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편에 이어...

[루키=편집부/구새봄 아나운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우연히 라틀리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분명 유복하게 유년시절을 보낸 것 같지는 않았다. 더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물어봐야 할지 잠시 고민에 휩싸였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더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의 ‘라틀리프’라는 선수가 있기까지 어떤 역경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난 후 이 이야기를 기사화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는데, 그는 흔쾌히 괜찮다고 대답 해줬다. 지금부터는 아무도 몰랐던 라틀리프의 진짜 이야기다.

영어 인터뷰의 묘미를 살리고,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인터뷰는 반말로 구성합니다.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7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구새봄(이하 '새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농구로 전향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만족할 만큼 벌고 있는 거야?
리카르도 라틀리프(이하 '라틀리프'): 어! 편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은 벌고 있는 것 같아. 첫 세 시즌은 KBL에 와서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가면서 보너스도 두둑하게 받았고, 2016년에는 플레이오프에 못 간 대신 KBL 시즌이 끝나고 필리핀 리그에 가서 뛰었거든. 내가 지금 열심히 벌어 놔야 딸 레아가 나중에 편하게 살수 있을 테니 열심히 뛰고 있어. 내가 그리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누리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레아는 그걸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새봄: 그렇구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족관계가 어떻게 돼?
라틀리프: 어머니, 10살 많은 형과, 1살 어린 여동생이 있어. 미국에서 내가 사준 집에서 다 같이 살고 있지. 그리고 내 와이프 휘트니와 레아도 있어.  
새봄: 가족들이 모두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모든 가족을 너 혼자 부양하는 거야?
라틀리프: 그렇다고 봐야해. 어머니가 지금 몸이 편찮아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고, 형이랑 여동생도 크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사실상 집안의 가장이지. 
새봄: 온 가족을 모두 부양 한다는 게 힘들진 않아? 
라틀리프: 가끔은 ‘왜 삶이 나한테만 이렇게 불공평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정이 따로 생겼는데, 왜 여전히 나는 다 큰 성인들까지 신경 써야 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나를 18년이나 키워줬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내 가족이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다시 책임감을 가지게 되지.

새봄: 이렇게 부양할 가족이 많은데, 결혼을 너무 빨리 한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어? 돌봐야 하는 사람이 늘어난 거잖아.
라틀리프: 아니. 전혀!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오히려 내 가정이 생기면서 돈을 더 절약하고 있어. 난 멋진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좋아하는데, 돌봐야할 여자가 두 명 늘어나다보니 여러 개 사는 대신 하나만 사게 되더라고. 
새봄: 가족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기는 해?
라틀리프: 그럼! 사실 돈을 처음 벌기 시작 했을 때는 경제관념이 없었어. 돈이 없던 어린 시절에 사지 못했던 것들을 충동적으로 다 샀거든.
새봄: 예를 들면?
라틀리프: 신발! 우리 집에 아마 신발이 400켤레는 있을걸! 
새봄: 400켤레? 그걸 어디다 다 보관해?
라틀리프: 우리 집에 가면 신발만 모아놓은 장이 따로 있어. ‘신발장’이 아니라 ‘신발방’이라고 보면 돼. 크리스찬 루부탱, 발렌시아가 같은 명품들도 많아. 
새봄: 정말 돈을 많이 벌었나보네... 언제부터 돈을 모았는데?
라틀리프: 울산 모비스가 내 인생의 첫 직장이야. 

새봄: 직업을 가진게 생각보다 오래된 건 아니네? 그런데 넌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된 거야?
라틀리프: 사실 NBA 드래프트에 뽑힐 줄 알았는데, D리그로 가라더라고. 그런데 난 책임져야 할 가족이 많잖아. D리그에 가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에이전트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리그를 5개 정도 소개해 주더라고. 그 중 하나가 KBL이었어. 
새봄: 그럼 한국에 오기 전에 다른 나라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던 거네?
라틀리프: 대학 때 경기에 참가하려고 멕시코에 가본 것 말고는 외국에 나가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새봄: 그러면 한국이 엄청 특별하게 느껴지겠구나?
라틀리프: 그럼! 지금은 아시아에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 다 가봤어. 그 모든 시작이 한국이지. 한국에서 잘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새봄: 한국은 어때?
라틀리프: 그냥 진짜로 한국은 나한테 제2의 고향이야. 미국보다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도 하고, 이제 그냥 한국에 너무 적응이 돼버린 것 같아. 필리핀에 갔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더라고. 필리핀은 오히려 영어를 쓰는 나라인데도 내가 한국에 적응이 돼서 그런지 많이 달랐어. 

