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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버드?' 추억의 백인 스타 키스 밴 혼

[루키=황호재 기자] 프로 선수들은 구단과 팬들의 큰 기대를 받으며 데뷔한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친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 부상과 자기관리 실패, 뜻밖의 사고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기대에 비해 N%가 부족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 그 다섯 번째 주인공은 키스 밴 혼이다.

 

♣ 키스 밴 혼 PROFILE

출생 : 1975년 10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州 풀러턴)

신체조건 : 208cm, 109kg

출신대학 : 유타대학

데뷔 : 199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필라델피아)

소속팀 : 뉴저지 -> 필라델피아 -> 뉴욕 -> 밀워키 -> 댈러스

수상실적 : 올-루키 퍼스트팀

통산기록 : 9시즌(총 575경기) 9,206득점 3,909리바운드 900어시스트 472스틸 295블록슛 / 경기당 평균 16.0득점 6.8리바운드 1.6어시스트 0.8스틸 0.5블록슛

 

♣ ‘백인의 우상’을 노리는 기대주

키스 밴 혼을 기억하는가? 반듯한 헤어스타일에 하얗고 말끔한 얼굴, 선한 인상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키가 보통사람들보다 크다는 것만 빼면 그는 우리가 종종 길에서 보는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을 입고 서툰 한국어로 “교회 다니지 않을래요?”라며) 포교하는 백인 청년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그는 한때 크나큰 기대를 받던 농구 유망주였다. 외모만큼이나 심성도 착했던 이 백인 포워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풀러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큰 키로 인해 자연스럽게 농구를 시작한 그는 유타대학으로 진학한 후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밴 혼은 2학년이던 1994-95시즌에 경기당 평균 21.0득점 8.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웨스턴 애슬레틱 컨퍼런스(WAC)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흑인들에 비해 운동능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준수한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대학 4년 동안의 기록은 경기당 평균 20.8득점 8.8리바운드 1.4어시스트 자유투성공률 85.1%였다. (훗날 그의 백넘버 44번은 유타대학에서 영구결번이 됐다.) 3, 4학년 때에도 각각 컨퍼런스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밴 혼은 4학년을 마치고 NBA로 행했다. 밴 혼이 참가했던 1997년 NBA 신인 드래프트는 팀 던컨을 위한 드래프트였다. 당시 기대치는 던컨이 봉황새라면 다른 참가자들은 꿩 내지 메추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던컨이 독보적이었고, 누가 1순위 픽을 얻든지 선택은 당연히 던컨인 상황이었다.

1순위로 던컨을 뽑는 행운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차지했다. 그렇다면 과연 2순위는 누구인지가 관심사였는데, 2순위 지명권을 얻은 필라델피아 76ers가 그 주인공이 됐다. 천시 빌럽스(3순위), 론 머서(6순위), 트레이시 맥그레디(9순위)를 제쳐두고 밴 혼을 지명한 것.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이틀 만에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필라델피아는 밴 혼, 마이클 케이지, 루시어스 해리스, 돈 맥클린을 뉴저지 네츠(現 브루클린 네츠)에 내줬고, 뉴저지는 짐 잭슨, 에릭 몬트로스, 앤써니 파커, 팀 토마스를 필라델피아로 보냈다.

 

