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황호재 기자] 프로 선수들은 구단과 팬들의 큰 기대를 받으며 데뷔한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 뜻밖의 사고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기대에 비해 N%가 부족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 그 일곱 번째 주인공은 숀 브래들리다.

 

♣ 숀 브래들리 PROFILE

출생 : 1972년 3월 22일 (독일 란트슈툴)

신체조건 : 229cm, 125kg

출신대학 : 브리검영 대학

데뷔 : 199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소속팀 : 필라델피아 -> 뉴저지 -> 댈러스

수상실적 : 블록슛왕 1회, 올-루키 세컨드팀

통산기록 : 12시즌(총 832경기) 6,752득점 5,268리바운드 5,73어시스트 532스틸 2,119블록슛 / 경기당 평균 8.1득점 6.3리바운드 0.7어시스트 0.6스틸 2.5블록슛

 

♣ 신앙심 가득했던 키다리 아저씨

키 큰 사람들이 모인 NBA에서도 220cm 이상인 선수들은 보기가 쉽지 않다. 마누트 볼(231cm), 게오르그 뮤레산(231cm), 야오밍(229cm), 마크 이튼(224cm), 랄프 샘슨(224cm), 릭 스미츠(224cm) 등과 함께 초장신 선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선수가 있다. 바로 숀 브래들리(229cm)이다. 브래들리는 독일이 통일되기 한참 전인 1972년 서독의 란트슈툴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독일주둔 미군 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브래들리는 자연스럽게 미국, 독일 두 나라의 국적을 모두 갖게 됐다. 자라면서 미국으로 건너온 브래들리는 유타주(州)에 정착했다. 유타는 지역 주민 대부분이 모르몬교 신도인 것으로 유명하다. 브래들리 역시 모르몬교 신자였다. 우리는 종종 주위에서 모르몬교를 포교하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 검은 배낭을 멘 선하게 생긴 백인 청년들 말이다. 브래들리도 그런 청년들 중 하나였다. 단지 키가 남들보다 컸을 뿐이다.

큰 키를 앞세워 고교농구에서 두각을 보인 브래들리는 브리검영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경기당 평균 5.2블록으로 NCAA 1학년 최고 기록을 세운 그는 이스턴켄터키대학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무려 14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이것은 데이비드 로빈슨(해군사관학교)의 대학시절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이 부분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농구를 잠시 접었다. 모르몬교를 포교하기 위해 호주로 떠났기 때문이다. 브래들리는 2년간 호주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농구공을 손에서 놓았다.

포교활동을 마친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NBA드래프트로 직행했다. 2년의 공백기가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큰 키는 여러 구단들이 지나칠 수 없는 무기였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는 전체 2순위로 브래들리를 지명했다. 바로 앞 1순위는 그 유명한 크리스 웨버, 바로 뒤 3순위는 앤퍼니 하더웨이였다. 필라델피아는 모제스 말론에게 브래들리의 멘토 역할을 맡기고, 브리들래의 벌크업과 체력 향상도 각별히 신경 쓰는 등 크게 공을 들였다.

 

♣ 필라델피아의 큰 기대, 남은 건 그저 아쉬움

브래들리의 데뷔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데뷔전에서 워싱턴 불리츠(現 위저즈)를 상대로 6득점 5리바운드 8블록슛을 기록하며 블록슛만큼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큰 키에 비해 스피드가 빨라서 종종 속공상황에서 직접 공을 몰고 간 뒤 덩크슛을 내리꽂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약한 근력은 다른 이점들을 깎아내렸다. 그리고 2년간 코트를 떠났던 공백도 뼈아팠다. 차츰 시간이 지나자 브래들리는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를 상대로 23득점 8리바운드 3블록슛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17득점 10리바운드 6블록슛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기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1994년 2월 18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의 경기에서 브래들리는 하비 그랜트(호레이스 그랜트의 일란성 쌍둥이)와 충돌하며 무릎부상을 당했다. 그로 인해 그는 일찍 데뷔 시즌을 마쳐야 했다.