#참 고마운 KBL
라틀리프에게 한국은 특별한 나라다. 첫 직장을 가지게 해준 나라이고, 딸 레아가 태어난 나라다. 그래서일까? 겉으론 무뚝뚝해 보이는 라틀리프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일종의 ‘츤데레’ 같다고 할까? 그래서 내친김에 올 해 초 KBL을 뜨겁게 달궜던 라틀리프 귀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새봄: 한국에서는 누구랑 친해?
라틀리프: (데이비드) 사이먼이랑 에릭 와이즈. 사이먼은 사실 필리핀에서 친해지게 됐어. 필리핀 리그에 갔는데 사이먼이 있더라고. 둘 다 KBL에서 왔고,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다는 점 등 공통점이 있어서 빨리 친해지게 됐지. 나는 필리핀 생활이 처음이었는데, 경험이 많은 사이먼이 필리핀 리그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알려줬어. 나한테는 큰형이나 마찬가지야.
새봄: 에릭 (와이즈)이랑은 작년에 같은 팀에 있어서 친한 거지?
라틀리프: 그렇지. 나한테 사이먼이 큰 형 같은 존재라면, E(라틀리프는 에릭을 E라고 불렀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이름이 알파벳 E로 시작하기 때문이란다)에게는 내가 큰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새봄: 와이즈가 더 나이가 많지 않아?
라틀리프: ㅋㅋㅋㅋㅋㅋ 물론 와이즈가 좀 삭긴 했지만 나보다 한 살 어려. 와이즈가 모비스에 있을 때 나한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어. 내가 거기 있었으니까. 그리고 모비스에서도 아직도 내 이야기를 많이 한대. “라틀리프는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고맙지.
새봄: 와이즈한테 해줄 조언이 많았겠네?
라틀리프: 그랬지. 아! 맞다. 최근에 들은 사실인데, 첫 해에 모비스에서 나를 원래 방출 시키려고 했었대.
새봄: 정말?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야?
라틀리프: 그건 나도 정확히 기억 안나. 근데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그때 기자들이 나한테 물어봤었던 것 같아. “외국인 선수들 중에 한 명이 집에 간다던데 그게 누군지 아냐”고 말야. 
새봄: 그래도 교체 안하고 기다려준 유재학 감독님한테 고마운 마음이겠는데?
라틀리프: 그렇지. 나를 끝까지 믿어준 거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다른 리그들을 다니면서 농구를 할 수 있는 이유도 모비스에서의 출발이 좋았기 때문이잖아. 나한테는 아버지나 다름없어.

새봄: 네가 한국을 정말 특별하게 생각하는 게 느껴져! 올해 초에 네가 한국 여권을 갖고 싶다고 해서 농구계가 발칵 뒤집어졌었잖아.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라틀리프: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KBL이 내 귀화문제와 관련해서 회의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어떤 결정이 나던 난 그냥 열심히 뛸 거야.
새봄: 아직도 귀화 하고 싶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 거야?
라틀리프: 어! 변함없어!
새봄: 귀화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라틀리프: 나는 내가 한국 대표팀에 합류하면 다른 나라랑 경기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한국 리그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서 한국 여권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존스컵에서 KBL을 대표해 다른 나라 팀과 맞붙었는데, 자부심을 느꼈어. 그래서 귀화하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딸 레아가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잖아.

라틀리프가 KBL에 온지 벌써 5시즌. 이제 6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염도 길렀고(본인 말로는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조금 더 ‘올드 해 보이고 싶어’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도 생겼다. 자신이 번 돈으로 미국에 집을 샀고, 소속팀도 한 번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라틀리프는 항상 KBL 최고 선수의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우승은 물론 외국인선수상도 수상했다. 매 시즌 팀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정규리그 평균 28득점 15.8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지난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서 16경기를 뛰며 28.4득점 15.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한 달간 16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에도 지치지 않는 라틀리프의 무한질주는 거침없었고 시즌 52회 더블더블이라는 믿기지 않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리고 다음시즌에도 라틀리프는 삼성과 함께한다.

주축 선수들의 군입대와 베테랑 주희정의 은퇴 등 변화의 기로에 놓인 지난 시즌 준우승팀 서울 삼성. 그러나 라틀리프가 건재한 이상 그들의 다음 시즌도 여전히 지난 시즌 만큼 희망적이지 않을까? 삼성에서의 세 번째 시즌. 라틀리프의 새로운 시즌을 기대한다.

사진 : 박진호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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