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최기창 기자] 이번에는 진짜 ‘운동’하는 여자들을 만났다. ‘체육 전공자들은 어떻게 농구를 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결론은 ‘스포츠는 전공, 농구는 취미’라는 문장이었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딱 들어맞았다.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였다. 체육관을 가득 채운 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녀들. 한국체육대학교 농구동아리 KANCE를 만났다.

취재를 앞두고 전국에 폭우가 쏟아졌다. 다행히 취재날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불쾌한 날씨였다. 마치 사우나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탑승했던 9호선 급행열차의 에어컨은 왜 급랭이 아닌지 불평을 한참 늘어놓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연습 장소였던 영일고등학교 체육관에 도착했다.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꼭지는 특성상 매번 새로운 여자들을 다양하게 만난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넨 친구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연세대와 덕성여대에서 만났던 학생들이었다. ‘여기도 심상치 않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다.

해당 기사는 <루키 더 바스켓>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여자부와 남자부가 동시에
KANCE는 한국체육대학교 소속 농구 동아리다. 스포츠청소년지도학과와 사회체육과로 구성됐다. KANCE라는 이름은 한국체육대학교의 영문 이름인 Korea National Sport University와 ‘전진, 발전’이라는 뜻의 영어단어인 advance를 합쳤다. 

KANCE는 구성이 다소 특이했다. 그동안 다양한 여자농구 동아리를 만났다. 오직 여학생으로만 구성된 동아리였다. 그러나 KANCE는 달랐다. 남자부와 여자부가 함께 존재하는, 말 그대로 ‘대학교 농구 동아리’다. 내부에서는 여자부를 W KANCE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만 대회에 출전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는 오직 KANCE라는 이름만 사용한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장인 박정현(16학번) 양은 “원래는 KANCE 안에 여자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는 여학생들은 매니저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농구를 직접 하고 싶은 여학생들이 2014년도에 여자부를 창설했고, 지금은 KANCE 안에 여자부와 남자부를 모두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2015년부터 꾸준히 입상을 해왔다. 최근에는 지난 7월에 열린 국민대 배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양지희에게서 위성우 감독의 향기가 난다

사실 KANCE를 취재하기로 결정될 때부터 학생들은 “포스트업을 비롯한 골밑 기술을 배우고 싶다. 또 센터를 이용한 팀 공격과 수비를 가르쳐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마침 이날 학생들 지도에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택한 양지희(전 우리은행)가 나섰다.

현재 KANCE는 주장이자 센터인 박정현 양이 팀의 핵심이다. 동아리의 현재 상황과도 딱 맞았던 셈이다. 도착해 농구화로 갈아 신은 양지희는 학생들의 요구를 듣자마자 “그걸 배우면 운동하다가 힘들어서 구토할 수도 있다”며 웃었다.

수업은 다양하게 진행됐다. “토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은 그였지만, 학생들의 요구사항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가장 먼저 센터인 박정현 양에게 골밑에서 자리 잡는 방법을 가르쳤다. 곧 익숙해지자 센터를 이용한 팀 공격과 수비를 지도했다. 이어서는 ‘엔트리 패스’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볼과 상대 공격을 함께 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수비 연습 도중 학생들이 공격자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 “볼 봤어? 못 봤어?”라는 물음 섞인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상대 눈을 봐!”라는 가르침도 있었다. 이윽고 박정현 양의 점프를 관찰하던 양지희는 박 양의 점프 자세를 하나하나 교정하기도 했다.

동작을 하나씩 뜯어서 보는 세밀함.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었다. 바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할 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양지희는 “우리은행에서 감독님과 코치님이 너무나 꼼꼼하게 가르쳐 주셨다. 심지어 팔 위치 하나까지도 지적을 하셨다. 결국 우리은행에서 그렇게 배웠던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아무래도 일반 학생들이라서 이런 경험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세밀하게 가르치려고 했다. 배우는 과정에서조차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래 내가 꼼꼼하거나 세밀한 성격이 아니다. 사실 요새 남편이 그 부분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몸싸움은 누구보다 양지희처럼
양지희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농구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리바운드와 박스아웃, 몸싸움, 스크린 등 좀처럼 배우기 쉽지 않은 동작들이었다.

“우리 팀이 슛을 쏠 때 내가 여기(골밑)까지 상대를 몸으로 밀고 들어가면 누가 유리하겠어? 뒤쪽 리바운드는 다 내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이외에도 “몸싸움을 할 때는 스스로 강하다고 믿어야 해” 같은 심리적인 조언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호응이 컸던 가르침은 따로 있었다. 양지희가 몸싸움에 대해 강의를 할 때였다. “만약 이렇게 상대와 부딪히면 어떻게 할 거야? 잘 모르겠어?”라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한 학생과 몸싸움을 한 뒤 코트에서 넘어졌다. 약 두 달 전 무릎 수술을 받아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지만, 그는 학생들을 위해 몸을 던졌다. 