♣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겪은 뉴저지 시절

밴 혼은 이렇게 어수선하게 NBA에 데뷔했다. 그런데 당시 뉴저지는 좋은 기반이 마련된 곳이었다. 백코트진이 쟁쟁했다. 가수 김창렬을 닮은 외모로 우리에게 친숙했던 케리 키틀스, 휴스턴 로케츠에서 우승을 경험한 포인트가드 샘 카셀, 훗날 은퇴 후 복서로 전향해 화제가 된 켄달 길이 있었다. 또 프런트코트에는 리바운드 머신 제이슨 윌리엄스, NBA를 대표하는 저니맨이지만 한때 올스타 무대까지 나섰던 실력자 크리스 개틀링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했다. 이들 가운데서도 밴 혼은 경기당 평균 19.7득점 6.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내 득점 1위, 리바운드 2위를 기록했다. 뉴저지는 1998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시카고 불스를 만나 0승 3패로 탈락(당시 1라운드는 5전 3선승제)했지만 경기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들은 1, 2차전에서 각각 3점차, 5점차로 패하는 등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하는 등 당시 우승팀을 맞아 선전했다. 밴 혼은 신인왕 투표에서 1위표 한 장을 얻으며 팀 던컨의 만장일치 신인왕을 저지했다. 물론 그 당시 이것을 두고 “너무 비상식적인 투표가 아니냐”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밴 혼의 활약상이 던컨 바로 다음 가는 수준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1998-99시즌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파업으로 정규시즌이 짧아진 이때(팀당 50경기) 존 칼리파리 감독은 3승 17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중도하차했다. 체질개선에 나선 뉴저지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대규모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들은 밀워키 벅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3각 트레이드로 샘 카셀, 크리스 개틀링을 내보내고, 스테판 마버리를 영입했다. 뉴저지는 고작 16승 34패로 시즌을 마감한 뒤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밴 혼은 경기당 평균 21.8득점 8.5리바운드 1.3블록슛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없이 시즌을 잘 마무리했다.

1999-00시즌 마버리와 밴 혼 콤비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이들은 각각 22.2득점 8.4어시스트와 19.2득점 8.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뉴저지 팬들은 1990년대 초반 ‘젊은 칼 말론 & 존 스탁턴’이 될 것이라는 큰 기대를 받았던 데릭 콜먼과 케니 앤더슨 콤비에게 아쉬움을 지니고 있었다. 팬들은 마버리와 밴 혼이 이들이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길 기대했다. 1999-2000시즌 뉴저지의 성적은 31승 51패로 다소 아쉬웠지만, 아직은 실패를 논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저지는 2000-01시즌에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2000 드래프트 1순위로 케년 마틴을 영입했지만 팀 성적은 26승 56패로 더욱 나빠졌다. 팀 내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매스컴을 통해 퍼져나갔고 마버리는 “기자들한테 그런 팀 속사정까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선수들한테 실망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뉴저지는 마버리를 피닉스로 트레이드하며 제이슨 키드를 영입했다. 2001-02시즌 키드 영입 후 뉴저지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키드를 통해 조직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속공과 하프코트 게임 모두 물 흐르듯 진행됐다. 많은 팬들이 뉴저지의 플레이에 빠져들며 팀의 인기가 급상승했다. 밴 혼은 경기당 평균 14.9득점 7.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예전보다 입지는 줄어들었지만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여전히 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뉴저지는 2002 플레이오프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를 차례로 꺾으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마지막 상대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LA 레이커스였다. 동부 컨퍼런스 팀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했던 뉴저지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내리 4연패하며 무너졌다. 이때 밴 혼의 부진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당시 파이널 4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0.5득점 5.8리바운드에 그쳤다. 야투 성공률은 38.6%에 불과했고, 특히 슛을 던지기 주저하는 등 배짱 없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팬들은 그런 밴 혼에게 실망감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케년 마틴 역시 “누구라고 딱 집어서 말하지는 않겠다. 시리즈 내내 정말 실망스럽고 소심한 선수가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밴 혼을 겨냥한 멘트였다.

 

♣ 내리막길을 걷는 한때의 유망주

결국 밴 혼은 정리대상이 됐다. 뉴저지는 밴 혼과 토드 맥클러프를 필라델피아의 디켐베 무톰보와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밴 혼은 필라델피아에서 알렌 아이버슨에 이은 공격 2옵션 역할을 맡았다. 그는 2002-03시즌 평균 15.9득점 7.1리바운드로 그럭저럭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던 아이버슨과는 달리, 밴 혼은 2옵션으로 부족한 선수였다. 밴 혼은 다시 한 번 짐을 꾸려야 했다. 필라델피아, 미네소타, 뉴욕 닉스, 애틀랜타 호크스가 연계된 4각 트레이드였다. 밴 혼의 행선지는 뉴욕이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그는 채 한 시즌을 보내지 못하고 밀워키로 또 다시 트레이드 됐다.

