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코비는 NBA 역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20년 이상을 뛰었던 선수다. 많은 시간을 코트에서 보낸 만큼, 그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료들도 무수히 많았다. 한 때 그의 앙숙이었으나 이제는 영원한 친구가 된 샤킬 오닐, 코비의 우승을 도왔던 파우 가솔과 라마 오덤, 그리고 그와 함께 5개의 우승 반지를 거머쥔 필 잭슨 감독까지. 20년 동안 코비와 함께 울고 웃었던 그의 동지들을 짚어보았다.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1월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최고의 앙숙이자 콤비였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이 남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샤킬 오닐은 코비의 선수 생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다.

1996년 데뷔 당시 코비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고졸 가드 유망주에 불과했다. 그리고 코비를 지명한 직후 레이커스는 리그 최고의 젊은 센터를 FA 시장에서 영입했는데, 그의 이름은 바로 샤킬 오닐이었다.

오닐은 이미 루키 시즌부터 NBA를 폭격한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1995년에는 올랜도를 창단 첫 NBA 파이널 무대로 이끌었으며, 페니 하더웨이와 함께 강력한 원투 펀치를 결성해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시카고 불스를 긴장하게 했다.

때문에 갓 데뷔한 코비가 샤킬 오닐의 입지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을 터. 실제로 코비는 루키 시즌에 선발로 출전한 경기 수도 6경기에 불과했다. 선배 에디 존스에 밀려 주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코트와 라커룸 어디서든 코비는 오닐보다 목소리가 클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코비가 순식간에 스타급 선수로 성장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코비는 데뷔 3번째 시즌이었던 1998-99 시즌에 이미 평균 19.9점 전 경기 선발 출전을 기록하는 레이커스의 주전 슈팅가드가 됐고, 1999-00 시즌에는 평균 22.5득점을 기록하며 레이커스의 파이널 우승을 도왔다.

사실 1999-00 시즌까지만 해도 코비와 오닐 사이에는 별다른 불화설이 나오지 않았다. 코비는 리그 넘버원 센터이자 최고의 괴물이었던 오닐을 존중했고, 오닐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는 코비를 좋아했다.

그러나 둘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선수들이었다. 코비가 코트 안팎에서 조용하고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타입의 선수였던 반면, 오닐은 친화력과 언변이 모두 뛰어난 분위기 메이커였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 보니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앙금이 쌓였다. 그리고 코비가 2000-01 시즌에는 아예 평균 28.5득점을 기록하는 리그 최고급 슈팅가드로 또 한 번 성장하면서 둘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코비와 오닐의 불편한 동거는 2004년까지 계속됐다. 둘의 사이가 멀어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팀을 3연패로 이끈 것 자체가 코비와 오닐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오닐은 2004년 파이널에서 준우승에 그친 후 레이커스 구단에 공식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마이애미로 둥지를 옮겼다.

이후 NBA 사무국은 코비의 레이커스와 오닐의 마이애미의 맞대결을 크리스마스 매치로 여러차례 편성했는데, 둘의 맞대결이 펼쳐질 때마다 코트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코비 vs 오닐’ 대결 구도가 NBA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코비와 오닐의 불편한 관계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해소됐다. 오닐이 은퇴 후 NBA 방송 일을 하면서 여러 차례 코비에 대한 존중을 드러냈고, 코비 역시 오닐의 이런 접근(?)에 대해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10년 묵은 갈등이 비로소 끝이 난 것이다.

사킬 오닐은 2016년 4월에 있었던 코비의 은퇴 경기를 직접 관람했고, 코비의 영구결번식에도 참석하는 등 코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고 있다. 지금 둘은 문자와 전화를 통해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아주 좋은 친구 사이다. NBA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앙숙이 이제는 누구 못지않게 가까운 절친 사이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코비의 영구결번식에서 샤킬 오닐은 코비에 대해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코비를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듀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와 코비는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하고, 논란이 많고, 지배적인 원투 펀치이자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듀오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매직 존슨과 카림 압둘-자바를 포함해서다. 둘에게 내가 한 얘기를 전해도 괜찮다”

“나는 아마도 레이커스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선수(most dominant Laker)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코비는 데뷔할 때부터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코비가 코트에서는 보여준 플레이와 훈련량을 보면 그가 레이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레이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다들 매직 존슨과 코비를 거론할 것이다. 둘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코비라고 대답할 것이다” 오닐의 말이다.

 

파우 가솔&라마 오덤, 1인자 코비를 만들어준 동료들

2004년 샤킬 오닐이 마이애미로 떠난 이후 코비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레이커스의 3연패를 함께 이끌었던 선배들은 모두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떠났다. 코비는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코비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미 리그 최고급 슈팅가드로 올라선 코비를 확실하게 도울만한 선수가 레이커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2006년과 2007년 코비는 레이커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지만,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코비가 레이커스의 전력에 대해 불만을 본격적으로 표출한 것도 이때다. 코비는 너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1월, 지칠대로 지쳐 있던 코비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건이 터졌다. 레이커스가 깜짝 트레이드를 통해 멤피스의 에이스 파우 가솔을 영입한 것이다. 파우 가솔 역시 멤피스에서 코비와 다르지 않은 입장에 있었다. 가솔은 트레이드 당시 무려 12개의 프랜차이즈 기록을 보유한 멤피스의 상징적인 스타였는데, 코비와 함께하면서 레이커스를 완전히 다른 팀으로 바꿔놓는다.

