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스윕 위기에서 벗어났다. 핵심은 수비. 그 중에서도 가운데 레인의 미드레인지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노-미들(No-Middle) 수비가 제대로 빛을 발휘했다.

서울 SK 나이츠는 11일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승리, 스윕 위기에서 기사회생했다.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내준 SK는 3차전에서는 17점 완패를 당하며 시리즈 스윕 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4차전에서는 LG를 역대 챔프전 한 경기 최소 득점인 48점으로 묶는 강력한 수비를 선보이며 시리즈 첫 승을 거머쥐었다.

4차전 LG의 공격 난조는 주전 의존도가 높은 LG의 극단적인 야투율 감소가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4차전에서 유독 LG가 공격에서 뭔가 해보지도 못했다는 느낌을 준 이유는 진짜 따로 있었다. SK의 '노-미들' 수비 전략이었다.

노-미들 수비 전략이란, 상대 볼 핸들러나 다른 공격수들이 자유투 라인 부근의 미드레인지에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비를 말한다.

2대2 수비 시에 SK의 노-미들 수비는 다음과 같은 원칙 아래 전개된다.

1. 2대2 수비 시에 워니는 페인트존으로 처지고, 핸들러 수비수는 사이드라인을 바라보는 형태로 스탠스를 잡고 핸들러를 사이드라인으로 몰아낸다.(아이스 수비)

2. 스크리너가 가운데 레인 미드레인지로 롤하는 경우, 반대 사이드의 하이 맨이 이를 미리 체크한다.

3. 이때 반대 사이드의 로우 맨은 윙과 코너를 체크하는 겟 투 수비를 한다.

4. 반대 사이드로 볼이 갔을 경우 빠른 로테이션 수비로 이를 커버한다.

5. 혹여나 핸들러나 다른 공격수가 페인트존 안에 볼을 가진 채 진입했을 경우, 페인트존 주변에서 강한 손질로 도움 수비를 펼쳐 정상적인 공격을 방해한다.

평소 SK 전희철 감독은 이 같은 수비에 대해 "사이드라인으로 모는 수비"라고 부른다. SK의 이 수비는 오랫동안 KBL 최고급 핸들러를 막아서는 방패로 활용됐다. 이선 알바노, 허훈 같은 핸들러들이 SK의 노-미들 수비에 모두 고전한 바 있다.

 

 

경기 장면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자. 

1쿼터 초반 양준석과 마레이가 하이 픽앤롤을 하자, 최원혁이 양준석을 오른쪽 사이드라인으로 몰아붙이고, 워니는 양준석의 돌파 동선에 미리 자리를 잡는 수비를 펼친다.(초록색 원)

이때 타마요를 마크하던 오세근(보라색 원)은 스크린 후 롤하는 마레이를 체크하는 태깅 수비를 펼친다.

최원혁과 워니의 사이드라인 몰기에 양준석이 3점슛 라인 앞에 멈쳐버렸다.(초록색 원)

타마요를 버린 오세근은 마레이를 밀어내며 태깅 수비를 이어가고(보라색 원), 왼쪽 윙의 유기상을 체크하던 김선형은 유기상을 두고 탑의 타마요를 체크하는 수비를 펼친다.(노란색 원)

이때 안영준도 반대 코너의 정인덕을 버리고 페인트존 한가운데에 서서 지역방어 형태의 수비를 이어나간다.

양준석이 억지로 최원혁을 떨쳐내고 가운데 레인 미드레인지로 진입하지만(보라색 원), 최원혁과 오세근의 손질과 압박이 곧바로 가해진다. 결국 턴오버로 LG의 공격 종료.

SK 노-미들 수비의 완벽한 성공이다.

이 장면은 어떨까.

양준석이 하프라인을 넘어오고, 타마요와 마레이가 3점 라인보다 높은 지점에서 양준석을 바라보며 나란히 볼 스크린을 서는 더블 드래그 스크린 공격을 세팅한다.

