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제임스 하든의 생애 첫 MVP 도전이 위기에 처했다.

필자는 지난 12월 14일자 기사를 통해 2017-2018 시즌 MVP 레이스는 ‘두 명의 제임스’가 이끌고 있으며, MVP 수상자는 결국 둘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바 있다.

[이동환의 NBA노트] 르브론 vs 하든, 진정한 '킹 제임스'는 누구?
http://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398&aid=0000013055

사실 당시 글을 쓰면서도 필자는 내심 하든이 결국 MVP 레이스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2016-2017 시즌에 이어 또 한 번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는 제임스 하든의 페이스가 역전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민망하게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유명한 사자성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금은 당시의 필자를 찾아가 머리에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제임스 하든의 생애 첫 MVP 도전이 큰 위기에 처했다. 이제는 누구도 제임스 하든이 MVP를 탈 것이라고 확언하지 못한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저마다의 ‘MVP 레이더’에 잡힌 새로운 MVP 후보들을 거론하느라 바쁘다. 하든도, 르브론도 아닌 선수가 MVP를 탈 수 있다는 예상이 어느새 나오는 중이다.

분명 12월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지는 않았다. 2014-2015 시즌에는 스테픈 커리에 밀려, 2016-2017 시즌에는 러셀 웨스트브룩에 밀려 MVP 투표 2위에 그친 제임스 하든이 이번엔 정말로 한을 풀 줄 알았다.

도대체 제임스 하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금강불괴, 햄스트링 부상에 쓰러지다

앞서 언급한대로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MVP 트로피는 제임스 하든의 차지가 될 것만 같았다.

사실 필자만 그렇게 예상했던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현지 언론과 팬들이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제3의 선수가 MVP를 차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르브론 제임스가 하든을 역전할 확률도 많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2017년의 마지막 날 밤에 발생했다.(한국 시간으로는 1월 1일 오전이었다.) 제임스 하든이 LA 레이커스와의 경기 중에 쓰러졌고, 그는 다리를 붙잡고 코트를 떠났다.

2차 연장까지 이어진 이 승부는 결국 휴스턴의 승리로 끝났지만, 휴스턴은 승리보다 훨씬 큰 것을 잃었다. 제임스 하든이 햄스트링 부상 진단을 받고 최소 2주 이상 결장하게 된 것이다.

당시 몇몇 국내 언론에서는 하든의 부상에 대해 단순히 ‘2주 결장’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너무나 중요한 단어가 하나 빠져 있었다. 바로 ‘최소’였다.

미국 현지 언론들이 전한 하든의 햄스트링 부상 상태를 정리하면 정확하게 다음과 같았다.

‘일단 하든은 이번 햄스트링 부상으로 2주 동안 결장한다. 하지만 2주 후 재검사를 했을 때에도 상태가 좋지 않거나 회복 속도가 느릴 경우, 결장 기간은 4주에서 6주로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일 미국 CBS스포츠는 ‘하든의 결장 기간이 6주에 달할 수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CBS스포츠는 ‘하든이 단 2주만 쉬고 코트에 돌아올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햄스트링 부상이 가벼운 수준인지 혹은 더 심각한 수준인지 2주 후에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든이 1월을 통째로 날리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2월에도 2주 이상 경기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제임스 하든의 장기 결장 소식은 곧바로 MVP 레이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결장 횟수는 곧 MVP 트로피와 멀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SI.com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선수들의 평균 결장 경기 수는 2.5경기에 불과했다. 이 말인즉슨, MVP 수상자가 되려면 정규시즌 82경기 중 79경기 혹은 80경기는 뛰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물론 평균적인 수치에 따르면 그렇다) 적어도 그 시즌에 한해서는 ‘금강불괴’의 모습과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같이 보여줘야 MVP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든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미 4경기를 결장했다. 그리고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올 때까지 하든의 결장 경기 수는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다. 정말 안타깝지만, 이것만으로도 하든은 MVP 레이스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물론 하든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것이다. 자신은 2009년 데뷔 이래 지난 9년 동안 누구보다 건강하게 뛰어온 선수였기 때문이다.