영리하고 이타적인 파우 가솔을 만난 코비는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가솔과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팀 공격을 이끌었고, 둘은 특히 공격에서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결국 레이커스는 57승 25패 서부지구 1위로 정규시즌을 마무리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샌안토니오를 누르고 4년 만에 파이널 무대를 밟았다. 코비와 가솔이 이끄는 레이커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전까지 코비의 파트너 역할을 생각만큼 잘해주지 못했던 라마 오덤도 가솔이 오면서 다른 선수가 됐다. 스코어러보다는 다재다능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에 가까웠던 오덤은 2008-09 시즌부터튼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는 레이커스의 새로운 벤치 에이스가 됐고, 여기에 유망주 앤드류 바이넘이 성장하면서 레이커스는 리그 최강 팀이 될 수 있었다.

결국 레이커스는 2009년과 2010년에 연달아 NBA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코비는 가솔과 오덤의 도움 속에 홀로서기에 완벽히 성공했고 꿈에 그리던 1인자로서의 우승을 두 번이나 달성할 수 있었다.

가솔과 오덤 모두 지금도 코비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솔은 코비의 은퇴 경기와 영구결번식을 앞두고 코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으며, 본인이 레이커스를 떠난 뒤에도 꾸준히 코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마침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의 팬이라는 공통점까지 있었던 둘은 지금도 여전히 코트 안팎에서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라마 오덤도 마찬가지. 2015년 오덤이 약물 문제로 병원에 실려가 혼수 상태에 빠졌을 때 코비는 오덤의 병실을 직접 찾아가 그의 상태를 살펴보고 쾌유를 빌기도 했다. 다행히 이후 오덤이 의식을 되찾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코비와 오덤의 관계도 잘 유지되고 있다. 오덤 역시 2016년에 코비의 은퇴 경기를 직접 찾아 코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던 바 있다.

 

연주자 코비를 이끈 마에스트로, 필 잭슨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코비는 행운아다. NBA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필 잭슨과 함께 커리어를 보냈으니 말이다.

사실 코비가 커리어의 모든 순간을 필 잭슨과 함께 했던 것은 아니다. 필 잭슨은 코비의 커리어 첫 2년을 함께하지 못했다. 레이커스가 2004년에 우승에 실패한 뒤에도 필 잭슨은 잠시 코비의 곁을 떠나 있었다. 2011년을 끝으로 잭슨은 아예 감독직에서 은퇴했고 이후 코비는 마이크 브라운, 마이크 댄토니 등 다양한 감독들과 커리어의 마지막 5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필 잭슨만큼 코비와 훌륭하게 공존하지는 못했다.

레이커스의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필 잭슨은 이미 시카고에서 6개의 우승 반지를 차지한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이었다. 당시 NBA에서 잭슨만큼 대단한 업적을 가진 현역 감독은 없었다. 반면 코비는 이제 막 2번의 시즌을 보낸 주목받는 유망주 정도였다.

하지만 필 잭슨의 전술과 리더십 속에서 코비는 더욱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코비는 정확히 마이클 조던의 역할을 맡았다. 로우 포스트와 하이 포스트를 오가며 미드레인지 점프슛 기회를 얻었고, 필요할 때에는 3점슛 라인 밖에서부터 볼 핸들러 역할을 맡으며 수비를 헤집었다. 이미 조던과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낸 필 잭슨과 조던을 롤 모델로 삼고 있었던 조던은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그렇게 둘은 레이커스의 리그 3연패를 합작할 수 있었다.

샤킬 오닐 이적 후 에이스와 리더의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으며 압박을 받던 코비가 안정을 되찾은 것도 필 잭슨이 레이커스로 컴백한 후였다. 그는 2005-06 시즌에 다시 레이커스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이전 시즌에 34승에 그쳤던 레이커스는 잭슨이 복귀하자마자 45승을 기록하는 플레이오프권 팀으로 부활했다.

이후의 스토리는 독자들이 아는 그대로다. 레이커스 프런트가 좋은 조력자들을 영입했고, 필 잭슨과 코비는 이번엔 감독과 1인자로서 2번의 우승을 합작했다. 코비는 필 잭슨 감독을 누구보다 존중했으며, 필 잭슨 역시 지독한 승부사 코비의 플레이를 최대한 존중했다. 각자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지도자와 선수였던 만큼 첨예하게 대립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영역을 최대한 존중하지 않는 선에서 효과적으로 타협하며 결국 레이커스의 성공을 이끌었다.

필 잭슨은 코비가 은퇴 경기를 치를 당시 뉴욕 닉스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탓에 스테이플스 센터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열린 영구결번식에도 개인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필 잭슨은 트위터를 통해 “축하한다, 코비! 등번호 2개가 모두 영구결번되는 것은 레이커스 역사에 네가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야! 그리고 네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는 우승 반지 5개를 보면 알 수 있지.”라며 코비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코비의 커리어에서 필 잭슨이 존재가 중요했던 만큼, 필 잭슨의 커리어에서도 코비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아마 코비는 필 잭슨의 지도자로서의 여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로 남지 않을까? 마이클 조던과 더불어서 말이다.

 

 

사진 제공 = 루키 DB, NBA 미디어센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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