경기당 평균 10.3득점 6.2리바운드 0.9스틸 3.0블록, 이것이 브래들리의 데뷔 시즌 성적이었다. 블록슛은 디켐베 무톰보(이하 경기당 평균 4.1블록), 하킴 올라주원(3.7블록), 데이비드 로빈슨(3.3블록), 알론조 모닝(3.1블록) 등 쟁쟁한 스타들에 이어 리그 5위를 차지했지만 그 외에는 기대 이하였다. 브래들리의 바로 뒤에 지명됐던 앤퍼니 하더웨이, 자말 매쉬번, 아이재아 라이더를 필라델피아가 지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올-루키 세컨드팀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만족하며 브래들리는 데뷔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1994-95시즌에 82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그러나 필드골 성공률은 45.5%에 불과했고, 기술적으로 큰 발전이 없었다. 페인트존에서 방어탑 역할을 해낼 수 있지만, 화려한 기술을 탑재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보였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는 이 시즌에 무려 23경기에서 블록슛 5개 이상을 기록했고, 시즌 막판 20경기 중 18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팀 성적(24승 58패)이 너무 부진했기 때문에 브래들리를 앞세워 도약하겠다는 필라델피아의 꿈은 요원해보였다.

결국 필라델피아의 참을성은 거기까지였다. 1995-96시즌이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에 필라델피아는 브래들리, 그렉 그래햄, 팀 페리를 뉴저지의 데릭 콜먼, 션 히긴스, 렉스 월터스와 트레이드했다. 뚜렷한 구심점이 없던 당시 뉴저지에서 브래들리는 별 탈 없이 시즌을 마쳤다. 경기당 평균 블록슛 3.6개를 기록하며 1위 무톰보(경기당 평균 4.5개)에 이어 시즌 블록슛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브래들리와 뉴저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96-97시즌 뉴저지의 감독으로 부임한 존 칼리파리(現 켄터키대학 감독)는 브래들리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1997년 2월 브래들리는 짐을 꾸려야 했다. 뉴저지의 브래들리, 찰스 오배넌, 로버트 팩, 칼리드 리브스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샘 카셀, 크리스 개틀링, 짐 잭슨, 조지 맥클라우드, 에릭 몬트로스를 맞바꾸는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까지 기준으로 NBA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연루된 트레이드였다. 비록 팀을 옮기긴 했지만 브래들리는 이 시즌에 경기당 평균 13.2득점 8.4리바운드 3.4블록으로 자기 몫을 해냈다. 특히 무톰보를 꺾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블록왕을 차지한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 그의 진가를 알아준 댈러스

1997-98시즌은 브래들리에게나 댈러스에게나 새로운 출발이었다. 브래들리는 새 팀에서 처음으로 풀 시즌을 치르게 됐고, 댈러스는 대규모 트레이드 후 로스터를 정리하는 때였다. 마이클 핀리가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고, 시즌 초반 짐 클렘슨 감독이 물러난 뒤 돈 넬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물론 20승 60패로 여전히 팀 성적은 최악이었지만 일단 리빌딩의 퍼즐을 그런대로 맞춰가는 때였다. 브래들리는 경기당 평균 11.4득점 8.1리바운드 3.3블록(리그 3위)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무엇보다 더 이상 트레이드 당하지 않고 한 팀에 안착했다는 점이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시즌 막판 4월 7일에는 포틀랜드를 상대로 22득점 22리바운드 13블록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한 선수가 단일 경기에서 20득점, 20리바운드, 10블록 이상을 기록한 것은 카림 압둘-자바, 엘빈 헤이즈,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에 이어서 NBA 역사상 다섯 번째 일이었다.

한편, 시즌이 끝난 직후 댈러스는 팀의 역사를 바꿀 큰일을 해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로버트 트레일러를 지명한 후 밀워키 벅스가 지명한 신인 덕 노비츠키와 트레이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피닉스 선즈에서 스티브 내쉬까지 데려왔다. 파업으로 짧아진 1998-99시즌을 적응기로 보낸 후 1999-00시즌부터 이들은 슬슬 진가를 발휘했다. 댈러스는 이 시즌에 40승 42패를 기록하며 어느덧 플레이오프에 근접한 팀이 됐다. 물론 젊고 빠른 페이스를 구사하는 선수들 속에서 느린 브래들리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골밑 수비를 맡는 롤플레이어로 확실히 입지를 굳혔다. 2000-01시즌 댈러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몇 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을 53승 29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11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브래들리는 이때 데뷔 후 8시즌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를 경험하게 됐다. 항상 로스터를 갈아엎은 어수선한 팀들에서 뛰며 패배하던 끝에 찾아온 기쁜 날이었다. 또 시즌을 마치고는 동료 노비츠키와 함께 독일대표팀에 합류, 유로바스켓 2001에 출전해 4위를 기록했다.