이때 양준석을 마크하는 최원혁, 타마요를 마크하는 오세근의 스탠스와 위치를 주목하자.(보라색 원)

최원혁은 아예 타마요의 스크린 각도와 평행을 이루는 스탠스를 취하며 양준석을 왼쪽 사이드라인으로 몰려고 한다.

오세근도 이에 맞춰 타마요와 거리를 두고 왼쪽 엘보우 위쪽에 서서 가운데 레인 미드레인지 진입을 미리 막아서는 모습이다.

더블 드래그 공격에 맞서 처음부터 아이스 수비를 펼치는 것이다.

결국 양준석이 최원혁과 오세근이 열어둔 왼쪽 윙 공간으로 들어갔고, 최원혁은 양준석을 마주보며 사이드라인으로 몰고, 오세근도 3점 라인 바로 위에 서서 양준석의 미드레인지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모습이다.

더블 드래그 공격이 최원혁과 오세근의 아이스 수비에 가로막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양준석은 빠르게 마레이에게 볼을 넘겨주고 핸드오프 패스를 받으러 가며 2대2 공격을 다시 시도한다.

그러자 이번엔 최원혁이 오른쪽 사이드라인 쪽으로 양준석을 몰고, 워니는 마레이를 버려두고 오른쪽 엘보우 근처까지 올라와 양준석의 가운데 레인 진입을 막아서는 아이스 수비를 펼친다.(보라색 원)

이때 왼쪽 윙의 정인덕을 막는 안영준은 페인트존 가운데까지 들어와 마레이를 체크하는 태깅 수비를 펼친다.(초록색 원)

더블 드래그 스크린을 활용한 3대3 공격, 이어서 다시 시도한 핸드오프 2대2 공격에서 모두 가운데 레인 진입에 실패한 양준석. 결국 왼쪽 윙의 정인덕에게 크로스패스를 뿌렸고 정인덕이 과감하게 3점을 던지지만 실패했다. SK의 노-미들 수비가 또 성공하는 모습이다.

SK는 이 같은 노-미들 수비를 기반으로 3차전 내내 엄청난 수비력을 자랑했다.

특히 2대2 수비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포스트 수비, 로테이션 수비에서도 가운데 레인 미드레인지를 내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예외없이 지켜졌다.

간혹 미드레인지로 진입하는 LG 공격수들에게는 엄청난 손질이 가해졌고, 그 영향으로 아셈 마레이마저 틀어막혔다. 시리즈 내내 림 바로 아래와 숏 미드레인지 공간(2대2 공격 시에 자주 진입하는 위치)에서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던 아셈 마레이는 단 10점에 그쳤다.(야투 4/11)

앞서 언급했듯 SK의 노-미들 수비는 전혀 새로운 수비 전략이 아니다.

SK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수비를 활용해왔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이 수비를 활용해 KT 허훈을 괴롭혔다. SK의 이 수비가 너무 탄탄한 탓에 KT는 4강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 허훈 대신 해먼즈가 하윤기와 2대2를 전개하는 빅투빅 픽앤롤 빈도를 높이고, 해먼즈의 스크린 이후 동선을 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챔피연결정전에서는 SK의 강력한 노-미들 수비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윕 패 위기에 몰린 채 맞이한 4차전부터는 선수들의 수비 수행능력과 손질의 강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 마디로 수비 응집력이 달랐다. 덕분에 4차전에서 SK는 방패로 LG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2차전부터 조금씩 양준석의 볼 소유 시간과 공격 비중이 커졌던 LG는 4차전부터 확 달라진 SK의 수비 응집력과 에너지 레벨에 경기 내내 공격이 밖으로 몰려다녔다. 마침 외곽슛까지 터지지 않으면서 SK의 노-미들 수비를 뚫는 데 애를 먹었다.

4차전 후반부터 LG는 노-미들 수비 공략을 위해 2대2 반대 사이드의 움직임을 바꾸거나, 스페인 픽앤롤을 가미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5차전에서는 어떤 그림이 나올까? SK가 4차전처럼 노-미들 수비 기반의 팀 디펜스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 LG가 어떤 공격 변화로 SK의 수비를 흔들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

5차전은 SK의 홈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다.

사진 = KBL 제공, KBL 경기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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