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동환 기자] 올시즌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는 루키 2명은 누구일까? 벤 시몬스도, 제이슨 테이텀도 아니다. 바로 카일 쿠즈마(LA 레이커스)와 도노반 미첼(유타 재즈)이다.

25일 기준으로 쿠즈마는 경기당 평균 17.7점을, 미첼은 18.0점을 기록하고 있다. 쿠즈마와 미첼의 활약으로 다소 뻔해 보였던 신인왕 레이스 구도에도 변수가 발생했다.

물론 가장 앞서 있는 선수는 여전히 벤 시몬스다. 하지만 이제 쿠즈마와 미첼도 신인왕 투표에서 충분히 1위표를 얻을 수 있는 후보들이다. 11월까지만 해도 시몬스는 만장일치 신인왕도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하지만 쿠즈마와 미첼의 활약으로 그 가능성은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벤 시몬스의 질주를 방해하고 있는 카일 쿠즈마와 도노반 미첼은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들은 대학에서 1년만 보내고 NBA 무대에 진출한 ‘초특급’ 루키들이 아니다. 쿠즈마와 미첼 모두 대학 무대에서 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또래 유망주들에 비해 늦게 NBA 무대를 밟았다.

 

카일 쿠즈마는 고교 시절 명문 대학의 스카우팅 제안을 전혀 받지 못한 '그저 그런' 유망주였다. 그는 유타 대학에서만 무려 3년을 뛰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쿠즈마는 대학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프로 무대에 뛰어드는 전국구 유망주들과는 처지가 많이 달랐다.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듀크나 켄터키에 가는 친구들과 나는 다른 부류의 선수였다. 나는 그 친구들이 받는 수준의 관심을 사람들에게 받은 적이 없었다” 지난 11월 야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쿠즈마가 한 말이다.

물론 쿠즈마가 뛰었던 유타 대학도 이름 있는 NBA 스타들을 배출한 적이 있는 학교다.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 앤드류 보것이 바로 유타 대학 출신이다.(공교롭게도 보것은 지금 쿠즈마와 레이커스에서 함께 뛰고 있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순위 지명을 받은 뒤 무려 17년이나 NBA 코트를 누볐던 안드레 밀러도 유타 대학을 나왔다. 키스 밴 혼 역시 유타 대학 출신이다.

가깝게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9번째로 호명된 토론토의 야콥 퍼틀도 유타 대학 출신이었다. 퍼틀과 쿠즈마는 2014년에 함께 유타 대학에 입학한 동기 사이이기도 했다. 최고의 농구 명문은 아니지만, 그래도 쿠즈마 역시 NBA에서 꽤나 알아주는 대학에서 농구를 했던 셈이다.

하지만 쿠즈마는 대학에 막 입학하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농구를 하는 법을 잘 몰랐다”라고 회상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농구가 코트에 나가서 그저 공을 던지고 점수를 넣으면 되는 스포츠인 줄 알았다. 대학교에 처음 갔을 때는 수비 로테이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풋워크는 엉성했고 다른 플레이들도 오락가락했다”

그런 쿠즈마에게 대학에서 보낸 3년은 중요한 준비 기간이었다. 쿠즈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마했던 포스트업 공격 기술을 대학 시절에 더욱 갈고 닦아 NBA 수준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자신의 ‘고 투 무브(Go to move)’가 된 돌파 후 양손 훅슛도 대학 시절에 본격적으로 익혔다.

대학에서 3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은 NBA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 쿠즈마는 레이커스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유망주다. 그는 돌파, 점프슛, 컷인 등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트레치형 빅맨이다. 이제 누구도 쿠즈마를 마르고 평범한 운동능력을 가진 빅맨 유망주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엔 도노반 미첼로 시선을 돌려보자.

미첼은 요즘 선배 NBA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칭찬을 받는 루키가 아닐까 싶다. 제임스 하든, 카멜로 앤써니, 드마커스 커즌스 등 올시즌 미첼을 만나거나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이들은 하나 같이 그의 재능과 잠재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도노반 미첼은 경기를 지배한다. 미첼 같은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다”(제임스 하든)

- “유타는 정말 특별한 선수를 얻었다. 도노반 미첼은 유타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것이다”(카멜로 앤써니)

- “도대체 오늘 도노반 미첼이 해내지 못한 플레이가 뭔가?”(드마커스 커즌스)

- “도노반 미첼은 오랜 시간 동안 NBA에서 좋은 선수로 활약할 것이다. 미첼의 플레이를 보면 베테랑이 뛰는 것 같다”(마이크 댄토니 감독)

- “넌 어린 킹이야!”(경기 후 르브론 제임스가 도노반 미첼에게)

하지만 불과 지난 6월 초까지만 해도 도노반 미첼은 자신은 실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미첼 본인의 말에 따르면 드래프트 참가를 거의 철회할 뻔 했었다고.