그래도 이때까지 밴 혼은 괜찮은 공격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뉴욕과 밀워키에서 보낸 2002-03시즌 밴 혼은 평균 16.1득점 7.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하지만 리빌딩이 필요했던 밀워키는 그를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 2004-05시즌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밴 혼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캘빈 부스, 앨런 헨더슨과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이 당시 댈러스는 전성기였던 덕 노비츠키와 마이클 핀리, 조쉬 하워드, 제이슨 테리, 제리 스택하우스 등 풍부한 공격자원을 보유한 팀이었다. 자신과 중복되는 영역이 많은 노비츠키가 있는 팀에서 밴 혼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우승을 노릴 수 있는 팀(정규시즌 성적 58승 24패)에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고, 그는 식스맨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댈러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피닉스에게 2승 4패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005-06시즌 댈러스는 60승 22패로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시 우승 도전에 나섰다. 비록 핀리가 팀을 떠났지만, 하워드와 데빈 해리스, 마퀴스 다니엘스 등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며 전력이 더욱 탄탄해졌다. 문제는 밴 혼이었다. 그의 컨디션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밴 혼은 정규시즌에 29경기나 결장했고, 경기당 평균 8.9점에 그치며 데뷔 이래 최초로 한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댈러스는 멤피스 그리즐리스, 샌안토니오, 피닉스를 차례로 꺾으며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마이애미 히트에게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밴 혼은 이 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났다. 좀 더 선수생활을 이어 갔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연이은 트레이드와 부상에 지친 그는 더 이상 코트에 미련이 없었다. 이후 편안히 휴식을 취하던 그는 2008년 뉴저지와 계약을 맺어 다시 관심을 모았지만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채 방출되며 정말로 코트와 작별했다.

 

♣ 무엇이 아쉬웠나?

밴 혼은 전형적인 용두사미의 케이스이다. 데뷔 후 첫 3시즌 동안에는 충분히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향후 올스타 선정도 노려봄직했다. 또, 래리 버드와 크리스 멀린 이후 이렇다 할 미국 출신 백인 포워드가 없는 가운데, 많은 기대와 성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적도 없었다. 동료복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육체적인 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면이다. 너무 착하기만 했던 그는 독기가 부족했다. 조금 더 용감하고, 책임감 있고, 승부사다운 면모를 보였어야 했는데, 큰 경기에서 그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규시즌에 팀 내 득점 1, 2위를 다투며 공격을 이끌었다면 플레이오프에서도 그런 실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플레이오프만 되면 활약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프로 통산 정규시즌 16.0득점을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평균 9.5점에 그쳤다. 플레이오프 통산 필드골 성공률은 38.8%로 너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물론 2001-02시즌 파이널 당시 그가 정규시즌 정도의, 혹은 그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할지라도 레이커스를 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좋은 활약을 했다면 최소한 뉴저지에 더 오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뉴저지를 떠난 후 그는 트레이드 마감기간만 되면 항상 초조함 속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그를 빨리 은퇴하게끔 이끌었다.

2000년대 중반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것이 아쉽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부담을 덜었던 댈러스에서 우승에 도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만일 데뷔 초의 기대대로 성장했다면 그는 백인 포워드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랐어야 했다. 하지만 밴 혼은 그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끝내 유타대학 시절의 영광을 프로 무대에서 재현하지 못했다. 밴 혼은 우리에게 ‘제 2의 래리 버드’가 얼마나 나타나기 힘든지 몸소 일깨워줬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코리아

황호재  rookiemagaz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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