리은행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농구를 하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수비를 이제 와서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몸 상태도 전성기 때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무리한 동작이나 거친 파울성 플레이도 나온다. 

하지만 고의적인 플레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코트에 서기 위한 절실함 같다. 적극적으로 수비를 펼치다가 몸이 따라가지 못할 때 어떻게라도 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지나친 부분은 심판이 잡아줘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어린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배워야 한다. 선배들보다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이 코트에 서기 위해서는 수비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언젠가부터 슛을 놓치거나 공격에서 실수를 했을 때는 안타까워 하지만 수비에서의 실수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공격이 장점인 어린 선수는 한 두 번의 슛 미스에 교체될 수 있지만 수비가 좋은 어린 선수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코트에 있을 수 있다. 발전의 기회를 더 빨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수비가 공격보다 재미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비가 안 되면 평생 ‘반쪽짜리 선수’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정은은 입단할때부터 내로라하는 리그 정상급 선수들과 견주어서도 뒤지지 않는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랬던 김정은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수비에서 이런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으면 좋겠다.

사진 = 이현수 기자 stephen_hs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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