이유는 단순했다. 프로에 진출하기 전에 자신이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첼의 고민을 해결해준 선수는 휴스턴의 크리스 폴이었다. 크리스 폴은 폴 조지, 줄리어스 랜들과 함께 미첼이 다니던 루이빌 대학을 방문해 일일 훈련을 함께 했는데, 당시 한창 드래프트 참가 철회를 고민하고 있던 미첼에게 “드래프트에 안 나가고 학교로 다시 돌아온다면 그건 미친 짓이야!”라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폴의 거친 조언에 미첼은 결국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올시즌 미첼의 활약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국 미첼은 3학년이 되기 전에 NBA에 진출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더 좋은 선수가 되어 NBA에 가길 원했던 미첼이 대학에서의 2년을 어떻게 보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미첼은 대학 시절에 NBA 선수들이 실제로 하는 훈련 방식을 알아내 그대로 따라하는가 하면, 자신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훈련을 시도했다. 볼 핸들링 기술을 보완해 어시스트-실책 비율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도 미첼이 대학 시절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슈팅 훈련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학년 시즌에 25.0%에 불과했던 미첼의 3점슛 성공률은 2학년 시즌에 35.4%로 ‘폭등’했다. 그리고 올시즌 NBA에서 미첼은 36.5%의 3점슛 성공률과 2.7개의 3점슛 성공을 기록 중이다. 많은 루키들이 대학 무대보다 50cm 이상 긴 NBA의 3점슛 라인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는다. 하지만 미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서머리그부터 3점슛 라인 한 발짝 뒤에서 과감하게 슛을 꽂아넣는 등 슈팅 레인지가 이미 NBA급이었다. 대학에서의 노력이 NBA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카일 쿠즈마와 도노반 미첼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대학 무대가 NBA 선수에게 굉장히 중요한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농구 선수의 얼리 엔트리가 독특한 사례로 분류되는 국내와 달리, 미국은 농구 유망주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다면 최대한 빨리 NBA에 진출하는 것이 좋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대부분의 전미 최고의 유망주들이 대학에서 1년만 뛰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일명 ‘원앤던(one and done)’의 길을 선택하는 이유다.

하지만 ‘원앤던’으로 NBA에 입성한 선수 중 과도기 없이 곧바로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케이스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워싱턴의 존 월이 대표적인 사례다. 월은 ‘원앤던’으로 유명한 켄터키 대학 출신으로 2010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1순위로 워싱턴에 지명됐다. 즉 드래프트 당시에는 월이 전미 랭킹 1위의 NBA 유망주였다.

하지만 존 월이 NBA에서 정상급 가드로 올라서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월은 2014년에야 생애 첫 올스타에 선발됐고 올-NBA 팀도 2017년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 3년 동안은 불안한 중거리슛 능력과 다듬어지지 않은 공격 기술로 우려를 샀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존 월이 운동능력에 걸맞은 기술을 갖추고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시점은 4년 차 시즌이었다. 짧지 않았던 과도기를 극복해낸 월은 이제 동부지구 최고 가드 자리를 노리는 선수다.

 

데미안 릴라드는 존 월과 정반대의 사례다. 릴라드는 대학에서 4년을 모두 보내고 뒤늦게 NBA 진출을 선언했다.

고교 졸업 당시만 해도 릴라드는 NBA 진출이 불가능해보이는 평범한 농구 선수였다. 183cm의 신장에 75kg의 마른 체형을 가진 릴라드를 어떤 스카우터도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고교생 릴라드에게 별 2개 혹은 3개의 평가를 내렸다.

결국 릴라드는 무명 웨버 주립 대학에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릴라드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리고 보상은 4년 뒤 드래프트에서 찾아왔다. 고교 졸업 당시 전미 랭킹 48위의 포인트가드였던 릴라드는(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매기는 랭킹에서는 아예 이름도 등록되지 못했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 지명을 받으며 당당히 NBA에 입성했다.

데미안 릴라드의 ‘반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NBA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2012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는 무려 앤써니 데이비스였다. 그리고 이 드래프트에서 브래들리 빌, 안드레 드러먼드, 해리슨 반즈 등 좋은 선수들이 쏟아졌다. 이 점에서 릴라드의 신인왕 수상은 상당한 이변이었다.

그리고 데뷔 2번째 시즌인 2013-14 시즌에 릴라드는 올-NBA 팀과 올스타에 모두 선발되면서 커리어가 계속 상승 곡선을 탔다. 그 뒤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는 대로다. 지금 릴라드는 포틀랜드를 상징하는 최고의 스타다.

존 월과 릴라드는 1990년생의 동갑내기다. 즉 고교 졸업 당시만 해도 월은 또래 나이대에서 전국 최고의 유망주였고 릴라드는 아무도 모르는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정작 NBA에서 존 월은 몇 년의 과도기를 겪었고, 무명 대학을 나온 데미안 릴라드는 신인왕을 거머쥐며 빠르게 올-NBA 팀 수준의 선수가 됐다. NBA에서 더 빨리 빛을 본 쪽은 오히려 릴라드였다.

사실 월과 릴라드의 사례를 너무 단순하게 해석하면 곤란하다. 팀 상황을 비롯한 워낙 많은 외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보낸 시간의 길이가 둘의 격차를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존 월에게 대학 무대는 NBA 무대를 밟기 위한 통과점이었지만, 릴라드에게는 NBA 레벨의 선수가 되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월과 릴라드는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하고 있다.

 

물론 빠른 프로 진출과 대학 잔류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떤 유망주들에게는 철저하고 혹독한 프로의 환경을 빨리 경험하는 게 장래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어떤 유망주들에게는 대학에서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며 발전을 도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물론 만 18세 전후의 유망주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국내 농구는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카일 쿠즈마, 도노반 미첼, 데미안 릴라드의 사례를 보면 원앤던(one and done)이 절대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출발을 조금 미루더라도, 그 시간 동안 절실하고 충실한 준비가 이뤄진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의 출발선을 앞당겨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카일 쿠즈마 같은 선수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해내고 있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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