댈러스로 이적한 후 이렇게 좋은 일들이 생기며 오랫동안 고생한 낙이 오는듯했다. 하지만 이제 브래들리의 몸 상태는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았다. 2001-02시즌에는 53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으며 스타팅으로 출전한 경기는 16경기뿐이었다. 리프 라프렌츠, 주안 하워드 등의 빅맨들에게 밀리며 출전시간도 대폭 줄어들었다. 매 시즌 경기당 평균 2.5개 이상의 블록슛을 해내던 그는 이 시즌에 경기당 평균 1.2블록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슬슬 내리막을 걷는 커리어에서 브래들리에게 남은 목표는 우승반지 한 번 끼어보고 은퇴하는 것이었다. 2002-03시즌이 바로 그 적기였다. 노비츠키, 핀리, 내쉬 트리오가 한창 물이 올랐고, 라프렌츠, 닉 밴 엑셀, 월트 윌리엄스, 에이브리 존슨, 에두아르도 나에라 등 받쳐주는 멤버들도 튼튼했다. 하지만 이들은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브래들리는 이제 경기당 10분 정도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선수가 됐다. 우승을 위해서 현역생활을 두 시즌 더 이어갔지만 각각 플레이오프 1라운드,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004-05시즌을 끝으로 브래들리는 아내와 여섯 명의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블록슛 2,114개로 NBA 역대 11위를 기록한 채 그는 그렇게 코트를 떠났다. (현재는 14위로 순위가 내려간 상태다.)

 

♣ 무엇이 아쉬웠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이 있다. 브래들리를 향한 필라델피아의 기대는 대단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이기도 했는데, 그들에게 브래들리에 대한 투자는 나름의 모험이자 실험이었다. “이런 유형의 선수가 NBA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2년의 공백에 따른 후유증은 없을까?” 이런 물음들을 제쳐두고 그를 뽑았지만 결국 그들의 인내심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지만, 포교활동에 따른 공백은 역시 크게 아쉽다. 어차피 늦은 마당인데 포교활동 후 바로 NBA로 향하기보단 대학으로 돌아가서 경기감각과 체력부터 먼저 끌어올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그가 선수생활의 중후반을 보낸 댈러스처럼, 전력이 안정되고 그에게 맞는 역할을 맡겨줄 팀을 진작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앞선 팀들보다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상태에서 브래들리를 영입한 댈러스는 한정적이지만 그에게 맞는 역할을 잘 찾아서 활용했다. 프로생활 초창기에 브래들리가 속한 팀들은 항상 대형 트레이드와 로스터 갈아엎기의 연속이었고, 매 시즌 새로운 얼굴들과 손발을 맞추기에 바빴다. 아마추어 시절의 활약과 높은 드래프트 순위 탓에 기대치만 높아졌고, 이는 그에게 부담만 줬을 뿐이었다.

브래들리는 정말 착하고 심성이 고운 선수였다. 팬들의 조롱과 원망어린 시선도 많았다. 또 집단 난투극이 벌어질 때 멀대 같이 키만 큰 그는 다른 선수들의 집중공략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만만해 보이는 브래들리부터 먼저 때리고 보는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브래들리는 항상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남을 비난하기 보다는 원수마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동료들만큼은 언제나 그를 보호하고 지켜주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도 220cm 이상의 선수들은 흔하지 않지만 이들은 꾸준히 NBA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들의 독특한 신체구조로는 NBA에서 오래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약한 내구성, 느린 스피드 등으로 인해 큰 키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자신의 키를 잘 활용한 블록슛을 무기로 리그에서 10년 이상 버텼던 점은 높게 평가돼야 할 것이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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