“이렇게 넘어져야 해. 그래야 파울을 얻어낼 수 있어. 만약 이렇게 앞으로 넘어지면 상대 파울이 아닌 내 파울이니까 꼭 뒤로 넘어져야 한단다. 알겠니? 요령 없이 부딪히면 다칠 가능성이 크고, 심지어 내 파울로 지적될 수 있어.”

그는 “몸싸움 뒤에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파울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또 누구의 파울인지도 그때 나뉜다”고 덧붙였다.

양지희는 학생들을 불러 모은 뒤 자신의 농구 철학을 짧게 설명했다. 그는 “농구의 해답은 반복훈련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안 되는 줄 알았다. 반복적으로 했더니 어느 순간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배웠던 것을 꾸준히 연습하면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다치지 말고, 이 열정을 이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밀려드는 사인과 사진 촬영 요구에 일일이 응대하며 현역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학생들은 양지희의 가르침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날 특별 교습 대상이었던 센터 박정현 양은 “양지희 선수가 센터라서 기대를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 이상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또 “농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적인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오늘 군더더기 없이 평상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만 골라 배웠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열혈 팬”이라고 밝힌 정예솔(13학번) 양은 “우리은행 팬으로서 기대를 정말 많이 했다. 평상시에 좋아하던 선수에게 농구를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센터 플레이를 배울 수 있었다. 꿈같은 시간이었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농구가 삶의 중심인 그녀들
이 꼭지를 취재할 때마다 매번 놀란다. 농구를 사랑하는 여성이 생각보다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전국 노래자랑’처럼 ‘농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이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예솔 양은 이날 제대로 된 연습을 하지 못했다. 패스 등 일부 제한적인 동작만 가능했다. 그는 “농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쳤다. 십자인대 파열로 최근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정 양은 “농구가 너무 좋다. 다치기 전에는 농구를 한 주에 다섯 번을 했다. 하루에 두 번을 한 경우도 있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다시 농구공을 잡을 수 있다. 빨리 제대로 농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미(13학번) 양은 “농구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휴학을 한 적이 있다”고 조심스레 고백했다. 김 양은 “표면적인 이유는 영어공부였지만, 당시에는 거의 농구만 하고 살았다. 1주일에 농구만 8~9번을 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스킬트레이닝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신입생 강은기(17학번) 양은 “사실 (농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냥 농구가 무척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체육관이 없어도 괜찮아
이번 달 <농구하는 여자들>은 특이했다. 처음으로 대학교 체육관이 아닌 외부체육관에서 진행됐다. KANCE의 주장인 박정현 양은 “국립체육대학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학교 안에 (농구를 할 수 있는) 체육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번 외부 체육관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 박 양은 “가끔은 다른 학교로 교류전을 하러 찾아가기도 한다. 야외에서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여름에는 땡볕 아래서, 겨울에는 추운 손을 녹여가면서 농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양은 “선수 수급이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날 다른 학교 동아리를 초대한 이유도 자체 인원으로는 연습 경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씩씩했다. 오히려 “이런 어려운 환경 때문에 더욱 농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처럼 체육관에서 뛸 수 있는 날은 정말 감사한 날이다. 이런 날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체육관이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말한 그는 “저희와 함께 연습 경기를 할 팀은 언제든지 연락해 달라”고 체육관에 대한 절실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양지희의 말·말·말
사실 양지희는 이날 주옥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위트 있기로 소문난 명성 그대로였다. 본문에 소개하지 못한, 현장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그의 발언을 몇 가지 소개한다.

- “세상에는 농구 말고,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 “농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농구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나서.

- “나 작년에 완전 말아먹었는데?”
: 사인을 받던 한 학생이 “언니! 저 언니 팬이에요. 작년에도 팬이었어요!”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 “주장! 저 친구는 이제 팀에서 내보내자!”
: “처음에는 언니를 좋아했다가 지금은 박혜진 언니를 좋아하게 됐어요”라는 고백을 듣고는.

▲ KANCE 농구동아리
- 한국체육대학교 농구동아리 / Korea National Sport University + advance
인원
선수 : 김혜미, 정예솔(이상 13학번), 이민정(14학번), 박정현(16학번), 강은기, 김도경, 이나은(이상 17학번)

사진 : 루키 사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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