NBA.com에 따르면 하든은 루키 시즌이었던 2009-2010 시즌부터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최근 레이커스전까지, 자신의 소속팀(오클라호마시티, 휴스턴)이 치른 총 763경기 중 738경기에 출전했다.(플레이오프 포함) 정규시즌 675경기 중 650경기에 출전했으며 플레이오프 88경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뛰었다. 철인 중의 철인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금강불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는 르브론 제임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임스 하든의 데뷔 이래 출전 경기 현황(괄호는 플레이오프)*
2009-2010시즌: 76/82 (6/6)
2010-2011시즌: 82/82 (17/17)
2011-2012시즌: 62/66 (20/20)
2012-2013시즌: 78/82 (6/6)
2013-2014시즌: 73/82 (6/6)
2014-2015시즌: 81/82 (17/17)
2015-2016시즌: 82/82 (5/5)
2016-2017시즌: 81/82 (11/11)
2017-2018시즌: 35/35 – LA 레이커스전까지만 계산

정규시즌: 650/675
플레이오프: (88/88)
도합: 738/763

하지만 이번에 당한 부상은 정말 타이밍이 좋지 않다. MVP 3수에 도전하는, 그리고 그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에 하필 쓰러졌다. 하든의 부상을 전후해 휴스턴의 성적도 내려가고 있다. 한 때 골든스테이트를 제치고 리그 전체 선두를 달리던 휴스턴은 이제 지구 2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 제임스 하든의 MVP 도전이 위기에 빠진 이유

만약 하든이 70경기 이상 뛰지 못하고, 휴스턴도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을 기록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 애석하게도 하든의 MVP 도전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NBA 역사상 정규시즌에 70경기보다 적게 출전하고도 MVP를 수상한 사례는 총 5번이었다. 그 중 2번은 한 시즌이 72경기 체제로 치러졌던 50년대에 나왔고(빌 월튼, 밥 쿠지), 또 다른 2번은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 시즌이 열린 시기에 나왔다.(칼 말론, 르브론 제임스)

82경기 시즌에 70경기보다 적게 뛰고도 MVP를 수상한 사례는 단 1번. 1977-78 시즌에 고작 58경기에 출전한 포틀랜드의 빌 월튼뿐이었다.(LA 레이커스 루크 월튼 감독의 아버지다.)

*70경기 미만 출전 시즌에 MVP를 수상한 역대 선수들*
1956-1957시즌 밥 쿠지(64경기 출전) - *72경기 체제
1957-1958시즌 빌 러셀(69경기 출전) - *72경기 체제
1977-1978시즌 빌 월튼(58경기 출전)
1998-1999시즌 칼 말론(49경기 출전) - *단축 시즌(총 50경기)
2011-2012시즌 르브론 제임스(62경기 출전) - *단축 시즌(총 66경기)

위의 사례를 제외한 모든 역대 MVP들은 모두 71경기 이상 출전했다.

2000-2001 시즌 MVP를 수상한 앨런 아이버슨의 경우 71경기 출전에 그쳤다. 빌 월튼 다음으로 적은 경기를 뛰고 MVP를 수상한 사례였다. 하지만 당시 아이버슨의 평균 출전 시간은 무려 42.0분에 육박했다. 11경기에 결장하긴 했지만 사실상 철인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무방했다. 정규시즌 MVP 수상에 있어서 많은 경기에 나서고 많은 시간을 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깝지만 올시즌 제임스 하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다. 이미 다쳐버린 햄스트링의 상태와 회복 속도다. 조만간 있을 재검사에서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올 경우 올시즌 하든의 결장 경기 수는 10경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곧 하든이 MVP에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상실한다는 얘기가 된다. 65경기만 뛴 선수에게 MVP 1위표를 줄 현지 기자들은 많지 않다. 햄스트링 부상에 계속 발목을 잡힌다면, 기자들의 투표 용지에는 결국 하든 대신 다른 선수의 이름이 쓰일 것이다.

 

물론 한 달 전 칼럼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일 수 있다. 우선 하든의 햄스트링 재검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빌 월튼 같은 사례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설사 하든이 70경기를 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MVP 수상 가능성이 '0'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역사는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70경기를 뛰지 못한 선수는 그 시즌에 MVP를 받을 자격이 ‘거의’ 없다고.

비슷한 맥락에서 SI.com은 지난 5일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제임스 하든의 부상, NBA MVP 레이스를 와이드 오픈(Wide Open) 상태로 만들다'

어찌됐든 제임스 하든의 생애 첫 MVP 도전이 큰 위기에 처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제공 = 아디다스, NBA 미디어센트럴
 

저작권자 © ROOKI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